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심혜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굳어버렸다. 그녀의 손엔 여전히 보석함이 들려 있었고, 막 서상은의 가방 속에 그것을 넣으려던 참이었다. 그녀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그 목걸이는 재민 오빠가 준 약혼 선물이에요. 무려 3억 6천만 원짜리라고요! 최고급 보석이 열 알이나 박혀 있는 건데! 분명 책상 위에 뒀는데, 어떻게 갑자기 사라질 수가 있어요? 제대로 찾기는 한 거예요?"

서상은은 이미 뭔가 낌새를 챈 듯 흥미로운 눈빛으로 심혜주와 보모의 자작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모 윤화의 얼굴이 잿빛으로 질렸고, 금방이라도 무릎 꿇을 듯 온몸이 떨렸다. "아가씨, 진짜로 방 구석구석 다 뒤졌어요. 그런데 정말 없었어요. 혹시 누가 훔쳐간 건 아닐까요?"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시선이 서상은에게 향했다.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심혜주는 날카롭게 보모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를 그렇게 쳐다봐요? 언니 친부모님이 가난하긴 해도, 언니는 그런 짓 할 사람이 아니에요. 도둑질 같은 건 절대 안 해요! 제 방에서 또 뭐 없어진 거 있어요?"

윤화는 더욱 초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그리신 디자인 도면이요. 그거 역시 사라졌어요."

그녀는 다시금 수상한 눈빛으로 서상은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가방 끈 사이로 삐져나온 얇은 목걸이 줄을 잡아당겼다.

심혜주는 경악한 표정으로 윤화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언니, 이거 재민 오빠가 저한테 준 약혼 목걸이잖아요… 이게 어떻게 언니 가방에서 나와요?"

그녀는 그 목걸이를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쥐며, 깊은 실망이 서린 눈빛으로 서상은을 바라보았다. "돈이 필요하면 아빠한테 말씀 드리면 되잖아요. 아빠가 그 동안 언니를 키운 정도 있고 얼마든지 더 주실 수도 있었는데 그런데 이런 식으로 훔치다니... 부모님이 얼마나 상처받으시겠어요."

그때, 심진우와 백미정이 다가왔다. 심진우는 분노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아까 돈 줄 때는 필요 없다고 해놓고, 동생 물건을 훔쳐? 돈이 필요하면 말로 했어야지. 왜 이렇게 비열한 짓을 해? 창피한 줄 알아야지!"

백미정은 한술 더 떠서 외쳤다. "말 다 했지 뭐! 돈이 그렇게 부족했나 보지! 20만 원 교통비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3억 6천만 원짜리 목걸이는 쓱 가져갔네? 네 친부모 집안이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이잖아!"

심혜주는 그런 백미정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억울함과 슬픔이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엄마, 그만해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언니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요? 아마 실수로 잘못 넣었을 거예요… 언니가 일부러 그랬을 리 없어요."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그런 말을 해도, 심진우와 백미정의 눈빛은 이미 서상은을 도둑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심혜주는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주변 손님들을 둘러보았다. 겉으로는 마음 아픈 척했지만, 속으로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의 속내는 분명했다. '서상은에게 도둑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앞으로 해성 사교계 어디에서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겠지. 심씨 가문의 인맥도 단 하나도 쓸 이용할 생각 말고."

심혜주는 서상은에게로 돌아섰다. "언니, 저는 언니한테 뭐든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목걸이는 안 돼요. 이건 저랑 재민 오빠의 약혼 증표니까요. 언니가 원래 재민 오빠와 약혼할 예정이었다는 거 알아요. 그래서 오빠가 저를 사랑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을 거예요. 하지만 사랑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제발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 마세요. 돈이 필요하다면 제 액세서리 전부 다 드릴게요. 그걸로 충분하죠."

그리고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사람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를 본 서상은은 짧고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정도 연기면 배우 했어야지. 아까워서 어쩌냐.'

상대가 무대까지 만들어줬는데, 그녀가 응답하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서상은은 시큰둥한 얼굴로 그 목걸이를 흘끗 바라보았다. 체인부터 조잡했고, 보석 역시 광택이나 컷팅, 컬러감 어느 하나 최고급이라 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렇게 조잡한 물건, 난 관심 없어." 서상은이 차갑게 말했다. "네가 착각한 거 같은데? 아까 다락방 정리할 땐 내 가방에 없었는데, 그런데 너, 아까 분명 이걸 손에 들고 있었잖아. 혹시 네가 실수로 내 가방에 떨어뜨린 거 아니야?"

