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트라이언트? 운전석에 앉아 있던 온진형은 놀라 움찔했다. 수년간 언더그라운드 레이싱 랭킹 순위를 장악하며 챔피언으로 활약했던 전설적인 그 트라이언트가 저 사람이라고?
트라이언트는 3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었나? 트라이언트가 왜 지금 갑자기 A시에 나타난 걸까?
게다가 세련된 코니세그의 운전자는 여성인 것 같았다.
그러나 뒷좌석에 앉은 남자가 확신을 담아 말하자 온진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앞서 가는 차에 온전히 집중하며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 결심했다.
예단은 부가티를 추월하면서 왼쪽 사이드 미러를 흘깃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두드리며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희연아, 위성에 접속해. 8시 방향에 부가티가 따라오고 있어. 차주를 확인해줘."
서희연은 당황했지만 재빨리 그녀의 말을 따랐다. 차주를 알아낸 그녀는 한숨을 쉬며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배씨 가문의 차야. 이 차 주인은... 배도훤이야!"
예단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아는 사이야?" 서희연이 당황한 듯 말했다. "지난달 해외 금융 중심지 울 스트리트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어. 이미 A시를 뒤집어 놓았고 오래된 가문들 사이의 권력 구도까지 바꿔놓았대."
서희연이 망설이다가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너, 배씨 그룹 사람이랑 뭐... 있었어?"
"야!" 예단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두드리며 체념한 듯 말했다.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로 욕심이 많지는 않아. 게다가 지난 3년 동안 나는 A시에 있었다고. 해외로 여행을 갈 때마다 흔적이 남기지 않으려고, 신분 위조까지 하면서 다녔어. 얼마나 번거로운데. 내가 배씨 그룹 사람들을 건드릴 시간이나 있었을 것 같아?"
서희연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서둘러 말했다. "맞아, 이게 다 고시우 때문이야. 그 사람만 아니었어도 너는..."
"됐어. 부가티의 스마트 시스템을 원격으로 해킹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배도훤은 내가 현장에서 고시우를 잡는 걸 보게 될 거야." 예단은 다시 백미러를 힐끗 쳐다봤다. 부가티가 점점 더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고 있었다.
"안 돼!" 서희연이 긴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동 자동 모드 둘 다 달려있는 차야. 단순히 시스템을 중단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예단은 이마를 더욱 세게 찌푸리며 입을 열려는 순간 서희연이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아, 속도 늦춰! 2킬로미터 앞 교차로에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먼지와 잔해로 뒤섞인 안개가 걷히고 앞길이 드러나자, 예단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정말 멋진 광경이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코니세그는 곧 앞에서 뒤까지 뻗은 바리케이드에 갇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예단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완전히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녀의 앞에는 스포츠카 6대가, 그녀 뒤에는 부가티가 위풍당당하게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녀는 좌석에 기대앉아 흥미롭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선두에 있는 페라리의 운전자가 무리의 우두머리가 분명했다. 그는 예단에게 차에서 내려 대화를 나누자고 손짓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단의 시선은 백미러에 비친 부가티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운전자의 얼굴이 겨우 보였다. 뒷좌석에 앉은 배도훤의 모습은 약간 가려져 있었지만, 살짝 보이는 검은 정장은 여전히 위압적인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온진형은 코니세그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뒷좌석을 힐끗 보며 말했다. "대표님, 박천주를 시켜서 억지로 끌어내리라고 할까요?"
배도훤은 다리를 꼬고 앉아 중지 손가락에 끼워진 투르말린 반지를 무심하게 돌리며 말했다. "기다려."
배도훤은 두꺼운 차창 너머로 앞차에 탄 예단과 시선을 마주치는 듯했다. 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쉽게 잡히면 트라이언트가 아니지."
예단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그녀는 앞쪽의 교통 상황을 살펴보았다. 상대 무리는 주저하는 듯해 보였다. 그녀를 차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대신 서로 신호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희연아, 성심 대극장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어? 찾아줘." 예단이 물었다.
서희연이 손가락으로 화면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있긴 한데, 이 교차로를 지나야 해. 대치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거나 다름 없어!"
