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저 여자 잡아! 빨리! 출구 막아!" 경매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저 여자를 놓친다면, 사장님의 노여움을 사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했다.

열 명이 넘는 경호원들이 전기봉을 꺼내 들고 그녀를 뒤쫓았다.

하지만 소녀는 너무도 빨랐다. 순식간에 원형 관중석 아래에서 위쪽으로 치고 올라가며 출구를 찾아 나섰다.

오른쪽에서 경호원 셋이 추격해 오는 것이 보이자, 소녀는 반사적으로 옆에 있던 카트 위의 상자를 집어 들었다. 검은 천으로 덮여 있던 그것을 그대로 그들을 향해 던졌다. 상자는 기가 막힐 만큼 정확한 각도로 날아가 경호원들에게 명중했다.

상자에 맞은 경호원들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떨어진 상자는 찌그러지며 안에서 무언가가 "와장창" 하고 깨졌다. 곧 상자 틈새로 쏟아져 나온 도자기 파편들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대리석 바닥 위로 흩어졌다. 맑은 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절망감이 묻어 있었다.

옆에서 카트를 밀고 있던 직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넋이 나간 그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안 돼… 저건 박 도련님께서 낙찰받으신 물건인데… 이제 망했어…"

소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박 도련님?'

하지만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소녀의 예민한 청각이 왼쪽에서 몰려오는 다수의 발소리를 포착했다.

사람들이 달아나는 방향으로 보아 출구는 위쪽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뻗어 난간을 붙잡고, 몸을 가볍게 날려 중앙 기둥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어 난간에 걸려 있던 광고판을 발로 걷어차, 아래에서 쫓아오던 경호원들 위로 떨어뜨렸다.

경호원들을 따라 달려온 경매사는 그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이렇게 많은 경호원들이 여자아이 하나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이 혈노의 몸놀림은 섬뜩할 만큼 재빠르다.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예감한 경매사는, 그녀를 다치게 하더라도 붙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총을 꺼내 들었다. 총구가 기둥을 타고 오르는 소녀의 가느다란 다리를 겨눴다.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거의 동시에 울려 퍼졌다.

한 발은 경매사의 손에 든 총을 정확히 맞혔다. 갑자기 나타난 위압적인 그림자에, 그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박… 도련님…"

다른 한 발은 총을 맞아 흔들린 그의 손에서 발사돼 소녀가 오르던 위쪽 벽면에 깊숙이 박혔다.

총성에 놀란 소녀는 중심을 잃고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허공에서 재빨리 몸을 비틀어, 다시 붙잡을 만한 것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길고 가느다란 손 하나가 허공을 가르며 뻗어와 그녀의 발목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균형을 잃은 소녀의 몸이 강한 힘에 이끌려, 차갑고 단단한 품으로 와락 끌려 들어갔다.

소녀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눈앞의 남자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경매장의 크리스털 조명 아래에서, 박태윤의 얼굴은 얼음 조각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귀족적인 병약함이 느껴지는 창백한 피부,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에는 부드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날카롭게 벼린 칼날 같았다.

"와르르!" 누군가 도자기 파편이 담긴 상자를 건드린 모양인지, 조각들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짧은 정적을 깨뜨렸다.

하지만 박태윤의 표정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시선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소녀의 찌푸린 미간에서부터, 저항하느라 붉게 달아오른 손목까지 천천히 훑어 내려갔다. 그 눈에 그녀의 모든 반항이 고스란히 담기는 듯했다.

조금 전의 혼란 속에서도, 그는 소녀가 기둥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꺾이지 않는 눈빛에 담긴 생존에 대한 갈망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생생하고 눈부셨다. 그리고 그것이, 이유도 없이 그의 흥미를 끌었다.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장난감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발버둥 치는, 제법 흥미로운 장난감이군.'

박태윤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스쳤다. 그의 엄지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누르자, 얇은 입술 사이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꼬마야, 방금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눌린 입술에 통증이 번졌다. 소녀는 눈앞의 남자 눈동자에 어두운 빛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이 남자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네가 내 수집품을 망가뜨렸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인데." 박태윤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겠지, 응?"

'돈을 뜯어내려는 건가? 이런 특별 VIP석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부자거나 권력자잖아. 역시 돈 많은 인간일수록 더 쩨쩨하다니까.'

소녀는 불만과 경멸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 이런 부자들의 탐욕과 오만한 시선에는, 이미 익숙했다.

소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박태윤은 눈썹 한쪽을 슬쩍 치켜올리며 그녀의 작은 귓불을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렸다. "설마,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아니겠지?"

'어?' 그 말에 소녀의 눈이 반짝였다. '이 질문, 아주 좋은데.'

소녀는 눈빛을 교묘하게 굴리며 남자의 정체를 가늠했다. 이만큼 많은 경호원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건 현명하지 않다. 차라리 당분간은 약한 척 몸을 낮추고, 기회를 노리는 편이 낫다.

악마의 소굴 같은 이곳에서 수없이 고통받는 동안, 자신이 왜 이 섬에 오게 됐는지조차 잊은 지는 이미 오래였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이미 그렇게 연기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세상 물정 모르는 척 입을 굳게 다문 채 성난 새끼 짐승처럼 박태윤을 사납게 노려봤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한 점의 탁함도 섞이지 않은 순수함으로 맑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 예쁘다.'

박태윤은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늘 잔폭하게 파괴하고 싶은 욕망을 느껴왔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만은 예외였다.

"쯧, 그저 도망칠 줄만 아는 바보였나." 박태윤은 혀를 차며 손을 놓았다.