그녀는 비웃듯 웃으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안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꺼내며 말했다.

"자, 확인해봐. 내 가방 안에 심씨 가문 물건이 또 있는지. 있으면 다 가져가. 도둑이란 오명, 내가 절대 못 참거든."

바닥에 우수수 쏟아진 물건들 중, 파란색 파일 하나가 보이자 심혜주는 놀란 듯 외쳤다. "이거… 제 신 에너지 자동차 부품 설계도 아니에요? 이게 왜 언니 가방에 있어요?"

심혜주는 황급히 그것을 집어 들고, 뭔가를 확인하듯 페이지를 넘겼다. 정밀한 기계 도면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충격과 실망이 뒤섞인 눈빛으로 서상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실망이에요, 언니.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언니가, 제 디자인 초안을 가지고 뭘 하려는 거예요? 팔려고 한 거예요?"

서상은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건 자신이 어젯밤, 밤을 새워 그린 핵융합 화물선 부품 설계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심혜주 것이 되었을까?

아, 생각났다. 어제 하루 종일 심혜주는 자기가 설계 천재라고 자랑하려고 식탁에 도면을 펼쳐놓고 낙서하듯 그림을 그려댔고 심씨 가족 전부가 그걸 봤다. 아마 그때 몰래 가져간 거겠지.

심혜주는 도면을 흔들며 말했다. "인정하세요. 이거 언니가 훔친 거 맞잖아요. 가족이니까, 이번 한 번은 넘어가 드릴게요."

백미정도 다가와 도면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내가 어쩌다 이런 걸 키웠는지 원…!" 그녀는 서상은에게 말했다. "정말 실망이야!"

서상은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직접 그린 도면의 상단에는 외국어로 '핵융합 화물선 핵심 부품 설계도'라고 명확히 적혀 있었고, 우측 하단에는 본인만의 보안 마크까지 새겨져 있었다.

누구도 위조할 수 없는 그것을 그들은 눈이 있어도 못 보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심진우와 백미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들도 알잖아요. 10년 전, 당신들은 연매출 고작 1억 원짜리 소규모 자동차 부품 공장을 하나 운영하고 있었죠. 단독주택 한 채에서 빠듯하게 살고 있었고요. 그때 제 재능을 보고 학교도 못 가게 하면서 집 안에 가둬두고 고급 부품 설계를 시켰잖아요. 정말 기억 안 나세요?"

회차 3

상은은 주변 손님들 앞에서도 태연한 얼굴로 심씨 가문을 향한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고, 목소리는 단호했다. "십몇 년 동안, 이 집안은 제 설계를 이용해 많은 돈을 벌어들였어요. 자동차 부품 회사였던 곳이 지금은 자동차 제조사로 성장해 상장까지 했고요. 그런데 이제 제가 필요 없어지자, 친딸 도면을 훔쳤다며 저를 도둑으로 몰아가네요? 정말 감동이에요. 저를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시다니."

심진우의 얼굴은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채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너는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한 애야! 기계 설계가 뭔지 알기나 해?"

그러자 서상은은 자신의 도면을 들고 손님들 잎에 펼쳐 보였다. "여러분 잘 봐주세요. 이건 화물선용 동력 시스템 설계도예요. 전기차 부품 따위랑은 차원이 다르죠. 저는 남의 설계도를 훔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녀는 지금도 그때를 후회하고 있었다. 어릴 적, 심진우는 달콤한 말로 그녀를 속여, 직접 만든 설계도에 그의 이름을 쓰게 만들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는 처음부터 오늘을 위해 준비해 왔던 거였다.

서상은은 설계도에 적힌 부품명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여기 잘 보세요. 이건 A국 언어로 쓰여 있고, '핵융합 화물선 동력 시스템'이라는 뜻이에요."

그녀는 도면을 살짝 기울였다. 오른쪽 아래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워터마크가 빛을 받으며 드러났다. "이건 제 개인 마크예요. 심혜주의 설계도와 비교해 보세요. 솔직히 말해 그건 그냥 쓰레기 수준이에요."

그 순간, 집안일을 돕던 왕정애 이모가 똑같이 생긴 폴더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혜주 아가씨... 혹시 이거예요… 제가 쓰레기인 줄 알고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이게 아가씨의 설계 도면이었네요…"

서상은은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다. "들었지? 하다못해 왕 이모조차 네 설계도가 쓰레기인 줄 알았잖아."

