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내 약혼자, 강태준은 클라이밍 사고로 내가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자, 나만을 위한 가상현실 세계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그곳을 ‘아르카디아’라 불렀다. 나의 성역. 그의 게임 속에서 나는 망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무적이자 최강의 챔피언, ‘발키리’였다. 그는 나를 벼랑 끝에서 참을성 있게 간호해준 구원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가 IT 컨퍼런스 무대에 선 모습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보게 되었다. 그는 내 재활치료사였던 주다희의 어깨를 감싼 채, 그녀가 평생을 함께할 여자라고 세상에 공표했다.
진실은 깨어있는 악몽이었다. 그는 단순히 바람을 피운 게 아니었다. 내 진통제를 몰래 약효가 더 약한 진정제 성분이 든 약으로 바꿔치기하며, 의도적으로 내 회복을 늦추고 나를 약하고 의존적인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팔찌를, 내 가상 세계의 칭호를, 심지어 내가 우리를 위해 세웠던 결혼 계획까지 전부 주다희에게 넘겨주었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 담긴 굴욕적인 사진을 유출시켜 게임 커뮤니티 전체가 나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나를 스토커로 낙인찍었다.
결정타는 그의 승리 파티에서 그와 대면하려 했을 때 날아왔다. 그의 경호원들은 나를 구타했고, 그의 무심한 한마디에 내 정신 잃은 몸을 더러운 분수대에 던져 ‘술이나 깨게 하라’고 했다.
내가 더는 힘든 세상을 살지 않게 해주겠다던 남자가,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나를 익사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그와 그 도시를 뒤로했다. 내 다리가 다시 강해지면서, 내 결심도 굳건해졌다. 그는 내 이름과 명성, 그리고 내 세계를 훔쳐 갔다. 이제 나는 다시 접속한다. ‘발키리’가 아닌, 나 자신으로. 그리고 그의 제국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제1화
한서리 POV:
내 침실의 유일한 불빛은 손에 쥔 휴대폰에서 새어 나왔다. 작은 화면 속에서도 조각처럼 완벽한 강태준의 얼굴이 그가 연설하는 IT 컨퍼런스 무대 조명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라이브 스트리밍. 원래대로라면 나는 저기, 맨 앞줄에 그의 자랑스러운 약혼자로 앉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사고 이후 그가 나를 위해 지어준 이 금박 입힌 새장 안에 갇혀 있었다.
평소라면 닳아빠진 내 신경을 어루만져주던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울려 퍼졌다. 어둠 속에서 내게 약속을 속삭이던 그 목소리, 끔찍한 재활 치료 시간 내내 나를 격려해주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들은 전부 틀렸다.
“주다희 씨는 뛰어난 재활치료사, 그 이상입니다.”
그가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선언했다. 그의 팔은 소유욕을 드러내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주다희, 내 재활치료사. 그녀의 미소는 눈이 부시게 밝았다. 바위가 쏟아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내 세상이 무너지기 전, 내가 짓던 미소를 완벽하게 흉내 내고 있었다.
“그녀는 ‘아르카디아 크로니클’의 다음 진화를 위한 영감 그 자체입니다. 우리 회사의 심장이죠. 그리고 제가 평생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여자입니다.”
숨이 고통스럽게 터져 나왔다. 휴대폰을 쥔 내 손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매끄러운 케이스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불과 몇 분 전, 익명의 번호로 전송된 영상 클립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한 가십 사이트의 소셜 미디어 피드에 올라온 짧은 영상이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여자.
그 말들이 텅 빈 머릿속을 의미 없이 맴돌았다. 그녀가 그 여자라면,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침실 문이 딸깍 소리를 내며 열리고, 복도의 불빛 한 줄기가 바닥을 가로질렀다.
“서리야? 자기야, 왜 불을 다 끄고 있어?”
익숙하고 능숙한 걱정이 묻어나는 강태준의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메인 조명이 깜빡이며 켜지자, 나는 갑작스러운 밝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발소리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비싼 가죽 구두가 마룻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내 휠체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가운 손을 내 이마에 얹었다.
