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저 얼굴과 몸매 좀 봐! 홍등가로 보내면 하루에 2천만 원은 쉽게 벌 수 있을 거야!"
윤서란은 몇 명의 남자들에 의해 허름한 건물 안에 갇힌 채 이마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남자들이 거칠게 대한 탓에 그녀의 옷은 찢어지고 흐트러져 있었으며, 어깨에 멍이 든 데다 가슴이 대부분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저항이 무의미했다는 증거였다.
이틀 전 익명으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그녀를 이 악몽 같은 상황으로 이끈 것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녀의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녀의 신체 특징까지 정확하게 짚어내면서 말이다.
그들은 그녀를 도시 외곽으로 유인했고, 결국 지금 이 납치범들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함부로 하지 마요. 내가 돈을 줄게요."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서란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우준성 씨의 아내예요. 얼마를 부르든 그 사람이 다 줄 수 있어요."
"뭐? 우준성?!"
그 사실에 남자들은 깜짝 놀란 듯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우준성이 결혼을 했어?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우준성은 경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그의 말에 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시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들이 납치한 여자가 정말로 우준성의 아내라면 그의 화를 비켜갈 수 없을 것이다.
윤서란은 남자들의 불안한 표정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쪽들이 나를 납치했다고 하지는 않을게요. 그냥 나를 보내주면 안전하게 돈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남자들의 우두머리가 그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고가의 드레스와 눈에 띄는 미모에 약간 마음이 흔들리는 듯 보였다.
값비싸 보이는 옷차림에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우준성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눈짓을 하며 차갑게 말했다. "전화번호나 대 봐. 수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혹시라도 나를 속이려고 한다면, 주변 매춘굴에 당신을 팔아 버릴 거야. 손님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어서 절대 도망칠 수도 없어!"
윤서란은 입가에 피가 묻은 채로 힘없이 전화번호를 중얼거렸다.
우두머리는 그녀가 불러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갑자기 끊겼다.
그가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젠장! 나랑 장난해? 신호가 안 가잖아!"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윤서란의 허리 아랫부분을 세게 찼다.
그러자 그녀가 창백해진 얼굴로 속삭였다. "그이는 원래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아요. 제발... 내 핸드폰으로 전화하게 해 줘요."
"부자들이란!" 우두머리가 투덜거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으르렁거렸다. "400억을 보내라고 해! 아니면 죽을 때까지 남자들한테 놀아날 거야!"
윤서란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화를 걸었다.
우준성과 그녀는 3년간 부부로 있었지만, 사실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돈에 있어 인색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 몸값 정도는 지불할 의향이 있겠지?
신호음은 한참 동안 이어졌고, 핸드폰을 쥔 그녀의 손 뼈마디는 점점 핏기를 잃어갔다.
마침내 전화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우준성은 아니었다. 여자 목소리였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바로 유명 디자이너인 한예나로, 우준성이 사랑하는 여자의 여동생이었다.
"서란 언니? 지금 형부랑 예슬 언니 무덤에 와 있어요. 무슨 일이에요?" 한예나가 말했다.
윤서란의 손이 덜덜 떨렸다.
뭔가 이상했다. 그녀는 결혼 3주년 기념일에 납치당한 것이다. 그녀가 실종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우준성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첫사랑의 무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가슴에 날카로운 검이 날아와 꽂히는 듯했다.
우준성이 그녀와 결혼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의 할머니 장숙미가 증손주를 원하기도 했고, 윤서란이 3년 전 산사태로 사망한 그의 연인이었던 한예슬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단지 대체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더 아파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심할 때가 아니었다.
윤서란은 눈물을 참고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고 애쓰며 말했다. "한예나 씨, 준성 씨와 급하게 통화할 일이 있어서요. 좀 바꿔줄래요?"
한예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란 언니, 형부가 어떤지 알잖아요. 오늘은 예슬 언니의 기일이에요. 당신의 기분이나 맞춰 줄 상황이 아니라고요. 그냥 무슨 일인지 말해 봐요."
점점 더 참을성을 잃어가는 납치범들의 모습에 윤서란은 핸드폰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 당장 준성 씨 바꿔요! 준성 씨 아내로서, 내가 그를 찾아 무엇을 하든 당신은 상관할 자격이 없어요!"
그녀는 겁에 질린 납치범들이 자신을 해칠까 봐 납치 사실 같은 건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가 효과가 있는 듯했다. 전화 너머로 발소리가 들리더니 우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한예나는 수화기를 살짝 가리고 불평하듯 속삭였다. "서란 언니예요. 형부를 바꿔 달라는데요? 지금 예슬 언니의 무덤에 있다고 말했는데, 형부의 아내는 자기라면서 고집을 부리네요..."
우준성이 코웃음을 쳤다. "아내? 아내는 무슨. 겨우 대체품에 불과하면서. 괜히 우리 예슬이 성가시게 하지 말고 그냥 끊어."
뚝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고, 윤서란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회차 2
어쨌든 그녀는 우준성의 아내였다!