심혜주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왕정애 이모를 노려보았다. 화가 난 그녀는 폴더를 낚아채서 한 장 넘기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 쓰레기 같은 설계도, 제 거 아니에요!" 그녀는 소리쳤다.

왕정애 이모는 안절부절못하며 변명했다. "저는… 혜주 아가씨의 설계도가 쓰레기라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착각해서… 실수로 버렸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백미정은 더 이상 친딸을 수치스럽게 놔둘 수 없다는 듯, 즉시 서상은을 향해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웃기지 마! 너나 네 수준을 생각해 봐. 초등학교도 못 나온 애가 무슨 핵융합 화물선 설계를 해? 그거, 분명히 훔친 거야. 이런 게 바로 가문을 망신이라는 거야. 다시는 우리 심씨 가문 사람이란 소리 하지 마."

그러나 서상은은 백미정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설계도와 심혜주의 설계도를 나란히 펼쳐 사람들 앞에 보였다.

심진우와 백미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심진우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악물었다.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 네가 그럴 실력이 된다고 생각해? 지금 심씨 가문이 이만큼 성장한 건 나랑 네 오빠가 피땀 흘려서 이룬 결과야! 넌 한 것도 없잖아! 우리가 널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키웠는데, 이게 너의 보답이야? 배은망덕도 정도껏 해야지! 당장 꺼져!"

백미정도 맞장구를 쳤다. "그 동안 너한테 우리가 쓴 돈이 얼만 줄 알아? 돈 들여 키워줬더니 이제 와서 피해자인 척해? 재능 좀 있다고 우리가 해준 것보다 크다고 착각하지 마!"

서상은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이제 더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집을 나갈 생각이었다. 이런 더러운 곳에 미련 따윈 없었다. "좋아요. 이걸로 우리, 완전히 끝이네요."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노트북을 줍기 위해 몸을 숙였다.

하지만 심혜주가 먼저 손을 뻗어 검은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정말 끈질기네요. 언니, 제가 얼마나 참고 넘기려 했는데 이렇게까지 나오면 저도 더는 참을 이유 없어요. 자기 잘못은 인정도 안 하고, 오히려 우리를 원망한다니요? 이 안에 심씨 가문의 기밀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걸 그냥 가져가게 둘 수는 없죠."

심혜주는 주변에 손님이 들고 있던 물컵을 확 낚아채 노트북 키보드 위에 들이부었다.

찰나의 순간, 서상은의 손바닥이 심혜주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젖은 노트북을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저… 지금 저 때렸어요?" 심혜주는 비명을 지르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손을 들어 반격하려 했지만, 또다시 서상은의 손에 맞고 말았다.

백미정이 분노하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우리가 너를 키운 게 우리 딸 때리라고 키운 줄 알아?!"

수년 동안 서상은은 이들에게 그저 화풀이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반격은커녕, 그간 단 한 번도 감정을 드러낸 적 없던 그녀가 처음으로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한 순간이었다.

서상은의 눈빛은 싸늘했고, 그 기세에 백미정조차 움찔해 들었던 손을 조용히 내렸다.

"엄마… 언니가 저를 때렸어요…" 심혜주는 볼을 감싸 쥐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백미정은 황급히 딸의 손을 붙잡고 얼굴을 살폈다. 뺨에 선명히 찍힌 손자국을 보고는 안타까움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우리 혜주, 많이 아파?" 그녀는 다정하게 물었다.

심혜주는 치를 떨며 서상은을 노려보았다. 분노에 가득 찬 그녀는 다리를 들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고 있는 서상은을 걷어차려 했다.

하지만 서상은은 민첩하게 몸을 비틀어 피했고, 마지막 물건까지 줍고 난 뒤, 그들을 차갑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프냐고요? 엄마, 오랜 세월 동안 저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몇 번을 때렸는지 기억은 하세요? 그때 단 한 번도 저한테 아프냐고 묻은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제가 당신 귀한 딸 한 번 때렸다고 이렇게 난리를 치네요?"

백미정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곧 뻔뻔하게 말했다. "그럼, 우리가 널 왜 데려왔다고 생각해? 정말 귀하게 키우려고 그랬을 것 같아?" 서상은은 씁쓸하게 웃었다.

"결국, 제가 이 집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이제야 인정하시네요." 서상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마지막으로 바라보곤, 조용히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그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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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려진 억만장자 상속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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