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강력한 최음제 탓에 두 사람은 밤새 침대와 소파, 발코니까지 스위트룸 곳곳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두 사람이 결국 지쳐 잠들 때까지 객실은 온통 신음 소리와 헐떡임으로 가득 찼다.
문수아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잤는지도 모를 만큼 깊게 잠들었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일어나 앉으려 했다. 어젯밤 일로 몸은 욱신거렸고 곳곳에 키스마크가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함께 밤을 보낸 남자는 샤워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젯밤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까 두려웠던 그녀는 서둘러 옷을 입고 감사의 메모를 급하게 휘갈겨 썼다. 그리고 지갑에 남은 돈과 액세서리 하나를 감사의 표시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두었다.
그녀는 객실을 빠져 나오자마자 급하게 호텔을 떠났다.
한도진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그녀가 사라진 지 한참 뒤였다.
방을 둘러보던 그는 침대 시트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다음 그녀가 침대 협탁에 두고 간 물건을 보고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한 씨 집안 출신으로 해닝시의 경제를 주도하는 한승그룹의 사장이었다. 그런 인물과 밤을 보냈는데 달랑 5만원 두 장과 휴지에 적은 감사의 말만 남기고 도망갔다?
그를 상대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10분 뒤 한도진은 한 손은 주머니에, 다른 한 손은 불붙은 담배를 들고 똑바로 서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자기 앞에 조아린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묶여있는 젊은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형님, 정말 미안해. 맹세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만... 28살이신데도 연애는커녕 여자와 놀아보질 못했잖아! 그래서 걱정되는 마음에... 내가 직접 도와 줄려고 했어!"
한도진은 곁눈질로 침대 시트에 묻은 핏자국을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여자 이름이 뭐야?"
"어?" 서동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여자?"
한도진은 지난 20년 동안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서동윤은 그가 남자에 관심이 있을 거라 짐작했었다.
그래서 형 사랑 넘치는 동생으로서 사람을 보냈긴 했지만 여자가 아니라 뽀얀 남자였던 것이다.
그럼, 그 여자는? 서동윤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커졌다. "도진 형, 난..."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한도진이 그의 어깨를 재빨리 걷어차며 말을 끊었다.
"어젯밤 CCTV 다 확인해 봐." 한도진이 언성을 높였다. "어떻게든 찾아내. 좀 전에 해외 프로젝트 담당자가 말라리아로 죽었어. 못 찾으면 네가 대신 그 자리로 갈 줄 알아."
서동윤은 충격 받은 표정으로 한도진을 올려다 보고 정신을 차리는 데까진 한참이 걸렸다.
그는 그 여자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도진은 마치 치타와도 같았고 잡은 먹이의 생존은 그의 기분에 달려있었다.
하룻밤을 보낸 그 여자는 겁도 없이 일어나자마자 도망쳤다. 그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리스팩.
*
사건의 주인공 문수아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설동훈과 조가람이 나누었던 대화가 머리 속을 계속 맴돌았다. 화가 난 그녀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절대 그 둘을 가만히 둘 순 없다. 뭔가를 해야 하고 두 사람의 정체를 어떻게든 밝혀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문수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아버지 문청산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어디 갔다 이제 와? 학교에 전화했더니 기숙사로 안 돌아갔다고 하던데." 문청산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당장이라도 터질 듯했다.
"여보, 그러지 말아요. 건강에 안 좋아요. 수아는 아직 어리고 배울 게 많잖아요." 옆에서 조가람이 문청산을 거드는 척 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문수아를 바라보았다.
"수아야, 아버지가 네게 화난 건 당연한 거야. 너무 속상해하지 마. 여자애가 연락도 없이 밤새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걱정되지 않겠니? 네가 기숙사에 없다는 걸 알고 나도 네 아버지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혹시 나쁜 일이라도 생겼을까 얼마나 마음 졸였던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겠니? 집안 평판보다는 네가 더 소중해." 조가람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어젯밤 설동훈과 조가람의 음모를 듣지 못했더라면 문수아는 그녀에게 속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조가람의 진짜 속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녀의 말은 불 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문청산의 화를 더 돋구었다.
"그래서 지금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내가 널 망친 것 같다. 오늘 제대로 한 번 혼나보자!"
문청산은 옆에 있던 단단한 막대기 하나를 들어 휘두르려 했다.
문수아는 맞기 직전 무릎을 꿇었다.
회차 3
"아빠, 죄송해요. 어젯밤에 친구들이랑 놀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휴대폰 전원 나갔는지도 몰랐고요. 저 때문에 걱정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순간 문청산의 손이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문수아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다툼에서 이기려고 하여 부녀 관계는 늘 긴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녀가 웬일로 잘못을 순순히 인정한 걸까?
