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7년간, 나는 재벌가 상속녀의 삶을 버렸다.
나를 구해준 남자와 우리 아들을 위해, 소박한 집을 택했다.
제국보다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은 그가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그날 밤, 산산조각 났다.
그는 자신의 외도를 ‘사업적 합병’이라 불렀지만, 언론의 헤드라인은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가족보다 권력을 택한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를 본가로 불렀다.
그리고 모두 앞에서 그의 내연녀가 ‘유일한 적통 후계자’를 임신했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내게 가정부 자리를 제안했고, 내 아들은 양자로 거둬주겠다고 말했다.
내가 모든 것을 포기했던 남자, 내 남편은 그 여자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공개적으로 우리 모자를 그의 인생에서 지워버리는 동안.
다섯 살배기 아들이 나를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질문은 내 심장의 마지막 조각마저 잿더미로 만들었다.
“엄마, 저 아줌마가 아기를 가졌으면… 그럼 나는 뭐야?”
하지만 결정타는 아들의 생일날 터졌다.
그의 내연녀는 우리를 약혼 파티에 오도록 속였다.
그곳에서 그는 우리 아들을 바닥으로 밀치고 아빠임을 부정했다.
그의 가족들이 나를 공격하는 동안, 아들은 그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며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그 순간, 그가 알던 여자는 죽었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지옥 같은 삶에서 영원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내가 버렸던 제국에 전화를 걸었다.
세상이 내 진짜 이름을 기억할 시간이 된 것이다.
제1화
서지우 POV:
내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처음, 아주 확실하게 깨달은 순간은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와 함께 시작됐다.
싸구려 향이 아니었다.
재스민과 장미 향이 어우러진, 값비싼 향수였다.
내가 모든 것을 바친 남자의 옷깃에 그 향이 짙게 배어 있었다.
지난 7년간, 나는 과거가 없는 여자, 서지우로 살았다.
떠오르는 IT 기업의 총수, 강태준과 우리 아들 하준이와 함께 소박한 집에서 평범한 삶을 꾸렸다.
하지만 그전의 나는 서지우,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유신 그룹의 유일한 상속녀였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와 권력의 세계를 나는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등졌다.
사랑을, 그를 선택했다.
오늘 밤, 그 선택은 내가 스스로 만든 무덤처럼 느껴졌다.
이미 짐은 다 싸서 하준이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7년 전 아버지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유령 같은 통증이었다.
“그놈은 우리와 다른 족속이다, 지우야. 야망이 그놈의 신이지. 언젠가 그 신은 제물을 원할 것이고, 그 제물은 네가 될 게다.”
그때는 아버지가 너무 냉소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저, 아버지가 옳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자는 척하며, 내 핏속에 흘러야 할 유신의 피를 애써 소환하려 했다.
그 냉혹한 상속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유령 같았다.
가슴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듯한 공허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침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복도 불빛을 등지고 강태준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한때 내 심장을 뛰게 했던 그의 조용하고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가 이제는 속을 뒤틀리게 할 뿐이었다.
재스민과 장미 향이 독안개처럼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는 내가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 옆에 앉자 매트리스가 푹 꺼졌다.
그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내 뺨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한때 나의 안식처였던 그의 손길이 이제는 불쾌한 침범처럼 느껴졌다.
“지우야?”
그가 나지막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 안에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숨소리만큼은 느리고 일정하게 유지했다.
한 시간 전, 나는 휴대폰으로 헤드라인을 확인했다.
‘IT 거물 강태준과 사교계의 여왕 최유라: 합병으로 맺어진 천생연분?’
기사에는 오성급 레스토랑을 나서는 두 사람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
최유라의 손은 그의 팔짱을 소유욕 넘치게 끼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승리에 가득 차 있었고, 그의 미소는… 피곤해 보였다.
재스민과 장미 향수는 그의 옷깃에만 묻어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머리카락, 그의 피부, 그의 존재 자체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건 최유라의 향기였다.
나는 그가 TJ 이노베이션과 유라 산업의 합병을 마무리한다는 핑계로 몇 주 동안 그녀와 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업, 그는 그렇게 불렀다.
필요악이라고.
나는 잠결에 뒤척이는 척하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
“냄새나.”