아무리 마음이 없어도 그렇지, 지난 3년 동안 자신에게 변함없이 헌신한 사람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우준성은 바다에 빠진 윤서란을 구해줬었다. 의식을 되찾은 그녀는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고 고백했고, 그렇게 우준성은 그녀를 데려가게 되었다.
그는 그녀가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와 결혼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윤서란이 마치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듯, 첫눈에 그에게 반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윤서란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예슬이라는 과거는 그들의 결혼생활에 가로놓인 채 가장 날카로운 가시처럼 그녀 마음속의 가장 부드러운 곳을 계속 찌르곤 했다.
3년 동안 이런 삶을 참아낸 결과 그녀가 얻은 것은 갈기갈기 찢긴 마음뿐이었다.
"젠장! 우준성의 아내라더니, 우준성은 전화도 안 받잖아!"
우두머리가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 "우씨 가문이 보복할까 봐 두려웠는데, 그쪽은 너한테 관심도 없는 것 같군.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겠어! 얘들아, 이리 와서 재미 좀 보자! 이 여자가 우준성의 아내든 알 게 뭐야?"
두피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자 윤서란은 신음했다. 납치범들의 얼굴에 떠오른 사악한 미소를 보고 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그들이 다가오자, 그녀는 가장 가까이 있는 남자에게 달려들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 순간을 틈타 윤서란은 반쯤 열린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시야가 피로 흐려졌고,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으며, 이마에 난 상처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환자의 상태는 안정적이지만 두부 손상이 심각합니다. 언제 의식을 회복할지는 불확실합니다."
"특수부대가 출동했기에 망정이죠. 안 그랬으면..."
낯설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윤서란이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눈꺼풀을 치켜들자, 시야는 흐릿하기만 했다.
자극적인 살균제 냄새가 그녀의 후각을 압도했다. 여전히 흐릿한 시야 너머로 우준성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건가?
윤서란의 의식이 점차 돌아오기 시작했다. 온몸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 몸 전체에 퍼졌다.
"사모님, 정신이 드십니까?!" 그녀가 움직이는 것을 알아챈 비서가 서둘러 달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프신가요?"
윤서란은 병실을 둘러보며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준성 씨는요?"
순간 비서의 표정이 경직되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표님은...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나중에 오실 겁니다."
윤서란은 실망감에 휩싸였다.
이것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 있다고?
정말 그녀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어떻게 아내의 생존 여부에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
윤서란은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았어요. 이만 가 봐요. 와줘서 고마워요."
비서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지만, 우준성의 분부를 떠올리고 아무 말 없이 방에서 나갔다.
홀로 남겨진 윤서란은 병원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가슴 전체로 퍼지는 끔찍한 슬픔이 그녀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녀는 우준성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사실과 씨름했지만, 어쩌면 정말 급한 일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윤서란은 우준성의 비서가 다시 돌아온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나타난 사람은 한예나였다.
윤서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먹을 말아 쥐며 물었다. "한예나 씨, 여긴 어떻게 오셨죠?"
한예나는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란 언니가 납치를 당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걱정이 돼서 와 봤어요. 우리 언니와 너무 닮은 외모에 서란 언니에게 언제나 특별한 유대감을 느꼈거든요."
윤서란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한예나는 윤서란이 자신의 언니의 대체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은근히 상기시키고 있었다.
"자기 약혼자 앞에서 착하고 순진한 척하는 모습을 그쪽 언니가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윤서란이 차갑게 대답했다. "게다가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누구 마음대로 언니라고 부르는 거예요?"
한예나의 얼굴에 놀라움과 짜증의 빛이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곧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서란 언니, 내가 형부와 친하게 지내는 게 불편한 거예요?"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그냥 친구일 뿐이에요. 형부는 우리 언니 때문에 나를 돌봐주는 것 뿐이라고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요."
윤서란은 속이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그녀는 한예나의 말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한예나는 지속적으로 한예슬의 명의로 우준성을 그녀의 곁에서 불러내어 두 사람 간의 불화를 일으키곤 했다. 그러니 윤서란은 어떻게 이 여자의 속셈을 모르겠는가!
"당신이 준성 씨와 무슨 사이든 내가 알 바 아니에요." 윤서란이 차갑게 말했다. "지금 당장 나가주면 고맙겠어요. 연기는 당신 팬들 앞에서나 해요. 난 관심 없으니까."
한예나는 눈시울을 붉히며 마치 큰 억울함을 당하기라도 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바로 그때, 그녀가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휴대폰은 '실수'로 윤서란의 앞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불에 핸드폰이 닿자 화면이 켜지며 그룹 채팅 내용이 나타났다.
채팅방에는 한밤중에 우준성이 한예나를 들어 안고 호텔로 걸어 들어가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윤서란과 우준성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였다.
사진 아래에 있는 채팅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한예나 씨 남자 친구분인가요? 정말 미남이시네요!"
"네? 한예나 씨한테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저 지금 상처받았어요..."
