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얼른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고씨 가문에서 나가!"

예단의 발치에 서류 하나가 툭 떨어졌다. 서류 아래쪽의 서명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시우.

고시우는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했다.

예단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서 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고영서를 바라보았다.

"시우 씨는 어디 있죠? 왜 시우 씨가 직접 와서 말하지는 않는 거예요?" 예단이 물었다.

고영서는 마치 예단이 터무니없는 질문을 한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내 동생이 너 같은 애한테 신경 쓸 시간이 있는 줄 알아?"

고영서는 예단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봤다. 예단의 아름다운 외모는 부정할 수 없었다. 고영서조차도 예단을 처음에 보고 감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단의 아름다운 외모는 언제나 가려져 있었다. 그녀의 숱 많은 앞머리와 큰 검은 뿔테 안경에 그녀의 조그마한 얼굴이 거의 가려졌고, 늘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균형 잡힌 몸매를 완전히 감춰 버렸다.

고영서는 예단을 집안일 밖에 할 줄 모르는 주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시우는 회사 일 때문에 바빠. 너한테 낭비할 시간이 없는 애라고!" 고영서가 짜증을 냈다.

예단은 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드렸다. "일 하느라 바쁜 거예요? 아니면 하지우 씨와 시간 보내느라 바쁜 거예요?"

예단이 씁쓸하게 말했다.

고시우가 10년 동안 사랑한 여자 하지우! 3년간의 위태로운 결혼 생활 동안 먹구름마냥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당시, 하지우가 결혼을 앞두고 사라져버린 탓에, 고씨 가문은 A시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다.

예단은 고시우의 할아버지 고필두와 했던 약속을 지키고, 어린 시절 고시우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망설임 없이 고시우와 결혼했다.

결혼식 후, 예단은 화려한 옷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완벽한 아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고시우는 결혼 이후로 예단과 거리를 두면서, 단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었다.

"그걸 알았으면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말고 진작 물러났어야지!" 고영서가 코웃음을 쳤다. "지우는 해외 명문 음대를 졸업하고 유명 교향악단에 바로 들어갔어.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라 예의도 바르지. 고등학교를 자퇴한 너랑 비교나 되는 줄 알아?"

예단은 지난 3년 동안 이런 가혹한 말들을 모두 견뎌왔다.

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 예단은 시부모님을 잘 모셨고, 고영서를 열심히 도왔다.

돈을 흥정망정 쓰는 고영서는 돈이 부족할 때마다 예단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고영서가 남편에게 폭행 당할 때마다 고씨 가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늘 모르는 척했다. 예단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고영서는 어떤 험한 일을 당했을지 몰랐고, 순조롭게 이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날 무시하고 잘난 척을 해!'

이혼 합의서의 조건을 살펴보던 예단은 갑자기 서류를 닫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혼은 동의하겠지만, 시우 씨 재산의 절반은 나에게 줘야 해요."

놀라 눈을 크게 뜬 고영서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꿈 깨! 고씨 가문에 시집 오면 네 팔자가 필 거라고 생각했나 보지? 넌 한 푼도 못 받고 나가게 될 거야!"

예단은 차분하게 앞치마를 벗고 헐렁한 홈웨어의 지퍼를 내렸다. 그러자 몸매가 돋보이는 매끈한 상의와 청바지가 드러났다.

예단은 안경을 벗고 미소를 지으며 고영서를 바라봤다. "결정은 형님이 내리는 게 아니죠. 시우 씨와 직접 얘기해 볼게요."

고영서는 촌스럽기만 하던 예단이 눈깜짝할 사이에 분위기가 확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자 깜짝 놀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

고영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예단은 이미 입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딜 가? 당장 이리 와서 서류에 서명하지 못해!" 고영서가 소리쳤다.

분노에 사로잡힌 고영서는 서류를 움켜쥐고 멀어져가는 예단에게 던졌다.

