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심수빈은 임신했다.
병원에서 나온 그녀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남편 강경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태 씨..."
임신 검사지를 손에 꼭 쥔 그녀의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전화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나도 할 얘기 있었어.
7시에 집에서 봐."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뚜, 뚜…' 하는 무미건조한 신호음에 심수빈의 심장이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왠지 모르게 강경태의 목소리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길게 숨을 내쉰 그녀는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며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강경태는 용성에서 가장 큰 다국적 그룹의 대표로 평소에도 골치 아픈 일이 많으니, 자신을 향해 차갑게 말한 건 아닐 거라 애써 생각했다.
저녁 7시.
심수빈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들을 식탁에 올려놓고 시계를 보며 강경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강경태가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을까 싶어, 그가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직접 준비한 것이었다.
평소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그였기에, 심수빈은 강경태가 늦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저녁 8시.
저택의 문이 열리며,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세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찬 바람의 냉기를 가득 머금은 코트를 벗어 문 앞에 서 있는 하인에게 건넸다.
심수빈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일이 좀 있었어."
강경태는 서류를 손에 쥐고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할 얘기 있다며?"
젓가락은 들 생각도 없다는 듯, 남자는 깊은 연못 같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차갑게 물었다. "말해봐."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차갑고 엄숙한 분위기에 심수빈은 마른침을 삼키며 손가락을 꼭 움켜쥐었다. 임신했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먼저 말씀하세요."
강경태는 잠시 침묵하더니 심수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정이가 돌아왔어."
그의 한마디에 심수빈은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강경태가 말하는 우정은 심수빈의 사촌 언니 심우정이다.
심우정과 강경태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로 두 사람의 사이는 각별했다.
원래 1년 전, 강경태와 결혼하기로 한 사람은 심우정이었다.
하지만 심우정은 결혼식 전날 밤 갑자기 도망쳐 사라졌다.
강씨 가문과 심씨 가문의 체면을 위해 심씨 가문은 어쩔 수 없이 시골에 있는 심수빈을 찾아와 강경태와 결혼하게 했다.
심수빈은 강경태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언젠가 심우정이 돌아오면 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이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임신 검사지를 구깃구깃 움켜쥐었다. "그래서..."
심수빈은 강경태의 손에 쥐어진 서류를 흘깃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이혼 서류예요?"
"아니야."
강경태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담담했다. "당장 이혼할 생각은 없어."
심수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이 다시 조여 들었다.
당장 이혼할 생각이 없다는 건, 언젠가는 이혼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울컥 치미는 슬픔에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그럼 이건 뭐예요...?"
"우정이가 설명했어. 결혼식 전날 도망친 건 불치병에 걸려 나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대.
이번에 돌아온 것도 나랑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강경태는 서류를 심수빈의 앞에 펼쳐 보였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
심수빈은 잠시 멈칫하더니 서류에 적힌 내용을 흘깃 쳐다봤다.
그것은 골수 매칭 검사 결과서였다.
검사 결과서에는 그녀의 골수와 심우정의 골수가 완전히 일치하여 이식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 글자들을 본 심수빈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언제 골수 이식 검사를 받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를 제외하고는...
그녀는 찢어지는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강경태를 올려다봤다. "두 달 전, 당신이 비서 시켜서 저 건강검진받게 한 거... 사실은 골수 검사였죠, 맞죠?"
강경태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미리 말 안 한 건 우정이 일은 비밀로 해야 했기 때문이야."
강경태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수빈의 심장에 꽂혔다.
그 건강 검진은 결혼 생활 1년 만에 강경태가 처음으로 보여준 관심이었다.
당시 그녀는 미칠 듯이 기뻤고, 두 사람의 부부 관계가 드디어 진전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참으로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착각이었다.
그녀가 두 사람의 감정이 무르익고 있다고 착각한 순간에도, 그는 오직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골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심수빈은 고개를 들고 그녀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들을 사이에 두고 강경태를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싫어요."
말을 하면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식탁 아래의 손을 아직 평평한 아랫배 위로 가져갔다.
뱃속의 아기는 이제 겨우 두 달. 이 아이를, 그녀는 차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가 거절할 줄 몰랐던 강경태는 미간을 찌푸렸다. "최고 의료팀으로 붙일 거야. 네 건강에 문제없게 할 거고.
우정인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심수빈은 고집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경태. 나 임신했어."
회차 2
"우정이한테 골수 기증하기 싫어서, 이제 임신했다는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식탁에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강경태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싸늘하게 공기를 갈랐다. "결혼하고 1년 내내 철저하게 피임했는데, 어디서 다른 남자 아이라도 임신했다는 거야?"
