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김이슬이 냉소를 지었다.
"박수원, 약혼은 이미 파기됐어. 여기 물건들은 전부 내가 산 거야. 내가 가져가겠다는데 그게 왜?"
박수원은 그 문자를 확인했지만 마음에 두지 않았다. 김이슬이 이렇게 나온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예전과 달리 이번에 그녀는 그의 연락처를 전부 차단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김이슬이 결국 떠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조금만 어르고 달래면 마치 길들여진 강아지 마냥 금방 다시 돌아 올 거라고 믿었다.
박수원의 표정이 부드럽게 바뀌더니 김이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직도 어제 일로 삐쳐있는 거야? 미안해, 어젠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나 믿지?"
김이슬의 얼굴에 혐오감이 스쳤다. 그녀는 즉시 그의 손을 뿌리쳐 내더니 가방에서 물 티슈를 꺼내 손을 닦았다. 마치 더러운 물건이 손에 닿은 듯한 모습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행동은 그 어떤 말보다 더 모욕적이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이라 박수원은
더욱 난감했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꼭 싸워야겠어? 철 좀 들어. 그만해."
김이슬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박수원, 사람 말 못 알아들어? 우린 끝났다고! 설마 귀까지 먹은 건 아니지?"
"푸흡."
짐을 나르던 일꾼이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건방진 년이!'
박수원의 얼굴이 차갑게 내려 앉았다.
"그래, 옮길 테면 다 옮겨! 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이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린 완전히 끝나는 거야! 다시는 돌아오지 마!"
김이슬은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 채 일꾼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서둘러 옮겨주세요! 빨리 끝내면 보너스를 드릴게요! "
보너스란 말에 30분도 채 되지 않아, 집안은 텅 비어 버렸다. 앉은 곳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박수원은 태풍이 휩쓸고 간 듯한 집 안을 바라보며 냉소를 흘렸다.
'이번에는 얼마나 버티려고... 두고 봐.'
오후 1시. 김이슬은 약속 시간에 맞춰 구청에 도착했다.
서이준은 이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몸에 착 감기는 정장을 입은 탓에 원래도 큰 키가 더욱 훤칠해 보였다. 백화점 광고에서 나오는 모델들 보다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김이슬은 우아한 자태로 서이준에게 다가갔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서이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요.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그럼… 들어갈까요?"
"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함께 구청에서 나왔다. 손에 들린 혼인 신고서를 내려다 보는 김이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낯선 남자와 결혼을 하다니...'
생각을 마친 그녀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번호 알려주세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마무리 되면 바로 연락 드릴게요."
그녀의 휴대폰을 받아 든 서이준이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김이슬이 멈칫했다. 가슴 속에 따뜻한 감정이 밀려 왔고 그녀조차 왜 그런지 몰랐다.
그의 능력으로 볼 때, 큰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진 몰라도 오랜만에 듣는 관심 어린 말은 따뜻한 위로로 다가왔다.
"알겠어요."
김이슬은 환하게 웃으며 서이준과 작별했다.
30분 후, 김이슬은 집에 도착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출입 허락이 떨어 질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녀가 들어가기도 전에, 외삼촌 일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집에 들어서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김이슬은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는 얼굴들을 못 본 척 지나치고는 혼인 신고서를 외삼촌 김문산 앞에 내밀었다.
"삼촌, 저 결혼 했어요. 전에 하신 약속을 지키셔야 할 때가 된 것 같은 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