“몸이 축축하네. 아파? 약 먹을 시간 놓쳤어?”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내 시선은 그의 잘생긴 얼굴에 어린 걱정스러운 주름을 좇았다. 이 남자는 몇 주 동안 내 병원 침대 곁을 지켰다. 참을성 있게 밥을 먹여주고, 몸을 씻겨주고, 망가진 내 몸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속삭여주던 남자였다. 그는 혁신적인 햅틱 VR 게임인 ‘아르카디아 크로니클’을 오직 나를 위해, 내가 다시 산을 오를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내 다리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내가 강해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저 무대 위의 남자, 방금 다른 여자에게 평생을 맹세한 남자는… 내 강태준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알던 강태준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주다희 씨, 당신한테 어떤 사람이야, 태준 씨?”
그는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영상을 보자 그의 미소가 흔들렸다. 그의 눈에 스친 한순간의 당황은 이내 지친 듯한 짜증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아, 진짜. 또 이거야?”
그는 한숨을 쉬며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자기야, 내가 말했잖아. 그분 부모님이 우리 회사 주요 투자자라고. 따님 빨리 안정적인 사람 만나 정착하라고 압박이 심해서, 나한테… 대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거야. 그분들 눈속임용으로 잠깐 가짜 연애하는 척하는 거지. 전부 비즈니스야.”
주다희. 그가 석 달 전 나를 위해 고용했던 재활치료사. 내가 독립성을 되찾도록 돕기로 되어 있던 사람.
나는 그를 지켜보며 침묵했다. 그의 첫 반응, 그 당황은 너무나도 진짜 같았다.
내 눈에서 의심을 읽었는지, 그는 허둥지둥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봐.”
그가 내 얼굴 앞에 화면을 들이밀었다.
“여기 우리 문자 내용이야. 다 있어. 발표 계획 짜는 거, 그쪽 집안 홍보팀이랑 조율하는 거. 이건 그냥 게임이야, 서리야. 회사 차원의 게임.”
나는 메시지들을 훑어보았다. 그럴듯해 보였다. 심지어 딱딱하기까지 했다. 비즈니스 용어와 일정 메모로 가득했다. 내 가슴속에서 얼음덩이처럼 굳어 있던 심장이 아주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알았어.”
나는 속삭였다. 싸울 기운이 빠져나갔다. 피곤했다. 고통도, 의심도, 이 방의 네 벽도 모두 지긋지긋했다.
그는 안도하는 듯 어깨에 힘을 뺐다. 그는 나를 끌어안고 내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맹세할게, 서리야.”
그가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뿐이야. 언제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어.”
나는 그의 품에 기댔다. 익숙한 그의 향수 냄새가 나를 감쌌다. 나는 그를 믿고 싶었다. 믿어야만 했다.
“일으켜 줘.”
새로운 결심이 내 목소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걷는 연습하고 싶어.”
그의 얼굴이 내가 사랑에 빠졌던 그 구원자의 미소로 환하게 빛났다.
“물론이지, 내 사랑.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그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은 내 허리를 단단하고 강하게 받쳤고, 그의 움직임은 조심스럽고 능숙했다. 나는 시험 삼아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다리가 떨렸지만 버텨주었다. 우리가 방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는 움찔하며 휴대폰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뺐다.
“그냥 받아, 태준 씨.”
나는 벽에 기대며 말했다.
“일이겠지.”
그는 고마운 표정을 짓고는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으며 문을 부드럽게 닫았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벽을 밀었다.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내 움직임은 점점 더 안정되고 자신감이 붙었다. 진짜 미소,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짓는 미소가 내 입가에 번졌다. 할 수 있다. 나는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방을 가로질러 문까지 갔다.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눈에 비친 자랑스러움을 보고 싶었다. 나에 대한 그의 믿음, 우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내 손가락이 차가운 문고리에 닿는 순간, 복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숙한 온기가 모두 벗겨진,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알아, 다희야, 안다니까. 사랑해, 정말로. 하지만 그 감정과는 달라. 내가 어떻게 널 떠나겠어?”
