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A시국립병원 VIP 병실.
강은서는 병실 침대에 기대어 태블릿에서 재생되는 영상을 바라보며, 눈빛에 냉소가 스쳤다.
그녀가 고열로 입원해 있는 동안, 약혼자 지상철은 호텔에서 다른 여자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상 속 어두운 호텔 복도의 조명 속에서도, 강은서는 지상철의 품에 안긴 여자가 자신의 이복 여동생 강은영임을 한눈에 알아챘다.
강은서는 태블릿을 닫으며 냉담한 시선으로 눈앞의 사람을 응시했다.
"내가 문신을 하지 않겠다면 어쩌실 건가요?"
지상철의 비서 서강혁은 강은서의 반응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그녀의 입장이었어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라 생각했다.
호텔에서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낸 남자가 약혼녀에게 수습해 주길 바라다니...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지씨 그룹이 중요한 시기를 맞은 이 시점에, 후계자 지상철의 사생활 논란 영상이 유출되자마자 회사 주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무마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정식 약혼자인 강은서를 내세워 해명하는 것이다.
영상 속 강은영의 얼굴은 비춰지지 않았지만, 허리 라인에 새겨진 지상철 이니셜 문신만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서강혁이 병원에 온 목적은 강은서에게 강은영과 똑같은 문신을 새기라는 지상철의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면, 영상에 대한 논란은 순식간에 가라앉을 것이다.
서강혁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강은서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 아가씨, 이건 지 대표님의 뜻입니다. 협조해 주시지 않으시면 다음 주 노부인 치료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강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은서는 이미 그의 뜻을 읽어냈다.
정확히는 지상철의 의도를 파악한 것이다.
그는 배씨 노부인을 앞세워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배씨 노부인은 주기적인 치료가 필요했고, A시에서는 천재 의사 오민수만이 그 치료를 할 수 있었다.
강은서는 지상철이 어떻게 오민수를 설득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배씨 노부인을 앞세운 그의 위협 앞에서,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몇 분 뒤, 강은서는 침대 위에 엎드렸다.
곁에 서 있던 타투이스트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강은서의 특수 체질 때문에 타투이스트가 준비한 마취제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문신이 끝났을 때, 강은서의 줄무늬 입원복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원래 핏기 없던 얼굴은 종이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강 아가씨. 실례하겠습니다."
서강혁은 그녀에게 다가가 허리에 새겨진 문신을 재빠르게 촬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사진을 지상철에게 전송했다.
지상철의 답변을 받은 후에야 서강혁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타투이스트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타투이스트는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강 아가씨, 푹 쉬세요. 저녁에 기사가 모시러 올 겁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서강혁 역시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강은서는 비로소 눈을 떴다.
허리 뒤로 찌릿한 통증이 퍼지는 가운데, 강은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거울에 비친, 강은영과 똑같은 허리 문신을 바라보던 강은서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고, 가슴 한가운데 무거운 돌이 내려앉은 듯 숨이 탁 막혔다.
저녁 7시가 되자 강은서는 서강혁을 따라 지씨 그룹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지상철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잘생긴 얼굴과 당당한 자세, 핏팅된 블랙 정장이 어우러져 타고난 귀족의 품위를 풍겼다.
지상철이 입은 정장을 본 순간, 강은서의 눈동자 깊이 어두운 빛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 정장은 2년 전, 그녀가 한 달 내내 밤낮 없이 정성을 쏟아 디자인부터 바느질까지 직접 완성한 것이었다.
그녀는 지상철이 이 옷을 받던 그 순간, 기뻐하던 표정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겨우 2년이 흘렀을 뿐인데, 옷은 그대로였지만, 지상철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강은서 씨, 지 대표님의 약혼녀로서 어제 밤 지 대표님이 문신한 여성과 호텔에 출입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모르는 척하실 건가요, 아니면..."
그 기자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눈앞의 광경에 순간 얼어붙었다.
지상철은 강은서를 감싸 안는 동시에, 의도적으로 그녀 상의의 밑단을 살짝 들어올렸다.
