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송은교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최대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원 씨,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자 주세원은 눈살을 더욱 찌푸리고 다그쳤다. "목에 남은 키스마크는 어떻게 설명할 거야? 송은교, 내가 아무리 널 3년 동안 가만히 내버려뒀어도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내가 아무리 널 사랑한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그녀의 기억 속 주세원은 늘 사려 깊고 다정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추궁하는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송은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역시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은 내로남불이라 하더라도 이는 눈 뜨고 보기 힘든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목에 남은 흉터는 모기한테 물린 거예요." 송은교는 그의 추궁에 차분하게 대처했다. "어제 지연이네 집에서 자고 왔어요. 못 믿겠으면 세원 씨가 지연이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겠네요."
"지연이는 당신 친구니까 당연히 당신 편을 들겠지." 주세원은 그녀의 거짓말에 쉽게 속지 않았다.
"그럼 세원 씨가 직접 CCTV 확인하면 되겠네요. 내가 지연이네 집에서 진짜 잤는지 자지 않았는지." 송은교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주세원은 바로 부하 직원에게 전화 걸어 강지연이 지내는 아파트 CCTV를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의심의 씨앗이 피어난 이상, 그는 꼭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주세원이 그녀의 목에 남은 흔적을 계속 따지려 할 때, 송은교가 먼저 한 발짝 다가가더니 그의 셔츠를 헤집고 목에 남은 흔적을 가리켰다. "당신의 목에 난 흔적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러자 주세원은 적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쳐내더니 연신 뒷걸음질쳤다. "이, 이건 알레르기 때문에 이래."
그의 대답에 송은교는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이에요? 알레르기가 이렇게 심하게 올라왔어요?"
주세원은 난처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출장 다녀왔던 호텔 침대 시트가 많이 더러웠던 것 같아. 알레르기가 바로 올라오더니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네."
바로 그때, 주세원의 비서가 송은교가 강지연의 집에 들어가는 영상과 나오는 영상을 보내왔다.
영상을 확인한 주세원은 바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했다. "은교야, 미안해. 내가 무턱대고 의심부터 했어. 오늘 오후 병원에 다녀왔는데,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서 널 의심했던 것 같아."
주세원은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해 죄책감을 가득 짊어진 남편처럼 진심 어린 얼굴로 사과했다. 만약 그녀가 익명으로 보내온 사진을 보지 못했다면, 그의 거짓말에 깜박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주세원이 연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녀도 증거를 모으기 전까지 연기로 대응해야 한다. 그녀도 한껏 눈물을 머금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세원 씨 오해가 풀렸으면 그걸로 됐어요." 그리고 싱긋 미소 지어 보였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군더더기 없는 송은교는 호텔을 나설 때, 강지연에게 가짜 CCTV 영상을 준비하도록 부탁했다. 어쩌면 주세원이 정말 CCTV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원 씨, 약은 먹었어요?" 송은교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오늘 밤에 다시 시도해 보는 건 어때요? 전엔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거부했지만, 지금은 준비됐어요."
예상대로 주세원은 바로 그녀의 손을 놓고 뒷걸음질 쳤다. "아니, 준비하지 않아도 돼. 의사는 약을 먹고 보름 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 시도해 보는 게 좋겠다고 했어."
송은교는 그저 싱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주세원은 기력을 아껴 정부에게 쏟아 부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녀는 현모양처처럼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시도하는 게 좋겠어요."
다음 날, 주세원의 어머니 심서란이 가정부와 함께 한약 약재가 가득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들이닥쳤다.
결혼 3년 동안, 심서란은 송은교가 하루라도 빨리 임신할 수 있게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럴 때마다 송은교는 주세원과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며 한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한약을 먹는 날이면 어김없이 속에 든 것을 모두 게워 내면서 말이다.
심서란이 오늘도 가정부에게 한약을 달이도록 지시하는 것을 본 송은교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어머님, 지난 3년 동안 저 세원씨와 단 한번도 관계를 가진적이 없어요."