내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 여자가 영상을 봤어. 진정시켜야 했지. 걱정 마, 내 말 믿었으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응, 약사한테 이미 말해뒀어. 내일 진통제는 진정제 부작용 있는 저용량으로 바꿔놓을 거야. 회복 속도를 딱 적당히 늦춰주겠지. 우리한테 시간이 조금만 더 필요해.”
“아무도 우리 사이 모를 거야. 약속해.”
회차 2
강태준의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유리 조각이 되어 내 뇌리에 박혔다. 방금 전의 온기는 사라지고,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오싹한 냉기가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 내 피를 진창으로 만들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나는 벽을 따라 미끄러져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뜨겁고 소리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단순히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었다. 몇 달 동안 그녀와 함께였다.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내가 자신의 세상 전부라고 말하는 동안, 그는 내 재활치료사와 잠자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약… 그는 의도적으로 나를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의존적으로. 그가 우리의 집이라고 부르는 이 집에서, 내 몸이라는 감옥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통스럽게 휠체어로 기어갔다. 내 움직임은 서툴고 필사적이었다. 나의 집. 나는 방을 둘러보았다. 벽을 따라 설치된 맞춤형 안전 손잡이, 낮게 설치된 전등 스위치, 정원으로 이어지는 휠체어 램프. 그는 이 모든 개조를 자신의 불멸의 사랑의 증표처럼 내놓았었다. 그의 헌신에 대한 증거라고.
“네가 다시는 힘들어하지 않을 세상을 만들어줄게, 서리야.”
그는 진심 어린 눈으로 맹세했었다.
이제 그의 약속은 씁쓸한 농담이 되었다. 이것은 사랑으로 지어진 세상이 아니었다. 거짓으로 지어진 새장이었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침실로 돌아갔다. 부드러운 모터 소리만이 숨 막히는 정적 속 유일한 소음이었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출근하기 전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내 피부에 낙인처럼 느껴졌다.
“다희 씨 오늘 개인 사정으로 쉰대. 그래서 당신 재활 세션은 취소했어. 오늘은 그냥 쉬어, 알았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소리치고 싶은, 그의 잘생긴 거짓된 얼굴을 할퀴고 싶은 충동이 내 안에서 물리적인 힘으로 들끓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삼키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태준 씨.”
현관문이 딸깍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 나는 욕실로 가 그가 입 맞췄던 이마를 피부가 벗겨지고 진물이 날 때까지 문질렀다.
그러고 나서, 나는 보석함에서 작은 벨벳 상자를 찾아냈다. 안에는 섬세한 백금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가 청혼했던 절벽의 좌표가 새겨진, 우리의 첫 기념일에 그가 맞춰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작은 상자에 담아 그의 사무실 주소를 적고 택배를 불렀다. 한 시간 후, 그것은 사라졌다.
다리가 쑤셨지만, 나는 억지로 일어섰다. 나는 고통스러운 걸음으로 한 걸음씩, 방구석에 놓인 ‘아르카디아 크로니클’ VR 포드로 걸어갔다. 번쩍이는 미래적인 모습. 나의 성역. 그의 창조물. 그 아이러니가 가슴에 물리적인 무게로 얹혔다.
나는 기기에 몸을 묶었다. 익숙한 깨끗한 전자제품 냄새와 재활용된 공기가 폐를 채웠다. 시스템이 부팅되고 내 의식이 가상 세계와 동기화되면서, 그가 이 기기를 처음 공개했던 날이 떠올랐다.
“네가 언제나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나의 발키리.”
그가 속삭였었다.
‘아르카디아’에서 나는 휠체어에 앉은 망가진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랭킹 1위 플레이어, ‘발키리’였다. 검술로는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는 전설. 내 가상 신체는 강하고, 빠르고, 온전했다. 햅틱 슈트는 내 신경 자극에 반응하여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여기서 나는 운동의 짜릿함, 완벽하게 성공한 막기의 스릴, 불가능한 협곡을 뛰어넘을 때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실제 다리는 약할지 몰라도, ‘아르카디아’에서는 내 시냅스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작동했다. 내 반응 시간은 더 빨라졌고, 감각은 더 날카로워졌다. 이 게임은 주다희의 재활 치료가 결코 해줄 수 없었던 방식으로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태준은 그것마저도 내게서 빼앗으려 했다.