순간, 영상 속과 동일한 그 문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치 않는 접촉에 강은서는 역겨움을 느꼈다.
더욱이 고개를 든 순간, 그의 목에 선명한 키스 자국마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역겨움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입술을 꽉 깨물며 감정을 억눌렀다.
"은서야, 어젯밤 일에 대해 네가 기자 분들께 설명해 줄래?"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조소로 가득 차 있었다.
강은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했으나, 할머니를 생각하며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모두 오해입니다. 어제 지 대표님과 함께한 사람은 바로 저였어요. 인터넷에 퍼진 그 영상 속 사람도 저고요."
"역시나 오해였군요! 보아 하니 강은서 씨와 지 대표님의 관계는 매우 안정적이네요. 조만간 기쁜 소식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기자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상철은 강은서를 꼭 껴안았다.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그 온기 속엔 진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후 지상철의 핸드폰이 울렸고 화면에 강은영의 이름이 떴다.
그는 재빨리 강은서를 밀쳐냈다.
다행히 기자들이 모두 떠난 뒤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또 다시 논란이 터졌을 것이다.
강은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강은영의 애교스러운 투정과 지상철이 다정하게 위로해주는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서강혁이 강은서를 집까지 태워주려 했으나 그녀는 거절하고, 홀로 행사장을 떠나 시내 중심의 아파트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강은서는 창가 소파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창밖의 도시 불빛을 바라보던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세 번 울리고 연결되었지만, 수화기 너머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귓가에 닿는 낮은 숨소리만 아니었다면, 강은서는 전화가 끊긴 줄 알았을 것이다.
강은서는 침묵을 깨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약속, 지금도 유효 해?"
회차 2
전화기 너머, 그녀의 통화 상대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였다. 그의 얼굴은 조각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준수했으며, 온몸에서 우아한 기품이 감돌았다.
남자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 살짝 당황한 빛이 스치듯 지나갔다.
강은서가 한참을 기다렸지만 답이 없자,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 내가 너무 경솔했어. 그냥 무시해…"
"유효 해."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 강은서는 깜짝 놀랐다.
솔직히 말을 꺼낸 순간부터, 그녀는 약간 후회하기 시작했다.
지상철과 약혼을 파기하는 건 그렇다 쳐도, 김서준과 결혼하는 건 위험한 도박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어둠 속에서 강은서의 기억이 1년 전으로 흘러갔다.
그날도 깊은 밤이었다. 평소처럼 병원에서 나오던 그녀는 서쪽 골목에서 의식을 잃은 김서준을 발견했다.
그를 구할 당시 강은서는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보답을 하겠다는 말에 어떤 요구든 다 들어줄 수 있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반응이 내심 흥미로웠던 그녀는 농담 식으로 자신과 결혼해 줄 수도 있냐고 물었다.
강은서는 그저 장난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김서준이 진짜로 고개를 끄덕일 줄은 몰랐다.
당시 강은서는 이미 지상철과 약혼한 상태였고 그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정해준 혼약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농담이었다고 얼른 수습에 나섰다.
그녀가 이미 약혼을 했다는 말에 김서준은 더 이상 결혼 얘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혹시라도 지상철과의 결혼을 원하지 않게 되면 언제든지 자신과 결혼해도 되며 이 제안은 2년간 유효하다고 말했다.
아직 그 유효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
강은서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 탓에 전화가 끊긴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머릿속엔 한 달 뒤에 결혼 할거니 미리 결혼 준비를 하라는 김서준의 말만 맴돌 뿐이다.
그녀의 결혼 상대는 당연히 지상철이 아니었다.
강은서는 어둠을 더듬어 침대에 누웠고, 온몸이 지쳐 있었지만 잠들 수가 없었다.
간신히 잠들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끊임없이 메시지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외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강은서는 휴대폰을 꺼두거나 무음 모드로 설정하지 않았다.
메시지를 열자, 찢어진 옷 조각 사진이 나타났다.
