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어제는 임신 안전기예요." 안세연이 수화로 답했다.
소진우의 눈에 실망감이 잠시 스쳤지만,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안세연은 그가 아이를 갖는 데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 창 밖의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쇼핑 가고 싶어? 아니면 미용실 어때? 같이 갈 사람을 구해줄게." 소진우의 목소리가 뒤에서 전해왔다.
안세연은 고개를 저으며, 출근해야 한다고 손짓으로 전했다.
소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 "중요한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무리할 필요 없어. 그냥 일 안하고 집에 있으면서 편하게 지내도 돼."
소진우는 안세연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완벽한 남편이었다. 그녀가 집에서 해야 할 일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 외에는 거의 없었고, 매달 상당한 액수의 용돈도 챙겨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에게 한도가 없는 카드도 주었다.
하지만 안세연이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편안함이 아닌 사랑이었다.
안세연이 처음 소진우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그는 겨우 17살이었다. 그는 그녀를 아끼고 평생 사랑할 것이라고 맹세했었다. 첫 번째 약속은 지켰지만, 두 번째 약속은 잊혀진 지 오래였다.
생각에 잠겨 있던 안세연은 차가 멈춘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제야 사색에서 깨어났다.
창문이 내려가자, 빨갛게 부어오른 호두 같은 눈과 창백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바로 소진우의 애인 맹아연이었다.
맹아연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 그녀는 차 창문을 붙잡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기다렸는데 당신 통 연락이 없더라고. 그래서 자기 집에 갔더니, 형 아이 백일잔치에 갔다고 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정말 나한테 화났어? 내가 너무 많이 떠드니까 말 못하는 아내 옆에서 휴식이라도 취하려고 했던 거야?"
맹아연의 말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정말 웃겼다. 그녀가 벙어리라는 것을 말하는 것조차 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다니.
맹아연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소진우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이제 알았어?"
맹아연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사과를 하려면 얼굴을 마주 보고 해야지. 이렇게 추운 데서 어떻게 제대로 사과하겠어?"
그녀의 시선은 안세연이 앉아 있던 자리에 고정되었다.
소진우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회사 앞이야. 안 내릴 거야?"
사실, 안세연의 회사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조금 걸어야 했다. 예전에는 소진우가 항상 그녀를 회사 앞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안세연은 마치 반항할 줄 모르는 꼭두가시처럼 고래를 끄덕이고는 차에서 내렸다.
맹아연은 가방에서 소독 티슈를 꺼내어 좌석을 꼼꼼히 닦기 시작했다. 마치 안세연이 그 자리를 더럽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소진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 하는 짓이야?"
맹아연이 상처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나한테 화내는 거야? 내가 결벽증 있는 거 잊었어? 자기가 운전할 때는 조수석은 나만 앉게 해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리고 다른 사람이 운전할 때는 우리 둘만 뒷자리에 앉기로 했잖아. 그냥 자리 좀 닦으려고 한 건데, 뭐가 그렇게 잘못된 거야? 왜 화를 내?"
맹아연은 억울한 모습을 연기하며 안세연을 향해 곁눈질했다. 그녀 눈 밑의 도발은 말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안세연은 그녀와 대면할 용기가 없었다. 그저 맹아연이 좌석을 닦고 나서 소진우에게 바짝 붙어 앉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뒤돌아서서,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진우는 안세연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맹아연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녀는 딱지처럼 그에게 꼭 매달려 있는 것이다. "제발, 날 밀어내지 마. 나 더 잘할게. 그리고 이혼 얘기도 다시는 안 꺼낼게. 용서해줘. 내가 잘못했어."
슬픈 눈으로 맹아연은 소진우를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소진우는 맹아연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쥐고,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네가 말만 잘 들으면, 원하는 건 들어줄 수 있어. 단, 소씨 사모님의 자리는 제외하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