몇 시간 후, 나는 몸은 지쳤지만 정신은 맑아진 채로 포드에서 나왔다. 날카롭고 정밀한 계획이 머릿속에 형성되었다. 2주 후에 ‘아르카디아’ 전국 e스포츠 챔피언십이 있었다. 오프라인 행사. 그것이 내 기회였다. 나는 우승할 것이고, 그 무대 위에서, 전 세계 앞에서, 강태준과의 모든 마지막 끈을 끊어버릴 것이다.
나는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게임 속에서 훈련하며 보냈다. 내 한계를 밀어붙이고, 손가락은 컨트롤러 위를 날아다녔고, 정신은 레이저처럼 집중했다.
며칠 후, 내 휴대폰에 두 개의 알림이 울렸다. 첫 번째는 주다희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었다. 그녀와 강태준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머리를 맞대고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의 팔은 그녀를 감싸고 있었고, 그의 손은 소유욕을 드러내며 그녀의 허리에 놓여 있었다. 캡션은 단순한 하트 이모티콘이었다.
두 번째 알림으로 화면을 넘기는 내 손이 떨렸다. 강태준의 음성 메시지였다.
“자기야.”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친밀한 애무 같았다.
“그냥 잘 있나 해서. 점심은 챙겨 먹었어? 밥 거르지 마, 알았지? 사랑해.”
그 극심한 감정의 채찍질에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나는 서툰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더듬거리며, 앱을 닫기 위해 화면을 몇 번이나 찔렀다.
그는 그날 밤 집에 오지 않았다. 자정 무렵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투자자들과 회의가 늦어져서.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그리고 제발, 내가 한 말 기억해. 운동 너무 무리해서 하지 마. 몸이 제 속도대로 회복할 시간을 줘야 해.’
씁쓸하고 조롱 섞인 미소가 내 입술을 비틀었다. 그는 동시에 두 여자를 사랑할 수 있었다. 그는 숨 쉬듯 거짓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성인군자처럼 들릴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나를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회차 3
한서리 POV:
나는 휴대폰을 침대 위로 던지고 다시 ‘아르카디아’에 몰두했다. 현실 세계는 기만의 늪이었지만, 이곳의 규칙은 간단했다.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더 똑똑하게. 이기거나 지거나. 챔피언십을 위한 내 계획은 내 생명줄이었고,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단단한 것이었다. 게임 최고 플레이어인 ‘발키리’로서, 내 편지함은 고레벨 레이드 파티 초대장으로 넘쳐났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혼자 훈련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때, 무시할 수 없는 알림이 시야에 번쩍였다. ‘파티에 강제 소환되었습니다.’
내 가상 아바타가 돌로 된 방에 나타났다. 공기는 디지털 오존 냄새로 가득했다. 내 맞은편에는 반짝이는 분홍색 갑옷을 입은 플레이어가 서 있었다. 나는 즉시 그녀를 알아봤다. 주다희. 그녀의 게임 닉네임은 ‘달리아’였다. 창의적이기도 하지.
“발키리! 와주셔서 정말 기뻐요.”
그녀가 역겨울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로 지저귀었다.
“태준 씨가 당신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요. 정말 멋진 남자 아니에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플레이어가 그녀 옆에 나타났다. 그는 희귀한 흑요석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주다희의 분홍색 갑옷과 완벽한 한 쌍이었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기괴한 판타지 파워 커플을 흉내 내고 있었다. 한쪽 발에서 다른 쪽 발로 체중을 옮기는 아주 작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버릇이 그의 정체를 드러냈다.
강태준이었다.
내 양손이 주먹으로 쥐어졌다. 나는 재빨리 그의 플레이어 프로필을 열었다. 그의 게임 닉네임은 ‘A’였다. 그의 파티 기록은 지난 3개월 동안 오직 ‘달리아’와만 팀을 이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3개월. 그녀가 내 재활치료사였던 내내. 그가 내 얼굴을 보며 거짓말을 했던 내내.
