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6개월 전부터, 정체불명의 병이 내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는 고통을 무시했다. 성공한 건축가인 남편, 차진혁의 완벽하고 헌신적인 아내가 되기 위해서.

우리의 결혼이 끝장난 그날 밤, 그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그의 젊은 후배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서로의 품에 안겨, 더없이 행복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사진을.

내가 그를 추궁하자, 그는 나를 정신 나간 여자로 몰아세우며 그녀를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곧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나와 함께 만들기로 했던 가정을, 다른 여자와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절망에 빠져 위로를 구하러 엄마에게 달려갔지만, 엄마는 그의 편을 들었다.

"차 서방은 좋은 사람이야."

엄마가 말했다.

"네가 유난 떨지 않으면 돼."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나를 돌보겠다고 맹세했던 그. 하지만 내가 가장 약해졌을 때, 그와 나의 가족은 나를 버렸다. 내 고통을 그저 투정으로 치부하면서.

하지만 바로 그날, 나는 진단을 받았다. 말기 뇌종양. 내게 남은 시간은 고작 몇 달뿐이었다.

그 순간, 모든 슬픔이 사라졌다. 나는 희생자로 죽지 않을 것이다. 남은 날들을 오직 나를 위해 살 것이다. 그리고 그는, 평생 그 대가를 치르며 살게 될 것이다.

제1화

강아리엘 POV:

내 결혼이 죽어가던 그 밤은 요란한 폭발이 아니라, 응답 없는 전화기 너머의 숨 막히는 침묵으로 시작되었다.

밤 11시. 그리고 자정. 새벽 1시가 되었다.

우리 아파트의 통유리창 너머로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아래로 펼쳐진 도시의 불빛은 네온과 그림자가 뒤섞인 수채화처럼 흐릿하게 번졌다. 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유리창이 덜컹거렸고, 이미 위태롭던 내 신경도 함께 흔들렸다.

지난 6개월 동안 나를 괴롭혔던, 익숙하고 둔한 통증이 뼛속 깊이 자리 잡았다. 관절에서 시작된 통증은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그 느린 불길은 나를 영원한 피로 속에 가뒀다. 캐시미어 담요를 어깨에 둘렀지만, 한기는 몸 안에서,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스며 나왔다.

내 엄지손가락이 휴대폰 화면 속 차진혁의 프로필 사진 위를 맴돌았다.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눈부시게 빛나던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미소. 그는 무적처럼 보였다. 행복해 보였다. 사랑에 빠져 있었다.

나는 열 번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음성 사서함. 또다시.

"진혁입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평소 내 모든 불안을 잠재워주던 그의 따뜻한 저음이, 이제는 작은 스피커를 통해 공허하고 멀게만 들렸다.

우리가 나눈 메시지 기록을 스크롤했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오후 4시 30분에 와 있었다.

`차진혁: 회의가 길어지네. 저녁 기다리지 마.`

`아리엘: 알았어. 별일 없는 거지?`

`아리엘: 사랑해.`

내 마지막 두 메시지 옆에는 '읽음' 표시 대신 '전송됨'이라는 글자만 찍혀 있었다.

그답지 않은 일이었다. 진혁은 야심가였고, 건축계의 떠오르는 스타였으며, 자신의 스케줄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꼼꼼한 남자이기도 했다. 그는 항상 답장을 했다. 언제나. 그게 단 한 글자짜리 짧은 문자일지라도, 그는 꼭 확인했다.

내 메시지 창이 화면 위에서 나를 비난하듯 깜빡였다.

`아리엘: 그냥 확인차. 너무 늦네.` (오후 9:15 발신)

`아리엘: 아직도 회의 중이야? 조금 걱정돼.` (오후 10:30 발신)

`아리엘: 진혁아, 제발 괜찮다고 연락 좀 줘.` (오전 12:45 발신)

새 메시지를 썼다 지우는 동안 입력 중임을 알리는 점 세 개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어지럼증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는 소파 팔걸이를 꽉 잡았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의사들은 스트레스, 건강염려증, 시간이 너무 많은 여자의 막연한 불평이라며 내 증상을 일축했다. "잠을 더 자세요, 아리엘 씨. 요가를 해보시고요."

