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허 부인, 오늘 허상철 씨가 육은설 양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두 분의 이혼 사실을 공식 발표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육은설 양은 허상철 씨의 첫사랑이자, 육씨 가문의 친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물론, 남편까지 차지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은 없으신가요?"

"육씨 가문이 공식적으로 당신을 친딸이 아니라고 발표했고, 재산을 압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2년간 전업주부로 살아오셨는데, 앞으로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실 계획인가요?"

"허 부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수십 개의 카메라와 마이크가 그녀를 에워쌌고, 플래시가 무차별적으로 터졌다.

이런 광경에 압도당한 육수연은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육수연은 생일 파티장 한복판에서 기자들에게 포위된 채, 도망칠 틈도 없이 얼어붙었다.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머릿속엔 방금 들은 말들이 뒤엉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육은설이 육씨 가문의 친딸이고, 허상철의 진짜 사랑이라면, 나는? 나는 대체 뭐였지?' 서류상으로는 허상철의 아내였지만, 실상은 모두에게 비웃음거리였을 뿐이다.

수년 전, 육씨 부부는 외국의 빈민가에서 육수연을 잃어버린 딸이라며 데려왔다.

'그때 친자 확인 검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가? 이제야 실수를 깨달았다니… '

육수연은 힘겹게 몸을 돌려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허상철의 시선은 그녀가 아니라, 멀리 서 있는 육은설에게 향해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육은설밖에 없는 것처럼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육수연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왜?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잖아."

허상철은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알았으니 그걸로 됐어. 우린 끝이야, 육수연. 넌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 우리 결혼은 그냥 거래였을 뿐이야. 내가 지금껏 사랑한 여자는 육은설뿐이야. 왜 결혼 후에 너를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는지 알아? 네가 역겨웠거든. 썩은 음식 같아서 입에 대기도 싫었어."

허상철의 멸시 어린 시선이 육수연의 낡은 옷차림과 촌스러운 안경까지 훑었다. 그녀는 허상철의 화려한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그의 모욕적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수연은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들어 허상철의 얼굴에 그대로 들이부었다.

금빛 액체가 허상철의 얼굴과 고급 정장을 흠뻑 적셨다. 그는 멍하니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액체가 머리카락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썩은 음식이라고? 전업주부를 원한다고 말한 건 당신이었어. 엄마 아빠도 튀지 않고 얌전한 딸이 좋다고 말했잖아."

육수연은 잔을 바닥에 내던졌고, "쨍!"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파티장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허상철은 이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미쳤어?"

무대 위에서는 육씨 부부가 소리쳤다. "육수연, 오늘은 은설이 생일이야! 감히 이런 자리에서 소란을 피워?"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그녀를 미쳤다고 했다.

아무도 그녀가 이 두 집안을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지 몰랐다.

육수연은 사람들을 비집고 빠져나가려 했으나, 폭우처럼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과 플래시가 그녀를 막았다.

지금 그녀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이 모든 소음과 시선, 굴욕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하지만 겨우 인파를 뚫고 거리로 나왔을 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시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육은설의 팬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그대로 달려든 것이다.

육은설은 인기 스타로, 그녀의 생일 파티는 생방송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많은 팬들이 연회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감히 우리 은설이 생일에 얼굴을 들이밀어?"

"넌 친딸도 아니잖아! 양심도 없어? 돈맛을 못 잊고 또 다시 기어들어 왔어?"

"이혼당한 주제에 우리 은설이 앞에서 설치지 말고 당장 꺼져!"

한 팬이 육수연의 어깨를 밀치자, 그녀는 비에 젖은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비수 같은 말들이 귀에 꽂히는 가운데, 육수연은 말없이 씁쓸한 웃음을 터뜨렸다.

실패한 결혼도, 항상 그녀를 차갑게 대했던 가족도, 이제 와선 다 우습기만 했다.

그 동안 참고 얌전히 살며 지켜왔던 것들이, 육수연을 이 지경이 되도록 내몰았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고, 쏟아지는 빗줄기조차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그때, 빗속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혁 도련님." 공손한 인사에 이어, 묵직한 발걸음이 빗속을 뚫고 육수연에게 다가왔다.

곧이어, 검은 우산 하나가 조용히 그녀의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회차 2

육수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날카롭고 강렬한 시선을 마주했다.

비가 내리는 거리에 가로등은 흐릿하게 깜빡이고 있었고 그 아래 안우혁은 빗속 역광을 등진 채 서 있었다. 그의 위압적인 존재감은 누구든 한눈에 숨을 멎게 했다.

