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수술을 마친 심서연은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다.

간신히 눈을 뜬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놓인 TV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에서는 야생동물 사진 공모전의 최종 결과가 한창 방송되고 있었다. 그녀가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끝에, 마침내 손에 넣은 값진 결과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의 작품에 노서윤으로 서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경한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심서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녀는 사진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 두 달이 떠올랐다. 그동안 이경한에게 보낸 메시지는 단 한 번도 답이 없었고, 그의 스캔들만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베개 옆에 놓인 휴대폰에서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벨 소리가 울렸다. 화면에는 '남편'이라는 두 글자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고열로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수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던 번호였다.

심서연은 천천히 손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다.

"제 작품이 왜 노서윤 이름으로 되어 있는 거죠?"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사라지지 않는 한기가 서린 그의 먹빛 눈동자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널 대신해서 서윤이한테 주는 보상이야."

그 한마디에, 심서연의 감정은 순식간에 요동쳤다. "저, 분명히 몇 번이고 설명했잖아요. 그때 당신을 구한 사람은 저였다고요!"

"난 내가 본 것만 믿어."

이경한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심서연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했다.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가슴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난 듯, 차가운 바람이 그 사이로 휘몰아쳐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들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차갑게 말했다. "이경한, 이 사진들은 제가 목숨 걸고 찍은 거예요.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피가 묻어 있다고요. 절대 노서윤한테 넘길 수 없어요."

이경한의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묻어 있었다. "네가 네 어머니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어?"

전혀 맥락 없는 말에, 심서연은 휴대폰을 쥔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었고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그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노서윤을 위해… 그걸로 저를 협박하는 거예요?"

이경한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난 그냥, 네가 나한테 떼쓸 자격이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것뿐이야."

심서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노서윤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경한은 그녀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심서연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우리 이혼해요."

이경한의 목소리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심서연, 네 장난 받아줄 시간 없어."

"아니요, 저 진심이에요..."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휴대폰 너머로 "뚜뚜뚜" 신호음이 들려왔다.

심서연은 통화가 종료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려 보았지만, 감정은 끝내 버텨주지 않았다. 눈물이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이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 노서윤이 내 작품으로 명예를 얻도록 둘 수는 없어.'

심서연은 서둘러 퇴원 수속을 마쳤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노서윤의 작품 도용을 입증할 증거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촬영을 위해 이동했던 비행기 티켓, 촬영 원본 필름까지. 이것들은 모두 가장 직접적인 증거였다.

증거를 정리한 심서연은 곧바로 인터넷에 올렸다. 내용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하지만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게시물이 삭제되었고, 심지어 그녀의 계정까지 차단되었다.

웹페이지에 떠 있는 '404' 표시를 바라보며, 심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이경한이 다른 여자를 위해, 자신에게 손을 쓴 것이다. 그녀는 차단된 계정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상황을 파악했다. 오늘은 노서윤이 사진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는 날이었다. 이경한이 그녀가 일을 망칠 기회를 줄 리 없었다.

그때,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오더니 대문이 거칠게 열렸다.

심서연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경한은 어두운 얼굴로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잡았다.

그의 위압감이 그녀를 덮쳐왔고,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의 바다처럼 고요했다.

"내가 한 말을 다 잊은 모양이네."

만약 그의 비서가 제때 알려주지 않았다면, 논란이 커지는 순간, 이제 막 시작한 노서윤의 경력은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심서연은, 그의 분노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분명히 말했잖아요. 제 피땀 어린 작품을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일, 절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요!"

이것이 그녀가 처음으로 내놓은 반격이었다.

이경한은 적잖이 당황했다.

늘 그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배려하던, 그 작은 여자가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걸까?

심서연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촘촘히 남은 상처 자국과,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주사 자국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거 보여요?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제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이경한, 저는 당신한테 대단한 사랑을 바란 적 없어요. 하지만 최소한의 존중은 해줬어야죠!"

그동안 쌓여왔던 감정과 원망, 억울함이 이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심서연의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만큼 분노가 컸다.

이경한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겉보기에는 평온했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 "이게 다 네가 자초한 일 아니야? 거짓말로 시작된 결혼인데, 좋은 결말을 기대했어?"

심서연은 순간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힘껏 눈을 감았다.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어요. 지금 제 목적은 하나뿐이에요. 이혼!"

이경한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확실해?"