윤서란은 손발의 온기가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한예슬의 기일을 맞아 무덤을 방문한 후 어젯밤에 호텔에 갔다는 건가?
그녀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안 우준성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한예나와 밤을 보냈다고?
한예슬의 여동생과 만나면서 그녀를 한예슬의 대역으로 이용했다는 건가?
너무 역겨웠다...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분노와 상처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예나를 쏘아봤다.
회차 3
"서란 언니,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린 그냥..." 한예나가 서둘러 핸드폰을 가져가며 슬픔에 잠긴 척 말했다.
윤서란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한예나의 뺨을 찰싹 때렸다.
"당장 나가요! 뭐가 그렇게 당당해요? 내 결혼생활을 파괴한 게 그렇게 자랑스러워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예상치 못하게 뺨을 맞는 바람에 한예나의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화면이 산산조각 났다. 한예나는 비틀거리다 병원 침대에 쓰러지면서 일부러 윤서란의 다친 다리를 눌렀다.
순간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며 눈물로 시야가 흐려진 윤서란이 한예나를 밀어내려고 손을 뻗자,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윤서란, 정신 나갔어?"
우준성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서란이 고개를 들자 조금 전에 봤던 사진 속과 같은 차림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우준성이 보였다.
큰 키와 넓은 어깨, 그리고 잘생긴 외모는 여전했지만, 윤서란은 이제 그런 그가 혐오스러웠다.
"지금 나보고 정신 나갔냐고 했어요?" 윤서란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당신 연인이 내 앞에서 나를 조롱하는데, 그럼 가만히 있으라는 거예요? 당신 정말 역겨워요!"
화가 나서 눈물이 고인 윤서란의 시선과 마주한 그의 얼굴이 짜증으로 어두워졌다.
밤새도록 쉬지도 못하고 납치범들을 혼내줬건만, 한예나에 대한 화풀이를 그에게 늘어놓다니.
비서 말로는 윤서란이 심하게 다쳤다고 했지만, 지금 그녀는 활기가 넘쳐 보였다.
"윤서란, 지금 내 인내심 테스트 해?" 그는 그녀의 연약한 턱을 단단히 움켜쥐고 차가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예나한테 사과해. 지금 당장!"
윤서란은 턱에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지만, 마음의 상처가 그보다 훨씬 심했다.
그녀보고 사과를 하라니, 택도 없는 소리였다.
"내가 왜요?" 그녀가 쉰 목소리로 항의했다. "내가 죽어가는 상태에서 당신이 첫사랑에 대한 애도를 방해해서요? 아니면 당신의 새로운 연인이 나를 조롱해서 때렸다는 이유로요? 우준성 씨, 나를 좋아하지는 않아도, 아내로서는 존중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분노한 우준성의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지더니, 그녀의 턱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만 해! 감히 예슬이 얘기를 꺼내다니!"
우준성은 마치 불을 내뿜는 용처럼 소리치며 윤서란을 침대 위로 내던졌다. "주제를 알란 말이야! 지금 당장 내 말대로 해!"
그녀의 등이 침대 헤드에 부딪히며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윤서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무 아파서 제대로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주제를 알라고?
그의 명목상의 아내이자 욕구 해소 대상, 그리고 한예슬의 대체품으로 남아있으라는 건가?
그 어떤 것도 아무 의미 없는 역할이었다.
우준성은 그녀의 충혈된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아직도 부상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입을 열려던 그때, 한예나가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형부, 서란 언니는 아직도 많이 아파요! 납치 후유증으로 겁에 질려서 그러는 거예요. 너무 그러지 마요. 서란 언니가 저를 때려서 기분이 나아진다고 하면 전 괜찮아요. 하지만 곧 있을 인터뷰와 협업을 취소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화로 풀어요."
우준성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뗀 뒤, 부드럽게 말했다. "너도 쉬어야지. 집에 가서 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 걱정은 하지 마. 내가 더 좋은 기회를 찾아줄 테니까."
한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윤서란을 힐끗 본 다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갔다.
한예나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른 우준성의 모습에 윤서란은 머리가 차게 식는 듯했다.
그녀의 몸이 상처로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준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한예나의 몇 마디에 그의 분노는 사그라들었으니.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윤서란은 마침내 우준성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깨달았다.
"다친 사람이랑 싸울 생각 없어." 우준성이 차갑게 말하며 그녀를 다시 침대에 내려놓았다. "할머니께는 이 사실을 알리지 마. 나중에 퇴원하면..."
그 순간, 윤서란이 무표정으로 그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퇴원하면 이혼할 거예요."
그녀는 그토록 아끼던 결혼반지를 빼서 그의 발치에 던졌다. "나를 구해준 은혜는 지난 3년 동안 다 갚은 것 같네요."
우준성은 걸음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지를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다가와서 그녀의 손목을 꽉 쥐고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귀 먹었어요?" 윤서란이 반박하자, 그는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이제 대체품으로 사는 건 지쳤어요. 이혼해요, 우리."
순간 우준성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