한참을 들여다본 뒤에야, 비로소 그 조각이 지상철이 오늘 입고 있었던, 그녀가 직접 만든 맞춤 정장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과 함께 강은영의 문자가 도착했다.
[언니, 정말 미안해. 이 양복이 언니가 상철 오빠한테 직접 만들어준 거란 걸 몰랐어. 그냥 더러워져 있길래 잘라 버렸어. 화내지 마.]
강은영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배어 있었다.
강은서가 답장하지 않자, 강은영은 또 한 통의 문자를 보냈다.
[상철 오빠가 그냥 옷 한 벌일 뿐이라며, 미안해 할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혹시나 해서...]
강은서는 지금 답장하지 않으면 오늘 밤 잠들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짧게 답장했다.
[지상철 말대로 그냥 옷 한 벌일 뿐이야. 나 화 안 났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그녀는 강은영의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강은서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화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지난 2년간 이런 일은 수없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녀가 매번 화를 냈다면, 진작에 미쳐버렸을 것이다.
다시 누운 강은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늘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엄마가 혹시, 후회를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은영은 강은서의 이복동생으로, 강은서보다 몇 달 어렸다.
강은서의 어머니 배여정은 강은영의 존재를 알게 되자마자 그들 모녀를 해외로 내보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강씨 그룹을 위해 헌신하고 애써온 탓에 배여정의 건강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배여정의 병세가 위중해지던 그 해, 강승윤은 하예원과 강은영 모녀를 강씨 가문으로 데려왔다.
배여정은 강은서에게 새어머니가 생긴다면 삶이 힘들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강승윤은 원래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배여정은 강은서와 지상철의 혼사를 정했다.
그 이유는 배여정과 지상철의 어머니 서희연은 오랜 친구 사이였기 때문이다.
강은서와 지상철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으며, 여기에 서희연과의 인연까지 겹쳐 배여정은 강은서가 지씨 가문에 시집가면 분명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배여정은 사람이란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
배여정은 세상을 떠나기 전, 지상철에게 강은서를 부탁했다.
그리고 지상철은 서희연과 강은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단호하게 약속을 했다.
그의 그런 확고한 태도에, 강은서 역시 그 순간만큼은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새벽, 강은서는 갑작스러운 힘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그녀의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분노로 일그러진 지상철의 얼굴이었다.
손목의 통증에 강은서는 지상철을 세게 뿌리치며 소리쳤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짓이야?"
"강은서,
너는 우리 엄마한테 고자질 하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그 말에 강은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영상은 온라인에 이미 퍼진 상태라 희연이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지상철은 서희연의 전화를 받자마자, 무조건 강은서가 고자질을 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에 강은서는 설명하려는 마음조차 없었다.
단지, 이 약혼을 파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 졌을 뿐이다.
강은서의 침묵은 지상철에게는 인정하는 것으로 보였고, 지씨 가문으로 가는 길 내내 그는 비난의 말들을 끊임없이 늘어 놓았다.
하지만 지씨 가문의 저택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지상철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그의 순간적인 태세 전환을 지켜보던 강은서는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나도 눈이 멀었지...'
전에는 지상철이 이렇게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인간인 줄 몰랐으니 말이다.
회차 3
"은서야… 힘들었지?"
강은서가 지씨 가문 저택 거실에 막 들어서자, 서희연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서희연은 나이가 오십이 넘었지만, 여전히 관리가 잘 되어 마흔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희연은 항상 강은서를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지난 2년간 지상철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서희연은 그녀를 감싸주며 지상철을 혼냈다.
하지만 그것은 지상철을 가볍게 꾸짖는 데 그쳤다. 결국 지상철이 친아들이었으니 말이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서희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상철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망할 자식아! 당장 은서한테 사과해."
예전 같았으면 강은서는 여느 때처럼 괜찮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모든 게 귀찮았다.
그래서 지상철이 말을 꺼내기 전에, 강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줌마, 머리가 아파서 저 먼저 올라갈게요."