예전의 그녀는 주세원을 사랑했기에 군말 없이 한약을 마셨다.
그러나 그의 외도를 알아차린 지금, 그녀는 쓰디쓴 한약을 당장이라도 시어머니 심서란의 입에 쏟아 붓고 싶었다.
심서란은 청천벽력이라도 들은 듯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뒤이어 그녀의 화난 목소리가 저택에 가득 울렸다. "송은교,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내 아들이 어디 장애가 있는것도 아니고 어떻게 3년 동안 한번도 관계를 가지지 않을수 있단 말이야!"
송은교는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반박했다. "의사는 주세원 문제라고 했어요. 믿을 수 없다면 어머님이 직접 주세원한테 물어보면 되겠네요."
송은교가 주세원을 이름 석자를 그대로 부르자 심서란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얼마 전까지 나긋하게 세원 씨라고 불렀었는데, 언제부터 호칭마저 달라진 걸까?
"하, 너희 둘 한때 얼마나 붙어 다녔는지 잊었니? 우리 원이는 너와 결혼하겠다고 단식투쟁까지 벌였어. 네가 원이를 구하기 위해 차에 부딪히지 않았다면, 네가 우리 주씨 가문 며느리가 되는 일도 없었을 거야!" 심서란은 차갑게 콧방귀를 끼며 덧붙였다. "네가 결혼 전에 원이를 홀렸던 수법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아마 지금쯤 배가 불렀을 텐데 말이야."
송은교는 당장이라도 심서란의 뺨을 힘껏 내리치고 싶었다.
그녀가 정식으로 주씨 가문의 며느리가 된 후에는 심서란을 어머니로 생각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여 그녀의 마음에 들려 했다. 그러나 심서란은 그녀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3년 내내 그녀를 찾아와 온갖 트집을 잡았다.
예전이었다면 주세원을 위해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인내했을 것이다.
"주세원을 홀릴 수 있는 여우가 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여우가 되고 싶은 심정이에요." 송은교는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말했다. "하지만 주세원이 발기부전이니, 저도 뾰족한 수가 없네요."
송은교가 심서란의 말에 대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심서란은 송은교의 손을 잡아 끌며 억지로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도록 지시했다.
그녀는 눈앞에 닥친 상황이 어처구니없어 실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부관계도 하지 않은 그녀에게 임신을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 어디 있을까.
그날 오후, 산부인과는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붐볐고, 특정 진료실 앞에만 환자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송은교는 문에 붙인 표지판을 올려다보았다. 211호실, 임범 박사.
그녀의 주치의가 남자인 것 같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주치의가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 있겠는가.
진료실 밖 의자에서 한 시간쯤 기다렸을 때, 간호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반쯤 열린 진료실 커튼 사이로 오후 햇살이 스며 들어와 남자의 얼굴에 비췄고, 빛이 반사되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진료실 안으로 들어온 송은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몸을 살짝 뒤로 젖히자 인상적인 날카로운 눈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전날 밤, 밤새 그녀를 품고 뜨거운 밤을 보냈던 남자가 지금은 주치의 신분으로 근엄하게 눈앞에 나타날줄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회차 3
송은교를 발견한 남자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더욱이 이러한 장소에서 만나게 될 줄은 더욱 몰랐다.
의사 신분으로 만났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가 먼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어젯밤, 검음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취기 오른 눈빛으로 그녀를 향해 웃을 때마다 송은교는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책상 하나 사이 두고 가운을 입은 남자는 등 뒤에서 비추는 햇살 때문인지, 더욱 범접하기 힘든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불임 검사 받으러 왔어요."
"결혼하셨어요?" 미간을 짙게 일그러뜨린 남자가 컴퓨터로 여자의 진료 기록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이미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다.
전날 밤 유부녀와 뜨거운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에 그의 이목구비가 더욱 거칠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태연한 목소리로 진료를 이어갔다. "마지막 부부관계는 언제쯤 되세요?"
