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체크아웃이요."
한창 수다를 떨던 프런트 직원 두 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상 속 주인공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수다는 즉시 멈췄다.
어색한 미소가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중 한 명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영상을 확인하고는, 눈앞에 나타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를 다시 빤히 쳐다봤다. 시선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자 직원은 경탄이 섞인 눈빛으로 체크아웃 수속을 마쳤다.
차에 올라탄 소예린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프런트 직원의 이상한 눈빛을 떠올리고 무언가 퍼뜩 깨달았다.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목에 난 붉은 자국들을 확인하자, 충격적인 모습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파운데이션을 꺼내 자국이 난 곳에 서둘러 덧발랐다.
'그 남자, 체력이 어쩜 그리 좋을까.
지치지도 않는 괴물 같으니라고.'
교통사고로 얽혀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실소가 터져 나왔다.
30분 후, 스포츠카가 소씨 저택에 들어섰고, 검은색 카이엔 한 대가 거의 동시에 저택으로 들어와 나란히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육준우는 소예나를 보물 다루듯 조심스럽게 차에서 부축했다. 소예린을 발견한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둡게 가라앉았다.
"너, 예나 자극하지 마.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해."
예전과 다름없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마치 생리 기간에 아이스크림도 못 먹게 하고, 짧은 치마도 못 입게 하던, 그 특유의 타이르는 말투.
그녀는 한때 그런 육준우를 미치도록 사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역겨울 뿐이었다.
"마침 잘 왔네. 파혼해."
가녀린 몸매에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피부, 아름다운 얼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교태가 흘렀다.
육준우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가 그녀의 목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자국을 발견하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소예나의 손을 놓은 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뼈를 부러뜨릴 듯한 기세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너 어젯밤에 어디서 뭘 한 거야? 어떤 새끼가 네 몸에 손댔어?"
그의 표정은 마치 아내가 바람피운 현장을 목격한 남편 같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거 놔." 소예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줬나 보군. 그래서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거겠지. 감히 다른 남자가 네 목에 이런 자국을 남기게 해?" 육준우는 소예린이 자신을 배신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자국을 만들었다고 여겼다.
소예린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목뿐만이 아닌데. 온몸에 흔적이 남았어. 그 남자는 나를 안으면서 계속 '자기야'라고 불렀고. 정말이지, 끝내주게 열정적이던데."
육준우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어지더니 손에 힘이 무의식적으로 풀렸다.
"…이 일은 내가 설명할 수 있어. 그러니까 예나 자극하지 마."
'영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구나.'
'정말 대단한 인간이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소예린이 손을 휘둘렀다.짝!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의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 소예나가 놀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소예린의 허리를 붙들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게 했다. "내가 준우 오빠를 좋아해서 매달렸다고. 오빠는 언니한테 정말 잘해줬는데, 어떻게 오빠를 때릴 수가 있어?"
흐느끼며 육준우를 감싸 안는 소예나의 낮은 목소리가 소예린의 귓가에 들려왔다.
"결혼식장에서 버림받은 기분이 어때? 나는 손목에 상처만 살짝 냈을 뿐인데, 준우 오빠는 너무 마음 아파하면서 나를 한참 동안이나 안고 입 맞춰주더라…"
마치 독사에 휘감긴 듯한 섬뜩함에 소예린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소예나를 밀치기 위해 손을 뻗자, 소예나는 과장되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붕대를 감은 손목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소예린!"
육준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그는 재빨리 소예나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사과해. 당장 예나한테 사과하라고."
"준우 오빠, 너무 화내지 마세요." 소예나는 육준우가 소예린을 가리키던 손을 붙잡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남의 약혼자를 사랑한 제가 죽을 년이죠. 언니가 화내는 건 당연해요.제가 다 감수해야죠."
그 애처로운 표정에는 누구라도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예나야, 울지 마."
회차 3
소예린은 두 사람이 애정 행각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네 꼴이 천박한 건 아는구나?"
육준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너 정말 실망스럽다. 네 언니는 이제 막 위험한 고비를 넘겼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언니?" 소예린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 "제부 침대에 기어오르는 그런 언니?"
"너!" 화가 치밀어 오른 육준우는 소예나를 부축하고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예린의 곁을 지나칠 때,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문 앞에서 기다려."
늘 그랬듯 소예린이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 확신하며 습관적으로 내뱉은 명령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눈앞으로 붉은 그림자가 휙 스쳐 지나갔다.
손에 작은 가방을 든 소예린은 한 손에 잡힐 듯한 허리를 살랑이며 검은색 하이힐 소리를 또각였다. 마치 매혹적인 붉은 여우처럼, 그녀는 자유분방하게 저택으로 들어섰다.
"여긴 내 집이야.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없어."
그 자리에 멈춰 선 육준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순간, 소예린이 낯설게 느껴졌다.
"준우 오빠."
곁에서 들려오는 애교 섞인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준우 오빠, 쟤 원래 저러잖아요. 신경 쓰지 마요. 제가 나중에 얘기할게요. 다시는 오빠 화나게 안 할 거예요.일단 들어가서 쉬어요."
소예나는 눈시울을 붉힌 채 그의 팔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준우 오빠, 내 곁에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 애절한 목소리에 육준우의 마음이 흔들렸다.
"당연하지. 네가 나 때문에 그런 건데. 상처 다 나을 때까지 내가 옆에 있어 줄게."
소예린이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거실로 들어서는 육준우와 소예나가 보였다.
집 앞에서까지 버젓이 놀아나는 꼴이라니, 역겨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
"키스는 실컷 하셨나?"
검은색 가죽 소파에 가느다란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마치 길들지 않은 야생 고양이 같았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2층에서 노기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또 무슨 망발이냐? 갈수록 버르장머리가 없어!"
소정우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뒤로는 전처인 임채은이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소씨 가문의 안주인 행세를 하는 여자였다. 남들 눈에는 명실상부한 소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보일지 몰라도.
온몸을 보석으로 휘감았지만, 그 탐욕과 음험함이 서린 표정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소예나보다 한 수 위인 위선자였다.
소예린은 더 이상 말싸움을 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몇 번 조작했고, 곧 현관 CCTV 화면이 거실의 대형 TV에 나타났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정신없이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의 모습, 심지어 입가에 번들거리는 타액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소예린!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소예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수치스럽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내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마치 불륜 현장을 들킨 것이 아니라, 억울한 일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딸! 또 어리석은 짓 하면 안 된다!" 임채은은 다급히 소예나를 따라 올라가며 일부러 모두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소예나가 환자이니 더는 자극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소정우는 화를 참지 못하고 TV 전원 코드를 뽑아 버렸다.
"소예린! 기어이 집안을 풍비박산 내야 속이 시원하겠냐?"
"제가 난리예요, 아니면 저 소예나가 난리인 거예요!"
한때 자신을 그토록 아꼈던 아버지의 싸늘한 눈빛에 소예린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녀는 소중했던 가족의 정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어머니는 16년간 소씨 가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소정우는 전처와 그 딸을 이 집에 들였다.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 그녀는 치가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