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여자친구 있어?"
소예린이 빨간색 스포츠카 보닛에 기대앉았다. 몸에 꼭 맞는 빨간색 미니 원피스는 그녀의 섹시한 허리선을 더욱 돋보이게 했으며, 주먹만 한 얼굴에 오목조목 자리 잡은 이목구비는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토바이를 확인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던 남자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차가우면서도 잘생긴 얼굴은 야성적인 매력을 풍겼으며, 가로등 아래에서 호르몬이 폭발하는 사자 같았다.
"싱글인데."
낮게 깔린 목소리는 마치 계곡을 스치는 바람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매혹적이었다.
소예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허리를 살짝 숙였다.
웨이브 진 갈색 긴 머리가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가슴 앞으로 흘러내렸고, 머리카락 사이사이에는 축포가 터지면서 흩날린 색종이가 묻어있었다.
"나랑 하룻밤 보내. 수리비는 그걸로 퉁치고."
그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 사람이었다. 육준우가 그녀를 배신했으니, 그녀 또한 다른 남자를 찾아 육준우를 배신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이 남자는 몸매와 외모 모두 그녀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다.
육준우보다 몇 배는 더 강해 보이는 이 남자는 그녀를 더욱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는 눈빛이 깊어지더니 수억 원에 달하는 슈퍼카에 난 흠집을 흘깃 쳐다보고, 거의 폐차 수준인 자신의 오토바이를 내려다봤다.
사실 그녀의 차는 그의 오토바이 바퀴 하나 값도 되지 않았다.
사악하게 눈을 가늘게 뜬 남자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잘생긴 입술을 비스듬히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어차피 수리비 갚을 능력도 안 되니까. 대신 후회는 하지 마, 새끼 고양이."
그는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잡아채 어깨에 둘러메고 근처 호텔로 향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남자를 침대로 밀어 눕혔다. 러브 호텔에 가장 흔한 것이 바로 그런 도구였다. 그녀는 서랍을 열어 수갑을 꺼내 들고는, 남자의 두 손을 침대 머리맡에 채워 버렸다.
"난 내가 주도하는 게 좋아."
흥분으로 달아오른 그녀의 피부는 유혹적인 붉은빛을 띠었다.
아직 어리고 서툴렀지만, 그녀는 활짝 피어난 장미처럼 모호한 조명 아래에서 흔들렸다.
고집불통인 그녀는 남자가 만족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빠르게 끝냈다.
"이제 퉁친 거야."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은 그녀가 막 돌아서려는데, 남자가 다시 그녀를 침대 위로 눕혔다. 남자의 가늘고 긴 눈에는 어두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고작 이게 다야? 하룻밤이라며? 아직 시간은 많은데."
그녀는 수갑이 어떻게 풀렸는지도 모른 채, 남자의 격렬한 움직임에 이성을 잃었다.
남자는 그녀가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며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눈가에 붉은빛이 번지더니 눈물이 통제할 수 없이 흘러내렸고, 그녀는 흐느끼며 남자의 공격을 받아들였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으니, 정말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소예린은 몇 번이나 기절했는지도 몰랐다. 남자는 만족을 모르는 야수처럼 그녀의 뼈까지 씹어 먹을 기세였다.
마지막에 그녀가 원피스를 겨우 몸에 걸칠 때, 뒤를 돌아볼 용기조차 없었다.
목이 쉬어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도, 그녀는 경고를 날렸다.
"사고 현장 영상, 내가 가지고 있어. 이 문 나서는 순간 모르는 사이야.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만족감에 젖은 남자의 나른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거 우연이네. 그 영상, 나도 가지고 있는데."
남자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소예린은 가방을 챙겨 문을 향해 걸어갔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가 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남자의 짓궂은 웃음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진짜 조금 더 안 자고 가려고?"
'나쁜 자식!'
소예린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문을 세게 닫았다. 마치 남자의 얼굴에 문을 세게 닫고 싶었던 것처럼.
