회차 1

어둡고 습한 폐 창고 안. 주위는 너무나 음산하고 으스스했다.

"고지혁, 나 납치당했어. 빨리 와서 구해줘…"

강서아는 창고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몸에는 몽둥이에 맞아 생긴 상처들이 가득했고, 새하얀 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가득했다.

현재, 그녀는 간신이 주머니에서 예비용 휴대폰을 꺼내 남편 고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흐느끼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 묻어났고, 공포에 질려 말까지 더듬었다.

"강서아, 너 아직도 이 수작이야?"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 온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강서아는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 났다. "진짜야. 그 사람들 총도 가지고 있어. 나…"

"적당히 해!"

고지혁은 가차 없이 그녀의 말을 잘라버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날 다시 네 곁으로 불러 들이려고 이런 거짓말까지 해? 나 지금 응급실이야! 은설이 심장병이 발작했다고. 강서아. 제발 부탁인데, 이제 철 좀 들면 안돼?"

"나…"

"A국에 돌아 오면 그때 다시 얘기해.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마. 바쁘니까 끊어."

뚜뚜뚜… 통화가 끊겼다.

강서아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기 시작했고, 심장이 빠르게 식어 갔다.

그녀는 극도의 절망에 빠진 사람은 아무 표정도 지을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고 그 말이 사실임을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불과 반나절 전만 하더라도 두 사람은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임은설이 전화로 심장통을 호소했고, 고지혁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강서아를 이국의 낯선 거리 한복판에 내버려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항으로 향했다.

머릿속에 온통 첫사랑 임은설만 가득했던 그는 홀로 해외에 남겨진 아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고지혁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서아의 머리에 마대가 씌워졌고, 강제로 승합차에 끌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폐 창고에 던져졌고, 납치범들은 그녀를 향해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뺨도 퉁퉁 부어 올랐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쯤, 때리다 지쳤는지 놈들은 창고를 떠났고, 강서아는 그제야 기회를 틈타 도움을 구했다.

그때, 강서아의 카톡에 임은설이 보낸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 속, 고지혁은 온몸이 흠뻑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은설을 부드럽게 품에 안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을 지키는 듯 조심스런 모습이었다.

초조함, 안타까움, 공포, 여러 잠정이 잔뜩 뒤섞인 고지혁의 긴장한 얼굴, 그건 강서아가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강서아는 마치 날카로운 비수에 심장이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으나 눈가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가 죽음의 위기에서 허덕이고 있는 와중에 남편이란 사람은 한없이 다정한 모습으로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

이런 결혼 생활은 더 이상 유지할 가치가 없었다.

눈물을 닦아낸 그녀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반드시 이혼 할거야!'

그때, 문밖에서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납치범들이 돌아 온 게 분명했다.

얼른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그녀는 머리 위 좁은 환기창에 시선을 고정했다.

다른 이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보단 자신을 믿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무릎이 너무 아팠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환기창 아래에 있는 나무 상자에 기어 올라 기름때가 가득한 환기창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왔다. 녹슨 철조망이 그녀의 팔을 긁었고, 흘러 나온 피가 빗물에 섞여 아래로 흘러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도착한 곳은 진흙으로 질척이는 골목이었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 길이 너무 미끄러웠다.

위에서 뛰어 내린 그녀의 두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발목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숨이 멎을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고 그저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골목 안으로 향했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도로가로 달려 나왔을 때, 롤스로이스 팬텀 한대가 빗속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젠장! 그년이 도망쳤어!"

"빨리 쫓아!"

그때, 그녀의 뒤에서 납치범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서아는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어 롤스로이스 팬텀 앞을 가로막았다.

빗속에서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이내, 차창이 내려가더니 운전사가 고개를 내밀고 욕설을 퍼부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강서아는 뒷좌석에 앉은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짙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거기에 너무나 잘생긴 얼굴까지 더해져 지적이고 고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그는 온 몸으로 강렬한 기세를 뿜어 내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 갈 수 없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강서아의 눈에서 흘러 나온 눈물이 빗물에 씻겨 아래로 흘러 떨어 졌다. 그녀는 팔을 들어 눈물을 훔치고 나서 다급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저 납치 됐어요! 제발 도와 주세요!"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까만 눈동자에 온몸에 진흙을 뒤집어쓴 여자가 들어 왔다. 처참한 몰골임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을까? 그의 깊고 어두운 눈빛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그때, 뒤에서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와 함께 욕설이 들려왔다. 납치범들이 그녀를 쫓아온 것이다.

