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초예현 POV:

장례식장은 인파로 북적였다.

고인이 얼마나 존경받는 사람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한범준의 팔짱을 끼고 조심스럽게 홀 안으로 들어섰다.

고인의 영정 사진 앞에서 헌화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공세희 씨는 상복을 입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옆에서 그녀를 부축하고 서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공세희 씨는 고개를 들었다.

나를 발견한 그녀의 눈빛은 충격과 분노로 일렁였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한범준에게 달려들었다.

"오빠… 오빠는 대체 어디 있었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녀는 한범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한범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나를 향했던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없었다.

오직 공세희만을 위한 눈빛이었다.

그는 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예현아, 잠시만 저쪽에 가 있어줄래?"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나는 조용히 장례식장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혼자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조문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한범준과 공세희를 멀리서 지켜봤다.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

나는 그들에게 다가갈 자격이 없었다.

아니, 더 이상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조문이 끝나고, 공세희의 어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예현 씨, 와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따뜻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범준 씨와는 잘 지내고 있나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나는 애써 미소 지었다.

"네, 덕분에요."

"우리 사위가 예현 씨를 참 아꼈는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범준 씨가 우리 딸 곁을 지키겠다고 해서, 얼마나 안심했는지 몰라요."

나는 그녀의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

'사위?'

그녀는 이미 한범준을 사위로 여기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약속한 사이였다.

"예현 씨 같은 착한 아가씨가 범준이를 이해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속은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이해? 이해라니….'

나는 그저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 침묵을 공세희의 어머니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듯했다.

"예현 씨, 혹시 범준이한테 서운한 거라도 있어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나는 애써 대답했다.

"범준이가 얼마나 책임감이 강한 아이인지 예현 씨도 잘 알잖아요."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공세희가 지금 많이 힘들어해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범준이가 공세희 곁을 지켜주는 게 당연하죠."

내 말에 공세희의 어머니는 안심한 듯 미소 지었다.

"정말 예현 씨는 마음이 넓네요. 범준이에게도 제가 말해둘게요."

그녀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마음이 넓다니….'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그저 체념했을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한범준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예현 씨, 범준이가 예현 씨를 얼마나 아꼈는지 몰라요."

갑자기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예현 씨가 범준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범준이가 늘 말했어요."

그녀의 말은 내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나를 아꼈다고?'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를 아꼈다면,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갈 수 있었을까?'

내 눈은 흔들렸다.

"정말요?"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네, 그럼요. 예현 씨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범준이가 눈을 못 뗐어요."

그녀는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예현 씨의 디자인 실력을 칭찬하고, 예현 씨의 아이디어를 누구보다 높게 평가했어요."

그녀의 말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알던 한범준은 나와 공세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기적인 남자였다.

"범준이는 예현 씨를 정말 특별하게 생각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한범준의 다른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내가 그의 그림자로 지내는 동안, 그는 나를 정말 아꼈을까?

내 헌신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동시에 나를 존중하고 사랑했을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럼 왜 나를 버렸지?'

나는 그 질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랑했으면서, 왜 그렇게 쉽게 나를 포기했지?'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더 이상 그에게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의 사랑이 진심이었든 아니었든,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이미 끝났다.

영원히.

시간이 흐르고, 조문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한범준은 마지막까지 공세희 곁을 지켰다.

그는 공세희의 손을 잡고 흐느끼는 그녀를 위로했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그리고 조용히 장례식장을 나왔다.

차가운 밤공기가 나를 감쌌다.

나는 장례식장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곧 한범준이 차를 몰고 내 앞에 섰다.

나는 익숙하게 조수석 문을 열려 했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유리창이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차 안을 들여다봤다.

공세희 씨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빨개진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초예현 씨, 우리 오빠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마."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게 차갑게 명령했다.

"이제 그만 사라져 줘."

내 뒤에서 공세희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희야, 예현 씨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공세희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엄마는 가만히 있어! 오빠는 이제 내 남자라고!"

그녀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한범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침묵은 나를 더 아프게 했다.

그는 나를 외면했다.

아니, 나를 버렸다.

이것이 우리의 끝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내 감정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행복하세요."

내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나는 뒤돌아섰다.

더 이상 그들을 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정리했다.

나는 이제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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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한 그녀, 어린 시절 친구의 청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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