문수아는 스스로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조가람은 문청산이 자신을 신뢰하도록 만든데다 그녀는 음모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지금 손에 없었다. 어젯밤에 일어난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도 믿어주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그녀는 순순히 말을 듣는 척 하며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절호의 공격 기회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아빠, 저 분은 제 친 엄마가 아니니까 저를 잘 모르시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잖아요. 아빠는 절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전 우리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거예요!"
문수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딱하게 말했다.
부모님이 이혼한 지 오래됐지만 문청산은 딸에게는 충실한 아버지였다.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에 그의 마음도 누그러졌다.
그는 동작을 멈추고 부드럽게 말했다. "글쎄. 네가 잘못한 걸 안다니 다행이구나.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렴. 알겠니? 이제 그만 일어나."
의외로 문수아를 쉽게 용서하는 모습에 조가람은 조금 불쾌했다. 하지만 계획상 지금은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억울한 마음을 누른 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거 봐요.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았어요. 수아는 정말 좋은 애예요. 아무렇게나 몸을 함부로 쓰는 애들하고는 달라요. 그렇지, 수아야?"
말에 뼈가 있다는 걸 알아챈 문수아는 차가운 눈빛을 한 채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너한테 할 말이 있다, 수아야." 조가람은 문청산을 팔꿈치로 살짝 밀며 눈치를 줬다.
문청산은 심호흡을 하고 소파에 앉았다.
그런 다음 목청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말했다. "수아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람 이모의 말이 맞다. 네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거나, 반대로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게 강요할 수는 없겠다고 판단했다. 동훈이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지만 서로 좋아하는 사이잖니. 그게 중요한 거야."
문수아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깜짝 놀랐다.
문청산은 설동훈이 신분 상승을 위해 상류층 여성에게 의지하는 남자라고 항상 여겨왔기 때문에 둘의 만남을 반대했던 것이다. 더욱이 두 사람이 만나기도 전에 그는 딸의 남편감으로 민 씨 집안의 막내 아들 민우혁을 점지해 두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바람둥이로 소문이 좋지 않았다. 문수아는 그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고, 아버지와 늘 결혼 문제로 끊임없이 다투었다.
"오늘 아침 민우혁이 클럽에서 폭력 사건에 휘말렸다고 하더구나. 그것도 한 클럽 여자 때문에. 뉴스가 난리도 아니었어. 그런 남자와 결혼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문청산은 한숨을 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설동훈이 네게 잘해준다면 둘의 만남을 반대하지는 않겠다. 시간 나면 집에 한 번 데리고 와. 같이 약혼에 대해 의논하자꾸나."
"네? 약혼이요?" 문수아는 예상치 못한 말에 큰 충격을 받아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문청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달 말에 네 생일이잖니. 그날 약혼하는 게 어떻겠니? 겹 경사인데다 가족들 모두 축하해주는 좋은 자리가 될 것 같은데. 너도 그렇게 적은 나이도 아니고. 네 걱정 이제 그만하게 서둘러 결혼했으면 좋겠구나."
그때 문수아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가람은 자신이 집에 없는 사이에 문청산을 구워삶은 게 틀림없었다.
결혼을 서두르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문수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조가람과 설동훈의 음모에 대한 증거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 이들과 게임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은 다음 그의 손을 잡았다.
"정말 고마워요, 아빠. 제가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속상하셨죠?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말 잘 듣는 딸이 될게요."
한편 조가람은 그녀의 약혼 동의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수아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모두 음모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문이 하나 있었다. 어젯밤 문수아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였을까? 그렇게 약에 취했는데도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게 맞는지 의심스러워 조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그녀 눈에 문수아의 목 쪽에 나 있는 선명한 키스 마크가 보였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조가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어젯밤 문수아는 분명 누군가와 잠자리를 한 게 틀림없었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문수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키스마크를 어떻게든 지우려 했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순결을 잃게 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젠장! 이건 모두 조가람과 설동훈 때문이었다!
긴 샤워를 마친 후 그녀는 자리에 앉아 월말에 있을 약혼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친구가 소개해준 사립 탐정에게 전화해 두 사람의 동선을 몰래 추적하고 음모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약혼식에서 두 사람이 뭘 꾸밀 꿍꿍이인지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컴퓨터를 켜고 자신의 SNS에 상태 메시지를 올렸다.
같은 시각 한성그룹 본사에서는 서동윤이 흥분한 모습으로 한도진의 사무실로 달려가고 있었다.
"형, 그 여자 찾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