종이가 공중에 펄럭이며 예단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그녀는 재빨리 종이 자락을 붙잡았다. "나는 몸싸움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여자랑은요."

고영서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예단은 이미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어딘가 위협적인 예단의 모습에 고영서는 한 걸음 물러나며 목소리를 높여 경고했다.

"뭘 하려고? 여긴 고씨 가문이야! 나를 건드리면 네 다리를 분질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단은 이미 그녀 앞에 다가와 섰다. 예단은 고영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그녀를 책상 위에 앉혔다. 고영서는 저항하려고 몸부림쳤지만, 예단이 목을 정확하게 내리치자 온몸의 힘이 풀리고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예단은 고영서의 머리를 누르며 그녀를 붙잡은 손에 더 힘을 줬다.

예단은 한 손으로 고영서의 입을 벌리고, 다른 손으로는 서류 종이를 공 모양으로 뭉쳤다. 고영서의 공포에 질린 시선 속에서 예단은 뭉쳐진 종이를 그녀의 입에 집어넣었다.

"이 종이 쪼가리가 그렇게 좋으면 직접 먹어 보든가요!"

예단이 손을 거두자, 고영서는 책상에 주저앉았다. 예단은 힘 있고 단호한 걸음걸이로 고씨 가문 저택에서 걸어나갔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고시우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

오후 4시가 되자 코니세그 한 대가 능숙하게 교통체증을 헤치고 나가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찾았어. 성심 대극장에 있네. GPS 설정해 놨어."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약간 불안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단아, 성급하게 행동하지 마. 고시우는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짜증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예단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걱정 마. 내가 왜 그러겠어."

"그야..." 전화 반대편에서 서희연이 반박했다. "너는 평소에는 침착한 애지만, 열 살 때 너를 구해준 사람이 고시우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잖아. 네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때문에 왜 자신을 희생하려는 거야? 그 사람을 위해 진짜 신분과 능력까지 숨기고... 대체 왜 그러는 건데?"

"그만해!" 예단이 소리쳤다. "그 사람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너, 우리 집안 상황이 지금 얼마나 복잡한지 알잖아."

서희연이 단지 그녀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닫고 예단은 목소리를 낮췄다. "걱정 마. 그냥 이혼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뭐? 맙소사..." 서희연이 헉 소리를 냈다.

서희연이 큰 소리를 내기 전에 예단은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엑셀을 세게 밟으며 미소를 지었다.

예단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부가티를 능숙하게 피한 다음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검은색 부가티의 뒷좌석에 앉은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코니세그를 따라가. 박천주에게 다음 교차로에서 저 차를 막으라고 알려."

비서는 차 속도를 높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 저 차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남자는 등을 기대고 입술을 살짝 벌리더니 중얼거렸다. "오랜만이야, 트라이언트."

회차 2

트라이언트? 운전석에 앉아 있던 온진형은 놀라 움찔했다. 수년간 언더그라운드 레이싱 랭킹 순위를 장악하며 챔피언으로 활약했던 전설적인 그 트라이언트가 저 사람이라고?

트라이언트는 3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었나? 트라이언트가 왜 지금 갑자기 A시에 나타난 걸까?

게다가 세련된 코니세그의 운전자는 여성인 것 같았다.

그러나 뒷좌석에 앉은 남자가 확신을 담아 말하자 온진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앞서 가는 차에 온전히 집중하며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 결심했다.

예단은 부가티를 추월하면서 왼쪽 사이드 미러를 흘깃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두드리며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희연아, 위성에 접속해. 8시 방향에 부가티가 따라오고 있어. 차주를 확인해줘."

서희연은 당황했지만 재빨리 그녀의 말을 따랐다. 차주를 알아낸 그녀는 한숨을 쉬며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배씨 가문의 차야. 이 차 주인은... 배도훤이야!"

예단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아는 사이야?" 서희연이 당황한 듯 말했다. "지난달 해외 금융 중심지 울 스트리트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어. 이미 A시를 뒤집어 놓았고 오래된 가문들 사이의 권력 구도까지 바꿔놓았대."