그녀는 남자의 눈빛에 광기에 가까운 독점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호텔 로비에 있는 TV에서 실시간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경주 재벌가 혼인 스캔들! 육씨 그룹 장남, 약혼식 당일 돌연 퇴장! 소씨 가문 막내딸은 빈껍데기뿐인 기쁨을 맛봐야 했습니다."
"육씨 그룹 장남이 소씨 가문 첫째 딸이랑 가깝게 지낸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첫째 딸이 비록 전처소생이긴 한데, 그 엄마가 다시 소 회장 침실을 차지했다잖아요. 이러다 자매끼리 신랑 바꾸는 거 아니에요?"
영상 속, 빨간색 미니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머리카락에 축포가 터지면서 흩날린 색종이가 묻어있었다.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얼어붙은 채, 카메라에 의해 무한대로 확대되어 추하게 보였다.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소예린은 더 이상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육준우에게 너무 집착했다. 교복 시절부터 만나 결혼까지 이어지는 사랑이 더 굳건하다고 믿었기에, 육준우가 자신을 짓밟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육준우 외에도 그녀를 만족시키는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어젯밤처럼 체력이 좋아 300라운드라도 거뜬히 싸울 수 있는 남자 말이다.
회차 2
"체크아웃이요."
한창 수다를 떨던 프런트 직원 두 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상 속 주인공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수다는 즉시 멈췄다.
어색한 미소가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중 한 명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영상을 확인하고는, 눈앞에 나타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를 다시 빤히 쳐다봤다. 시선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자 직원은 경탄이 섞인 눈빛으로 체크아웃 수속을 마쳤다.
차에 올라탄 소예린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프런트 직원의 이상한 눈빛을 떠올리고 무언가 퍼뜩 깨달았다.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목에 난 붉은 자국들을 확인하자, 충격적인 모습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파운데이션을 꺼내 자국이 난 곳에 서둘러 덧발랐다.
'그 남자, 체력이 어쩜 그리 좋을까.
지치지도 않는 괴물 같으니라고.'
교통사고로 얽혀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실소가 터져 나왔다.
30분 후, 스포츠카가 소씨 저택에 들어섰고, 검은색 카이엔 한 대가 거의 동시에 저택으로 들어와 나란히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육준우는 소예나를 보물 다루듯 조심스럽게 차에서 부축했다. 소예린을 발견한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둡게 가라앉았다.
"너, 예나 자극하지 마.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해."
예전과 다름없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마치 생리 기간에 아이스크림도 못 먹게 하고, 짧은 치마도 못 입게 하던, 그 특유의 타이르는 말투.
그녀는 한때 그런 육준우를 미치도록 사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역겨울 뿐이었다.
"마침 잘 왔네. 파혼해."
가녀린 몸매에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피부, 아름다운 얼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교태가 흘렀다.
육준우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가 그녀의 목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자국을 발견하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소예나의 손을 놓은 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뼈를 부러뜨릴 듯한 기세로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너 어젯밤에 어디서 뭘 한 거야? 어떤 새끼가 네 몸에 손댔어?"
그의 표정은 마치 아내가 바람피운 현장을 목격한 남편 같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거 놔." 소예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줬나 보군. 그래서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거겠지. 감히 다른 남자가 네 목에 이런 자국을 남기게 해?" 육준우는 소예린이 자신을 배신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자국을 만들었다고 여겼다.
소예린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목뿐만이 아닌데. 온몸에 흔적이 남았어. 그 남자는 나를 안으면서 계속 '자기야'라고 불렀고. 정말이지, 끝내주게 열정적이던데."
육준우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어지더니 손에 힘이 무의식적으로 풀렸다.
"…이 일은 내가 설명할 수 있어. 그러니까 예나 자극하지 마."
'영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구나.'
'정말 대단한 인간이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소예린이 손을 휘둘렀다.짝!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의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 소예나가 놀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소예린의 허리를 붙들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게 했다. "내가 준우 오빠를 좋아해서 매달렸다고. 오빠는 언니한테 정말 잘해줬는데, 어떻게 오빠를 때릴 수가 있어?"
흐느끼며 육준우를 감싸 안는 소예나의 낮은 목소리가 소예린의 귓가에 들려왔다.
