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분을 이기지 못한 김나은이 서슬 퍼런 눈으로 김소월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을게. 조금 전까지 길남 오빠랑 같이 있었어? 음탕한 몸으로 오빠를 유혹한 거야?"
"난 대답할 의무 없어."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김소월의 목소리에는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으나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김나은이 손을 번쩍 들어 김소월의 뺨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뻔뻔스러운 년. 고작 남자 몸이나 홀려대는 주제에 길남 오빠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두 사람 아무리 결혼 약속을 했더라도, 오빠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너 같은 년이 함부로 유혹할 수 있는 사람 아니라고!"
김나은의 손에 낀 반지가 김소월의 얼굴을 때리며 상처를 남겼다. 깊은 상처는 아니지만 찌릿한 통증이 그대로 전해졌다.
곧바로 비틀려 올라간 그녀의 입술 사이로 차가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김나은, 넌 어쩜 아직도 이렇게 순진하니? 네 엄마, 조미영 씨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몰라서 그래?"
"너 감히 우리 엄마가 정부라고 비웃는 거야?"
김소월은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활짝 미소 짓더니 경멸 어린 눈빛을 보냈다. "이미 알고 있었어?"
그녀의 도발에 김나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김소월, 너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어?"
그리고 김소월을 향해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김소월은 세면대 옆에 올려둔 핸드워시 뚜껑을 열어 김나은의 얼굴과 머리에 쏟아 부었다.
"아악! 내 얼굴!" 뒤이어 들려오는 김나은의 비명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호텔 방 앞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김나은의 친구들이 비명을 듣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
"나은아, 괜찮아?"
"김소월, 너 정말 해도 너무 하잖아. 나은이 메이크업하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어. 그걸 네가 망가뜨린 거야!"
"아무리 나은이가 너 대신 박길남 씨와 약혼한다지만, 사랑 앞에서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방해꾼이 아니겠어? 나은이와 길남 씨,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그냥 두 사람 축하해주면 안 돼?"
김소월은 김나은 친구들의 감정 섞인 질타를 듣고 있으면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상처에 컨실러를 조심스럽게 펴 발랐다. 최고급 호텔에서 마련한 고급용 제품에도 불구하고, 상처에 닿자 찌릿한 통증이 밀려와 그녀의 미간이 절로 좁아 들었다.
"김나은, 내가 너였다면 약혼식이 시작되기 전에 메이크업을 수정했을 텐데 말이야. 김씨 가문과 박씨 가문의 약혼식이라 그런지 각계 유명 인사들이 모두 참석했네. 오늘 주인공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면, 내일 기사 1위는 두 가문의 약혼식이 아니라 김씨 가문 둘째 아가씨의 추한 사진이 올라오겠네."
김나은의 친구들은 그제야 김나은을 설득하며 말했다. "나은아, 오늘은 네 약혼식이니 이런 사람이랑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 약혼식이 끝나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아."
"그래, 나은아. 일단 약혼식부터 무사하게 올려야지. 침착해."
김나은은 뒤돌아서는 순간까지 김소월을 노려봤다. "김소월, 너 두고 봐!" 분한 마음에 발까지 동동 구른 그녀는 엄포를 놓고 친구들과 함께 호텔방을 나섰다.
김나은이 방문을 나서자마자 김소월은 갑자기 만족스러운 한숨을 푹 내쉬는 것이다.
"나은아, 나 아직 너한테 할 말 남았어. 네가 나한테서 길남 씨 빼앗은 거, 널 탓하지 않을게."
그녀의 말에 자리에 멈춰 선 김나은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날 탓하지 않겠다는 건 무슨 말이야? 김소월, 너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야?"
김소월은 피곤한 듯 하품을 길게 하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 "말 그대로 널 탓하지 않겠다는 거야. 박씨 가문 남자들이 침대에서 얼마나 짐승 같은지,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넌 그저 네 엄마의 실력을 그대로 물려받고 길남 씨를 유혹한 거잖아? 네 엄마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가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해. 그러니까 널 탓하지 않겠다고 하는 거야."
"김소월!" 김나은이 꽥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텔 방문이 김소월에 의해 굳게 닫혔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호텔 로비가 떠나갈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