심수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그녀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두 달 전, 비서와 함께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갔던 그날 밤이었다. 강경태는 평소와 달리 그녀에게 커다란 장미 한 다발을 안겨주었고, 잔뜩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미친 듯이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녀가 피임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귓불을 부드럽게 깨물며 유혹했었다. "오늘 밤은 너와 조금의 거리도 두고 싶지 않아."
그때의 그녀는 그저 행복에 젖어 있었다. 강경태가 건강 검진을 예약해주고, 꽃을 선물하고, 뜨거운 밤을 보낸 그 모든 행동이 드디어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신호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의 그 낯선 행동들은 모두 심우정이 돌아왔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평소 그토록 냉정하고 자제심 강한 강경태였다. 그런 그가 이성을 잃을 만큼 취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 못 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심우정 하나뿐일 터였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자, 강경태는 임신했다는 말이 골수 기증을 피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확신했다.
"심수빈."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우정이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알아. 하지만 우정이는 네 사촌 언니야."
그는 말을 이으며 검은색 카드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 카드에 10억 들어있어. 너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
고개를 떨군 심수빈의 시선이 금색으로 'J'가 새겨진 검은색 카드에 닿았다. 그녀는 쓴웃음을 삼켰다.
결혼 후 1년 동안 강경태가 그녀에게 준 용돈과 선물을 모두 합쳐도 1억이 채 되지 않았는데,
지금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단번에 10억을 내놓은 것이다.
"아니면 다른 요구 사항이 있다면 말해.
네가 골수만 기증해준다면, 뭐든 최대한 들어줄 테니."
심수빈은 강경태를 올려다보았다. 문득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 비친 강경태는 무심한 눈빛과 태도로 지극히 평범한 비즈니스 협상을 진행하는 듯했다.
지난 1년간 살을 맞대고 나누었던 그 모든 다정한 말과 달콤한 시간은 전부 한바탕 꿈이었던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쓴웃음과 함께 눈을 감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눈을 뜬 그녀는 결심을 굳힌 듯 강경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골수 기증 안 해요."
강경태의 미간이 좁혀지는 것을 본 그녀는, 더욱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인정머리 없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혼해요."
강씨 가문의 사모님 자리는 애초에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강경태의 마음속에도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오롯이 그녀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건 뱃속의 아이뿐이었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심우정이라는 사람 때문에 뱃속의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식탁에는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강경태는 마음속에 정체 모를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무언가가 그의 통제를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혼 생활 1년 동안 심수빈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녀는 그저 진지하게 듣고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의 그녀는 마치 발톱을 드러낸 작은 짐승처럼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심지어 이혼까지 입에 담았다.
그때,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식탁의 침묵을 깨뜨렸다.
"우정아."
전화를 받자마자 강경태의 목소리와 눈빛이 봄눈 녹듯 부드럽게 변했다. "무슨 일이야?"
별장 안이 워낙 고요했던 탓일까. 강경태가 스피커폰을 켜지 않았음에도, 전화기 너머로 심우정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심수빈의 귓가에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너무 아파..."
심우정의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가득했다. "경태야, 방금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손등을 침대 모서리에 부딪혔어. 링거 바늘이 빠져서 너무 아파. 피도 많이 났어..."
"나... 이러다 오늘 밤에 죽는 거 아니겠지... ?"
"지금 바로 갈게."
강경태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 너머의 심우정을 달래며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 다다른 그는 걸음을 멈추고, 여전히 식탁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심수빈을 돌아봤다. "결혼은 감정에 휩쓸려 내뱉는 말이 아니야. 이혼하자는 말은 오늘 밤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골수 이식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오늘 밤은 늦을 거다. 먼저 자."
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심수빈은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가야."
"걱정하지 마. 엄마가 꼭 지켜줄게."
강경태가 심우정을 선택한 이상, 그녀의 마음속에서도 더는 그가 머물 자리는 없었다.
회차 3
밤새 쏟아지는 폭우가 요란하게 창문을 두드렸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는 심수빈의 머릿속으로 지난 1년간 강경태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강경태의 할아버지와 그녀의 할아버지는 대대로 가깝게 지내온 사이로, 두 집안은 자주 왕래하며 지냈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강경태를 알고 지냈다.
여덟 살의 강경태는 벌써부터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항상 검은색 맞춤 정장을 입고 다니는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웃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무심한 태도로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다섯 살의 그녀는 그를 만날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함께 놀아달라고 졸랐다.