하지만 이 느낌, 이 심각한 육체적 쇠약감은 스트레스 이상이었다. 마치 내 몸이 서서히, 조용히 멈춰가는 것 같았다.

화면 상단에 알림이 울렸고,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진혁에게서 온 문자가 아니었다.

SNS 친구 요청이었다.

`김서아 님이 친구가 되고 싶어 합니다.`

모르는 이름이었다. 프로필 사진은 전문적으로 찍은 증명사진이었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날카롭고 지적인 눈매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가진 젊은 여자. 자기소개는 짧았지만, 그 야망이 거의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가온건축 주니어 건축가. 청사진 하나하나로 미래를 짓습니다.`

가온건축. 진혁의 회사였다. 그가 몇 주 동안 입이 닳도록 칭찬하던 신입 후배였다. "그 친구 정말 똑똑해, 아리엘. 진짜 실력이 장난 아니야."

내 병보다 더 무겁고 오싹한, 차가운 공포가 등골을 타고 기어올랐다. 왜 그의 젊고 야심 찬 동료가 새벽 1시 30분에 나에게 친구 요청을 보내는 걸까?

내 손가락이 떨리며 그녀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전체 공개였다. 가장 위에 있는 게시물은 두 시간 전에 올라온 것이었다. 사진 한 장.

아니, 이건 사진이 아니었다. 선전포고였다.

진혁이 좋아하는 세련되고 모던한 바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전경에는 칵테일 두 잔이 축배를 들 듯 부딪히고 있었다. 한 손은 틀림없이 남자의 손, 강인하고, 내가 3주년 기념일 선물로 준 은색 인장 반지가 새끼손가락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른 한 손은 섬세한 여자의 손이었다. 핏빛처럼 짙은 붉은색으로 완벽하게 관리된 손톱.

사진 아래의 캡션은 단 한 문장, 파괴적인 한 문장이었다.

`나의 미래를 나만큼 선명하게 봐주는 남자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숨이 턱 막혔다. 방 안의 공기가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내 머리는 논리적인 설명을 찾으려 미친 듯이 회전했다. 팀 회식. 클라이언트와의 저녁 식사. 내 직감이 비명을 지르는 그것만 아니면 무엇이든.

그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진혁의 칵테일 잔 곡면에 비친,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의 왜곡된 형상을. 그녀였다. 김서아. 그리고 그녀에게 바싹 다가가, 머리가 거의 맞닿을 듯 기댄 사람은, 내 남편이었다.

내 엄지손가락이, 마치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그녀의 친구 요청에 '수락' 버튼을 눌렀다.

즉시,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글자가 아니었다.

사진이었다.

나에게 직접 보낸.

이번에는 모호함 따위 없었다. 왜곡된 반사 이미지도 아니었다. 푹신한 소파 부스에 앉아 있는 진혁과 김서아였다. 그의 팔은 그녀의 어깨를 소유하듯 감싸고 있었고, 그는 내가 몇 달 동안 듣지 못했던, 목청껏 터져 나오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순수한 황홀경에 빠진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보였다.

감각이 마비된 내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져 원목 바닥에 부딪혔다. 액정은 깨지지 않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수백만 개의 복구 불가능한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눈물이 차올라 흐릿해지는 시야로 그 사진을 응시했다. 배경. 그곳은 '루나 비앙카',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그가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나를 데려갔던 곳, 남은 평생 모든 기념일을 함께 축하하자고 맹세했던 바로 그곳.

그 사진은 전쟁 선포였다. 그리고 나는 방금, 완전히 비무장 상태로 기꺼이 전쟁터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서툴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내가 보낸 답장 없는 애원으로 가득 찬 메시지 창을 다시 열었다.

