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심선희는 심채령의 그 도도하고 무심한 태도가 가장 얄미웠다. '고작 시골 촌부의 딸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 저렇게 잘난 척이야!

그런데 뭐, 상관없어. 어차피 곧 저년은 다시 운계 마을로 쫓겨가 매일같이 밭일이나 하며, 땡볕과 비바람 속에서 거무튀튀한 촌 년으로 살아가겠지. 그 도도함이 언제까지 갈지 두고 보지 뭐?'

"감히 그럴 순 없지!" 강희진은 원래부터 심채령이 심선희의 인생을 가로챈 존재라는 생각에 불만이 가득했는데 이 말을 듣자 분노가 더 솟구쳤다. "네가 선희 신분을 훔친거 아니였다면 너의 시골 출신 주제에, 오정운이랑 결혼이 어디 가당키나 해? 웃기지 마! 오정운의 발꿈치도 못따라가는 주제에,결혼은 무슨,꿈도 꾸지마."

이 모든 일에서 심채령 또한 피해자였다. 그러나 강희진은 모든 책임을 온전히 그녀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솔직히 심채령도 이제 더는 심씨 가문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오정운은 오씨 가문의 외동아들이었고 오씨 가문은 용성 최고의 부호로, 경성에서도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정도였다. 비록 백 등 밖이긴 해도 심씨 가문과 비하면 훨씬 좋은 배경이었다.

심채령과 오정운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소꿉친구였으니 자연스럽게 약혼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고 심채령은 그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심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오정운은 곧바로 그녀를 배신했고 약혼을 파기한 것도 모자라 심선희와 엮이기까지 했다.

"심씨 가문의 모든 것들엔 눈곱만큼도 미련 없어. 오정운도 마찬가지고." 심채령은 무표정하게 말을 남기고 돌아서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심선희가 그녀를 또다시 불러 세웠다 "언니, 그렇게 쿨하게 말하실 거면 가방 좀 열어보실래요? 입으로만 관심 없다고 하시는 분이 혹시 가방에 몰래 뭐라도 챙기신 건 아닌가 해서요."

"그래, 그래! 맞는 말이야." 강희진이 바로 거들며 혀를 찼다. "시골은 얼마나 가난한데! 우리 집에서 아무 장신구 하나만 가져가도 몇 년은 먹고 살겠지. 심채령, 네가 우리 거 훔쳐서 시골 부모에게 보태줄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심선희가 재빨리 다가와 심채령의 가방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자 그 가방에서 초록빛이 감도는 에메랄드 목걸이가 떨어져 나왔다.

심선희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이거, 이거 엄마가 나한테 선물한 목걸이잖아요! 이게 왜 언니 가방 안에 있는 거죠...?"

그녀는 놀란 척하면서도 입가에는 어느새 잔잔한 미소가 번져갔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심씨 가문이 이만큼 크고 잘사는 집안인데, 심채령이 아무것도 안 챙기고 나갈 리가 없잖아.'

강희진은 벌떡 일어나며 목걸이를 주워 들었다. "이 죽일 도둑년! 감히 이걸 훔쳐? 이 목걸이는 세계적인 주얼리 디자이너 헬레나의 작품이야! 내가 10억이나 주고 산 건데,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넌 정말 근본도 없구나! 지금 당장 경찰 부를 거야!"

심봉욱도 분노에 찬 눈빛으로 심채령을 노려봤다. "해명해 봐라.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할 거냐?" 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심채령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심선희는 겉으로는 말리는 듯했으나, 그 말투는 마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것만 같았다. "아빠, 엄마, 너무 화내지 마세요. 언니가 이 목걸이를 정말 갖고 싶었나 봐요. 만약 언니가 그 정도로 원한다면 제가 양보할게요..."

그러자 그녀의 예상대로 강희진의 분노는 한층 더 커졌다. "남의 인생을 훔쳐가더니, 이젠 10억짜리 보석까지 훔쳐? 이런 도둑년을 그냥 두면 두고두고 우리 심씨 가문에 먹칠할 거야! 이 목걸이는 헬레나의 유니크 디자인이야. 각 작품마다 고유 넘버도 있어. 이번엔 반드시 경찰에 신고할 거야!"

그러자 심선희는 또 그 가식적인 표정을 하며 말했다. "근데 엄마, 경찰까지 부르면 언니가 감옥에 가게 되잖아요. 그렇게까지 하면 언니 명예가..."

