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병원장은 화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스카우트한 의사가 감히 박 사장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죽은 하유정보다 담이 더 큰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하예진은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앞에 있는 의사를 노려보며 팔짱을 꼈다. "너 뭐야? 당신이 집도하게 한 것에 감사히 받아들일 망정 감히 거절을 해? 만약 훈이가 어디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땐, 하찮은 너의 목숨 하나로 끝낼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대단한 일이면 그쪽이 하던가요." 하유정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반박하며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믿을 수 없는 하예진은 박현준의 팔을 잡고 칭얼거렸다. "현준 씨, 저 여자가 하는 말 들었어요? 우리 훈이한테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모두 저 여자 때문이에요."

하유정은 콧방귀를 뀌더니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고 있네요! 제가 아이를 밀쳐 다치게 했나요? 어떻게 제 잘못이죠?"

그녀의 말은 하예진의 신경을 정확히 건드렸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가 서둘러 손을 저으며 변명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가 밀었다고? 훈이는 혼자 떨어진 거라고! 당신 의사 맞아?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했어? 아이가 지금 수술실 안에서 죽어가는데 어떻게 여기 서서 시간을 낭비할 수 있어? 우리 훈이가 당신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하예진은 몸을 돌려 다시 병원장을 쳐다보고 계속 말했다. "원장님, 병원은 아무 심사 제도 없이 의사를 고용하나요? 이런 사람도 의사가 될 수 있어요? 기본이 없잖아요! 만약 우리 훈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겠어요!"

잔뜩 겁에 질린 병원장은 하예진과 박현준에게 연속으로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그리고 바로 양 선생을 수술실에 호출했다.

허겁지겁 달려온 양 선생이 수술실에 들어가려 할 때, 박현준이 그의 앞을 막아 섰다.

그의 매서운 눈빛이 하유정을 쏘아봤다. "오늘 이 수술을 집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당신이어야 해." 낮은 목소리였지만 위압감은 실로 엄청났다.

"흥!" 그의 말에 하유정은 콧방귀를 뀌고 몸을 돌렸다.

그녀의 행동에 박현준의 참아왔던 인내심이 폭발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하유정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 목을 세게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박현준! 이 더러운 손 치워!" 하유정은 그의 손등을 세게 긁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박현준의 눈에 싸늘한 빛이 언뜻거렸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에게 막말을 할 수 없다. 유일한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의 죽은 전처였다.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여자를 잡아 삼킬 것 같은 그의 눈동자에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발버둥 치는 모습이 들어왔고 문득 전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유정도 이 무례한 의사와 같은 인상적이고 예쁜 눈을 가지고 있다.

박현준의 입 꼬리가 예쁘게 휘어지더니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내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병원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말을 마친 그는 손에 힘을 풀어 여자의 목을 놓아주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바닥에 주저앉은 하유정은 목을 감싸고 몇 번 기침을 했다. 아직도 목에 남은 압박감이 괴로워 박현준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 원망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벽을 짚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조금 쉰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일 반드시 후회할 거예요!"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제 박현준에 대한 혐오감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수술실에 있는 그 도련님의 생사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하지만 수술 가운을 입고 수술대 앞에 선 그녀는 의사라는 책임을 등에 업고 있어 개인적인 원한은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아무 잘못고 없는 아이한테 자신의 증오를 퍼붓고 싶지 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술대 위에 생사를 오가는 어린아이를 바라봤다. 작은 얼굴이 충격으로 부어 오르고, 여러 군데 피가 잔뜩 묻어있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하유정은 다른 일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바로 아이의 부러진 곳부터 수술을 시작해야 했다.

세 시간 후,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간호사들과 다른 의사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하유정만 무감한 표정이었다.

박 씨 집안의 작은 도련님으로서 피가 묻은 얼굴로 수술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간호사들은 하유정더러 아이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라고 부탁했다.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면봉에 알코올을 적신 그녀는 주저하며 아이의 곁에 다가섰고 박현준에 대한 증오감에 이를 악물고 박훈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거의 닦아낼 때쯤, 그녀는 그만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창백한 아이의 얼굴을 깨끗하게 정리한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 아이 누구야?" 하유정은 곁에 있는 사람의 팔을 잡고 물었다.

