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안녕, 우리 빅센!"
갑자기 불이 켜졌고, 자스민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움찔하며 뒤돌아보았다. 혼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눈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고, 매혹적인 눈동자는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는 듯 했다.
"누구세요?" 자스민은 말을 더듬었고, 갑자기 목이 말라오는 걸 느꼈다.
그는 씩 웃었다. 늑대 인간과 전혀 비슷하지 않았던 그는 왠지 위험해 보였고, 정장 차림이었지만 근육은 숨길 수 없었다.
남자의 어둡고 신비로운 시선이 자스민을 훑어보았고, 그 눈빛에는 조롱도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도망친 데가 여기인가?" 그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스민은 그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고,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내가 도망치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스민은 턱을 치켜들며 그에게 맞섰다. "내가 어디에 있든 당신이 알 바 아니에요. 그럼 실례할 게요." 그러자 그 남자는 긴 다리를 성큼 내뻗으며 자스민 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당황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남자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볼 정도로 키가 컸고,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했으며, 자스민을 비웃는 표정은 여전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남자는 분명 자신보다 작은 키를 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스민은 키가 173cm 정도로 살면서 자신이 작은 키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그 남자가 무슨 일을 벌일 지 자스민은 조금 궁금했다. 그녀는 남자가 분명 새로 페크에 들어온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라이더 케일." 그는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얼굴에 띠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굉장히 잘생긴 미남인 건 확실했다. 검은 머리카락에 특유의 위험한 눈동자. 넓은 어깨에 근육질 몸매는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스민 테인." 자스민 역시 그를 따라 이름을 말했다. 잘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적어도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남자는 씩 웃었다. "아, 그 자스민 잘 알지. 늑대로 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이슨에게 짝을 거절당한 여자." 그의 말에 자스민은 또 한 번 분노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그가 대체 뭐라고 날 모욕하는 거지?' 그녀를 이렇게 화나게 했던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고, 자스민은 겨우 이를 악물며 화를 참아야 했다. 그때 그녀의 마음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자스민, 이건 어쩔 수 없어. 매운 맛을 보여줘!' 자스민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녀의 주먹이 한 차례 그의 턱을 강타한 뒤, 그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됐고, 그 남자의 목덜미를 잡은 손에는 발톱이 자라더니 살갗을 파고 들었으며 입 안에서는 송곳니가 자라났다.
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깜짝 놀란 자스민은 행동을 멈추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정말 내가 그랬다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강하고 뾰족하게 드러난 발톱을 보며 자스민은 당황스러워했다. '발톱은 그렇다 치고 송곳니는 뭐였을까?'
"드디어 자신의 늑대를 찾은 모양이군." 그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잠깐, 뭐라고? 내가 늑대로 변할 수 있다고?' 자스민 역시 내면에 늑대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잠잠하던 늑대가 그 남자를 만난 후 이렇게 큰 반응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미안해요." 옳바른 짓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스민은 그래도 그에게 사과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늑대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자스민은 기뻐 어쩔 줄 몰랐고, 잠자고 있던 늑대를 깨워준 그 남자에게 고마웠다.
자스민은 저도 모르게 그를 꼭 끌어안았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말했다.
불규칙하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가 왠지 모르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방금 만난 낯선 사람이었지만, 왠지 평생 알고 지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식처 같은 곳이랄까?
"너처럼 좋은 빅센을 거절하다니 제이슨은 멍청한 놈이야." 그는 자스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전 빅센이 아니라 자스민이에요." 그녀는 말을 정정하며 그의 품 안에 그대로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자..자스민?" 그때 루비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바로 품에서 빠져 나왔다.
루비는 와인 잔을 든 채 두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괜히 헛기침을 하는 자스민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런 거 아니야, 루비." 그녀는 변명했다.
바로 옆에 서 있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맞아요.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거든요." 그가 루비에게 윙크하며 대답했다.
'어우! 저렇게 느끼한 사람인 줄은 몰랐네.' 남자는 정원 끝까지 걸어가더니 다시 돌아서며 외쳤다. "곧 보자, 빅센!" 환하게 웃는 그의 표정에 진심이 느껴졌다.
"맙소사! 어쩌다 리컨 왕이랑 엮인 거야?" 그가 떠나자마자 루비가 자스민에게로 달려갔다.
자스민의 두 눈이 커졌다. "리컨 왕이라니, 무슨 말이야?" 그녀는 되물었다.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서였다. 물론,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아마 몸집이 워낙 큰 탓에 리컨으로 오해를 받았을지도 몰라, 왜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 크레센트 페크 말하는 거야?" 이번에는 자스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 네 부모님이 그를 약혼식에 초대했다고 들었어."
정말 그게 맞는다면, 자스민은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가자. 이미 중요한 부분을 놓쳤을 지도 몰라."
사람들이 춤을 추고 시끄러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스민과 루비도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고, 괜히 제이슨 때문에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어이, 동생. 오랜만에 보는데 인사도 없네?" 익숙한 목소리에 자스민의 가슴이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제이슨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항상 심술궂고 무례했던 말투가 오늘은 부드럽게 들렸다.
"아... 나 잠깐만 볼일 좀 보고 올게." 루비는 웨이트리스에게서 와인 한 잔을 받아 들더니 두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아... 오랜만이야, 제이슨."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자스민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한때 그를 정말 어리석으리만치 열렬하게 좋아했었던 건 사실이었다.
"오늘 너무 예쁘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제이슨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이었으면 분명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그의 행동이 무례하게 느껴졌다.
"고마워." 속으로 제이슨이 변태라고 생각하면서 자스민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빅센, 또 보네. 같이 춤추기로 한 거 기억나지?'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라이더였다. 자스민이 돌아서자 그의 눈이 반짝였고,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스민은 다시 제이슨을 돌아보았는데, 그가 그녀의 손목을 갑자기 움켜쥐더니 말했다.
"지금은 나랑 춤 추고 있어요!" 꽤 단호한 말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