내 엄지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내 병과 슬픔의 안개를 뚫고 타오르는, 갑작스럽고 새하얀 분노가 그 글자들에 연료를 공급했다.

`아리엘: 그 여자 누구야, 차진혁?`

`아리엘: 대답해.`

`아리엘: 너 어디야?`

나는 이번에는 내 세상을 산산조각 낸 그 낯선 여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리엘: 이게 뭐죠? 누구세요?`

침묵.

양쪽 모두에게서.

나는 남은 밤을 차가운 바닥에 웅크린 채, 내 남편의 배신이 담긴 사진을 쳐다보며 보냈다. 밖에서는 마침내 비가 그치고 비참하게 흐느끼는 이슬비로 변해 있었다. 내 몸의 육체적 고통은 가슴에 뚫린 거대한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새벽 직전, 마침내 피로가 나를 덮쳤다. 나는 불안한 잠에 빠져들었고, 곧바로 악몽 속으로 던져졌다. 꿈속에서 나는 시든 꽃들로 가득한 들판에 서 있었다. 진혁이 들판 건너편에서 김서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분노가 아닌,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것, 바로 연민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넌 항상 너무 피곤해하잖아, 아리엘." 그의 목소리가 꿈속에서 메아리쳤다. "서아는… 에너지가 넘치지."

나는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깼다. 그의 말이 남긴 환영의 고통은 현실의 어떤 모욕보다 더 날카로웠다. 뺨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내 옆 바닥에서 휴대폰이 윙윙거렸다.

김서아에게서 온 새 메시지였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진이었다.

이번에는 부엌에 있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레스토랑 주방이 아니었다. 우리 집 부엌이었다. 진혁이 그녀 뒤에 서서,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고, 그녀가 스토브 위 냄비에 담긴 무언가를 젓는 것을 지도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냄비였다. 그가 결혼 선물로 사준 비싼 조리 기구 세트의 일부였다.

그는 그 부엌에서 평생 함께 식사하고 조용한 순간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었다.

이제 그는 다른 사람과 그 추억을 쌓고 있었다.

내가 공들여 쌓아 올린 세계는 금이 간 것이 아니었다. 체계적으로 철거되었다. 그리고 내 파괴의 설계자는,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단 한 사람이었다.

격렬하고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이 내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눈물로 얼룩진 화면 위에서 미끄러지는 엄지손가락으로 김서아에게 미친 듯이 분노의 메시지를 입력했다.

`아리엘: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당신이 뭔데?`

`아리엘: 당신은 지금 한 결혼을, 한 가정을 파괴하고 있는 거라고요.`

잠시 멈춤이 있었다. 그녀가 다시 나를 무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그때, 작은 점 세 개가 나타났다. 그녀가 입력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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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2

강아리엘 POV:

메시지를 보내는 내 손가락이 떨렸다. 분노와 메스꺼움이 뒤섞여 뱃속에서 들끓었다. 나는 강아리엘, 혼돈 속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삶을 구축한 아내였다. 남편의 내연녀와 심야에 추잡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내가 그런 여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김서아의 채팅창에 떠 있던 점 세 개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마치 설계 도면을 다루듯 정밀하게,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답장을 작성하고 있었다.

마침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것은 단순하고, 소름 끼치도록 직설적이었다.

`김서아: 직접 와서 확인하시죠.`

주소가 뒤따랐다. 시내의 한 고급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최근 진혁이 건축 잡지에서 극찬했던, 새롭고 초현대적인 유리 타워 중 하나였다.

심장이 갈비뼈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이것은 도전이었다. 던져진 결투 신청이었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벌떡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어지럼증이 핑 돌았고, 나는 소파 등받이를 붙잡고 몸을 가눠야 했다. 욱신거리는 몸의 항의를 무시하고, 나는 침실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눈에 보이는 청바지와 스웨터를 아무거나 꿰어 입었다. 화장은 신경 쓰지 않았다. 거울 속에 비친 창백하고 눈이 퀭한 여자는 어차피 낯선 사람이었으니까.