반쯤은 연기였지만, 반쯤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역겨움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서 샤워해.”
그가 굳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지우야, 미안… 최유라랑 회의가 늦게까지 이어져서. 알잖아, 그 여자 향수 속에 파묻혀 사는 거.”
그는 그녀의 이름을 너무나 쉽게 불렀다.
최유라. 최 이사가 아니라, 최유라.
“지금 씻을게.”
그의 목소리는 어색했다.
그는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그의 움직임에서 스치는 당혹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분 후면 그는 내 비누, 내 샴푸 냄새를 풍기며 돌아오겠지.
그녀를 씻어내고 이곳, 나와 함께 있는 이곳에 속한 척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속하지 않았다.
다른 여자의 영향력과 권력에 그토록 의존하는 남자가 어떻게 진정으로 내게 속할 수 있겠는가?
그는 CEO인가, 아니면 그녀가 잘 차려입힌 애완동물인가?
세상에게 나는 그저 서지우, 아무것도 아닌 여자일 뿐이었다.
그가 거둬준, 분에 넘치는 조용한 삶을 사는 고아.
내가 TJ 이노베이션을 한입에 삼킬 수 있는 제국의 열쇠를 쥔 여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샤워기 소리가 멎었다.
잠시 후 그가 나왔다. 수건을 허리에 아슬아슬하게 두른 채, 단단한 가슴팍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숨 막히게.
7년 전, 자동차 사고의 잔해 속에서 나를 끌어내 주었던 바로 그 남자였다.
내쉬는 숨을 멎게 했던 강렬한 염려가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정략결혼을 피해, 아버지의 숨 막히는 세계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는 전복되었다.
그는 맨손으로 찌그러진 차 문을 뜯어내고 나에게 다가온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자신의 오두막으로 데려가 상처를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넓은 어깨에 깃든 강인함과, 그의 검은 눈동자에 서린 강렬함을 기억한다.
그는 내가 알던 세련되고 포식자 같은 남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진짜였다.
“이제 넌 내 거야.”
그 첫날 밤, 그는 소유욕 가득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 목소리는 나를 전율케 했다.
“내가 널 찾았어. 넌 내게 속했어.”
그는 영원을 약속했다.
내가 그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그의 아이들의 어머니이며, 그가 자신의 왕국을 세울 때 곁에 설 여자라고 맹세했다.
이제 그는 깨끗하고 따뜻한 몸으로 침대에 미끄러져 들어와 나를 품에 안으려 했다.
하지만 재스민과 장미의 유령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움찔하며 그에게 등을 돌렸다.
“지우야, 왜 그래?”
그가 내 목덜미에 뜨거운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아니야. 피곤해서 그래.”
그는 나를 구해준 남자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사라졌다. 야망과 배신의 냄새를 풍기는 이 낯선 남자로 대체되었을 뿐.
그때, 현관문에서 날카롭고 다급한 노크 소리가 울려 퍼지며 긴장된 침묵을 깨뜨렸다.
거의 새벽 두 시였다.
강태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수한 짜증이 묻어나는 소리였다.
“여기 있어.”
그의 발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최유라의 집사가 내뱉는 조용하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대표님, 죄송합니다만 최유라 아가씨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요. 대표님을 찾으십니다.”
피가 차갑게 식었다.
나는 강태준의 즉각적인 대답을 들었다.
망설임도, 나와 잠든 아들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금방 가겠습니다.”
그는 셔츠를 꿰어 입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최유라가 몸이 안 좋대. 지독한 편두통이 있거든. 가봐야겠어.”
그는 마치 사업 파트너에 대해 이야기하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무의식적인 친밀함이 묻어나는 실수가 있었다.
“의사가 스트레스가 두통을 악화시킨다고 하더라고. 내가 관자놀이를 제대로 마사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서.”
그는 문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죄책감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금방 돌아올게, 지우야. 최유라는 그냥… 좀 약한 여자라서.”
그는 내가 기다릴 거라고 기대했다.
이 침대에서, 이 집에서, 그가 다른 여자를 위로하러 간 동안 내가 기다릴 거라고.
그는 내가 언제나 인내심 있고 이해심 많은 서지우일 거라고 기대했다.
