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30분 뒤.
강노을은 샤워를 마치고 욕조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피부가 상아처럼 부드럽고 따스했으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자태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복사꽃을 닮은 눈은 한번 깜박일 때마다 그윽한 눈빛이 넘실거려, 마치 정을 품은 봄날의 연못 같았다.
스물다섯, 이제 막 초로에 접어드는 나이였지만, 다행히 시간은 그녀의 얼굴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이런 얼굴을 하고서 원망에 가득 찬 여인처럼 스스로를 동정하고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넋을 잃고 있던 강노을은 습관적으로 오른쪽 다리를 디뎠다.
하지만 그녀는 그 다리가 다친 다리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방수를 위해 다리에 랩 반 통 이상을 칭칭 감았는데,
랩이 너무 꽉 조여 피가 통하지 않아 다리가 마비된 상태였다. 힘을 주지 못하고 바닥에 발을 내디딘 그녀는 그대로 미끄러졌다.
"악!"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지른 그녀가 손을 허공에 휘저었지만,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타일 바닥과 친밀한 접촉을 할 뻔한 순간, 갑자기 문이 열렸다.
정장을 입은 배선우가 문 앞에 나타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강노을은 허리가 조여 드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새 그에게 공주님 안기로 들려 있었다.
배선우가 이 시간에 집에 돌아올 줄 몰랐던 강노을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자신이 아직 알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빨개지며 가슴을 가렸다.
결혼 후 처음으로 이렇게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다니, 강노을은 어색함에 발가락이 오그라들 지경이었고, 몸까지 저도 모르게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배선우는 아래로 시선을 내리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별로 볼 것도 없네."
강노을은 부끄러움과 분노에 찬 목소리로 반박했다. "배 회장님은 워낙 보신 게 많으시니, 눈에 안 차시는 게 당연하겠죠."
그녀는 C컵 가슴을 가지고 있었고, 풍만하다고 할 순 없어도 안설영 같은 절벽에 비하면 압승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글래머러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이 없을 땐, 아무리 몸매가 좋아도 사랑하는 사람의 빨래판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배선우는 문 뒤에 걸려 있는 가운을 대충 그녀의 몸에 걸쳐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강노을, 너 한밤중에 이혼 합의서를 보내더니, 내가 집에 돌아와 네 알몸을 보게 하려고 그런 거야? 내가 일이 있어 집에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는데, 기어이 이렇게 사람을 들볶아야겠어?"
그의 찌푸려진 미간을 본 강노을은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그녀에게 항상 참을성이 없었다.
그녀는 이혼이나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혼 2년여 만에 처음으로 이혼을 입에 올렸지만, 그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도 없고 그저 그녀가 생떼를 부린다고만 생각했다. 마치 그녀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처럼.
다친 다리도 신경 쓰지 않고 강노을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내려주세요."
배선우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마치 김밥처럼 랩으로 칭칭 감긴 그녀의 다리를 훑어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다리는 왜 그래? 이게 네가 기를 쓰고 나를 집에 돌아오게 만든 이유야?"
그의 말에 강노을은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그는 관심을 끌려다 실패하자, 일부러 그를 집으로 불러내 동정심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이나 지어냈다. "시술 받았어요. 물 닿으면 안 된대서요.
""갑자기 웬 시술?" 배선우는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고 그녀를 안은 채 밖으로 나가며 무심하게 물었다.
그의 몸은 넓었고, 얇은 셔츠 너머로 뜨거운 체온과 가슴 근육의 윤곽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런 애매한 분위기가 모든 것을 끝내기로 결심한 강노을을 견딜 수 없이 짜증 나게 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한 톤 높였다. "허, 배 회장님께서 언제부터 이런 사소한 일까지 관심을 가지셨죠?"
배선우는 그녀가 이렇게 가시 돋친 말투로 말하는 모습은 처음이라 도리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 아내니까, 당연히 신경 써야지.
""그래요?" 강노을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하지만 전 회장님이 저를 아내로 생각하신 적 없잖아요. 아마… 제가 죽어도, 회장님은 바로 알지 못하실 거예요."
결국, 그때 배선우는 그의 마음속 첫사랑과 함께 있느라 그녀의 도움 요청조차 귀찮아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말에 배선우의 눈에 의외라는 빛이 스치더니, 이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화를 내? 내가 오후에 일이 있어서 네 전화를 못 받은 것 때문에 그래? 강노을, 사람이 만족을 알아야지. 내가 요즘 너무 오냐오냐했더니, 기어오르네?"
강노을은 그의 말에 멍해졌다. 기어오른다니?
그래, 두 사람의 결혼은 결코 공평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돈 때문에 결혼을 팔아넘긴 사람일 뿐이다.
원래 각자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계약 결혼이었지만, 하필 그녀가 마음이 움직여 버렸다.
감정 싸움에서는 먼저 마음을 준 사람이 지는 법이다.
배선우가 자기는 잘못한 게 없는데 그녀가 괜히 트집이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강노을은 강한 질식감이 밀려왔다.
"내려달라고 했잖아요!" 강노을은 고개를 돌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배선우는 대꾸 없이 그녀를 안고 침대 옆으로 가더니, 예고도 없이 갑자기 손을 놓았다.
갑작스러운 무중력감에 강노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무의식적으로 그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함께 침대 위로 쓰러졌고, 그녀의 몸에 걸쳐진 가운은 조금만 움직여도 흘러내릴 듯 위태로워, 그야말로 걸치나 마나 한 수준이었다.
배선우는 그녀의 얼굴 옆에 손을 짚고 몸을 반쯤 일으켜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놔달라며? 근데 왜 또 붙잡고 안 놔?"
그의 봉황을 닮은 눈은 눈동자 색이 유난히 짙고 반짝여, 마치 별빛으로 가득 찬 호수 같았다.
강노을은 그 별빛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매번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그녀는 그가 아주 다정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그의 다정함은 오직 안설영에게만 향했고, 강노을에게 남은 것은 착각뿐이었다.
"재미없네요." 그녀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일으키려다, 무심코 어딘가에 닿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아랫배로 남자의 특정 부위가 시기 부적절하게 변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가만 있어. 안 그러면 확 덮쳐버릴지도 모르니까." 머리 위에서 남자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에 강노을은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역시, 남자는 하반신으로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감정이 없어도, 동물의 본능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배선우를 건드릴 용기가 없었다. 살짝 고개를 돌리고 몸을 꼿꼿하게 굳힌 그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강노을은 참다 참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비아냥거리며 쏘아붙였다. "볼 것도 없다면서요? 배 회장님은 왜 반응하는 거예요? 식성이 참 좋으시네요?"
말을 내뱉자마자 800을 상처주고, 1000을 자기에게로 돌아온 것을 깨달았다.
강노을은 후회했지만, 배선우는 화를 내는 대신 웃음을 터뜨렸다. "넌 내 아내잖아. 바꿀 수 없는 거라면,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지. 결혼해서 데려온 지 몇 년인데, 그냥 묵혀두기엔 좀 아깝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