서희연이 망설이다가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너, 배씨 그룹 사람이랑 뭐... 있었어?"

"야!" 예단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두드리며 체념한 듯 말했다.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로 욕심이 많지는 않아. 게다가 지난 3년 동안 나는 A시에 있었다고. 해외로 여행을 갈 때마다 흔적이 남기지 않으려고, 신분 위조까지 하면서 다녔어. 얼마나 번거로운데. 내가 배씨 그룹 사람들을 건드릴 시간이나 있었을 것 같아?"

서희연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서둘러 말했다. "맞아, 이게 다 고시우 때문이야. 그 사람만 아니었어도 너는..."

"됐어. 부가티의 스마트 시스템을 원격으로 해킹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배도훤은 내가 현장에서 고시우를 잡는 걸 보게 될 거야." 예단은 다시 백미러를 힐끗 쳐다봤다. 부가티가 점점 더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고 있었다.

"안 돼!" 서희연이 긴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동 자동 모드 둘 다 달려있는 차야. 단순히 시스템을 중단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예단은 이마를 더욱 세게 찌푸리며 입을 열려는 순간 서희연이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아, 속도 늦춰! 2킬로미터 앞 교차로에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먼지와 잔해로 뒤섞인 안개가 걷히고 앞길이 드러나자, 예단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정말 멋진 광경이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코니세그는 곧 앞에서 뒤까지 뻗은 바리케이드에 갇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예단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완전히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녀의 앞에는 스포츠카 6대가, 그녀 뒤에는 부가티가 위풍당당하게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녀는 좌석에 기대앉아 흥미롭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선두에 있는 페라리의 운전자가 무리의 우두머리가 분명했다. 그는 예단에게 차에서 내려 대화를 나누자고 손짓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단의 시선은 백미러에 비친 부가티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운전자의 얼굴이 겨우 보였다. 뒷좌석에 앉은 배도훤의 모습은 약간 가려져 있었지만, 살짝 보이는 검은 정장은 여전히 위압적인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온진형은 코니세그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뒷좌석을 힐끗 보며 말했다. "대표님, 박천주를 시켜서 억지로 끌어내리라고 할까요?"

배도훤은 다리를 꼬고 앉아 중지 손가락에 끼워진 투르말린 반지를 무심하게 돌리며 말했다. "기다려."

배도훤은 두꺼운 차창 너머로 앞차에 탄 예단과 시선을 마주치는 듯했다. 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쉽게 잡히면 트라이언트가 아니지."

예단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그녀는 앞쪽의 교통 상황을 살펴보았다. 상대 무리는 주저하는 듯해 보였다. 그녀를 차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대신 서로 신호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희연아, 성심 대극장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어? 찾아줘." 예단이 물었다.

서희연이 손가락으로 화면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있긴 한데, 이 교차로를 지나야 해. 대치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거나 다름 없어!"

'띵, 경로가 변경되었습니다. 소요 시간 5분 단축됩니다...' 예단은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작동시킨 후, 몸을 똑바로 세우고 핸드브레이크를 조정하며 엑셀을 밟았다. 엔진의 우렁찬 소음에 그 무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우두머리는 뒤에 있는 부가티로부터 신호를 받은 듯 통신 시도를 중단하고 부하들을 예단 쪽으로 보냈다. 몸싸움까지 각오한 듯 비장해 보였다.

예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남자들이 팔 한 뼘 거리까지 다가온 순간, 그녀는 핸들을 휙 돌리며 엑셀을 밟았다. 그녀는 구경꾼들의 놀란 시선을 받으며 차량 사이로 급격하게 달려나갔다. "내가 지나갈 수 없는 길은 없지!"

전화 반대편에서 서희연이 기뻐하며 소리쳤지만, 그녀의 흥분은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배도훤의 바리케이드를 뚫었으니, 이제 저쪽과는 원수가 된 건가?"