강경태는 몸에 밴 신사적인 태도로 그녀의 곁에서 인내심 있게 돌봐주며 함께 놀아주었다.
한번은 장난을 치다 호수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차가운 호숫물에 뛰어든 강경태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구한 뒤 인공호흡까지 해주었다.
그날, 혼미한 정신으로 눈을 뜬 심수빈은 천사를 본 줄 알았다.
이후, 부모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심씨 가문에서 그야말로 짐짝 취급을 받았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따라 시골에서 지낸 후, 그녀는 다시는 용성에 돌아오지 않았고, 강경태도 만나지 못했다.
1년 전, 큰아버지가 밤늦게 시골에 있는 그녀의 오두막을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강경태와 결혼한 이유가 시골의 가난한 생활에 지쳐 부와 명예를 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전 그날 밤, 강경태와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는 그녀 자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신이 잠시 허락한 아름다운 꿈일 뿐이라는 걸, 심수빈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번쩍였다.
이불 속에 몸을 숨긴 그녀의 마음이 점차 평온해졌다.
다음 날 아침, 심수빈은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시어머니 조은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꽂혔다.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자고 있어?"
"우리 강씨 가문이 어떻게 너 같은 게으름뱅이를 며느리로 들였는지 몰라."
심수빈은 지난 1년 동안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비난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녀는 매번 묵묵히 듣기만 했다.
화를 낼 줄 몰라서 참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조은화와 부딪혔을 때 난처해질 사람은 결국 강경태였기 때문이다.
다국적 그룹의 총수인 그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사소한 가정 문제로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다.
조은화는 계속해서 그녀를 비난했다. "1년 전, 상황이 급박하지만 않았어도 너 말고 다른 애를 며느리로 들였을 거다. 넌 우리 경태랑 격이 안 맞아..."
"저도 제가 강경태 씨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결혼은 저 혼자 결정한 게 아니잖아요."
심수빈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신다면, 아드님을 설득해서 저와 이혼하고 어울리는 사람 찾아 결혼하게 하시면 되잖아요."
"1년 전, 강경태 씨가 저와 결혼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위기가 해결되었으니 괜찮지 않나요?"
조은화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항상 고분고분해서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듣고만 있던 심수빈이 감히 이런 태도로 자신에게 대꾸하다니!
혹시 미친 게 아닐까?
"아주머니, 아침 일찍 저한테 전화하신 이유가 설마 이 말씀 때문인가요?"
"시간이 남으시면 아드님이나 설득해서 저와 이혼하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는 더 자야겠으니 이만 끊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조은화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끊어진 통화음을 들은 조은화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자신의 잔소리를 듣고도 잠을 더 자겠다는 것도 모자라, 어머니도 아니고 아주머니라니!
이런 되바라진 계집애가 감히!
조은화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얼굴로 강경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마누라, 그거 미친 거 아니니?"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조은화는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전화 좀 했다고 나한테 화를 내는 것도 모자라 너랑 이혼하게 설득하라고 하잖니. 제정신이야?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
병원 복도에 선 강경태는 창밖으로 비에 젖어 더욱 싱그러워진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풍경과 달리,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수빈이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
"그래!"
조은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경태야, 지난 1년 동안 내가 너한테 이혼하라고 몇 번이나 설득했는지 몰라. 하지만 넌 매번 핑계를 대며 거절했지."
"이번에 수빈이 걔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냈으니, 아주 좋은 기회야."
"네 생각은 어떻든, 이번엔 반드시 이혼해야 해!"
"네가 그 시골 계집애랑 결혼한 후로, 상류 사회에서 우리 강씨 가문이 얼마나 비웃음을 샀는지 알아?"
"너..."
"어머니."
강경태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 폭우가 쏟아져서 수빈이가 천둥번개 소리에 잠을 설쳤을 거예요."
그는 말을 하며 손목시계를 흘깃 쳐다봤다. "아직 아침 7시밖에 안 됐어요. 오늘 중요한 일도 없는데, 굳이 수빈이를 깨우실 필요까지 있었나요?"
강경태는 말을 하며 몸을 돌리다 병실 문 앞에 환자복을 입고 서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진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지금 처리할 일이 있어서 먼저 끊겠습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그가 심우정에게 다가갔다. "왜 침대에서 내려왔어?"
안색이 창백한 심우정은 문틀을 잡고 그를 향해 힘없이 미소 지었다. "어머님께서 수빈 씨가 너랑 이혼하고 싶어 한다는 말씀, 들었어.. ."
"수빈 씨가 너랑 이혼하고 싶어 하는 거, 나 때문이야?"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인 그녀가 강경태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경태야, 내가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