"어젯밤이에요." 송은교는 손으로 턱을 괴고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찌나 힘이 좋던지, 하룻밤에 8번은 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아래가 아직도 많이 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키보드에 올린 남자의 손가락이 멈칫하더니 차갑게 되물었다. "남편과의 부부관계를 묻는 겁니다."
그는 묻자마자 자신이 그녀의 순결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는 건 그녀는 남편과 부부관계를 한 적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송은교는 개의치 않다는 듯 손을 저으며 설명을 보탰다. "남편과 관계를 가져본 적 없어요. 아직 첫날밤도 보내지 않았거든요."
"부부관계가 없었으니, 난임 불임 검사까지 받을 필요 없어요." 그리고 컴퓨터에 기혼 두 글자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제안했다. "검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환자분이 아니라 환자분 남편인 것 같네요. 환자분 남편더러 비뇨기과에 가서 진찰받도록 제안해 보세요."
남자의 확실한 대답에도 송은교는 의자에 앉아 싱긋 미소 지었다. "임 선생님, 저는 오늘 종합 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어요."
그가 미간을 좁히고 물었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나요?"
송은교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임신 계획이 있다고 해도 부적절하고, 없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고민은 하고 있는 중이에요. 종합 검진을 미리 받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주윤훤은 진료실 커튼을 닫으며 그녀더러 바지를 벗고 검사대에 오르게 했다. "미혼 처녀하면 복부초음파로 검사하겠지만 환자분은 결혼해서 성생활을 하고 있으니 질 검사로 진행할 거예요."
그리고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봤다.
송은교는 진료대 위에 놓인 무시무시한 기구를 발견하고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 선생님, 아프지 않게 검사 부탁 드릴게요. 제가 통증에 많이 취약하거든요."
주윤훤은 그제야 송은교가 자신을 임범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은 임범의 당직일이었으나, 갑자기 일이 생겨 그가 임범 대신 당직을 서기로 했다.
주윤훤은 이러한 사실을 송은교에게 굳이 알릴 필요가 없는 것 같아 반박하지 않았다.
"다리를 벌리고 누우세요."
그리고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시퍼런 대낮에 바지를 벗어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지, 송은교는 아주 천천히 바지를 벗었다.
그녀의 모습에 주윤훤은 낮은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어제 침대에선 엄청 당돌한것 같은데, 오늘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죠?"
그러자 송은교는 내키지 않는 듯 씩씩 화를 내며 재빨리 바지를 벗고 진료대 위에 올라가 누웠다. 두 볼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빨갛게 익은 그녀는 어젯밤 주윤훤의 품에 안겼던 장면을 회상하며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면봉으로 검사 부위를 가볍게 쓸고 작은 상자 안에 넣고 그가 말했다. "많이 부은 것 같네요."
그리고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가져다가 직접 약을 발라 주었다.
검사대에 누운 송은교는 민감한 부위에 스치는 남자의 부드러운 손길을 온전히 느끼며 몸을 흠칫 떨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날 밤에 뜨거운 밤을 보낸 남자가 지금 그녀의 민감한 부위를 직접 검사해 주고 있다니.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때, 주윤훤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물이 많이 나오네요."
얼굴이 완전히 빨갛게 익은 송은교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개인적인 체질일수도 있고."
"장기간의 금욕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어요. 오랫동안 부부관계가 없었다고 했으니 남편더러 비뇨기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도록 하는 걸 추천 드려요. 발기부전이나 조루 등의 문제가 있으면 빨리 치료받는 게 좋으니까요."
연고를 모두 펴 바른 주윤훤은 장갑을 휴지통에 던지며 말했다. "검사 결과는 내일쯤 나올 거예요. 연고는 샤워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얇게 펴 바르면 돼요. 3일이 지나면 부기가 완전히 가라앉을 거예요."
검사가 끝난 뒤, 송은교는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남자의 손가락이 그녀의 몸에 닿을 때마다, 전날 밤에 뜨거웠던 순간들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갑자기 생각을 바꾼 송은교가 용기를 내어 제안했다. "임 선생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