그 뒤로는 고급 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고, 이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경호원들은 그의 양옆에 서 있었고 한 명은 그의 머리 위에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정작 안우혁의 손에 들린 우산은 오직 육수연만을 향해 있었다.

그는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몸을 숙여, 육수연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테 안경을 천천히 벗겼다.

예고도 없던 행동에 당황할 틈도 없이, 그녀의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가 완전히 드러났다.

그 순간, 안우혁의 입꼬리가 비웃듯 올라갔다. "몇 년 만이지, 육수연. 꼴이 참… 말이 아니군. 연애에 미쳐 살던 머리는 좀 식었어?"

그의 말은 날을 세운 비수처럼 정곡을 찔렀다. 육수연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마저 그의 냉소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려던 순간, 안우혁은 그녀를 단번에 품에 안아 들었다. 그는 두 팔로 육수연을 단단히 감싸 안은 채, 마치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듯 걷기 시작했다.

안우혁은 근처에 대기 중이던 검은 차로 향했고, 경호원들이 재빨리 길을 열어주었다.

주변의 소음과 쏟아지던 수군거림은 이내 잠잠해졌다.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은 듯,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차 안에서 육수연은 흙탕물에 젖은 드레스를 떨리는 손으로 꼭 쥐고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거칠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안우혁… 왜 하필 지금 돌아온 거야?"

'왜 하필, 내가 이렇게 망가졌을 때 돌아온 거냐고.'

안우혁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감싸 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왜겠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여자가 어떻게 살고 있나 보러 온 거지."

안우혁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다시 비웃음이 스쳤다. "육수연, 내가 7년 전 뭐라고 했는지 기억 나?"

그녀는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안우혁은 임씨 가문의 가장 자랑스러운 도련님이고 육수연의 과거 최대의 라이벌이었다.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7년 전 공항에서였다. 헤어지기전의 작별 인사가 둘 사이에 최악의 싸움으로 번졌다.

안우혁은 그녀가 허상철과 육씨 가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비굴하게 매달리는 걸 경멸했고, 육수연은 그의 오만함과 그녀가 아끼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견디지 못했다.

안우혁은 일찍이 육수연에게 경고했었다. 사랑도, 가족도 끝내는 그녀를 아프게 할 뿐이고, 무조건적인 희생은 결국 허무한 상처만 남긴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의 육수연은 너무 어려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가족들이 지금은 날 싫어해도 괜찮아. 내가 더 잘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면 언젠가는 날 받아줄 거야.'

그 믿음 하나로 육수연은 허상철과의 결혼을 받아들였고, 오빠들이 경계심을 품지 않도록 일부러 평범한 척, 모자란 척 살아왔지만, 뒤에서는 몰래 육씨 가문과 허씨 가문의 모든 위협을 제거해 왔다.

안우혁의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꽉 움켜쥐자, 따뜻한 눈물이 그의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고, 차가웠던 얼굴에서 한 순간 미묘한 변화가 일었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턱에서 손을 뗐다.

육수연의 목소리는 떨렸고, 비를 맞은 이유로 여전히 거칠었다. "안우혁... 네 말이 맞았어. 그 사람들, 다 날 괴롭혔어."

"이십 년 넘게 내가 일방적으로 헌신했던거야. 내가 진짜… 한심한 바보인가봐."

오랜 침묵 끝에야 안우혁이 입을 열었다. "네가 바보였던 게 아니야. 그 사람들이, 네 진심을 받을 자격이 없었던 거지."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육수연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날 밤, 육수연은 갑작스럽게 고열에 시달렸다.

안우혁의 주치의인 레스는 그의 전화 한 통에 한밤중 잠에서 깨 의료 가방을 챙겨 급히 달려왔다.

다년간의 경력을 지닌 레스는 빠르게 검진을 진행했고, 침대 옆에 서서 창백하고 지친 육수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회차 3

레스가 몸을 돌렸을 때, 안우혁은 발코니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가늘고 길게 뻗은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가 그의 얇은 입술에 걸쳐 있었고, 무표정한 옆모습은 흰 연기 속에 묻혀 있었다.

안우혁이 담배를 피우는 일은 드물었다. 레스가 마지막으로 그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본 것도 벌써 2년 전이었다.

레스는 조심스레 발코니로 다가가 상황을 보고했다. "육수연 씨께서 다행히 큰 이상은 없습니다. 비를 오래 맞은 데다, 정신적 충격까지 겹쳐서 오한이 온 거예요. 주사 맞고 약 복용하면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말을 멈춘 레스는 잠시 고개를 들어 흐릿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방금 기사를 확인했어요. 육씨 가문… 정말 비열하네요. 연을 끊을 거면 조용히 끊지, 꼭 육은설 생일 파티에서 공개적으로 수연 씨에게 망신을 줘야 했을까요?"