예단이 비웃었다. "저쪽에서 먼저 시비 걸었잖아. 그리고 적 하나 더 생긴다고 달라질 게 뭐야?"

그녀가 떠난 뒤에도 자동차 바퀴가 급격하게 턴을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한참 동안 공중에 맴돌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박천주는 겁에 질리 얼굴로 배도훤을 마주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트라이언트를 막는 데 실패했습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배도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커다란 창문 옆에 서서 A시를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은 한 건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코니세그, 고씨 가문과 관련이 있나?"

온진형은 재빨리 태블릿을 조작하며 대답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차는 3년 전에 구입한 것으로, 주로 고시우 씨와 그의 아버지가 사용했습니다."

온진형은 잠시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 그 차를 몬 건 고씨우 씨의 아내, 예단이라는 사람인데... 그분이 트라이언트일 리는 없어요."

박천주가 잽싸게 온진형의 말을 가로막았다. "말도 안 돼요! 온 비서님도 그 여자가 바리케이드를 어떻게 부수는지 보셨잖아요. 그 여자가 트라이언트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걸 해낼 수 있겠습니까? 트라이언트가 틀림없어요!"

계속해서 데이터를 살피던 온진형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예단 씨는 영화 제작사 사장의 딸로, 평범한 집안 출신입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재혼 후 이복 오빠와 이복 언니가 생기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도시로 이사해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노린산 경주에서 우승까지 거머쥔 레이서가 될 수 있었을까요?"

말문이 막힌 박천주는 본능적으로 배도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키가 훤칠한 배도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배도훤은 무심히 파텍 필립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갑작스런 웃음에 곁에 있던 두 사람은 몸이 오싹해났다. "다음 주의 자선 파티에 고씨 가문을 초대해."

회차 3

코니세그는 성심 대극장 문 밖에서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러자 경비원이 팔을 흔들며 차쪽으로 달려갔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전체 대관으로 인해 극장 문을 닫았습니다. 다른 관객은 입장할 수 없습니다."

예단은 차창을 내리고 경비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차, 못 알아보겠어요?" 그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경비원은 자동차 번호판을 주의 깊게 살피고, 예단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그는 무전기를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누구시죠? 고 대표님과 무슨 사이입니까? 초대장은 가져오셨나요?"

예단은 고개를 기울이고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저는 고시우 씨의 아내예요. 불륜 현장 잡으려고 직접 왔어요."

경비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예단은 엑셀을 밟았다. 차는 큰 충돌음과 함께 반쯤 열린 문의 좁은 공간 사이로 달려나갔다.

"쾅!" 문이 깨지는 소음에 극장의 우아한 분위기도 깨졌다. 극장 안은 엉망이 되었다.

고시우는 무대 위로 달려나가 눈에 띄게 몸을 떠는 하지우를 감싸 안았다. 그는 경비원들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극장에 차가 난입해서 난장판을 벌이게 두다니! 우리 지우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 너희 다 감옥으로 보내줄까!?"

하지우는 고시우의 셔츠를 꼭 움켜쥐고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시우 씨, 나 무서워! 이거 테러 아니야? 빨리 경찰에 신고해!"

고시우는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그녀를 달랬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게!"

그는 돌아서서 경비원들에게 소리쳤다. "뭘 그러고 섰어? 경찰에 신고하고 난동 부리는 놈을 잡아야지!"

경비원들은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바로 그 때, 한 경비원이 주저하며 자동차 번호판을 가리켰다. "고 대표님, 이거 대표님 차량인 것 같은데요..."

뿌연 먼지 속에서 패기 넘치고 위풍당당한 코니세그가 등장했다.

충격에 휩싸인 고시우는 동공이 흔들렸다. 그것은 그가 암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주고 구입한 고성능 코니세그였다.

워낙 복잡한 기능 탓에 이 첨단 슈퍼카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그와 그의 아버지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차는 망가진 극장 문에 처박혀 있었다. 한때 완벽했던 모습은 흉 지고 찌그러져 있었으며, 앞쪽 조명은 깨진 채 잔해에 뒤덮여 있었다.

