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7년 동안 권하준 전무의 그림자로 살며 그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납치범들이 내 목숨을 담보로 몸값을 요구했을 때, 그는 협상을 거부했다.

그가 나를 버린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짐승의 먹이를 먹으며 지옥을 견뎠다.

가까스로 탈출해 피투성이 맨발로 돌아온 나를 보며, 그는 안도 대신 미간을 찌푸렸다.

"역겨운 냄새가 나. 가까이 오지 마."

그는 걱정은커녕 내 몸이 차를 더럽힐까 봐 나를 발로 걷어찼다.

그의 약혼녀는 내 몰골을 비웃었고, 양부모님조차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알고 보니 납치범들이 요구했던 몸값은, 내 친부모님이 남겨주신 내 결혼 자금이었다.

그는 내 돈으로 내 목숨조차 구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잠든 사이, 나는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직전, 단단한 팔이 나를 받아냈다.

나를 구하러 왔던 유일한 사람, 설병현 경호팀장이었다.

나는 피 묻은 손으로 품에 있던 카드를 꺼내 그에게 쥐여주었다.

"이거, 제 결혼 자금이에요."

"팀장님 족보에 제 이름을 올려주세요."

제1화

한비연 POV:

나를 납치했던 괴한들보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버린 그가 더 잔인했다. 그 배신감은 올림픽대로 위를 피투성이 맨발로 걷는 고통보다 더 생생하게 나를 짓눌렀다.

일주일 만이었다.

세상이 온통 나를 향해 불을 뿜는 것처럼 느껴졌다.

구급차의 빨간 불빛, 경찰차의 파란 불빛, 그리고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밤하늘을 갈랐다.

나는 그 모든 빛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고통도, 슬픔도, 심지어 분노조차도.

내 안의 모든 감정은 이미 진흙탕 속에 파묻혀 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텅 빈 껍데기 같았다.

내게서 도망쳐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나를 버리고 떠나간 것인지 알 수 없는 영혼이 없는 채로.

"한비연 씨 맞으십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눈앞에 선 사람은 KW 그룹 경호팀장 설병현이었다.

그는 늘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지만, 오늘은 어딘가 초췌해 보였다.

나를 발견한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놀라움, 안도, 그리고… 슬픔.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항상 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림자 같았지만, 가끔씩은 내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나는 기억했다.

그가 권하준 전무의 지시에 따라, 나를 전무님 방에서, 서재에서, 심지어는 전무님 차에서 '정중하게' 끌어냈던 수많은 순간들을.

그때마다 그는 늘 무표정했지만, 나는 그의 눈빛 속에서 미묘한 불편함을 읽어냈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역겨운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전무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나를 향해 손짓했다.

저 멀리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서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차 안은 어둠에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안에 누가 있을지.

설병현 팀장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굳어 있었다.

나의 몰골을 직접 확인한 후인 것 같았다.

"한비연 씨, 괜찮으십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괜찮냐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맨발이었다.

피범벅이 된 발자국이 아스팔트 위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 발자국은 마치 내 몸에서 흘러나온 피의 흔적처럼 보였다.

피를 흘리는 발이 아팠지만, 그 통증은 내 안의 거대한 공허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고통쯤은 이미 익숙했다.

며칠 동안 겪었던 지옥 같은 시간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병현 팀장이 다가와 나를 부축하려 했다.

나는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가 나를 불쌍하게 여길까봐 두려웠다.

어쩌면 그는 내가 이렇게 돌아온 것을 권하준 전무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나를 버린 그에게는 차라리 내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테니까.

나는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권하준 전무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완벽했다.

그는 늘 그랬다.

나를 짝사랑하는 것은 내 몫이었고, 그는 그저 그 완벽함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

내가 사라진 일주일 동안, 그는 아마 난생 처음 느껴보는 평화를 맛보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 그림자가 그의 곁을 맴돌지 않았으니까.

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권하준 전무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이 공중에 멈췄다가, 이내 내게 향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니, 흔들린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듯이.

"누구…세요?"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차갑게 얼어붙은 칼날 같았다.

나는 내 이름을 말했다.

내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아서, 내가 말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 나는 그저 그의 곁을 맴도는 하찮은 그림자에 불과했으니까.

그는 늘 나를 그렇게 대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창밖의 풍경은 흐릿하게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내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느꼈다.

일주일 동안 씻지도 먹지도 못했다.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그는 코를 찌푸렸다.

불쾌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꼴이 이게 뭐야."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나는 그가 내 몰골이 보기 싫다는 뜻으로 한 말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전무님.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나를 감금했던 괴한들처럼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가 알 바 아니라는 듯이.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순해졌군. 유승연 씨의 말이 맞았어."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순해졌다고? 누구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뭘까. 유승연 씨의 말은.