시내로 향하는 길은 젖은 도로와 새벽의 어스름 속으로 번지는 신호등 불빛으로 흐릿했다.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운 질문들로 폭풍우가 몰아쳤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안의 이성적이고 지친 일부는 돌아가라고, 이 상황을 품위 있게 처리하라고, 진혁이 집에 돌아와 그가 꾸며낸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상처 입은 내 일부, 방금 자신의 인생이 몇 장의 사진 파일로 불타버리는 것을 목격한 그 부분은, 방화범을 직접 봐야만 했다.

나는 차갑고 위압적인 건물의 방문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로비로 걸어가는데, 세련된 검은색 세단 한 대가 길가에 멈춰 섰다. 뒷문이 열리고 진혁이 내렸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김서아가 그 뒤를 따라 내렸다. 젊음의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날씬한 몸매를 강조하는 잘 재단된 코트를 입고 있었고, 비단결 같은 검은 머리카락은 걸을 때마다 찰랑거렸다. 그녀는 빛났고, 건강했고, 활기가 넘쳤다. 내가 느끼는 나와는 정반대의 모든 것이었다.

그녀가 진혁이 한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바람을 타고 내게 똑똑히 들려온, 밝고 근심 없는 소리였다. 진혁은 마주 웃어주었다. 내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보지 못했던, 진심에서 우러나온 꾸밈없는 미소였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에서 흐트러진 머리카락 한 올을 쓸어주었고, 그의 손길은 찰나보다 조금 더 길게 머물렀다.

그 무심한 친밀함이 담긴 몸짓은 물리적인 타격과도 같았다. 어떤 사진보다도 더 명백한 증거였다.

내 뇌가 결정을 처리하기도 전에 발이 먼저 움직였다.

"차진혁!"

내 목소리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갈라지며 쉬어 있었다.

두 사람은 얼어붙은 채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섰다. 진혁의 미소는 사라지고, 충격과 뒤이어 명백한 짜증이 어린 가면으로 바뀌었다. 김서아의 표정은 읽기 더 어려웠지만, 그녀의 눈이 내 눈과 마주쳤을 때, 승리감에 찬 무언가, 계산된 승리의 빛이 그 깊은 곳에서 번뜩였다.

"아리엘?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

진혁이 퉁명스럽고 차갑게 물었다. 그는 반쯤 앞으로 나서며, 미묘하게 나와 김서아 사이에 자신을 위치시켰다. 보호자. 단지 내 보호자가 아닐 뿐.

"내가 여긴 어쩐 일이냐고?"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건 내가 당신한테 물어야 할 말 아니야, 진혁아? 밤새도록 전화했어.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고."

그는 잠시 부끄러운 듯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휴대폰 배터리가 나갔어. 새 프로젝트 수주 기념으로 팀원들이랑 밤늦게까지 축하하느라."

"팀원들?"

나는 김서아를 쏘아보았다. 그녀는 마치 흥미로운 연극을 보는 관객처럼, 초연한 호기심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여자가 '팀원'이야?"

김서아가 작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아리엘 씨 맞으시죠? 진혁 씨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경멸감은 숨이 막힐 정도로 짙었다.

진혁이 그녀의 팔에 달래는 듯 손을 얹었다.

"서아야, 먼저 올라가 있을래?"

그는 그녀를 보내려 했지만, 그것은 마치 나의 지저분하고 불편한 감정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고 감싸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나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도 있어. 지금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여기서, 당장."

"아리엘, 당신 지금 소란 피우는 거야."

그가 쉿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의 눈은 마치 파파라치가 나타날 것처럼 텅 빈 거리를 훑었다.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 항상 그의 최우선 순위였다.

"내가 소란을 피운다고?"

내 웃음은 부서지기 쉽고, 유머가 없었다.

"내 남편이 밤새 사라지고, 나는 그 인간이… 후배랑 찍은 사진이나 받아보는데, 내가 소란을 피우는 거라고?"

