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강서연이 남연우의 집을 나서려 할 때, 남연우의 아버지 남회성과 마주쳤다.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 뒤, 예의 바르게 자리를 떠났다.

재킷 차림의 남회성은 남연우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행동 조심해. 차씨 가문은 함부로 대할 수 없어. 밖에서 어슬렁대는 쓸모없는 여자들은 당장 정리하고."

남연우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다음 날 아침, 강서연은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정수연을 마주쳤다.

정수연은 그녀를 보자마자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서연아, 남연우 그 자식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너한테 이럴 수가 있어?"

하룻밤 사이, 남씨 가문이 미래의 며느리를 초대해 연회를 열었다는 소식은 상류층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아무 일도 아니야."

강서연은 태연한 얼굴로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며 덧붙였다. "차서주가 오늘 대표이사 비서실에 출근한대. 내가 직접 안내해야 해."

"남연우가 차서주를 대표이사 비서실에 낙하산으로 꽂았다고?"

정수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가 그렇게 부탁할 때도 안 들어주더니, 이제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네. 네가 그동안 얼마나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는데. 남연우는 너한테 미안하지도 않은 거야?"

4년 전부터 남연우의 곁에서 일하기 시작한 강서연은 홍보팀에서 몇 년 동안 고생한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서씨 그룹의 다수 원로 주주들은 남씨 성을 가진 외부인인 남연우가 서씨 그룹의 거대한 가업을 물려받는 데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그를 높은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드러내지 않게 훼방을 놓아 왔다.

홍보팀 부장으로 재직하는 몇 년 동안, 강서연은 남연우를 위해 최상급 프로젝트를 여러 건 성사시켰다.

그중 어떤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이력서를 빛내기에 충분했고,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동안 수차례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지만,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강서연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서씨 그룹에 남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강서연은 서윤서가 약속한 것을 하루라도 빨리 받아내고, 자신의 체면을 무참히 짓밟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4년 전, 소꿉친구였던 진서준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그때 서윤서는, 강서연이 남연우의 곁에 남아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면 진서준의 주소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 하나에 의지해, 그녀는 지금까지 버텨 올 수 있었다.

강서연은 진서준과 함께 자랐다. 그는 그녀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그를 찾아야 했다.

정수연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듯, 앞뒤를 가리지 않고 소리쳤다. "확 사표를 던지고 그 배은망덕한 개자식, 차버려!"

강서연은 자리에 멈춰 서더니 정수연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수연아, 입 조심해. 벽에도 귀가 있어."

남씨 가문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가문이었다.

정수연은 의분에 차서 쏘아붙였다.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회사에서 네가 남연우의 진짜 여자친구라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관계를 공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이제는 대놓고 다른 여자를 데려와 너를 이렇게 모욕하잖아. 아직도 안 정리하고 뭐 하자는 거야? 나중엔 걔랑 그 여자까지 네가 먹여 살리게 할 셈이야?"

강서연이 말조심하라며 정수연을 말리려던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에서는 여러 사람이 차서주를 둘러싸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수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침부터 한가하게 수다나 떨고 있어? 일하기 싫어?"

"강 부장님, 안녕하세요." 차서주는 눈웃음을 치며 강서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남연우의 경고 때문에 강서연은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녀는 정수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 팀장, 차서주 씨는 대표이사 비서실로 안내해 주세요."

정수연은 차서주를 흘깃 바라보며 상사로서의 위엄을 한껏 드러냈다.

"따라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서주는 미안한 얼굴로 정수연을 향해 웃어 보였다. "연우가 제 물건을 가지러 갔어요.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정수연은 입을 벌린 채 강서연을 돌아봤다. '남연우가 차서주를 위해 직접 사무용품을 챙겨 오겠다고? 강서연은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강서연은 눈을 한 번 깜박이며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네. 그럼 저 먼저 일하러 갈게요."

"잠깐, 내 방으로 와. 지시할 게 있어."

남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서연은 자리에 멈춰 서더니 뒤를 돌아봤다.

남연우는 손에 든 상자를 정수연에게 건네고 차서주에게 당부했다. "먼저 가 있어. 혼자 다니지 말고."

정수연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쩔 수 없이 상자를 받아 들었다.

차서주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정수연을 따라 떠났다.

강서연은 남연우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 프로젝트 팀이랑 같이 남성 개발지구에 다녀와."

사무실로 들어선 남연우는 재킷 단추를 풀더니, 재킷을 벗어 강서연에게 건넸다.

강서연은 남연우의 재킷에서 은은한 감귤 향을 맡았다. 그녀는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차서주의 몸에서도 같은 향을 맡았다.

강서연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곧 감정을 정리하고 재킷을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프로젝트 팀에서 연락이 왔어. 남풍로에 아직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집이 하나 있대. 네가 가서 처리해. 예산은 6억 원이야."

남연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귀찮은 기색을 내비쳤다.

강서연은 '남풍로'라는 세 글자를 듣고 숨을 멈췄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자라온 고아원은 남풍로에 있었다.

김 원장님은 이 세상에서 그녀를 가장 따뜻하게 대해 준 사람이었고, 그곳은 그녀에게 유일한 집과도 같은 곳이었다.

남연우는 그녀가 여전히 자리에 서 있는 걸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할 말 있어?"

강서연은 숨을 잠시 멈췄다가, 책상 앞에 다시 서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남풍로 철거 건... 재고해 주실 수 없습니까? 거기가 저한테 어떤 의미인지, 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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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이번 생엔 꿈도 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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