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수화는 어이가 없어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구제불능 여인 같으니라고. 둘째 아가씨께서 왕부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건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녀 본인을 위해서라고요. 그래야만 군왕비가 되는데 명분이 생기는 거라고요.'

"아가씨!"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정운각 안으로 쳐들어왔다. 무완희는 살짝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수화야, 청죽이 돌아온 것 같구나."

수화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청죽이는 왜 하필 지금 돌아와서 둘째 아가씨의 좋은 일에 훼방을 놓는 거야?' 그녀는 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 청죽이가 무완희를 만나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청죽이의 충성심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청죽은 오로지 아가씨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괴력을 발휘하여 앞길을 막은 두 여인을 밀쳐내고 곧바로 방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저 년을 막아라!" 수화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안으로 달려가는 청죽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때 무완희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지금 뭐 하는 짓이니?"

"군왕비님, 큰일났습니다." 청죽은 무완희를 보자마자 애타게 외쳤다.

"폐하께서 오늘 국공부의 구족을 멸하라는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노국공(老國公)을 위시하여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도 포함해서요⋯" 청죽은 눈시울을 붉히며 국공부의 상황을 무완희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무완희는 다 듣기도 전에 안색이 창백해지며 배를 움켜쥐었다. 너무 격동한 나머지 태기가 상역한 것이다.

"군왕비님." 청죽은 재빨리 무완희의 곁에 달려가 부축하였다. "군왕비님, 괜찮으십니까?"

무완희는 청죽의 팔목을 붙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외조부께서 어떻게 되었다고?"

"진씨 온 가문이 멸족되었습니다." 청죽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소식을 듣자마자 돌아오려 했지만 무설유에 의해 마구간에 갇히는 바람에 이제서야 간신히 도망쳐나올 수 있었다.

무완희의 다리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배에서도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청죽은 놀라서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여, 여봐라. 어서 산파를 불러오거라, 군왕비님께서 출산을 하신다."

수화도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청죽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조심스레 무완희를 안아 침대에 뉘였다. "군왕비님, 아무쪼록 무사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도련님을 출산하셔야 합니다. 군왕비님의 미래는 전부 도련님한테 달려있습니다. 둘째 아가씨는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군왕을 홀려 군왕비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군왕비님께서 만약 도련님을 출산하지 못하시면 지위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어서 산파와 의원을 불러 오거라." 청죽이 큰 소리로 외쳤다. 수화는 미간을 찌푸리고 욕설을 퍼부으려 하다가 애써 참고 문밖으로 나갔다.

"청죽아, 군왕을 모셔오거라⋯" 무완희는 통증으로 인해 얼굴에 혈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군왕께서 분명히 외조부 일가를 구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일이 이 지경이 된 걸까.

"군왕비님, 부디 정신차리셔야 합니다. 반드시 도련님을 무사히 출산하셔야 합니다." 청죽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군왕은 지금 대청에서 둘째 아가씨와 혼례를 올리고 있기 때문에 군왕비님을 아랑곳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군왕비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자극을 받아 아이를 품은 채 숨을 거둘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아악!" 무완희는 배가 너무 아파서 비명을 내질렀다.

"산파는, 산파는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이냐." 청죽은 옆에 서있는 푸름이를 째려보며 말했다. "어서 산파를 불러오거라."

푸름이와 이령이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완희는 밀려오는 통증으로 인해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보다못한 청죽이 직접 산파를 불러오려고 하는데 수화가 탕약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의 뒤에 서있는 사람은 혼례복 차림의 송영걸과 무설유였다.

회차 3

"군왕님⋯" 청죽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송영걸은 방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무완희는 그를 보자 간신히 손을 뻗으며 말했다."군왕, 분명⋯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송영걸은 무정하게 무완희의 손을 뿌리쳤다. 무설유가 미소를 머금고 무완희의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큰 언니, 몸은 좀 어떠십니까?"

무완희는 붉은색 혼례복을 입은 무설유와 송영걸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영걸을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입니까?" 무완희는 슬픔에 잠긴 눈빛으로 송영걸을 바라보았다. 눈 앞의 이 남자는 일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고 절대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무설유가 입은 붉은색 혼례복은 그녀의 가슴을 난도질하듯 아프게 했다.

"큰 언니, 군왕께서는 처음부터 언니를 마음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무설유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군왕께서 마음에 두신 여인은 처음부터 저였어요. 군왕께서는 단지 진국공부의 뒷받침이 필요했던 겁니다. 오늘날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였고 군왕께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벼슬에 오르셨으니 이제 언니 따위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어요. 그러니 언니도 그만 물러나야죠."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에 무완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영걸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고 믿고 싶었다. "군왕, 말씀해 보십시오. 전부 거짓말이지요⋯"

"아 참, 언니가 모르는 사실이 또 있어요. 진국공부 말입니다. 바로 군왕께서 직접 사람을 데리고 가서 몰살한 거예요." 무설유는 얄밉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씨 가문이 적과 내통하여 나라를 배반한 증거 역시 군왕께서 찾아내신 겁니다."

"아니야, 난 믿을 수 없어."

"큰 언니가 믿건 말건 이제는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언니가 이 탕약을 반드시 마셔야 한다는 겁니다." 무설유의 표정이 갑자기 사악해졌다.

"뭘 하려는 거야?" 무완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온 몸에 힘이 풀려 반항할 수 없었다.

"군왕비한테 손 대지 마십시오!" 청죽이 앞으로 나서서 무완희를 감싸 안았다. "군왕님, 둘째 아가씨. 군왕비께서 당신들에게 그리도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어찌 이리도 마음이 독하십니까."

"천한 노비 따위가 감히 어디서 참견이야. 썩 꺼지거라!" 무설유가 청죽의 뺨을 후려쳤지만 청죽은 비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송영걸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발을 들어 청죽을 힘껏 찼다. 힘없이 넘어진 청죽은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피가 줄줄 흐르더니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청죽아!"

"언니, 직접 마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사람을 시켜 입에 넣어드릴까요?" 무설유는 환히 웃으면서 물었다.

"군왕,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입니다!" 무완희는 애원하듯 말했다.

송영걸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손을 뻗어 무완희의 턱을 힘껏 끌어당겼다. "탕약을 부어 넣어라."

"네, 군왕님."

수화가 탕약을 들고 다가왔다. 푸름이와 이령이는 무완희가 발버둥치지 못하도록 힘껏 눌렀다. 수화는 탕약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전부 무완희의 입에 부어 넣으며 생각했다. '군왕비님, 저를 탓하지 마시고 멍청한 자신을 탓하십시오!'

송영걸을 바라보는 무완희의 눈빛이 점차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던 남자는 자신의 아이조차 버리려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입니까?" 무완희는 분노에 찬 소리를 질렀다. 심해지는 통증과 더불어 배속의 아이가 점차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며 온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꼭 이렇게 해야만 했습니까?"

"아직도 내가 정말 너를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생각하느냐? 난 진씨 가문의 도움이 필요했을 뿐이야. 그리고 드디어 난 바라던 모든 것을 전부 이루었어. 잔인한 사실을 알려줄까? 진국공부는 매국 죄로 멸족되었어. 갓 태어난 아이도 전부 목을 베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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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악녀 왕비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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