김서아의 순진한 척하는 가면이 깨졌다. 그녀는 섬세하고 연극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진혁 씨, 이건 당신이 해결해야 할 것 같아요. 저 분… 좀 안 좋아 보이네요."

'안 좋아 보인다'는 그 말이 내 마지막 남은 자제심에 불을 붙였다.

"내 건강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나는 으르렁거리며 한 걸음 다가섰다.

진혁이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부드럽지 않고, 단호하게, 나를 뒤로 밀쳤다.

"그만해, 아리엘. 당신 지금 정신 나갔어. 집에 가. 나중에 얘기해."

그의 미는 힘에 나는 비틀거렸다. 그 부당함. 한때 나의 안전한 피난처였던 그의 손길이, 이제 그녀를 위해 나를 밀어내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무언가를 끊어버렸다. 나는 그를 다시 밀쳤다. 내 손바닥이 그의 단단한 가슴에 부딪혔다.

"나한테 손대지 마! 감히 손대지 마!"

그는 비틀거리며, 충격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을 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당신 지금 미친 사람처럼 굴고 있어."

"미쳤다고?"

나는 그 단어가 목구멍에서 찢어져 나오듯 소리쳤다.

"날 버리고, 거짓말하고, 저 여자랑 여기 서 있으면서, 미친 건 나라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경멸로 굳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내게 등을 돌리고, 김서아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었다.

"가자. 이건 내가 처리할게."

그의 그 마지막 행동, 너무나 단호하게 그녀를 선택하는 그 모습이 나를 무너뜨렸다. 그는 빛나는 로비로 그녀를 안내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차갑고 젖은 보도 위에 나를 홀로 남겨두었다.

유리문 너머로, 김서아가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그저 차갑고 가늠하는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이미 해결된 문제인 것처럼.

나는 건물의 어두운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그곳에 비친 여자는 유령이었다. 창백하고, 수척하고, 광기 어린 눈과 뺨에 얼룩진 눈물 자국. 안 좋아 보인다. 어쩌면 그들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슬픔의 안갯속이었다. 교통 상황도, 길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차를 주차하고 조용한 우리 아파트로 걸어 들어갔던 것만 기억난다.

그는 아직 거기에 없었다.

둔한 통증이었던 몸의 고통이 이제는 욱신거리는 격통으로 날카로워졌다. 나는 소파에 주저앉았고, 시선은 커피 테이블 위의 난초 화분에 머물렀다. 꽃잎은 갈색으로 시들었고, 줄기는 슬프게 축 늘어져 있었다. 물 주는 것을 잊어버렸다. 우리 둘 다.

몇 년 전 진혁이 내게 이것을 주었을 때가 생각났다. "너 같아, 아리엘." 그가 섬세한 꽃잎의 곡선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말했었다.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진정으로 피어나려면 조금 더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지."

이제 그것은 죽어가고 있었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절박하고 원초적인 위로에 대한 갈망이 나를 덮쳤다. 엄마가 필요했다.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나를 꼭 안아주고, 잠시만이라도 세상이 아프지 않게 해줄 엄마가 필요했다.

내 손이 떨리며 엄마의 번호를 눌렀다.

"아리엘? 얘, 괜찮니? 왜 이렇게 일찍."

"엄마."

나는 간신히 들릴 듯한 목소리로 흐느꼈다.

"나… 잠깐 가도 돼? 그냥 잠깐만."

전화기 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망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진혁이 때문이니?"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졌지만, 익숙한 피로감이 섞여 있었다.

"둘이 또 싸웠어?"

"그 이상이야, 엄마. 이건…"

"아리엘, 내 말 들어."

그녀가 부드럽게 말을 끊었다.

"차 서방은 좋은 사람이야. 훌륭한 가장이고. 모든 결혼에는 힘든 시기가 있는 법이야. 네가 좀 더 이해해야 해. 그 사람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잖아. 유난 떨지 마. 그냥 집에 가서 좀 쉬어. 아침이 되면 모든 게 나아 보일 거야."