회차 2

강서아는 피로 얼룩진 손으로 차창을 두드리며 애원했다. "제발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남자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제발요…" 강서아는 점점 가까워지는 납치범을 돌아보며 창백한 얼굴로 애원했다. "제가 꼭 보답할게요."

남자는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더니 말했다. "타."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차는 빠르게 질주했다.

귓가엔 요란한 바람 소리와 엔진 소리만 들렸고 납치범들은 이미 멀리 따돌려졌다.

그녀는 드디어 위험에서 벗어났다.

남자는 강서아를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에 데려다줬다.

강서아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축축한 액정을 대충 닦아 내고 휴대폰을 열었으나 부재중 전화도, 문자 메시지도, 심지어 카톡 메시지도 한 통 없었다.

강서아는 조용하기만 한 휴대폰을 한참이나 내려다 보았고 순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최후의 희망의 불씨마저 꺼져버렸다.

강서아는 눈을 깜빡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애써 참았다.

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앞에 선 남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연락처 알려주실래요?"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QR코드를 열어 그녀에게 건넸다.

강서아는 QR코드를 스캔 해 SNS를 추가하고 나서 즉시 그에게 600만 원을 송금했다.

"지금 당장 가진 돈은 이게 전부에요." 강서아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중에 제가 A국에 돌아가면 제대로 사례할게요."

남자는 피식 웃더니 강서아에게 자신의 이름을 보냈다. [진이준.]

강서아도 답장으로 자신의 이름을 보냈다. [강서아.]

강서아는 고마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전 지금 당장 A국에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조심하고." 말을 마친 진이준은 바로 자리를 떠났다.

'강서아라... 흥미로운 여자군.'

연약하고 모습과는 달리 차갑고 주견이 있었다.

'이런 여자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법인데 말이야.'

그는 그녀와의 다음 만남이 기대 되기 시작했다.

5시간의 비행 끝에 강서아는 드디어 A국에 도착했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하늘 저택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 보니 고지혁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임은설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게 분명했다.

는 피식 냉소를 짓는 강서아의 마음 속은 조롱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키고 이혼 합의서 두 장을 프린트 한 뒤, 위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이어 강서아는 침실로 들어가 짐을 챙겼다.

침대 머리맡에 걸린 웨딩 사진을 본 강서아의 얼굴에 조롱 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침대 위에 올라서서 까치발로 웨딩 사진을 떼어내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웨딩 사진이 산산조각 났다. 유리가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바닥을 어지럽혔다.

깨진 웨딩사진, 무수한 유리 파편, 원래대로 되돌린 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강서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질러진 바닥을 지나쳐 낡은 20인치 캐리어를 찾아 냈다.

그녀가 시집올 때 가져온 짐이라곤 이것뿐이었고, 떠나는 지금 그녀가 챙겨 갈 짐도 오직 그 캐리어 하나 뿐이었다. 몇 벌의 낡은 티셔츠와 닳아 색이 바랜 청바지, 그리고 낡은 앨범 한 부. 그게 전부였다.

고지혁이 체면치레라도 하라고 그녀에게 선물했던 값 비싼 옷들과 장신구들은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10분 후.

캐리어를 끌고 1층으로 내려 온 강서아는 이혼 합의서를 거실 대리석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현관문에서 삐리릭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지혁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파편과 쓰레기통에 버려진 웨딩 사진이 그의 시야에 들어 왔고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성큼성큼 침실 문 앞에 도착한 그는 마침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강서아를 발견했다.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 고지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돌아 오지 않으면? 해외에서 죽으라고?" 강서아는 조롱 섞인 한마디를 내 뱉고는 캐리어를 끌고 떠나려 했다.

"또 왜 이러는 건데?" 고지혁은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어젯밤에 전화로 말했잖아. 은설이 심장병이 재발했으니 내가 곁을 지켜야 한다고. 너 고씨 가문의 사모님이잖아? 조금 관대해 질 순 없어?"

회차 3

'반나절 전만 하더라도 납치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고지혁은 납치를 당했다던 그녀가 이렇게 빨리 돌아 올 줄은 몰랐다. 거기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강서아는 고지혁을 올려다봤다. 그를 볼 때마다 항상 애정으로 가득 차 있던 그녀의 눈동자엔 이제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혼하자."

고지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되물었다. "뭐라고?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강서아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당연히 알지. 이혼하자고."