'날 놓아주려는 건가?' 소녀는 마침내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 바닥에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출구로 달아날 경로를 재빨리 그리며, 발끝을 미세하게 틀었다.

그때, 박태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아. 네가 좀 모자라도, 난 신경 안 써."

그 말에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경매사는 박태윤의 속내를 전혀 가늠하지 못한 채, 그저 숨을 죽이고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소녀의 시야가 흐릿해지며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은 채 남자 쪽으로 휘청거렸다. 박태윤의 팔이 철처럼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얇은 옷자락 너머로 전해진 그의 손바닥에서는 뜨거운 온기가 스며 나와, 피부를 델 듯 또렷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그는 오만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네가 내 물건을 망가뜨렸으니, 물건은 물건으로 갚아야지. 바로 지금부터, 넌… 내 것이다!"

회차 3

'이 남자, 도대체 무슨 괴상한 논리야?!'

어이가 없다는 듯, 소녀는 박태윤의 가슴을 밀쳐내려 했다. 그러나 손바닥에 닿은 근육은 차가운 돌벽처럼 단단했고, 그녀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사내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자, 소녀는 남자의 뺨을 향해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뒤에 서 있던 강지훈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태윤 형…" '저 계집이 죽고 싶은 건가?!'

하지만 박태윤은 화를 내기는커녕, 소녀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아 허공에서 멈춰 세웠다.

그는 장난기 어린, 나른한 목소리로 그녀를 놀렸다. "대낮부터 이런 짓을 해? 나이도 어린 게, 사람 말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남자 꼬실 줄만 아네."

그 말에 소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 '지랄하네, 미친 새끼가!'

박태윤의 품에 안긴 채 몸부림치던 소녀의 얇은 옷자락이 찢어지며, 맨살이 그의 팔에 그대로 밀착됐다.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그의 체온이 전해지자, 이유 없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더 거세게 몸부림치며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박태윤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발끈하는 소녀의 모습이, 그의 흥미를 더 자극하는 듯했다.

그때, 경매에서 낙찰받은 부자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달려와 소녀를 발견하곤, 음흉한 빛으로 눈을 번뜩였다. "내가 돈 주고 산 물건이야. 내 것이라고!"

그러나 그가 박태윤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강지훈이 먼저 총을 꺼내 그의 이마에 겨눴다.

부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육 대표님, 미친 짓 하지 마세요?!" 경매사는 급히 앞으로 나서 그를 붙잡으며 매섭게 노려봤다.

그러다 이내 박태윤을 돌아보며, 언제 그랬냐는 듯 공손한 태도로 돌변해 허리를 굽혔다. "박 도련님, 저희 노예가 철이 없어 도망치다 그만 도련님의 낙찰품에 해를 입혔습니다. 저희가 두 배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무심한 얼굴로 내려다보던 박태윤의 요염하고 깊은 눈빛이, '노예'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불쾌한 기색으로 차갑게 번뜩였다.

경매사는 이유도 모른 채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살기를 느꼈다. 어디서 말을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박 도련님, 지금 상황을 보시면…"

"이 여자를 데려가겠다." 박태윤의 입술 사이로, 차갑고 단호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 말투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경매사는 화들짝 놀라 외쳤다. "박 도련님! 절대 안 됩니다! 이 노예는 저희 헤이븐 아일랜드의 경매품이고 이미 경매로 팔렸습니다. 게다가 이 아이는…"

그는 말을 더듬으며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박태윤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소녀의 허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무심한 행동처럼 보였지만, 강한 지배욕이 느껴졌다.

그가 하는 말은 상의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낙찰가 2조. 내가 두 배를 내지."

헤이븐 아일랜드 경매장이 문을 연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박태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지훈은 수표를 꺼내 금액을 적은 후 경매사에게 건넸다.

박태윤은 창백하게 흰 손가락에 힘을 풀었고, 수표 한 장이 바닥으로 흩날렸다.

경매사는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박 도련님, 이 돈은… 제가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 저희 헤이븐 아일랜드의 규정에 어긋납니다…"

박태윤은 붉은 입술을 살짝 비틀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길 없애버리면, 그 규정이라는 것도 없어지는 거 아닌가?"

분명 오만하기 그지없는 위협이었지만, 그의 말투는 마치 오늘 날씨를 얘기하듯 담담했다.

경매사는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태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소녀의 몸을 가려준 뒤,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자리를 떴다.

강지훈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박 도련님…" 경매사는 입을 벌린 채, 고고하게 멀어져 가는 남자의 곧게 뻗은 뒷모습을 바라볼 뿐, 끝내 따라가지 못했다.

박태윤이 어떤 사람인가? 화국의 경제 명맥을 쥐고 있는 최고 재벌가의 자제이자, 정계와 암흑가를 동시에 아우르는 거대한 사업 제국의 중심 인물이었다.

조금 전까지 거세게 몸부림치던 혈노는, 이제 박태윤의 품에 안긴 채 얌전히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댄 상태였다.

경매사가 고개를 들자 소녀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소녀의 눈동자에는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흥분과 희열, 그리고 짙은 복수심이 서린 차가운 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박태윤을 이용해 이 섬을 완전히 떠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에, 그녀는 일부러 얌전히 굴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옆에서 낙찰자였던 부자가 쉼 없이 욕설을 퍼붓는 동안, 경매사는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욕 좀 그만하시죠! 설령 낙찰에 성공했더라도, 어차피 이 노예는 데려가지 못하셨을 겁니다. 우리 사장님께서는 애초에 이 노예를 팔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사장님께서 저 혈노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아십니까. 어찌 쉽게 내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수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혈노. 그 존재가 헤이븐 아일랜드를 떠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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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는 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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