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임호건과 임세미는 걸음을 재촉해, 결국 임나연보다 먼저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

경호원이 말한 대로, 고급스러운 검은 차량이 조용히 도로가에 정차해 있었다.

차량 번호판을 확인한 순간, 임호건의 가슴은 요동쳤고,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경성 전역을 통틀어 이 번호판을 사용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 바로 박건우였다.

박건우는 어린 나이에 이미 최상위 명문가 박씨 가문의 수장이 되었고, 박씨 그룹의 현 대표이며, 수천억 자산을 보유한, 경성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오늘 박건우가 친히 이곳을 찾았다는 건, 말 그대로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듯한 영광이었다.

임호건은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빠르게 걸음을 옮겨 차량 앞으로 다가가 공손하고 아부 섞인 목소리로 인사했다. "박 대표님! 안녕하세요! 오늘 찾아오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제대로 마중도 못 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임호건이 그렇게 말한 뒤 한참 동안 기다려도 차 안에서는 내려오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없었다. '무슨 상황이지?' 임호건의 미소가 굳어졌다.

이번엔 임세미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살짝 넘기며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은 채, 조용히 차량 앞으로 걸어 나가서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 대표님, 이렇게 친히 오시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혹시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하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대답은커녕, 기척조차 없었다.

임호건과 임세미는 서로를 쳐다보며 혼란스러워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은 확실히 박건우의 차였다. 그런데 아무리 정중히 인사를 해도 차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어색한 침묵 속에서 조수석 문이 갑자기 열렸고, 비서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임호건은 그를 단번에 알아봤다. 그는 바로 박건우의 비서, 송학도였다.

임호건은 즉시 상황을 이해했다. 지금 임씨 가문의 위치로는 박건우 같은 인물과 직접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송학도를 보낸 것만 해도 이미 대단한 배려였다.

박건우의 호의를 얻는 것만으로도 임씨 가문에겐 큰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임호건은 다시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송 비서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무슨 일로..."

그러나 송학도는 단 한 번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고, 아무 말 없이 임호건과 임세미를 지나쳐, 조금 떨어진 곳에 조용히 서 있는 임나연에게 다가갔다.

임호건과 임세미는 그 장면을 보며 마치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듯 완전히 얼어붙었다.

송학도는 임나연 앞에 다가가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임나연 씨. 박학선 어르신을 대신해 박씨 저택으로 모시러 왔습니다."

'박학선?'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임나연의 가슴속에는 따스한 감정이 번졌다.

어릴 적 고아원에 있던 그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입양되어 사랑 받으며 자랐다.

박학선은 할아버지의 절친이었고, 그는 종종 어린 임나연과 놀아주기도 했다.

송학도가 손에 들고 있는 시계를 보자 임나연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건 박학선 어르신이 오랫동안 차고 다니던 바로 그 시계였다.

어르신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는 임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임나연 씨." 송학도는 친절하게 웃으며 그녀의 캐리어를 받아 조심스레 트렁크에 넣었다.

그리고 뒷문을 열며 말했다. "임나연 씨, 여기 타시면 됩니다."

임나연은 허리를 굽혀 차에 오르려다, 차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차 안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새하얀 셔츠를 단정히 입고 길고 곧은 다리를 느긋하게 꼬고 앉아 긴 손가락으로 종이를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고 천천히 시선을 그녀에게 옮겼다.

임나연의 눈동자는 그의 깊고 어두운 눈과 마주쳤다.

"난 박건우야."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나른하면서도 따뜻했다. "할아버지를 대신해 너를 데리러 왔어."

'박건우?'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임나연의 머릿속엔 어릴 적 기억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혼약을 정해준 적이 있었다. 상대는 바로, 박학선 어르신의 손자 박건우였다.

'그럼, 지금 이 차 안에 앉아 있는 이 남자가 바로… 내 약혼자?'

임나연은 천천히 뒷좌석에 올라타며 마음을 진정시켰고 검은 리무진은 임씨 저택을 떠나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임호건과 임세미가 얼어붙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고, 그들의 차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수년간 박씨 가문의 눈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왔는데, 오늘 박씨 가문이 찾아온 이유가 임나연 때문이라니? 게다가 송학도는 그렇게 공손한 태도로 임나연을 모셔갔다고?

송학도는 내내 그들에게 단 한 번의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임세미는 이를 악물었다.

임나연에게 밀려나는 건 언제나 그녀를 분노하게 했다. 방금 그 장면은 자신의 얼굴을 바닥에 내던지고 짓밟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 사이, 차 안에서 임나연은 조용히 앉아 옆자리의 잘생긴 남자를 몰래 훔쳐보았다. '박건우는… 그 혼약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제발 잊어버렸기를.'

임나연은 그 약속이 이제 와서는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건우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꿰뚫어 본 듯, 조용히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고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하고 있어."

임나연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의 관계는 말로 다 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입양아였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녀를 친손녀처럼 길러주었고, 할아버지의 특별한 지위 덕에 박학선 어르신도 종종 손자를 데리고 놀러 왔었다.

그렇게 임나연은 박건우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고, 어릴 적엔 사이도 좋았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어른들이 둘을 엮어 혼약을 정해버린 것이다.

어릴 적에는 혼약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의미가 무겁게 다가왔다. 특히 박건우와 함께 있을수록 그 압박은 더 심했다.

그도 이 혼약이 달갑지 않은 것 같았고, 종종 임나연에게 차갑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그녀가 옆집 남자아이와 노는 것조차 못마땅해하며 매번 독설을 퍼부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박건우를 더욱 싫어하게 되었고, 결국은 서로 얼굴도 보기 싫은 사이가 되 버렸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임나연은 반항심에 가득 차 할아버지에게 자신은 반 친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혼약을 파기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그 소식을 들은 박건우는 그날 밤 그녀 방으로 들이닥쳐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너 진심이야? 제정신이야?"

임나연은 그가 그렇게 화가 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둘은 대판 싸웠고, 그날 이후 모든 것이 틀어졌다.

박건우는 유학을 떠났고, 그 이후로 둘은 다시 만난 적이 없었다.

오늘 차에 탈 때조차, 임나연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박건우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예전에 알던 그 소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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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티아라를 되찾다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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