심서연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고, 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녀의 집안이 파산한 뒤, 모든 뒤처리를 맡아준 사람은 이경한이었다. 어머니의 막대한 병원비 역시, 전부 그가 감당했다.

그래서 심서연은 이경한을 사랑하면서도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난 몇 년 동안, 그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니.

이경한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지시했다. 심서연 어머니, 백미정 씨 관련 의료 지원. 전부 중단해."

회차 2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이경한은 심서연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심서연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 이것이 이경한이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경한 앞에서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

억압당하고 경멸당하는 숨 막히는 감각에, 당장이라도 질식해 버릴 것만 같았다.

이경한은 전화를 끊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 사람을 시켜 어머니 치료를 다시 시작하게 할 거야."

심서연은 가슴을 꽉 죄어 오는 고통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난 잘못한 거 없어.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야. 이경한, 네가 얼마나 비정한 인간인지 이제야 완전히 꿰뚫어 봤어!"

이경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네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할 때까지 기다릴게."

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그가 돌아온 지 고작 십 분 남짓이었을 뿐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심서연에게는 분명한 재앙이 닥쳐왔다.

소파에 주저앉은 심서연의 얼굴에는 피로와 절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정신을 차렸다. 어머니의 치료가 중단되었으니,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야 했다.

아버지와 회사가 동시에 무너진 뒤, 어머니는 스스로 생을 끊으려 했다.

다행히 구조가 제때 이뤄져 목숨은 건졌지만, 식물인간이 되었고 남은 생은 고가의 의료 장비에 의존해야 했다.

병원에 도착한 심서연은 카드에 남아 있던 돈을 전부 인출해 어머니의 치료비를 지불했다.

결혼한 지 3년 동안, 그녀는 계속해서 일을 해왔다. 그러나 그 돈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3개월뿐이었다.

이 결혼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이경한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독립해야 했다.

심서연은 곧바로 진미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경 언니, 저 도움이 좀 필요해요."

진미경은 사실상 그녀의 매니저나 다름없었다.

지난 몇 년간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리며 활동하는 동안, 심서연의 업무는 대부분 진미경이 처리해 왔다.

인맥이 넓은 진미경은 지금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조금 전 통화에서 진미경은 그녀의 사정을 듣고,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저녁 7시.

심서연은 진미경이 주최 측과 약속을 잡아준 경서 타워에 도착했다.

그녀의 가방에는 노서윤이 그녀의 작품을 훔쳤다는 모든 증거가 들어 있었다.

심서연은 곧장 2203룸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더니, 배가 불룩 튀어나온 느끼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심서연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왕 대표님. 이번 대회 참가자 심서연입니다. 제 작품을 도용한 사람이 있어 대표님의 도움이 필요해 찾아왔습니다. 미경 언니가 미리 말씀드렸을 겁니다."

왕민석은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자네가 그 유명한 심 작가인가? 이렇게 젊고 예쁜 사람이 위험한 곳에서 촬영을 다니다니, 고생이 많겠어. 이 예쁜 얼굴과 손으로 사진을 찍는다니, 참 아깝구먼."

그는 말을 하면서 손을 그녀에게 뻗었다.

심서연은 미소가 어색하게 굳어지는 걸 느끼며 자연스럽게 몸을 피했고, 미리 정리해 온 자료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왕 대표님, 먼저 이 증거를 확인해 주십시오. 이번 대회의 주최 측으로서, 왕 대표님은 목숨을 걸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저희 사진작가들의 마음을 이해하실 거라 믿습니다. 저는 그저 공정한 심사를 원할 뿐입니다."

왕민석은 서류를 탁자에 던지며 차갑게 비웃었다.

"심서연, 너 참 순진하네.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내가 이 대표 심기까지 건드리면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심사를 해 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심서연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왕민석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경멸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대표가 업계에서 어떤 위치에 계신지, 설마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 순간, 심서연의 가슴속에 끝까지 매달려 있던 마지막 희망이 완전히 꺼져 버렸다.

그녀가 어떻게 이경한의 위치를 모를 수 있을까?

불과 5년 만에 이씨 그룹을 정상에 올려놓은 그는, 지금 경성 전체에서 배씨 그룹 다음으로 큰 규모의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네 예쁜 얼굴을 봐서, 오늘 밤 나를 잘 모신다면, 일이 좀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지."