강희진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저런 도둑년은 감옥에서 뼈 빠지게 벌 받아야 해. 가능하면 영영 못 나오게 해야지! 그게 심씨 가문의 체면에 먹칠하지 않는 길이야!"

심봉욱은 말없이 앉아있었지만, 그 침묵은 곧 강희진의 말에 대한 동의였다. 딸이 감옥에 가든 말든, 가문 체면만 안 구기면 된다는 뜻이겠지.

심채령은 자신을 노려보는 강희진의 독기 서린 눈빛과, 옆에서 묵묵히 그녀의 뜻을 묵인하는 심봉욱을 바라봤다. 23년... 그녀가 그들을 엄마, 아빠라고 불렀던 시간이다. 그 동안은 심씨 가문이 그녀를 길러준 은혜가 있으니, 함부로 그들을 원망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들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비열한 사람들이란 것을. 그들은 정말로 그녀를 감옥에 처박아 죽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심채령의 마음속을 스치던 심씨 가문에 대한 마지막 남은 미련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회차 3

심채령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고 차갑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신고? 좋아요. 그런데 이게 도둑질이 아니면, 당신들은 어떻게 책임질 건데요?"

"그럴 리가 없어!" 강희진은 다급히 목걸이를 뒤집어보더니,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졌고 마치 누가 목을 조른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 말도 안 돼. 내가 분명히 9번을 샀는데... 이게 어떻게 1번일 수가 있어?!"

"1번?" 그 말에 심선희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싹 사라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분명히 그녀가 갖고 있던 그 목걸이였다. 심선희는 잽싸게 목걸이를 낚아채서 확인했지만, 놀랍게도 진짜 '1' 이 새겨져 있었다.

"이럴 수가..." 심선희는 완전히 멍해졌다. '심채령이 어떻게 헬레나가 디자인한 주얼리를 갖고 있는 거지? 그것도 이 시리즈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비싼 1번을?'

심선희는 다그치듯 외쳤다. "네가 어떻게 1번을 갖고 있는 거야?! 이건 헬레나가 처음으로 만든 원본이야! 이 시리즈의 기준 모델이라고! 20억은 넘는 거라고!"

심채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목걸이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단지 심심풀이로 만든, 아무 의미 없는 작은 소품일 뿐이었다.

"그렇게 귀한 걸 그냥 가방에 쑤셔 넣는다고?" 심선희는 기가 막혀 눈이 휘둥그래졌다. "대체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알긴 하는 거야?"

그러나 심채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내 물건이니까, 내가 어떻게 하든 내 맘 아닌가? 신고한다면서요? 왜 안 하세요? 안 할 거면 전 이만 가볼게요. 제 친부모님을 찾으러 가야 하니까요."

심선희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가방을 뒤져보았지만, 평범한 옷가지 몇 벌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입술을 악물며 분한 듯 눈을 부릅떴다.

한편, 강희진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껏 그들은 심채령에게 용돈을 한 푼도 준 적이 없었다. 그 뜻인 즉 그녀가 이런 목걸이를 살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목거리는 분명 가짜일 거야! 허영심도 정도껏 이지, 선희가 가진 거랑 똑같은 목걸이를 사서 흉내 내다니.'

강희진는 코웃음을 쳤다. '자기 주제도 모르는 것이. 촌에서 온 농부의 딸 주제에 심씨 가문의 딸이 찬 목걸이를 똑같이 착용한다고? 밖에 나가면 단번에 가짜라는 거 뻔히 티 날 텐데. 정말 창피한 줄도 모르네!'

강희진은 그 생각에 냉소를 터뜨렸다. '심채령은 아직 운계 마을이 어떤 곳인지도 모를 테지. 하지만 친부모를 만나게 되면 현실을 깨닫게 될 거야. 그때 가서 다시 심씨 가문에 무릎 꿇고 돌아오려 해도, 우리는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다.'

"두고 봐. 네가 울 날이 올 테니까!"

그러나 심채령은 어깨를 으쓱하며 생각했다. '곧 심씨 그룹에 문제가 생길 텐데, 과연 누가 울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

그녀는 가방을 둘러메고 대문을 나섰다. 그런데 그 순간,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낡아빠진 밴 한 대가 문 앞에 멈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곧이어 차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내려왔고 그는 심채령을 보자마자 황급히 다가오며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가씨?"