나는 베개에 머리를 기댄 채 그에게 작고 경직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령의 미소였다.
“물론이지. 천천히 다녀와.”
안도감이 그의 얼굴에 번졌다.
그는 정말 눈이 멀었다.
내 미소를 보고 그것이 수용이라고 생각했다.
내 눈에 얼음이 서리고, 등골이 강철처럼 굳어지는 것을 그는 보지 못했다.
그가 떠났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와 하준이는 더 이상 집이 아닌 이 집의 숨 막히는 정적 속에 남겨졌다.
그는 내가 기다릴 거라고 기대했다.
그는 틀렸다.
나는 다시는 그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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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2
서지우 POV:
다음 날 아침, 나는 전화를 걸었다.
7년 만에 눌러보는 번호였지만, 손가락은 어제 일처럼 그 순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단정한, 익숙한 목소리가 첫 울림에 바로 받았다.
“유신 그룹 회장님 댁입니다.”
“저예요.”
내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잠시 충격에 휩싸인 침묵이 흘렀다.
이내 목이 멘 흐느낌이 들려왔다.
“아가씨? 세상에, 정말 아가씨세요?”
나를 거의 키우다시피 한 아버지의 비서실장과 통화하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하준이, 그의 손자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수화기 너머의 침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언제 돌아오시냐고 여쭤보십니다.”
그녀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손주를 만나고 싶어 하세요. 전용기든 헬리콥터든, 뭐든 필요하신 걸 보내주시겠답니다. 그냥 돌아오세요, 아가씨. 제발요.”
집.
그 단어는 낯설게 느껴졌다.
몇 년 동안 가보지 않은 먼 나라 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잠든 하준이를 바라보았다.
강태준이 깎아준 작은 나무 늑대를 꼭 쥔 채였다.
아이는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아빠가 약속했는데… 큰 파티…”
이틀 뒤면 아이의 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나는 아이가 깨진 약속의 깊은 상처가 아닌, 행복한 기억을 안고 이곳을 떠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완벽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 실수였다.
희망은 위험한 것이다.
이틀 뒤 새벽, 문을 두드리는 날카로운 소리는 생일 축하가 아니었다.
강태준의 어머니, 박 여사였다.
두 명의 위압적인 남자들을 대동한 채였다.
그녀는 나를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나는 그녀의 귀한 핏줄을 더럽힌, 이름도 부모도 없는 길거리 잡종이었다.
그녀는 하준이를 쳐다볼 때마다 얇게 가린 혐오감을 드러냈다.
마치 아이가 가문의 완벽한 명성에 묻은 불행한 얼룩이라도 되는 것처럼.
“옷 입어.”
그녀가 겨울 아침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둘 다. 태준이가 본가에서 중요한 발표를 할 거다. 너희도 참석해야 해.”
하준이의 눈이 반짝였다.
“아빠 거기 있어요? 저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뱃속에서 단단히 뭉쳤다.
이건 생일 파티가 아니었다.
이건 처형식이었다.
평창동의 강씨 본가는 과시적일 정도로 거대했다.
졸부가 필사적으로 명문가처럼 보이려고 애쓴 기념비 같았다.
우리가 웅장한 연회장으로 안내되자, 비난의 눈초리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공기는 백합 향과 심판의 기운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저기, 단상 위에 강태준이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옆에 선 최유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배 위에 섬세하게 손을 얹고 있었다.
그녀는 의기양양하고 포식자 같은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박 여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권위로 가득 차 울려 퍼졌다.
“오늘 여러분을 모신 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유라가 아이를 가졌습니다. 강씨 가문의 후계자 말입니다.”
정중한 박수 소리가 방 안을 휩쓸었다.
“이 아이는,”
박 여사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군중을 훑고는 소름 끼치는 정확성으로 내게 와 꽂혔다.
“TJ 이노베이션의 유일한 적통 후계자가 될 것입니다. 태준이와 유라는 다음 달에 정식으로 약혼식을 올릴 예정입니다.”
나는 강태준을 쏘아보았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흔적이라도 찾아보려 애썼다.
그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잘생긴 조각상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체계적으로 나와 우리 아들을 그의 인생에서 지워버리는 동안.