말을 마치자마자, 왕민석은 살찐 몸을 이끌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손이 심서연에게 닿기 직전, 방 문이 갑자기 열렸다. 동시에 왕민석의 몸이 길고 힘 있는 다리에 차여 벽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심서연은 반사적으로 문 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한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배도준? 이경한의 앙숙. 저 사람이 왜 여기에...?'

회차 3

왕민석은 배를 움켜쥔 채 이를 악물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오, 씨… 어떤 미친 놈이 감히 나한테 손을 대?? 확 죽여버릴…"

욕설을 퍼붓던 그는 배도준을 발견하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몸이 덜덜 떨리더니, 곧장 다가가 비굴하게 알랑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배 대표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표정을 바꾸는 속도는 마치 책장을 넘기듯 순식간이었다.

배도준은 왕민석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심서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꺼져."

왕민석은 바로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배 대표님! 당장 나가겠습니다!"

왕민석이 떠난 후, 룸에는 배도준과 심서연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닥에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것처럼, 주변은 숨 막히게 조용했다.

배도준의 속내를 가늠할 수 없던 심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배 대표님, 방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자를 끌어당겨 앉은 배도준은 심서연이 정리한 자료를 훑어봤다. "별말씀을요."

그가 천천히 자료를 넘겨보는 모습에 심서연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심서연과 이경한은 비밀리에 결혼했지만, 상류층에서는 이미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이 공공연한 이야기였다. 이경한의 앙숙인 배도준이, 그의 아내인 자신과 이렇게 마주하고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 걸까?

심서연은 가볍게 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배 대표님,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떠올라서요. 오늘의 은혜는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그녀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자료를 챙겨 떠나려 했다.

그러나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이 자료 위를 눌러, 그녀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 순간, 배도준의 왼손에 끼워진 금색 애끼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자잘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가 조명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났고, 반지 안쪽에는 작은 영문 알파벳이 새겨진 듯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다.

배도준은 고개를 들어 심서연을 바라봤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시선이었다. "심서연 씨, 사진 분야에서 보여주신 재능과 감각이 정말 인상적이더군요. 혹시 제 회사에 합류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심서연은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한 눈빛으로 배도준을 쳐다봤다.

"하지만 제 신분을 아시잖아요. 이경한이랑 배 대표님은..."

"저는 심서연 씨의 능력을 본 겁니다. 사적인 감정이 무슨 상관입니까?" 배도준은 자료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동의하신다면, 내일 회사로 오셔서 입사 서류를 작성하시면 됩니다. 만족하실 만한 입사 선물도 준비해 두죠."

그 말에, 심서연의 머릿속은 이미 실타래처럼 뒤엉켜 버렸다.

그녀는 배도준이 왜 자신에게 그런 제안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배 대표님, 죄송하지만... 제안은 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배도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경한 때문인가요?"

심서연은 다시 한번 반지에 새겨진 알파벳에 시선을 빼앗겼다. 작은 's' 인 것 같았다.

"아, 아닙니다." 이경한의 이름이 나오자, 심서연의 눈빛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배도준의 시선은 여전히 평온하고 담담했지만, 오랜 시간 높은 자리를 지켜온 사람 특유의 기품이 몸에 배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그저 자리에 앉아 무표정하게 있을 뿐이었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심서연은 결국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저 사진작가일 뿐입니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배도준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그녀의 대답에 만족한 듯, 몇 마디 덧붙였다.

"심서연 씨는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시면 됩니다. 배씨 그룹에서 곧 공익 홍보 영상을 촬영할 예정인데, 카메라 안에서 감정을 포착하는 데 심서연 씨가 특히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심서연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말없이 고민에 잠겼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녀는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해 왔다. 수입은 매달 일정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자유로웠다.

일단 계약을 체결하면 각종 제약이 따를 게 분명했다. 게다가 최근 이경한의 압박으로 스튜디오 운영도 예전처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치료비를 제대로 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경한의 사업이 순조롭게 굴러가는 지금, 그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배도준밖에 없었다.

배도준은 그녀의 고민을 알아차린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투자 형태로 심서연 씨 스튜디오에 지분 참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실질적인 지배권은 여전히 심서연 씨에게 있고, 지금처럼 자유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죠."

심서연은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은 그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배 대표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배씨 그룹처럼 큰 회사라면 사진작가를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텐데, 왜 하필 저인가요?"

심서연은 고민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혹시 이경한과의 관계 때문이라면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그 사람과 이혼을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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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연 씨,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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