'띵, 경로가 변경되었습니다. 소요 시간 5분 단축됩니다...' 예단은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작동시킨 후, 몸을 똑바로 세우고 핸드브레이크를 조정하며 엑셀을 밟았다. 엔진의 우렁찬 소음에 그 무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우두머리는 뒤에 있는 부가티로부터 신호를 받은 듯 통신 시도를 중단하고 부하들을 예단 쪽으로 보냈다. 몸싸움까지 각오한 듯 비장해 보였다.
예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남자들이 팔 한 뼘 거리까지 다가온 순간, 그녀는 핸들을 휙 돌리며 엑셀을 밟았다. 그녀는 구경꾼들의 놀란 시선을 받으며 차량 사이로 급격하게 달려나갔다. "내가 지나갈 수 없는 길은 없지!"
전화 반대편에서 서희연이 기뻐하며 소리쳤지만, 그녀의 흥분은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배도훤의 바리케이드를 뚫었으니, 이제 저쪽과는 원수가 된 건가?"
예단이 비웃었다. "저쪽에서 먼저 시비 걸었잖아. 그리고 적 하나 더 생긴다고 달라질 게 뭐야?"
그녀가 떠난 뒤에도 자동차 바퀴가 급격하게 턴을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한참 동안 공중에 맴돌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박천주는 겁에 질리 얼굴로 배도훤을 마주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트라이언트를 막는 데 실패했습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배도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커다란 창문 옆에 서서 A시를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은 한 건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코니세그, 고씨 가문과 관련이 있나?"
온진형은 재빨리 태블릿을 조작하며 대답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차는 3년 전에 구입한 것으로, 주로 고시우 씨와 그의 아버지가 사용했습니다."
온진형은 잠시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 그 차를 몬 건 고씨우 씨의 아내, 예단이라는 사람인데... 그분이 트라이언트일 리는 없어요."
박천주가 잽싸게 온진형의 말을 가로막았다. "말도 안 돼요! 온 비서님도 그 여자가 바리케이드를 어떻게 부수는지 보셨잖아요. 그 여자가 트라이언트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걸 해낼 수 있겠습니까? 트라이언트가 틀림없어요!"
계속해서 데이터를 살피던 온진형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예단 씨는 영화 제작사 사장의 딸로, 평범한 집안 출신입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재혼 후 이복 오빠와 이복 언니가 생기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도시로 이사해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노린산 경주에서 우승까지 거머쥔 레이서가 될 수 있었을까요?"
말문이 막힌 박천주는 본능적으로 배도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키가 훤칠한 배도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배도훤은 무심히 파텍 필립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갑작스런 웃음에 곁에 있던 두 사람은 몸이 오싹해났다. "다음 주의 자선 파티에 고씨 가문을 초대해."
회차 3
코니세그는 성심 대극장 문 밖에서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러자 경비원이 팔을 흔들며 차쪽으로 달려갔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전체 대관으로 인해 극장 문을 닫았습니다. 다른 관객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
예단은 차창을 내리고 경비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차, 못 알아보겠어요?" 그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경비원은 자동차 번호판을 주의 깊게 살피고, 예단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그는 무전기를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누구시죠? 고 대표님과 무슨 사이입니까? 초대장은 가져오셨나요?"
예단은 고개를 기울이고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저는 고시우 씨의 아내예요. 불륜 현장 잡으려고 직접 왔어요."
경비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예단은 엑셀을 밟았다. 차는 큰 충돌음과 함께 반쯤 열린 문의 좁은 공간 사이로 달려나갔다.
"쾅!" 문이 깨지는 소음에 극장의 우아한 분위기도 깨졌다. 극장 안은 엉망이 되었다.
고시우는 무대 위로 달려나가 눈에 띄게 몸을 떠는 하지우를 감싸 안았다. 그는 경비원들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극장에 차가 난입해서 난장판을 벌이게 두다니! 우리 지우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 너희 다 감옥으로 보내줄까!?"
하지우는 고시우의 셔츠를 꼭 움켜쥐고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시우 씨, 나 무서워! 이거 테러 아니야? 빨리 경찰에 신고해!"
고시우는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그녀를 달랬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게!"
그는 돌아서서 경비원들에게 소리쳤다. "뭘 그러고 섰어? 경찰에 신고하고 난동 부리는 놈을 잡아야지!"
경비원들은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바로 그 때, 한 경비원이 주저하며 자동차 번호판을 가리켰다. "고 대표님, 이거 대표님 차량인 것 같은데요..."