레스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들이 수연 씨를 해외에서 데려올 때 유전자 검사도 안 했던 겁니까? 이건 누가 봐도 함정이에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수연의 휴대폰이 침대 머리맡에서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안우혁은 다가가 전화를 끊으려다가,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멈칫했다. 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고, 그는 스피커 모드로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들려온 건 남자의 격한 분노였다.

"육수연,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무시하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죽은 척한다고 뭐가 달라질 줄 알아? 내일 당장 이혼 서류에 도장 찍어. 그걸로 끝이야. 나 진짜 더는 못 참아. 제발 나랑 은설 사이에 더 이상 끼어들지 마. 그 동안 육씨 가문에서 덕 본 거 많잖아. 양심 있으면 조용히 사라져. 그게 은설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야."

"그동안 내 할머니랑 어머니 돌봐준 건 고맙게 생각해. 니 몫은 적당히 챙겨줄 테니까 더는 바라지 마."

"왜 아무 말도 안 해? 어디 있는 거야?"

지속되는 침묵에 허상철은 점점 불안해졌고, 그 순간부터 옆에서 모든 대화를 지켜보던 레스는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누가 제발 좀 말려줘…!'

허상철이 첫 마디를 뱉은 순간부터, 안우혁의 얼굴은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와 살기는 방 안의 공기를 숨 막히게 했다. 레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때, 안우혁이 서늘하게 웃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조차 보기 힘든 잔혹한 미소였다. "허상철, 너 육수연한테 늘 이런 식으로 말했어?"

그 말에 허상철은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움찔했다. "너 누구야? 육수연은 어디 있어?"

안우혁은 고개를 돌려, 침대에 잠들어 있는 육수연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낮게,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내 옆에서 자고 있어."

그 말을 듣자 허상철은 폭발하듯 소리쳤다. "뭐라고? 너 대체 누구야!"

하지만 안우혁은 성난 그의 고함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차가운 눈빛으로 휴대폰을 바라보며 조소 섞인 말투로 답했다.

"왜 그렇게 급해? 시간 좀 지나면 알게 되겠지. 네가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면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안우혁은 전화를 뚝 끊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내리던 비는 말끔히 그쳤고, 창밖으로는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육수연은 조용히 눈을 떴다. 휴대폰을 확인하자, 허상철에게서 온 수많은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메시지들을 훑어보다가, 무심하게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졌다. 지금은 샤워가 더 중요했다.

욕실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한 그녀는 오랜만에 살아있는 눈빛을 느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자 그 미소엔 생기가 감돌았고, 더는 공허하거나 억지로 웃는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열병이 육수연의 멍청했던 지난날, 그리고 가족에 대한 어리석은 충성심을 모두 태워 없애버린 듯했다.

'더 이상 바보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 비극적인 연극은… 여기서 끝이다.'

샤워를 마친 육수연은 가운으로 몸을 감싼 채,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번호 하나를 눌렀다.

전화가 한 번 울리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격한 외침이 터졌다. "비너스! 드디어 전화했네! 이혼한다는 소문 사실이야? 제발 사실이라고 말해줘!"

전화기 너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누가 봐도 스피커폰으로 그녀의 통화를 엿듣고 있는 게 뻔했다.

"오늘 이혼 서류에 도장 찍으러 가."

순간, 폭죽이라도 터진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휘파람, 박수, 술잔 부딪히는 소리까지. 그녀의 친구들은 이미 축하 파티를 시작한 분위기였다.

"꺄악!! 드디어 정신 차렸네!! 그 지긋지긋한 가정주부 코스프레는 끝났어. 우리 비너스가 돌아왔다!"

"이혼은 너한테 일생일대의 축복이야! 허상철 그 인간은 애초에 너랑 급이 안 맞았어! 한마디만 해. 내가 당장 달려가서 복수해 줄게!"

"맞아, 육씨 가문이 뭐가 대단하다고! 작년 금융 위기 때 너 아니었으면 걔네 기술주는 진작에 폭망했을 거야. 비너스, 돌아와. 에덴은 항상 네 편이야."

그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육수연은 저절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지금 나 데리러 와줄래?"

그러자, 흥분에 찬 남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여신님이 귀환하는 날인데, 당연히 모시러 가야지. 챔피언 레이서를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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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반격: 이혼, 결혼, 그리고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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