서희연은 강은서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좀 쉬어. 저녁 준비되면 부를게."
강은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은서의 모습이 계단 너머로 사라지자, 서희연은 노기 어린 시선으로 지상철을 노려보았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강은영 같은 사생아와 어울려 다니는 거야?"
"엄마, 그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은영이도 승윤 아저씨 친딸이잖아. 게다가 엄밀히 말하자면, 예원 아줌마와 승윤 아저씨가 먼저 알게 된 사이였어."
"너..."
지상철의 말에 서희연은 눈앞이 아득해질 만큼 격한 분노에 휩싸였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에야 간신히 감정을 추스릴 수 있었다.
진정을 하고 나서, 서희연은 단호한 눈빛으로 지상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랑 강은영 사이는 내가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둬. 네 약혼녀는 은서고, 지씨 가문이 인정하는 며느리도 오직 은서뿐이야."
서희연이 이 말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상철은 같은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지상철은 이번만큼은 참지 못하고 서희연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대체 왜 꼭 강은서와의 결혼을 고집하는 거야? 예원 아줌마와의 친분 때문이야? 아니면 은서가 가진 60% 지분 때문이야?"
사업가에겐 이익이 항상 최우선이었다.
서희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혼약을 기꺼이 받아들인 건 배여정과의 친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강은서의 60% 지분이 결정적이었다.
강씨 가문의 사업은 배여정이 두 손으로 일궈낸 것이다.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어도, 그녀는 강은서에게 60% 지분을 남겨주었다.
"은서가 강씨 그룹 60% 지분을 가진 걸 알면서도 그렇게 대하니? 상철아, 엄마가 너를 해칠 리가 없잖아. 이 모든 게 다 너를 위한 거야."
"은서랑 결혼하면 오히려 네가 이득이야. 외모도, 능력도 강은영 따위가 은서랑 비교될 것 같아? 계속 이러다간 은서가 완전히 널 포기할 거다. 그땐 후회해도 늦어."
"됐어요, 엄마. 그만 좀 해. 내가 강은서랑 결혼 안 한다고는 안 했잖아."
지상철은 짜증스럽게 서희연의 말을 끊고는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은서는 2층 방 창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조용히 정원의 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옆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시지를 확인한 강은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면에 뜬 사진 속에는 은색 결혼반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그 디자인은 정확히 강은서의 취향을 적중했다.
[맘에 들어?]
김서준의 메시지를 확인한 강은서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이게 뭐야?]
[맘에 드냐고?]
김서준은 같은 질문만 반복했다.
강은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
[응, 맘에 들어.]
그 후 김서준은 더 이상 답이 없었다.
강은서는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답장을 본 김서준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오민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얼씨구? 너 이렇게 웃을 줄도 알았어? 혹시 귀신이라도 들렸냐?"
친구의 농담에 김서준의 입가에 맺혔던 미소가 순간 사라졌다.
그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오민수는 방금 전에 본 미소가 착각이었나 싶었다.
"노부인의 상태는 어때?"
김서준이 말한 사람은 강은서의 외할머니였다.
환자 이야기가 나오자 오민수의 표정이 곧바로 진지해졌다.
"여전하지. 심장 기능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서,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아."
"네가 의사로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거네."
어떤 의사든 자신의 전문성을 의심받으면 견디기 어려울 거다. 하물며 오민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천재 의사였다.
평소 차분하던 오민수가 김서준의 말에 불끈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의사이지 신선이 아니야! 어쨌든 배씨 노부인 얘기가 나온 김에 말하는데,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나한테 배씨 노부인의 치료를 부탁한 건 너잖아, 근데 왜 갑자기 지씨 가문의 제안을 받아 들이라는 건데?"
오민수는 아주 내키지 않았다. 천재 의사로 소문난 그가 마치 돈에 눈이 먼 인간처럼 비춰질 수 있으니 말이다.
김서준은 답하지 않고 책상 위 도면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방금 강은서에게 보낸 그 결혼반지의 설계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