"결혼식장에서 버림받은 기분이 어때? 나는 손목에 상처만 살짝 냈을 뿐인데, 준우 오빠는 너무 마음 아파하면서 나를 한참 동안이나 안고 입 맞춰주더라…"
마치 독사에 휘감긴 듯한 섬뜩함에 소예린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소예나를 밀치기 위해 손을 뻗자, 소예나는 과장되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붕대를 감은 손목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소예린!"
육준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그는 재빨리 소예나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사과해. 당장 예나한테 사과하라고."
"준우 오빠, 너무 화내지 마세요." 소예나는 육준우가 소예린을 가리키던 손을 붙잡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남의 약혼자를 사랑한 제가 죽을 년이죠. 언니가 화내는 건 당연해요.제가 다 감수해야죠."
그 애처로운 표정에는 누구라도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예나야, 울지 마."
회차 3
소예린은 두 사람이 애정 행각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네 꼴이 천박한 건 아는구나?"
육준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너 정말 실망스럽다. 네 언니는 이제 막 위험한 고비를 넘겼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언니?" 소예린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 "제부 침대에 기어오르는 그런 언니?"
"너!" 화가 치밀어 오른 육준우는 소예나를 부축하고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예린의 곁을 지나칠 때,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문 앞에서 기다려."
늘 그랬듯 소예린이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 확신하며 습관적으로 내뱉은 명령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눈앞으로 붉은 그림자가 휙 스쳐 지나갔다.
손에 작은 가방을 든 소예린은 한 손에 잡힐 듯한 허리를 살랑이며 검은색 하이힐 소리를 또각였다. 마치 매혹적인 붉은 여우처럼, 그녀는 자유분방하게 저택으로 들어섰다.
"여긴 내 집이야.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없어."
그 자리에 멈춰 선 육준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순간, 소예린이 낯설게 느껴졌다.
"준우 오빠."
곁에서 들려오는 애교 섞인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준우 오빠, 쟤 원래 저러잖아요. 신경 쓰지 마요. 제가 나중에 얘기할게요. 다시는 오빠 화나게 안 할 거예요.일단 들어가서 쉬어요."
소예나는 눈시울을 붉힌 채 그의 팔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준우 오빠, 내 곁에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 애절한 목소리에 육준우의 마음이 흔들렸다.
"당연하지. 네가 나 때문에 그런 건데. 상처 다 나을 때까지 내가 옆에 있어 줄게."
소예린이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거실로 들어서는 육준우와 소예나가 보였다.
집 앞에서까지 버젓이 놀아나는 꼴이라니, 역겨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
"키스는 실컷 하셨나?"
검은색 가죽 소파에 가느다란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마치 길들지 않은 야생 고양이 같았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2층에서 노기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또 무슨 망발이냐? 갈수록 버르장머리가 없어!"
소정우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뒤로는 전처인 임채은이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소씨 가문의 안주인 행세를 하는 여자였다. 남들 눈에는 명실상부한 소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보일지 몰라도.
온몸을 보석으로 휘감았지만, 그 탐욕과 음험함이 서린 표정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소예나보다 한 수 위인 위선자였다.
소예린은 더 이상 말싸움을 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몇 번 조작했고, 곧 현관 CCTV 화면이 거실의 대형 TV에 나타났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정신없이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의 모습, 심지어 입가에 번들거리는 타액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소예린!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소예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수치스럽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내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마치 불륜 현장을 들킨 것이 아니라, 억울한 일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딸! 또 어리석은 짓 하면 안 된다!" 임채은은 다급히 소예나를 따라 올라가며 일부러 모두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소예나가 환자이니 더는 자극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소정우는 화를 참지 못하고 TV 전원 코드를 뽑아 버렸다.
"소예린! 기어이 집안을 풍비박산 내야 속이 시원하겠냐?"
"제가 난리예요, 아니면 저 소예나가 난리인 거예요!"
한때 자신을 그토록 아꼈던 아버지의 싸늘한 눈빛에 소예린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그녀는 소중했던 가족의 정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어머니는 16년간 소씨 가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소정우는 전처와 그 딸을 이 집에 들였다.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 그녀는 치가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