그는 최유라의 배 위에 놓인 그녀의 손 위로 부드럽게 자신의 손을 겹쳤다.
“아버지가 된다니, 정말 기대됩니다.”
그의 목소리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컸다.
작은 손이 내 손을 떨며 꽉 쥐었다.
나는 하준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혼란과 너무나 깊은 고통으로 커져 있었다.
그 고통이 내 심장을 산산조각 냈다.
“엄마,”
아이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빠가 아버지가 되는 게 기대된대… 저 아줌마가 아기를 가졌으면… 그럼 나는 뭔데요?”
그 질문은 방 안을 침묵시키는 파괴적인 고발처럼 허공에 매달렸다.
강태준의 사촌 몇몇이 킥킥거렸다.
“저 사생아 좀 봐.”
그들 중 하나가 비웃었다.
“자기가 여기 있을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생아는 우리 가문의 명성에 오점이 될 거야.”
다른 사람이 덧붙였다.
“후계자가 될 순 없지.”
박 여사의 미소는 승리에 차 있었고, 잔인했다.
“걱정 마라. 해결책이 있으니. 어떤 스캔들도 피하기 위해, 우리는 관대하게도 저 아이를 양자로 거두어 가문의 보살핌 아래 머물게 할 것이다. 그리고 저 아이의 보모는,”
그녀는 나를 꿰뚫어 볼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집의 가정부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주지.”
그때, 몇 주 전 엿들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박 여사의 날카롭고 음모에 가득 찬 목소리가 최유라에게 말하고 있었다.
“넌 순수한 혈통이야, 얘야. 태준이에게 제대로 된 후계자를 낳아줘야 해.”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우리를 버리기 위해 치밀하게 짜인 계획이었다.
하준이가 울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눈물이 작은 얼굴에 길을 내며 흘러내렸다.
“난 고아 아니야.”
아이가 몸을 떨며 속삭였다.
“아니란 말이야.”
강태준이 마침내 움찔했다.
그는 반쯤 앞으로 나섰고,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최유라가 그의 팔을 제지하듯 잡았다.
그는 그녀를 보고, 다시 우리를 보았다. 그의 턱은 우유부단함으로 굳어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선택했다.
야망을 선택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희망의 마지막 불꽃이 꺼지고, 차갑고 단단한 분노만이 남았다.
나는 하준이를 등 뒤로 끌어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이 아이는 당신들과 아무 상관없어요.”
내 목소리는 맑고 단호했다.
“이 아이는 강씨가 아닙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하준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아이의 눈물이 내 손가락을 적셨다.
“하준아.”
내 목소리도 갈라졌다.
“엄마 말 들어. 이제부터 저 사람은 네 아빠가 아니야. 알겠니? 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마.”
강태준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의 눈은 충격으로 커져 있었다.
그는 마침내 나를, 정말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절박하고 의문스러운 표정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한때 내가 보았던 사랑은 사라지고 공허함만이 남았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경멸 외에는.
하준이는 다섯 살배기 아이의 세상이 무너지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흐느꼈다.
내가 일어나 떠나려 할 때, 최유라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미소는 독이었다.
“그렇게 빨리 가지 마. 반지가 남았잖아.”
그녀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소박한 사파이어 반지를 가리켰다.
강태준의 할머니 유품이었다.
하준이가 태어난 날 그가 내게 주었던 반지였다.
진정한 결혼반지를 위한 임시방편이며, 내가 그의 진정한 짝이자 유일한 사람이라는 상징이라고 약속했었다.
“강태준 씨.”
나는 위험할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것도 당신이 동의한 건가요?”
그는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냥… 가문의 유품일 뿐이야, 지우야. 그건… 가족에게 있어야지.”
물론.
모든 것은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의 가족.
나는 천천히, 의도적으로 손가락에서 반지를 뺐다.
반지는 내 피부에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최유라에게 내밀어, 완벽하게 관리된 그녀의 손바닥에 떨어뜨렸다.
“축하해요.”
나는 눈가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받아 마땅한 모든 행복을 가져다주길 바라요.”
강태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몸을 돌려 흐느끼는 하준이를 품에 안았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치 이제야 발밑의 땅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입을 살짝 벌린 채.