심채령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남자가 설명했다. "여기 헬리패드가 없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헬리콥터는 외곽에 정착해두었고, 시간을 더 지체할까 봐 급히 차량을 섭외해 아가씨를 모시러 왔습니다. 오래된 차라 좀 낡아 보일 수 있습니다.양해 바랍니다..."

운전사가 말하고 나서야 심채령은 자세히 차를 살폈다. 밴처럼 보이는 그 차는 사실은 클래식 마이바흐였고, 전 세계에 몇 대 없는 한정판이었다. 심채령은 문득 그녀의 친부모님은 심씨 가문이 말하던 대로 그렇게 형편없는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부모님은요?" 심채령은 뒷좌석을 훑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저는 아가씨 댁에서 나온 왕 기사입니다. 원래는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직접 마중 나오려 하셨지만, 아가씨를 찾았다는 소식에 너무 감격하신 나머지 노부인께서 병환이 나셔서... 그래서 급히 저 혼자 먼저 오게 되었습니다."

심채령은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갑시다."

"아, 잠시만요." 운전사는 차 뒤편 트렁크로 갔다.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심씨 가문이 아가씨를 키워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올드카는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았고 마침 강한 바람이 불자 쌓였던 먼지가 흩날리며 몹시 어지러웠다.

그때, 막 밖으로 나온 심씨 가문의 세 식구는 그 꼴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심선희 역시 이런 허름한 차는 처음 봤다. '대체 어느 폐차장에서 굴러 나온 고물인 거야? 승용차 한 대 빌릴 돈도 없어서 저런 걸 끌고 온 거야? 하긴, 시골 구석에서 자란 사람들 형편이 다 거기서 거기지. 심채령의 친부모는 말 그대로 농부라던데, 내 부모님처럼 용성 재벌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를 거야.'

강희진은 눈에 혐오를 그대로 드러냈고,그 가난이 옮기라도 하 듯, 심지어 몇 걸음 물러서기까지 했다. '저 남자 손은 흙투성이에, 누가 봐도 막 농사일 끝내고 온 티가 나잖아. 땀 냄새도 날 것 같아...' 그녀는 생각만 해도 역겨워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심봉욱은 겉으론 점잖은 체했지만, 속으론 그들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었다. 나이 지긋한 남자가 심채령을 그렇게 공손하게 부르는 걸 보니, 저 사람이 심채령의 친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골 사람에게 차가 없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렇다고 폐차장을 뒤져 저 딴 고물을 끌고 오다니... 이 고급 저택의 앞마당 분위기를 다 망치고 있잖아.'

운전사는 아까 잔디밭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진 탓에 손에 흙이 묻어 있었고, 그 흙이 선물 상자에도 묻어 얼룩져 있었다. "심 회장님, 이것은 저희의 작은 성의입니다. 아가씨를 23년 동안 키워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부디 받아주시지요."

심봉욱은 더럽혀진 상자를 힐끗 내려다봤다. '농사꾼이 뭘 그렇게 대단한 걸 줄 수 있겠어. 기껏해야 지들이 기른 작물 같은 걸 적당히 포장해서 넣은 거겠지...' 그러나 그는 겉으론 여전히 체면을 차리며 말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이제 그만 가보시죠."

강희진은 아예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런 후줄근한 상자 안에 뭐가 들었다고 저러는 거지? 우린 심씨 가문이야. 그딴 농작물 따위 필요 없거든.'

그러자 운전사는 조금 망설였다. 출발 전에 회장님이 특별히 챙기라고 당부한 선물이었다. 이 상자 안에는 23채의 상가 건물, 23채의 고급 주택, 23개의 최고급 주얼리, 23대의 슈퍼카, 23뿌리의 천년삼, 그리고 230억원이 든 통장이 들어 있었다. 모두 23년 동안의 양육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준비한 것들이다.

"심 회장님, 정말 안 받으실 건가요?"

심봉욱은 손을 내저으며 귀찮은 듯 말했다. "우리 심씨 가문은 그런 거 없어도 충분하니까, 얼른 가보세요."

운전사는 어쩔 수 없이 선물 상자를 다시 트렁크에 넣고, 심채령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심선희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상자를 바라봤다. '방금, 그 더미 안에서 헬레나의 주얼리 박스를 본 것 같은데? 설마... 아닐 거야. 어디선가 빈 박스를 주워온 거겠지. 그 안에 진짜 헬레나의 주얼리가 들어 있을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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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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