그녀의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묵살이었다. 그녀는 내 고통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기대를 관리하고, 딸의 성공적인 결혼이라는 완벽한 이미지를 보존하기 위해 균열을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

"나 가봐야겠다, 얘야. 아빠랑 아침 골프 약속이 있어서. 나중에 얘기하자. 착하게 굴어."

전화가 끊겼다. 나는 혼자였다.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할 두 사람에게 버림받아, 완전히, 철저히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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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3

강아리엘 POV:

신부 부티크에서 엄마와 함께 서 있던 기억이 났다. 구슬 장식이 달린 웨딩드레스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만약 그가 널 아프게 하면," 엄마는 내 베일을 매만지며 눈시울을 붉힌 채 말했다. "바로 집으로 와. 네 방은 언제나 네 방일 테니까." 이제 와 깨달으니 그것은 공허한 약속이었다. 완벽한 날을 위한 예쁜 말이었을 뿐, 엉망이 된 결혼의 현실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엄마는 망가진 모습의 내가 문 앞에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성공한 건축가의 아내, 자신의 좋은 선택을 증명해 주는 삶을 사는 딸을 원했다. 내 고통은 불편함이었고, 가족사진의 흠집이었다.

용서. 이해. 엄마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떻게 이걸 용서할 수 있을까? 이건 힘든 시기라기보다는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고, 진혁은 내가 그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그저 지켜본 것과 같았다.

마침내 피로가 나를 덮쳤다. 나는 여전히 청바지를 입은 채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차가운 가죽은 따뜻한 침대를 대신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둠 속에서 잠이 깼을 때, 나는 방향 감각을 잃었다. 아파트는 여전히 조용했고, 텅 비어 있었다. 휴대폰 화면이 방을 밝혔고, 그 빛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지수였다.

"아리엘? 이렇게 늦게 전화해서 미안."

그녀의 목소리는 속사포처럼 에너지가 넘쳤다.

"그 재수 없는 네 남편, 집에 있어?"

"아니, 지수야. 없어."

잠과 마르지 않은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당연히 없겠지. 왜냐면 내가 지금 그 인간을 보고 있거든."

피가 차갑게 식었다.

"무슨 소리야?"

"나 지금 파트너 리셉션 때문에 새로 생긴 루프탑 바, '스카이 가든'에 와 있거든. 근데 구석 테이블에서 자기가 왕이라도 된 것처럼 현대 블랙카드를 휘두르고 있는 게 누군지 알아? 차진혁이야. 그리고 혼자도 아니야."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알아야만 했다.

"어떤 여자랑 같이 있어, 아리엘. 젊어.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있어. 방금 로비에 있는 부티크에서 다이아몬드 테니스 팔찌도 사줬어. 내가 쇼핑백 봤어. 그 여자 손을 불빛에 비춰보면서 감탄하더라. 완전… 넋이 나간 표정이었어."

쓰리고 공허한 웃음이 내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테니스 팔찌라니. 진혁은 1년 넘게 내게 제대로 된 선물을 사준 적이 없었다. 지난 내 생일에는 신용카드를 건네며 "네가 알아서 좋은 거 사"라고 했었다. 그 행동은 관대함이라기보다는 거래처럼 느껴졌다. 신경 쓰는 노력마저 아웃소싱해버린 것이다.

"내가 저쪽으로 갈게."

지수가 낮고 위험한 목소리로 말했다. 변호사인 그녀는 직업적으로 대립에 능했고, 나를 맹렬히 보호했다.

"저 인간의 완벽하게 재단된 머리 위에 이 만 이천 원짜리 물 탄 샤르도네를 부어버릴 거야."

"아니."

나는 그녀의 충성심에 가슴속에 온기가 퍼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말했다. 밤새도록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

"하지 마. 그럴 가치도 없어."

"가치가 왜 없어! 그 인간이 널 모욕하고 있잖아!"

"알아."

나는 속삭였다.

"지수야… 나 그 사람이랑 이혼할까 봐."

그 말은 공기 중에 떠다녔다. 내 혀 위에서 낯설고 무서운 맛이 났다.

