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봉무제가 하는 말을 들은 야천설은 그제야 천천히 음기를 거두었다.

봉무제는 그런 그녀를 흘깃 쳐다본 뒤 계속 말했다. "우리는 적이 될 수 없다. 동명 실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후에 서로의 길을 가도 늦지 않다."

어린 소녀의 몸에 아직 그가 모르는 비밀이 많다.

그리고 동명 실이 두 사람을 이어준 탓일까, 어쩐지 봉무제의 몸 속 마기가 처음처럼 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아 있다.'

'내공이 입도 경지로 떨어졌으니 정면 승부하면 양쪽 모두 다칠 뿐이다. 지금은 일시적인 굴욕감을 참고 동명 실을 푼 다음, 그녀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된다.'

봉무제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꼭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핏빛이 기이하게 흩어진 눈동자가 본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야천설의 머릿속 기억은 이 세계에 다양한 종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인족은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눈동자 색이 변하는 남자는 아마 완전한 인족은 아닐 것이다.

봉무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수그러드는 것을 느낀 야천설은 그가 그녀에게 적의를 거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담하게 물었다. "저는 야천설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봉무제는 그녀의 찢어진 옷을 흘깃 쳐다보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봉무제."

말을 마친 그는 손가락에 낀 물건을 보유하고 있는 반지에서 깨끗한 두루마기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흠칫 놀란 얼굴인 야천설은 빠르게 두루마기를 받아 몸에 걸쳤다. '망나니인 줄 알았더니, 군자 같은 모습도 있군.'

"본존은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봉무제는 환혼 방울을 그녀에게 건넸다. "환혼 방울은 네가 잘 보관하고 있거라. 절대 다른 자가 방울의 존재에 대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본존 너를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봉무제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두루마기를 끝까지 여민 야천설은 가볍게 몸을 풀더니 봉무제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이나 응시하며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이제 야부로 돌아가야 한다. 비록 야부에 그녀의 생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몸 주인은 양모인 명옥을 끝까지 마음속에 놓을 수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야씨 가문의 큰 아가씨 야천교가 몸 주인을 해쳤는데,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진 야천설이 손에 쥔 환혼 방울을 가볍게 흔들자 맑은 방울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지며 고혼산의 구석구석에 숨은 유혼이 방울 소리를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귀염둥이들, 오늘 나와 함께 야부에 가서 한바탕 뒤엎어 보자고!"

야천설의 명령과 함께 수많은 유혼이 흥겨움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스산한 바람과 함께 엄청난 수를 자랑하는 유혼 원혼이 고혼산을 벗어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 시각, 할 일이 남았다고 했던 봉무제가 빛 한 줄기 비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야천설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류영."

어둠 속에 검은빛이 언뜻 스치며 봉무제의 옆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예를 갖췄다. "네, 주인님."

"청현국 야씨 가문에 대해 조사하거라. 특히 야천설이라는 소녀를 더 주의해야 할 것이다." 봉무제의 차가운 목소리에 어떤 감정도 묻어있지 않았다.

잠시 자리에 멈칫한 류영은 이내 공손하게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수하 명 받겠습니다."

'주인님께서 어린 소녀에 관해 알아 오도록 지시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군.'

주인님의 명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따라야 했기에 류영은 더 깊이 고민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야천설은 몸 주인의 기억을 따라 야부에 돌아왔다.

곳곳에 화려함과 호화로운 기품이 드러나는 관저 앞에 선 야천설의 입 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저택의 대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야부의 후원과 이어진 담벼락으로 향했다. 그곳은 명옥과 몸 주인이 지내는 별원이었다.

야천설이 담벼락에 가까이 다가가자 여인이 서글프게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조롱과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설이 돌려줘. 불쌍한 우리 설이..."

"이낭의 설이는 이미 우리가 고혼산에 내던져 원혼이 되었을 텐데, 그렇게 보고 싶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벽에 머리를 박고 죽으면 이낭이 애타게 찾는 설이와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삼이낭, 우리가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아버지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아버지께서 설이 계집만 보면 화가 나신다고 하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 파묻는 것이 제일 빠르고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야천설이 죽었으니 이제 네 차례구나. 아이도 낳지 못하는 여인은 우리 야부에 남아 봤자 짐밖에 되지 않는다."

맨 정신으로는 들을 수 없는 모욕적인 말이 야천설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미간을 짙게 찌푸린 그녀는 가볍게 담장 위로 올라가 두 남녀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명옥은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흐느끼고 있었고, 큰 아가씨 야천교는 기둥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매서운 눈빛으로 명옥을 노려보고 있었다.

둘째 도련님 야윤묵은 얼굴에 눈물범벅이 된 명옥을 혐오감 가득한 눈빛으로 흘겨보며 당장이라도 발로 걷어찰 기세였다.

발을 뒤로 들어 올린 야윤묵은 순간 이상한 낌새에 뒤를 돌아보자 담장에 엎드리고 있는 야천설을 발견했다.

동시에 두 사람의 시선이 한곳에 엉겨 붙었다.

야윤묵은 귀신이라도 본 듯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귀, 귀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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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五界)의 주인인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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