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고민훈은 굳은 얼굴로 오예진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이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예진아, 어때?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곁에 서 있던 오예원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김은별을 쳐다보며 거들었다. "민훈 오빠, 오빠네 집 하인 말이에요.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 감히 고씨 가문의 미래 안주인을 밀치다니요. 언니를 질투해서 일부러 밀친 게 틀림없어요. 정말 악독한 년이에요!"

오예진은 가련한 눈빛으로 고민훈을 쳐다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펼쳤다. "민훈 오빠, 김 아가씨를 혼내지 마. 김 아가씨도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걸 거야. 같은 여자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고민훈은 가슴 아파하며 말했다. "예진아, 왜 이렇게 착한 거야?"

그는 오예진을 안아 들더니 김은별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김은별, 너 진짜 실망이다."

말을 마친 그는 김은별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오예진을 안은 채 2층으로 올라갔다.

김은별은 해명하고 싶었지만 고민훈의 차가운 눈빛을 떠올리자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예원은 김은별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하찮은 년!"

오예원의 욕설을 들은 김은별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린 김은별은 오예원을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오예원, 가서 네 언니한테 물어봐. 남의 가정 파탄 낸 년이 누군지."

말을 마친 캐리어를 끌고 고씨 저택을 나섰다. 뒤에서 오예원이 아무리 욕설을 퍼부어도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여름 밤, 폭우가 쏟아졌다.

김은별은 홀로 비를 맞으며 걸었다. 눈물이 빗물과 뒤섞여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김은별은 낡은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여긴 그녀의 부모님이 부자가 되기 전 살았던 곳이다.

돌고 돌아 그녀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왔다.

김은별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아침.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장미진, 그녀의 절친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아악! 미친! 김은별, 뉴스 봤어? 그 년놈들 낯짝은 왜 그렇게 두껍냐?"

자기도 모르게 손끝이 떨렸다.

알림에 뜬 뉴스를 누르자 기사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고씨 그룹 고민훈 대표, 오예진 디자이너에게 청혼. 하늘을 아름다운 불꽃놀이로 밤하늘을 수놓다.>

'청혼...'

'아직 이혼 서류도 제출하지 않았는데...청혼이라니... 고민훈은 그렇게 급했던 걸까?'

그녀는 화면을 내려 기사에 첨부 된 사진을 확인했다.

마냥 다정해 보이는 청혼 사진, 그러나 김은별의 시선을 끈 것은 밤하늘을 장식한 불꽃이었다.

누군가 심장을 움켜 쥔 듯 커다란 통증이 밀려왔다.

불꽃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바로 그녀가 자신의 결혼식을 위해 직접 디자인한 바로 그 불꽃놀이었다.

하지만 고민훈은... 그녀의 작품을 다른 여자를 위해 써버렸고 그녀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김은별, 고씨 가문의 사모님은 너잖아. 다음 달에 결혼식을 올리고 네 신분을 공개하기로 하지 않았냐? 그런데 왜 갑자기 오예진 더러운 년이 고씨 가문의 안주인이 된 거야!"

'신분' 이라는 두 글자에 김은별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그녀가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미진아, 나 고민훈과 이혼할 거야."

정미진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혼? 고민훈이 너한테 이혼 하자고 하디? 그 자식이 빌어 먹을 불륜녀, 오예진에게 안주인 자리를 내주려는 게 분명해! 동생이네 마네 가깝게 지낼 때부터 알아 봤어. 설마 그 년놈들이 이미 잔 건 아니겠지?"

김은별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나도 몰라."

그녀는 정말 몰랐다. 고민훈과 오예진이 어디까지 갔는지.

"솔직히 궁금하지 않아. 미진아, 나 고민훈과 이혼하고 나면 진정한 내 모습을 다시 되찾을 거야. 내게도 꿈이 있어. 두번 다시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며 살지 않을 거고 두번다시 자질구레한 집안일에 빠져 살지 않을거야."

"은별아, 해성시에서 가장 큰 불꽃 디자인 대회가 곧 시작될 거야. 참가해 보는 건 어때? 내가 대신 신청해 줄게! 김은별, 넌 천재 디자이너야! 고민훈 그 쓰레기 곁에서 집사 노릇을 하다니! 그건 재능낭비라고. 이혼 할 거라며?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네 꿈을 쫓아."

정미진은 친구가 남자 하나 때문에 꿈을 포기 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

김은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정미진은 오히려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정말? 정말 대회에 참가 할거야?"

김은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미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라고, 은별아. 네가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면 고민훈 그 쓰레기 같은 자식은 땅을 치며 후회 할거야."

두 사람의 통화는 저녁까지 계속 되었다. 주된 내용은 고민훈을 향한 정미진의 저주와 욕설이었다.

"그 쓰레기 같은 놈은 언젠가 벌을 받게 될 거야..."

통화를 마친 김은별은 참지 못하고 다시 뉴스를 열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그녀의 마음을 찔렀다.

[고민훈과 오예진, 정말 잘 어울리지 않냐?

선남선녀가 따로 없어. 이런 걸 천생연분이라고 하는 거야.] [고대표는 돈도 많은데 얼굴도 잘생겼어. 심지어 로맨틱하기까지 해. 그런 고대표와 결혼하다니...전생에 우주를 구했나 봐.]

[오예진이 너무 부러워. 이렇게 사랑해 주는 남자가 있다니.]

김은별의 눈물 방울이 휴대폰 화면에 떨어졌다.

마침, 고민훈이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김은별, 적당히 해. 그리고 내일 함께 구청에 가야 해. 이혼 서류를 작성 해야 하니까. 1000억 줄게, 그 정도면 보상으로 충분하잖아.]

김은별은 화면에 묻은 눈물을 닦아 내고 문자를 작성했다.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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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렴치한 남편의 뒤늦은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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