그는 문득 손을 뻗었다.

내 몸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마치 차가운 칼날이 내 목을 겨누는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윽!"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는 내게서 나는 냄새를 맡은 듯,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더러운 냄새가 나."

그의 목소리에는 역겨움이 묻어났다.

나는 그제야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다시 한번 느꼈다.

역겨웠다.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차 바닥에 엎드렸다.

"차를 더럽힐까봐… 죄송합니다."

나는 그에게 애원했다.

그는 나를 발로 찼다.

"앉아!"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의 분노가 내게 향한 것인지, 아니면 내 몸에서 나는 냄새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내 무릎은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납치범들이 나를 무릎 꿇리고 때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내가 권하준 전무의 몸값 협상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화가 났다고 했다.

나는 그 모든 고통을 권하준 전무 때문에 겪어야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대로였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서 나는 악취를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는 들을 리 없었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읍…"

나는 간신히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나를 보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는 내게 건넸다.

"닦아."

그의 목소리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손수건은 너무나도 깨끗하고 하얬다.

내 손에 들린 손수건은 마치 내 몰골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도구 같았다.

나는 손수건을 꽉 쥐었다.

백미러 속 설병현 팀장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 얼굴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 몰골은 너무나도 추악했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차 안에 갇혀 있었다.

나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내 몸은 이미 마비된 듯했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의 차 안에 갇힌 채로, 그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회차 2

한비연 POV:

차는 익숙한 대저택 앞에 멈춰 섰다.

나는 뼈가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렸다.

권하준 전무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먼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문이 닫히고, 저택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씻고 내려와."

권하준 전무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렸다.

그는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로 향하는 동안, 나는 내 몸에서 나는 악취를 다시 한번 느꼈다.

역겨웠다.

나는 뜨거운 물을 틀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물줄기가 내 몸을 감쌌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보았다.

초췌하고 핼쑥한 얼굴, 핏발 선 눈동자, 그리고 온몸에 새겨진 상처들.

나는 그 모든 상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 몸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늙은 하녀가 새 옷을 들고 서 있었다.

"아가씨, 전무님께서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해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내게 흰색 실크 드레스를 내밀었다.

나는 그 옷을 거절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혹시… 제 방에 있는 옷 중에 긴팔 원피스 같은 거 있을까요?"

내 목소리는 힘없이 떨렸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음… 오래된 옷들이지만, 찾아보겠습니다."

그녀는 내 방으로 향했다.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내 방은 그대로였다.

마치 내가 일주일 동안 사라졌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그 방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얼마 후, 하녀가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검은색 긴팔 원피스가 들려 있었다.

"이게 제일… 무난한 것 같아서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원피스를 받아 들었다.

소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나는 그 원피스를 입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마치 학생 같았다.

나는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나는 명문대 입학 허가서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입학하지 못했다.

권하준 전무의 곁에 남기 위해서.

그때는 그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잃어버린 젊음과 기회들을 생각했다.

나는 하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내 진심 어린 감사에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예전의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녀를 하인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이제 그녀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어쩌면 그녀보다 못한 존재였을지도 몰랐다.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권하준 전무가 서 있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꼴이 이게 뭐야. 일부러 촌스럽게 입은 건가?"

그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촌스러워 보이나?

나는 그가 내가 그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 상처를 감추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 몸에 새겨진 끔찍한 흔적들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지나쳐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은 조용했다.

양부모님이 식탁에 앉아 계셨다.

두 분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양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는 유승연이었다.

권하준 전무의 비서이자, 그의 정략결혼 상대.

그녀는 심플한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지만, 목에는 값비싼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나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구, 한비연 씨가 무사히 돌아오셨네요. 회장님 사모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보십시오, 머리가 하얗게 세셨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위선이 가득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내가 가여운 피해자가 아니라 불효녀가 된 기분이었다.

양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유승연은 양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나는 울 수 없었다.

내 눈물샘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권하준 전무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무정한 년.'

양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앉아서 식사하자."

양어머니는 눈물을 닦고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비연아, 내가 네가 제일 좋아하는 해산물 수프를 준비했단다."

그녀는 내 손을 이끌어 자신의 옆자리, 양아버지와 나 사이의 자리에 앉혔다.

권하준 전무와 유승연은 맞은편에 앉았다.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그림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그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었다.

식탁 위에는 온갖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나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내 눈은 음식에 고정되었다.

나는 마치 야수처럼 음식을 먹고 싶었다.

손으로 집어먹고 싶었다.

납치범들은 내게 썩은 음식을 주었다.

그마저도 며칠 동안 먹지 못했다.

나는 나뭇잎을 씹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나는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천천히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유승연은 여전히 나를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우아하게 음식을 집어 접시에 담았다.

마치 자신이 얼마나 교양 있는 사람인지 과시하려는 듯이.