지수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괜찮아? 내가 갈까? 지금 바로 나갈 수 있어."

나는 그녀가 업무 행사를 떠나고, 그 뒷수습을 하고, 전부 나 때문에 그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짐이 될 수는 없었다.

"아니, 괜찮아. 넌 네 일 봐. 난 그냥…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해."

"알았어."

그녀는 마지못해 말했지만, 나는 그 망설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필요하면 전화해. 뭐든지. 그리고 아리엘?"

"응?"

"그 인간이랑 같이 있는 여자… 김서아야. 그 신입 후배."

그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주었다. 그것이 확인되고, 이것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그가 함께 일하고, 전문적으로 존경하는 누군가와의 계산된 불륜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칼날이 더 깊이 파고들었다. 진혁은 항상 직업적 청렴함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내 정치와 부적절한 관계를 혐오했다. 그가 이 선을 넘었다는 것은… 그가 단지 우리의 결혼 서약을 어긴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신념을 어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알았어. 아침에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 나자,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은행에서 온 알림이었다.

`공동 계좌에서 18,450,000원이 에클라 주얼리에서 결제되었습니다.`

천팔백만 원. 팔찌 하나에. 그녀를 위해. 내가 집에서 아프고 걱정하는 동안, 그는 내 프리랜서 수입의 반년에 해당하는 돈을 다른 여자에게 쓰고 있었다.

그 부당함은 너무나 심오하고,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나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번호를 눌렀다. 더 이상 떨리지 않는, 차갑고 단단한 분노로 가득 찬 손으로.

두 번째 벨 소리에 그가 받았다.

"아리엘, 늦었어."

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고 짜증이 섞여 있었다. 배경에서는 희미한 피아노 음악과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 생일이야?"

나는 위험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방금 김서아한테 사준 천팔백만 원짜리 팔찌 말이야. 특별한 날이야? 아니면 원래 인턴들한테 우리 공동 자금으로 보석 사주는 취미라도 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 돈이야, 아리엘. 내가 번 돈이라고."

"우리 돈이지."

나는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말로 그를 정정했다.

"우리가 결혼한 날부터 '우리 돈'이 된 거야. 내가 당신 경력을 지원하기 위해 내 경력을 잠시 접기로 동의한 그날부터. 그 대화 기억나?"

나는 그가 눈을 굴리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또 시작이네."

"그래, 또 시작이야."

나는 쏘아붙였다.

"나도 잘나가는 에이전시의 시니어 디자이너였어, 차진혁. 나만의 미래가 있었다고. 하지만 당신이 프리랜서로 전향하라고 했잖아. 그게 우리에게 더 많은 유연성을 줄 거라고, 당신이 우리 둘을 위해 충분히 벌고 있다고, 내 역할은 우리 집을 돌보고 당신이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당신의 경력을 지원하는 거라고 했잖아. 날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잖아."

나는 그를 믿었다. 전적으로. 나는 내 야망을 포기했고, 우리 집을 관리했고,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클라이언트들을 접대했고, 그가 겪는 모든 감기와 업무 위기를 간호했다. 나는 그의 삶을 쉽고, 순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가 "우리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제 그는 바로 그 희생을 나에 대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더 이상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은 직원처럼 대하고 있었다.

"마음이 바뀌었어."

그의 목소리는 빙하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건 더 이상 아니야. 이혼하고 싶어."

휴대폰이 내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부드럽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러그 위로 떨어졌다.

이혼.

그가 말했다. 그는 내 반쯤 형성된, 절박한 생각을 차갑고 단단한 현실로 바꿔버렸다. 나는 그를 떠나는 것을 고려했지만, 단 한 순간도, 그가 나를 떠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전화선 너머의 침묵은 계속되었다. 그 침묵은 내가 더 이상 속하지 않은 그의 새로운 삶의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로만 채워졌다. 바의 피아노 음악은 내 결혼식의 장례식에서 경쾌한 곡을 연주하며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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