차가운 손이 심장을 쥐어짜 숨쉬기 힘들게 만들었다. 나는 그들의 공유된 업적을 훑어보았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스스로 고문하는 목록이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연인의 도약’ 퀘스트를 완료했다. 악명 높은 커플 전용 퀘스트로, 플레이어에게 한 쌍의 반지를 보상으로 주었다. 나는 그에게 나와 함께 하자고 부탁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는 항상 일 때문에 너무 바쁘다고 둘러댔었다.
로그아웃하고 싶었다. 머리에서 신경 센서를 뜯어내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주다희의 목소리가 나를 멈춰 세웠다.
“우리 ‘고르곤의 소굴’을 공략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가짜 친절함이 뚝뚝 묻어났다.
“최종 보상은 ‘피닉스의 눈물’이에요. 태준 씨가 말하길, 플레이어의 신경-햅틱 피드백을 영구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대요. 당신의… 상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녀는 내 회복을 당근처럼 내 눈앞에 흔들고 있었다. 피닉스의 눈물은 전설적인 아이템, 단 한 번만 드롭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재활 기간을 몇 달, 어쩌면 1년까지도 단축시킬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필요했다.
“좋아.”
나는 쏘아붙였다.
“가자.”
레이드는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갈수록, 나는 강태준이 지속적으로 주다희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나를 노출시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르곤의 꼬리가 내 등을 가로질렀고, 실제적이고 타는 듯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햅틱 슈트는 현실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강태준 자신이 주장했던 설정이었다. “뇌가 신경 경로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이제 그것은 그가 나를 향해 사용하는 무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최종 보스에 도달했다. 나는 그것의 공격 패턴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석화 시선을 피했고, 내 검은 은빛 섬광을 그리며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고르곤의 체력은 아주 조금 남아 있었다. 바로 지금이었다.
갑자기, 내 캐릭터가 얼어붙었다. 반짝이는 빛의 감옥이 나를 둘러쌌다. ‘신성한 정지’ 마법. 고레벨 성기사만이 시전할 수 있었다. 강태준의 직업.
나는 갇혔다. 고르곤이 달려들어 내 아바타의 어깨에 송곳니를 박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고통은 극심했다.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환상이 느껴졌다. 강태준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옆으로 비켜서며 주다희를 위한 길을 열어주었다.
“끝내, 자기야.”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다희는 킥킥 웃으며 그녀의 작고 빛나는 단검을 고르곤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괴물은 황금빛으로 흩어지며 공중에 피닉스의 눈물을 남겼다.
내 아바타가 붉은 픽셀을 토해냈다. 현실 세계에서 내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차가운 땀으로 축축했다.
“왜?”
나는 게임 속에서도, 내 침실에서도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주다희는 우아하게 걸어와 피닉스의 눈물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무릎 꿇은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연민과 승리감이 완벽하게 뒤섞여 있었다.
“어머, 바보 같긴. 아직도 모르겠어? 그는 날 사랑해. 날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사람이야.”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쳐냈다.
“눈물 내놔.”
나는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얻은 거야.”
“미안.”
그녀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나한테 귀속됐어. 교환 불가야.”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나는 다시 기침을 했고, 더 많은 피가 내 가상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VR 포드의 진단 시스템에서 경고음이 귀에 울렸다. ‘사용자 생체 신호 위험. 3초 후 긴급 로그아웃 강제 실행… 2… 1…’
내 의식이 게임에서 끌려 나오는 동안,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주다희의 역겨운 목소리였다.
“아, 태준 씨? 작년에 딴 그 챔피언십 트로피 기억나? 당신의 발키리를 위해 디자인했다고 했던 거. 내 장식장에 두면 훨씬 더 예쁠 것 같아.”
그리고 강태준의 대답, 이미 산산조각 난 내 심장을 관통하는 말뚝이었다.
“물론이지, 내 사랑.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내 눈이 감겼다. 의식을 잃어가는 동안, 한 줄기 눈물이 땀으로 젖은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