그는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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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3
서지우 POV:
하준이는 내 품에서 잠들 때까지 울었다.
아이의 작은 몸은 파편처럼 나를 관통하는 떨리는 흐느낌으로 들썩였다.
나는 아이를 꼭 껴안고 새로운 삶을, 우리를 이미 기다리고 사랑하는 할아버지에 대한 약속을 속삭였다.
“근데… 아빠는 이제 나 안 사랑해?”
아이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작고 부서진 목소리로 흐느꼈다.
“엄마만 나 사랑해?”
“아니야, 우리 아가.”
나 역시 눈물이 아이의 머리카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해. 서 할아버지가 널 얼마나 만나고 싶어 하시는데. 넌 왕자님이 될 거야.”
“지금 갈 수 있어?”
아이가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보러 갈 수 있어?”
아이는 주머니 속 나무 늑대를 꼭 쥔 채 망설였다.
강태준이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근데… 아빠 떠나기 싫어.”
심장이 부서졌다.
나는 목구멍에 걸린 덩어리를 삼키고 억지로 강한 척했다.
“알아, 아가. 하지만 아빠랑 아빠 엄마는…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원하지 않아. 그들은 네가 그를 ‘태준 삼촌’이라고 부르길 원해. 그렇게 할 수 있겠니?”
아이는 충격으로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천천히, 아이의 손에서 나무 늑대가 풀렸다.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아니.”
아이가 속삭였다.
그리고 절박한 애원이 이어졌다.
“엄마, 제발 기다려주면 안 돼? 내 생일까지만. 어쩌면… 어쩌면 아빠가 올지도 몰라. 아주 잠깐이라도. 그러고 나면 갈게. 약속해.”
아이는 방금 자신을 공개적으로 부인한 남자에게서 마지막 기억 한 조각, 마지막 사랑의 부스러기를 구걸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알았어, 우리 아가.”
나는 아이의 눈물 젖은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기다리자.”
하지만 강태준은 오지 않았다.
하준이의 생일이 되었고, 다섯 개의 초가 꽂힌 케이크는 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작은 집 안의 침묵은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나는 마침내 폭발했다.
휴대폰을 잡고 그의 번호를 눌렀다. 손이 분노로 떨렸다.
“약속했잖아.”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쏘아붙였다.
“애가 다섯 살이야, 강태준. 하루 종일 창가에 앉아서 당신만 기다렸어. 어떻게 애한테 이럴 수가 있어?”
수화기 너머는 한동안 조용했다.
그리고, 딸깍.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준이는 불 꺼진 촛불을 내려다보았다.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괜찮아, 엄마. 바쁘신가 봐.”
아이는 작고 떨리는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였다.
“태준 삼촌은 아주 중요한 분이시니까.”
‘삼촌’이라는 단어가 물리적인 타격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백만 조각으로 부서졌다.
나는 강태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소리치고 분노하며 그가 망가뜨린 것을 고쳐놓으라고 요구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문자 메시지가 화면을 밝혔다.
그에게서 온 것이었다.
<본가로 와. 하준이한테 줄 서프라이즈가 있어.>
나는 휴대폰을 하준이에게 보여주었다.
아이의 눈에 작은 희망의 불꽃이 일었다.
“기억하셨어! 엄마, 내 생일 기억하셨대! 큰 빨간 트럭 사주셨을까?”
또 다른 문자가 왔다.
<파티도 준비해 놨어. 서둘러.>
하준이는 황홀해하며 나를 문 쪽으로 끌었다.
조금 전의 상심은 잊은 듯했다.
아이는 오는 내내 다섯 살배기의 희망과 꿈을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하지만 연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방은 풍선과 장식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다.
수백 송이의 장미와, 샴페인을 마시는 우아하게 차려입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아이의 생일 파티가 아니었다.
약혼 파티였다.
하준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아이는 거대한 다층 케이크 옆에 서 있는 강태준을 보고는 순수한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얼굴로 그에게 달려갔다.
“아빠!”
갑자기 조용해진 방 안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케이크 자르려고 저 기다리신 거예요?”
강태준은 우리를 보고는 진심으로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지우 씨? 하준아? 여긴 어떻게 왔어요?”