"이혼?" 고지혁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혼하면 어디로 갈 건데? 촌 구석으로 다시 돌아가게? 강서아, 가문의 사모님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잖아? 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러는 건데?"

강서아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 갔다.

고지혁은 그녀를 남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여자로 여겼고 남자의 곁을 떠나면 당장이라도 기본적인 생활도 유지 할 수 없는 여자로 보았다.

그는 몰랐겠지만, 그와 결혼하기 전, 그녀는 국내 최고의 주얼리 디자이너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고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위해, 그녀는 자신의 꿈을 접고 은퇴를 결심했다.

그러나 이 황당하고 허무한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다.

"고씨 가문 사모님자리? 원하는 사람한테 주든가." 강서아는 허리를 꼿꼿이 피고는 캐리어를 끈 채,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고지혁을 노려봤다. "이혼 서류 확인하고 사인해."

말을 마친 그녀는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쥐고 집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고지혁은 더욱 차갑게 굳은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강서아. 오늘 이 문을 나서면, 절대 다시 돌아 올 생각조차 하지 마!"

"걱정 마. 다시는 안 올 테니까."

강서아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싸늘한 눈으로 고지혁을 쳐다보았다.

그때, 실크 잠옷을 입은 조아란이 계단을 내려오다 바닥에 어질러진 물건들과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향하는 강서아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 "가출이라도 하려는 거니?"

"네, 이혼하려고요. 이제 어머님께서 바라시던 대로 되었네요." 강서아는 냉소를 지으며 담담하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가 고씨 가문에 시집온 뒤로, 조아란은 늘 그녀에게 욕지거리와 손찌검을 일삼았고 그녀를 고아라고 깎아 내렸다. 심지어 종일 임씨 가문 아가씨 임은설과 비교하며, 강서아를 아무 쓸모 없는 년이라 치부했다.

조아란은 강서아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먼저 이혼을 하자고 한 사람은 너야! 잘 됐네! 진작 이혼했어야 했는데."

말을 마친 그녀는 고지혁을 돌아봤다. "이런 재수 없는 년을 집에 두면 집안을 망치는 법이야. 저런 고아는 지혁이 너한테 어울리지도 않아. 우리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은 임씨 가문 아가씨인 임은설 밖에 없어. 저딴 년이랑 빨리 이혼하고 은설이랑 결혼 해."

고지혁은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 그만해."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우리 고씨 가문에 시집온 게 얼마나 큰 행운인 줄도 모르고,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는 꼴이라니!?" 조아란은 차갑게 쏘아붙였다. "강서아, 먼저 이혼하자고 한 사람은 너야! 얼른 꺼져! 그리고 절대 다시 돌아 올 생각 하지마!"

강서아는 두 모자를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가 바로 지난 3년 간, 그녀가 모든 걸 다해 사랑한 집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이러니 했다.

강서아는 허리를 곧게 핀 채, 차갑게 냉소를 흘리더니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바로 눈이 멀어 당신네 고씨 가문에 시집온 거에요. 이제부터 우리 각자의 길을 가요. 죽어서도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말을 마친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강서아! 거기 서!"

고지혁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쫓아가려 했지만, 조아란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쫓긴, 뭘 쫓아! 딱 보면 몰라? 이건 밀당이 분명해! 저년의 수작이라고!" 조아란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밖에서 개 고생 하고 나면 제 발로 기어 들어 올 거니까."

"그때 가서 톡톡히 혼내 주도록 해."

강서아의 결연한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고지혁은 가슴이 아려왔다.

왜 이런 통증이 느껴지는지는 본인조차 몰랐지만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택 밖.

쌀쌀한 밤바람이 불어와 가로수를 흔들었다.

강서아는 캐리어를 끌고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지금처럼 마음이 가볍고 편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이 달려오더니 그녀의 앞에 천천히 정차했다.

차 문이 열리며 길게 뻗은 다리가 바닥을 디뎠다.

수제 맞춤 정장을 입은 남자는 마치 소나무처럼 곧게 서 있었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차갑게 굳은 얼굴에선 상류층 사람 특유의 기세와 고귀한 분위기가 묻어났다.

그는 성큼성큼 강서아의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과 흙으로 얼룩진 치마를 내려다봤다. 평소에 결단력과 싸늘함으로 빛나던 그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

"서아야."

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1년 동안이나 널 찾아 헤맸어. 드디어 찾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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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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