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차가운 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쏟아지자 심동욱은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두려움도 잊은 채 말이다.
곧 엘리베이터 수리공이 도착했고, 심동욱과 강서윤은 무사히 엘리베이터에서 나올 수 있었다.
시야가 넓어지자 심동욱의 신체화 증상도 즉시 완화되었다. 그는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 강서윤을 돌아보며 먼저 말을 걸었다. "방금 일, 고마워요."
남자의 얼굴과 앞머리에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가슴팍의 정장도 흠뻑 젖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을 본 강서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천만에요. 물을 뿌리는 게 효과가 있을 줄은 저도 몰랐어요."
강서윤의 비웃음이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던 탓일까, 심동욱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 여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강서윤은 적당한 선에서 웃음을 멈추고 평소의 예의 바른 태도로 돌아왔다. "저 출근해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심동욱의 반응을 살피지도 않고 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심동욱은 강서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M.K 주얼리.
"오늘 우리 회사를 인수한 대주주가 온다는데, 너무 기대돼네요…"
비서실 여직원들은 모두 회사를 인수한 신비한 대주주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평소 가십을 좋아하지 않는 강서윤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신임 사장이 누구일지 궁금해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멀지 않은 곳에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강서윤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자 몇몇 고위 임원들이 젊은 남자를 둘러싸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남자를 향해 말했다. "여기가 비서실입니다."
옆에 있던 여직원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긴장한 얼굴로 대주주에게 인사를 건넸다.
강서윤만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뿐, 한참이나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회사를 인수한 사람이 심동욱이었어?'
이혼을 앞둔 전 남편과 하룻밤을 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룻밤을 보낸 전 남편이 그녀의 직속 상사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그의 몸에 물까지 뿌렸다.
강서윤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심동욱이 그녀의 앞에 멈춰 서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서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강서윤입니다."
"강서윤?" 심동욱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익숙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네." 강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심동욱이 나를 알아본 건 아니겠지?'
심동욱은 몇 초간 고민하더니 미간을 활짝 폈다. "생각났어요. 전 사장님이 저와 계약을 맺을 때, 비서실에 사람이 많지만 강서윤 씨의 업무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했어요."
"과찬이십니다, 사장님." 강서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그녀는 결혼 2년 동안 심동욱이 그녀를 만나지 못했더라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동욱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이 결혼을 더 거부하고 있었다.
심동욱은 강서윤의 업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하고 싶었다. "잠시 후 회의 진행은 강서윤 씨가 맡아주세요."
그 말을 들은 동료들은 강서윤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강서윤은 내키지 않았지만, 상대는 그녀의 직속 상사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심 대표님."
20분 후,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자리에 앉았다.
강서윤은 디스플레이 앞에 서서 PPT 내용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예쁜 얼굴에 완벽한 몸매를 가진 그녀는 170cm에 가까운 키로 다른 여자들에게서 볼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강서윤에게 고정되었다.
주석에 앉은 심동욱은 업무에 집중한 강서윤을 가만히 지켜보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강서윤을 탐색하듯이 쳐다봤다.
그는 강서윤에게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심동욱은 익숙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강서윤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강서윤 씨는 오늘부터 제 개인 비서가 되어주세요. 기존 팀원들과 함께 대표이사 사무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 됩니다."
강서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회사가 인수되면서 대량 해고가 시작되었고, 그녀는 비서실이 가장 먼저 해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운 좋게 회사에 남게 되었다.
강서윤이 반응하기도 전에 심동욱이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가고, 강서윤 씨만 남으세요."
사람들이 모두 회의실을 떠나고, 회의실에는 심동욱과 강서윤 두 사람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