고시우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감히 내 차를 훔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겠어..."

다음 순간, 뒤틀린 차문이 열리고 날씬하고 우아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륜을 저지른 당신이 치러야 할 대가보다 큰가?" 예단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사람들로 붐비는 홀의 소음을 뚫고 울려 퍼졌고, 극장 안에는 침묵이 내려 앉았다.

고시우의 표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일그러졌다. "예단? 여기서 뭐 하는..."

고시우는 처음에는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그녀에게 다가가며 거칠게 물었다. "당신 미쳤어? 감히 우리 지우의 콘서트를 방해하다니! 당신이라고 봐줄 줄 알아?"

예단은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위협적인 미소를 짓더니 자동차 열쇠를 가볍게 흔들며 고시우를 향해 다가갔다. "위대한 고 대표님은 내연녀 콘서트 보러 갈 시간은 있으면서 이혼할 시간은 없으신가 봐요. 그래서 내가 직접 이혼 서류를 들고 왔죠."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여자예요? 고 대표님이 지금까지 숨기던 아내가? 시골에서 온 고등학교 자퇴생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 예쁘네요!"

"잠깐만요, 그럼 고 대표님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말인가요?"

"고 대표님 아내와 내연녀 사이의 대결이잖아요! 누가 영상으로 좀 찍어 봐요. 인터넷에서 난리가 날 거예요!"

주변에서 카메라가 하나 둘 등장하자 하지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녀는 고시우의 품에서 빠져 나와 눈물을 글썽한 채 예단을 돌아보며 말했다. "예단 씨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나는 결코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시우 씨는 이제 나를 친구로만 생각한다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나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거죠?"

하지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이미 시우 씨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나 보고 뭘 더 어쩌라는 거예요? 내가 없어져야만 속 시원하겠어요?"

하지우의 눈물 어린 호소와 그녀의 청순한 외모는 금세 구경꾼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군중은 하지우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하지우 씨와 고 대표님은 어린 시절부터 완벽하게 잘 어울리는 연인 사이였잖아요. 하지만 고 대표님은 결국 고등학교 자퇴생 따위와 결혼했죠. 저 여자가 고 대표님을 사로잡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까요! 고 대표님은 약혼 파티까지 빠지고 해외로 떠나는 하지우 씨를 배웅하러 갔잖아요. 아직도 하지우 씨를 사랑하는 게 분명해요!"

"서류상의 결혼은 별 의미가 없어요.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 내연녀죠!"

상황이 그녀에게 유리해지자, 하지우는 고시우의 뒤로 몸을 숨기며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시우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하지우의 눈물을 닦아준 뒤, 마치 예단이 생트집이라도 부린다는 듯 혐오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문제가 있으면 우리끼리 해결하자고. 지우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잖아."

예단은 그들의 노골적인 애정표현을 비웃으며 지켜봤다. "두 분 다 어쩜 그렇게 뻔뻔해?"

예단은 차갑게 굳은 눈으로 하지우를 보며 말했다. "하지우 씨, 솔직히 말해 봐요. 그 당시 당신은 고시우 씨가 아닌 해외에서 발전할 수 있는 미래와 100억이라는 돈을 선택했잖아요. 해외에서 실패하니까 다시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돌아온 거 아닌가요?"

"입 다물어!" 고시우가 눈을 부라리며 예단의 말을 가로막았다. "우리 지우는 돈 밖에 모르는 너 같은 사람과는 달라!"

변함없이 하지우를 감싸고 도는 고시우의 모습에 예단은 조금 씁쓸해졌다. 한때 테러리스트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위험에 맞섰던 남자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예단이 선언했다. "고시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으면,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재산을 똑같이 나누도록 하자. 하지만 단 한 푼이라도 적게 주면 이혼에 동의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당신과 당신의 연인은 평생을 불륜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 수 밖에 없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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