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노준혁과 강하나의 결혼은 애초부터 감정이라고는 없는 혼인이었다. 그가 결혼을 택한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노씨 가문의 며느리 자리가 어머니에게는 너무나 힘겨웠기에, 노준혁은 결국 어머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강하나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의 관계가 한동안은 한결 부드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노부인의 몸이 점점 약해져 더 이상 어머니를 괴롭힐 여력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게다가 노준혁은 반드시 그 소녀를 찾아내 정식으로 명분을 주고 싶어 했다. 그러니 강하나와 더 이상 어정쩡하게 얽혀 있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강하나는 아직 어린 데다 학교에 다니는 중이었고, 그동안 결혼 사실조차 숨겨왔기에 이혼한다고 해도 일상에 큰 영향은 없을 터였다.
이혼 후, 강하나는 풍족한 재산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재산이라면 남은 생을 평온하게 살아가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강하나 역시 노준혁을 좋아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제야 겨우 두 번째로 마주한 사이였고, 고작 두 번 본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 강하나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답답하게 막혀왔다.
'역시 정말로 마음에 둔 여자가 있었던 거였어… 그렇다면 내가 그날 밤의 여자였다는 사실은 굳이 밝힐 필요도 없지. 괜히 말해봤자 서로 불편해질 뿐일 거야.'
애초에 강하나가 해외까지 가서 바람 현장을 잡으려 했던 목적도 결국 이혼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지금 이렇게 된 것도 어쩌면 뜻대로 된 셈이었다.
"네, 좋아요." 강하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노준혁 역시 그녀에게 충분히 할 만큼 해주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날 밤의 일도 온전히 그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단지 본능에 휘말린 상황이었으니, 어쩌면 지금도 그는 후회하고 있을지 몰랐다.
잠시 후, 강하나는 펜을 들어 이혼 합의서에 사인했다.
"고마워."
노준혁은 강하나가 질척거리며 억지로 매달리지 않은 것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꼈다. 어쨌든 평화로운 결별이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노준혁은 별장에 머물지 않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강하나는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노준혁의 차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
강하나는 마지막으로 1년 동안 살아온 그 별장을 돌아보았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들어왔는데 이제 떠나는 순간조차 여전히 조용히 떠나고 있었다.
불과 1년 만에 그녀는 이혼녀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녀에서 여자로 바뀌기도 했다. 손에는 어제 막 사인한 이혼 합의서가 들려 있었다. 태양 아래에 서 있으니 모든 것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때, 비서가 차를 그녀 앞에 세웠다.
뒷좌석 창문이 내려가자 노준혁의 평온한 시선과 맞닿게 되었다. "데려다 줄게."
"괜찮아요… 저 혼자 차 타고 가면 돼요. 그 동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하나는 애써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준혁이 이렇게 많은 돈을 준 마당에, 고작 하룻밤이 대수일까.'
한편, 노준혁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
구청 정문 앞에 홀로 남은 강하나는 택시를 잡으려 했다.
가을로 접어들었음에도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다. 시간은 아직 오전 10시 남짓인데도, 작열하는 태양은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게 만들었다.
구청은 외진 곳에 있어 택시 한 대 잡기가 쉽지 않았다.
강하나의 온몸은 이미 땀에 젖어 있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밖에 서 있던 탓에 어지럼증이 밀려왔고, 점점 시야가 흐려지더니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며 모든 것이 사라졌다.
얼마 후, 눈을 떴을 때 강하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떤 마음씨 착한 사람이 그녀를 옮겨준 것이었다.
"저... 제가 왜 그런 건가요?"
"열사병이에요. 다행히 심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산모이니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쓰셔야 해요. 아이는 건강하니까 조금만 쉬면 퇴원하실 수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 순간, 강하나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그녀는 간호사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열사병이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 산모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환자분께선 임신하셨습니다. 몰랐나요? 벌써 임신 3개월 차인데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 순간, 강하나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했다.
그녀는 원래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 이번 달에 한 번 오면 다음 달은 건너뛰는 경우도 많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게다가 그날 분명 사후 피임약까지 복용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임신이라니…
"말도 안 돼요. 제... 제가 임신이라니... 저는 사후 피임약도 먹었다고요."
"아무리 강력한 피임약이라 해도, 임신 확률은 3% 정도 있어요. 그 어떤 안전 조치도 100%에 달할 순 없답니다." 간호사가 차분히 설명했다.
한편, 그 말에 강하나는 머리가 어지러워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