뿌연 먼지 속에서 패기 넘치고 위풍당당한 코니세그가 등장했다.
충격에 휩싸인 고시우는 동공이 흔들렸다. 그것은 그가 암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주고 구입한 고성능 코니세그였다.
워낙 복잡한 기능 탓에 이 첨단 슈퍼카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그와 그의 아버지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차는 망가진 극장 문에 처박혀 있었다. 한때 완벽했던 모습은 흉 지고 찌그러져 있었으며, 앞쪽 조명은 깨진 채 잔해에 뒤덮여 있었다.
고시우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감히 내 차를 훔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겠어..."
다음 순간, 뒤틀린 차문이 열리고 날씬하고 우아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륜을 저지른 당신이 치러야 할 대가보다 큰가?" 예단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사람들로 붐비는 홀의 소음을 뚫고 울려 퍼졌고, 극장 안에는 침묵이 내려 앉았다.
고시우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일그러졌다. "예단? 여기서 뭐 하는..."
고시우는 처음에는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그녀에게 다가가며 거칠게 물었다. "당신 미쳤어? 감히 우리 지우의 콘서트를 방해하다니! 당신이라고 봐줄 줄 알아?"
예단은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위협적인 미소를 짓더니 자동차 열쇠를 가볍게 흔들며 고시우를 향해 다가갔다. "위대한 고 대표님은 내연녀 콘서트 보러 갈 시간은 있으면서 이혼할 시간은 없으신가 봐요. 그래서 내가 직접 이혼 서류를 들고 왔죠."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여자예요? 고 대표님이 지금까지 숨기던 아내가? 시골에서 온 고등학교 자퇴생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 예쁘네요!"
"잠깐만요, 그럼 고 대표님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말인가요?"
"고 대표님 아내와 내연녀 사이의 대결이잖아요! 누가 영상으로 좀 찍어 봐요. 인터넷에서 난리가 날 거예요!"
주변에서 카메라가 하나 둘 등장하자 하지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녀는 고시우의 품에서 빠져 나와 눈물을 글썽한 채 예단을 돌아보며 말했다. "예단 씨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나는 결코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시우 씨는 이제 나를 친구로만 생각한다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나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거죠?"
하지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이미 시우 씨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나 보고 뭘 더 어쩌라는 거예요? 내가 없어져야만 속 시원하겠어요?"
하지우의 눈물 어린 호소와 그녀의 청순한 외모는 금세 구경꾼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군중은 하지우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하지우 씨와 고 대표님은 어린 시절부터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연인 사이였잖아요. 하지만 고 대표님은 결국 고등학교 자퇴생 따위와 결혼했죠. 저 여자가 고 대표님을 사로잡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까요! 고 대표님은 약혼 파티까지 빠지고 해외로 떠나는 하지우 씨를 배웅하러 갔잖아요. 아직도 하지우 씨를 사랑하는 게 분명해요!"
"서류상의 결혼은 별 의미가 없어요.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 내연녀죠!"
상황이 그녀에게 유리해지자, 하지우는 고시우의 뒤로 몸을 숨기며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시우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하지우의 눈물을 닦아준 뒤, 마치 예단이 생트집이라도 부린다는 듯 혐오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문제가 있으면 우리끼리 해결하자고. 지우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잖아."
예단은 그들의 노골적인 애정표현을 비웃으며 지켜봤다. "두 분 다 어쩜 그렇게 뻔뻔해?"
예단은 차갑게 굳은 눈으로 하지우를 보며 말했다. "하지우 씨, 솔직히 말해 봐요. 그 당시 당신은 고시우 씨가 아닌 해외에서 발전할 수 있는 미래와 100억이라는 돈을 선택했잖아요. 해외에서 실패하니까 다시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돌아온 거 아닌가요?"
"입 다물어!" 고시우가 눈을 부라리며 예단의 말을 가로막았다. "우리 지우는 돈 밖에 모르는 너 같은 사람과는 달라!"
변함없이 하지우를 감싸고 도는 고시우의 모습에 예단은 조금 씁쓸해졌다. 한때 테러리스트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위험에 맞섰던 남자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예단이 선언했다. "고시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으면,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재산을 똑같이 나누도록 하자. 하지만 단 한 푼이라도 적게 주면 이혼에 동의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당신과 당신의 연인은 평생을 불륜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 수 밖에 없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