그는 맞춤 턱시도를 입고 있었고, 최유라는 반짝이는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채 그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
손님들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은 하준이와 강태준 사이를 오갔다.
“저 애가… 아들인가?”
“자식 없다고 들었는데.”
강태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하준이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잔인하고 무시하는 몸짓이었다.
“누구보고 아빠라는 거니?”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는 하준이를 밀쳤다. 세게는 아니었지만, 내 작은 아들이 비틀거리며 윤이 나는 바닥에 넘어질 정도였다.
하준이는 두려움과 혼란으로 커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달려가 아이를 품에 안았다.
“가자.”
“벌써 가려고?”
최유라의 목소리는 달콤한 독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우리 앞을 가로막으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파티는 이제 시작인데. 와주길 정말 바랐거든.”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강태준의 번호로 보낸 문자들을 보여주었다.
“하준이가 고아가 된 걸 제대로 축하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녀는 강태준의 옆에 몸을 바싹 붙였다.
“말해줘요, 자기. 이 길 잃은 아이가 당신과 아무 상관없다고 모두에게 말해줘요.”
강태준은 나를 보았다. 그의 눈은 내가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은 이해를 구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최유라를, 영향력 있는 손님들을, 그가 거의 손에 넣은 제국을 보았다.
그는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내 아들은 길 잃은 아이가 아니에요.”
나는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이 아이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죠. 당신 따위는 감히 넘볼 수도 없는 분.”
나는 떠나려고 몸을 돌렸지만, 최유라가 내 팔을 잡았다.
“어디서 감히!”
그녀가 소리쳤고, 이내 그녀의 손이 날아와 내 뺨을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거짓말하고 이 집안을 모욕해! 너랑 네 사생아 자식이랑!”
그녀는 의로운 분노의 가면을 쓴 채 군중을 향해 돌아섰다.
“저 여자가 모든 걸 망치려고 해요! 끌어내요!”
박 여사의 친척들이 증오로 뒤틀린 얼굴을 하고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밀치고 떠밀었다.
주먹이 내 배를 강타해 숨이 막혔다.
나는 하준이를 감싸 안고 몸을 웅크렸다. 등과 머리로 쏟아지는 구타를 막으려 애썼다.
고통의 안갯속에서 나는 강태준을 보았다.
그는 공포와 우유부단함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몇 년 전 그가 내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내가 빚졌다고 느꼈던 그 빚.
이자로 쳐서, 완전히 갚았다.
갑자기, 작고 절박한 목소리가 혼란을 뚫고 나왔다.
하준이가 내 품에서 빠져나와 강태준의 발치에 몸을 던졌다.
작은 손으로 그의 바지 자락을 붙잡았다.
“제발요.”
아이는 어떤 아이도 알아서는 안 될 고통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흐느꼈다.
“제발요, 아저씨. 저 사람들 좀 말려주세요. 우리 엄마 때리지 마세요.”
아저씨.
아빠가 아니라, 아저씨.
세상이 멈췄다.
구타가 멈췄다.
강태준은 잿빛 얼굴로, 온몸을 떨며 하준이를 내려다보았다.
“뭐… 뭐라고 불렀니?”
하준이는 눈물을 흘리며 올려다보았지만, 그 시선은 흔들림 없이, 기이할 정도로 어른스러웠다.
“이제 갈게요, 아저씨. 더는 폐 끼치지 않을게요.”
아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나를 부축했다.
작고 부서진 소년이 상처투성이인 엄마를 이끌고, 손을 잡고, 우리는 그 연회장을 걸어 나왔다.
방 안의 모든 눈이 우리를 지켜보는 가운데.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강태준에게서 온 문자였다.
<집에 가, 지우야. 하준이 데리고. 오늘 밤에 갈게. 우리가 해결할게.>
하준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을 흘끗 보았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아이가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 할아버지가 우리 보고 싶어 하셔?”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내가 속삭였다.
“그럼 지금 가자.”
그날 밤, 나는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모든 것을 태웠다.
모든 사진, 모든 편지, 작은 나무 늑대까지.
이곳에서의 우리 삶의 마지막 기억이 재로 변할 때, 나는 하준이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문을 나섰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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