권하준 전무는 나를 역겹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양어머니가 그를 툭 쳤다.

그는 마지못해 내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었다.

나는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나는 전무님의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덜어 준 음식을 보는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욱, 웩-!"

나는 구역질을 멈출 수 없었다.

권하준 전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식당 구석으로 달려가 몸을 웅크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제발…"

나는 살려달라고 빌었다.

모두가 나를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양어머니는 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비연아, 너 혹시… 맞았니? 어디서 맞았어?"

양아버지가 권하준 전무를 데리고 내게 다가왔다.

양아버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연민이 서려 있었다.

권하준 전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어둡고 침울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왜 이제 와서 나를 걱정하는지.

납치범들은 나를 고문하면서 그들이 권하준 전무에게 전화했다고 했다.

몸값을 빨리 가져오지 않으면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그때는 왜 나를 신경 쓰지 않았을까.

나는 썩은 음식을 먹는 것이 고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짐승의 먹이를 먹었으니까.

나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내 목숨은 권하준 전무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는 나를 버렸다.

그는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외면했다.

그의 차가움이 나를 구역질하게 만들었다.

회차 3

한비연 POV:

저녁 식사가 끝나고, 양아버지는 나를 서재로 불렀다.

서재 안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양아버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차분하고 온화했다.

"비연아, 하준이를 아직도… 좋아하니?"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요.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진심이었다.

나는 지난 7년 동안 권하준 전무를 짝사랑했다.

그의 그림자처럼 그의 곁을 맴돌았다.

그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었다.

하지만 그 모든 세월은 결국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어쩌면 이번 납치 사건은 내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그를 사랑할 용기가 없었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죽음으로 이끄는 길이었다.

양아버지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준이의 아내가 될 수는 없겠지만, 너는 영원히 우리의 딸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하준이가 복이 없는 건지도 모르지."

양아버지는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는 내게 카드 한 장을 건넸다.

"이건 네 친부모님께서 남기신 거다. 네 결혼 자금으로 쓰라고 하셨지."

나는 카드를 받아 들었다.

카드의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었다.

나는 카드를 보며 생각했다.

이 카드의 금액은 납치범들이 요구했던 몸값과 같았다.

납치범들은 권하준 전무가 몸값을 지불하지 않자 나를 고문했다.

나는 과거, 납치범들에게 잡혀 있던 순간을 떠올렸다.

나는 그때 친부모님을 원망했다.

나를 버린 부모님을.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친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눈물을 참았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서재를 나섰을 때는 이미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내 방으로 향했다.

복도에서 권하준 전무를 마주쳤다.

그는 나의 방을 보고 있었다.

"어디 가느냐?"

그의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부드러웠다.

"유승연 씨가 오늘 밤 네 방을 쓸 거다. 너는 내 옆방으로 가라."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승연을 위한 배려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권하준 전무는 내가 싫다는 이유로 가장 먼 방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나의 방을 떠올렸다.

내 방은 옆방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비연."

그가 나를 불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왜 이렇게 순종적이지?"

그의 얼굴에는 비웃음과 걱정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하루 종일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군. 이상해."

그는 내게 다가왔다.

손을 뻗어 내 이마에 손을 얹으려 했다.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뒤로 뺐다.

손잡이를 붙잡았다.

내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는 나를 역겹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미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내일… 이사 갈 거예요. 아버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사? 왜?"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유승연 씨 때문에 그러는 거냐? 그럴 필요 없어."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요.

그는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나를 끌고 가장 동쪽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나는 양아버지에게 받은 카드를 꺼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돈 있습니다! 돈 있어요!"

나는 그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그는 놀란 듯 멈췄다.

나를 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의 얼굴이 내게 다가왔다.

나는 납치범들이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에게서 나는 악취를 참을 수 없었다.

"전무님… 제발…"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어색했다.

'오빠.'

내가 그를 부르던 다정한 호칭은 이미 내 입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제발 더 이상 찾아오지 마세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나는 그에게 애원했다.

그는 그제야 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나를 일으켰다.

내 몸은 중심을 잃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감쌌다.

그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진 듯했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 했다.

"부회장님! 긴급 화상 회의가 잡혔습니다!"

복도 문이 갑자기 열렸다.

유승연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놀란 듯 입을 가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

권하준 전무는 나를 보았다.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나를 내려놓았다.

"내 방에서 기다려."

그는 내게 명령했다.

그리고는 유승연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복도는 다시 어둠에 잠겼다.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마치 죽음의 문턱에서 도망쳐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승연은 늘 그랬다.

그녀는 늘 권하준 전무를 내게서 빼앗아 갔다.

나는 그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도망쳐야 했다.

나는 그를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다시 마주한다면 나는 아마 완전히 미쳐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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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짝사랑, 지옥에서 버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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