"박 씨 집안 박현준 사장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박훈입니다. 선생님."

"박... 훈?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창백한 얼굴의 하유정이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술대 위에 있는 아이가 그녀의 아들과 똑같게 생겼다. 세상에 어떻게 이토록 닮은 아이가 있을 수 있지?

그녀의 오빠는 그녀가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말했다. 하은준과 하은서. 두 명의 아이는 그녀가 직접 키우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그녀의 아이들과 똑같게 생긴 아이가 또 나타날 수 있지?

삼둥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닮은 얼굴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유정은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뱃속에서 제일 먼저 나온 아이는 남자아이였고, 그녀는 그 아이가 하은준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지금 실제로 그녀가 삼둥이를 낳았단 말인가?

앞으로 박 씨 집안을 계승할 이 아이가 그녀의 아들일까? 그렇다면 그녀의 오빠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대체 왜 그렇게 해야만 했던 걸까?

하유정은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간호사들이 그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지만 방금전 심하게 다쳐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를 싫어하는 박현준이 그녀가 낳은 아이를 제대로 챙겼을 리 없다!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하유정은 메스를 손에 꽉 쥐고 충혈된 눈으로 수술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선생님, 우리 훈이 어떻게 됐나?" 수술실 문이 열리자 하예진이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오며 물었다.

"비켜요!" 하유정의 낮은 목소리가 조용한 로비에 울렸다.

그녀의 손에 피가 묻은 메스를 발견한 하예진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유정은 충혈된 눈으로 박현준을 쳐다봤다. 4년,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지 4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2년간의 결혼생활도 하예슬의 말 한마디에 무너졌으니까. 하예슬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녀의 아이라도 박현준은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서 빼앗아 갔다. 그런데 지금, 잔인한 그 남자는 그녀의 아이를 이렇게 학대하고 있었다니!

하유정은 바보가 아니다. 박현준의 주위에 둘러싼 경호원을 본 그녀는 화를 억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아이의 열이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24시간 안에 열이 내려야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바로 중환자 실로 내려갈 예정이고, 가족들을 포함한 그 누구도 면회할 수 없습니다."

하유정은 간호사에게 박훈을 중환자실로 내려가라고 지시했다.

병원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하 선생가 있으니 내 이리 마음이 놓여요."

"저의 직업은 의사입니다. 의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퉁명스러운 대답을 남긴 하유정은 몸을 돌리고 자리를 떠났다.

박현준의 눈길이 멀어져 가는 하유정에게 고정되었다. 그녀의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수술복을 입은 의사의 뒷모습이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의 모습에 하예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의사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저 여자 대체 누구야?" 여전히 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박현준이 물었다.

하예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병원장은 외부 병원에서 스카우트했다고 했어요. 현준 씨, 왜 저 여자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예요? 벌써 관심이라도 생겼어요? 우리 언니를 잊은 건 아니죠?"

"시끄러워." 하유정한테서 시선을 거둔 박현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입을 꾹 닫은 하예진은 머리 위에 찬물 한 바가지 맞은 느낌이 들었다.

"박훈이 빨리 깨어나길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이제 내 눈앞에서 꺼져!"

그의 말에 하예진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형부, 이건 제 잘못 아니에요. 훈이가 얼마나 개구쟁이인지 형부가 제일 잘 알잖아요. 저 그동안 훈이와 언니가 멀어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진심으로 훈이를 돌봤어요. 언니를 위해 훈이를 제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키웠어요. 저도 훈이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단 말이에요."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져."

박현준은 울며 애원하는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 복도를 지나가던 중, 간호사를 발견한 그가 간호사의 팔을 잡고 물었다. "의사 사무실은 몇 층에 있나?"

간호사는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박 사장님, 사장님 아들을 수술해 준 하 선생님을 찾고 계시나요?"

"그래."

"앞으로 직진하고 모퉁이를 돌면 하 선생님의 사무실이에요."

간호사의 팔을 놓아준 그는 힘찬 발걸음으로 앞으로 직진했다. 박현준은 자신의 발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전체 스토리 읽기
작가를 후원하고 Moboreader의 다음 이야기를 응원해 주세요!
모든 회차 잠금 해제

아빠를 도와 뺏어온 여자가 삼둥이의 엄마였다

3화
회차
사용자 설정
다음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