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내 마지막 경고에 장예솔은 겁에 질려 한은태의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한은태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일 터였다. 예전의 나는 그저 그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바치던 어리석은 여자였으니까.
나는 그들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그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특히 장예솔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거짓된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빠… 나 무서워…." 장예솔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은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장예솔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분노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듯, 내 얼굴과 손에 들린 서류를 번갈아 봤다.
"장청하, 너 정말 나한테 이러는 거야? 우리가 함께 만든 회사잖아!" 한은태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비난이 담겨 있었다.
나는 픽 웃었다. "함께 만들었다고? 네가 술 마시고 계집질하는 동안, 나는 밤낮없이 기술 개발하고 특허를 냈어. 네가 회사를 망가뜨릴까 봐 회장님이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셨지. 감히 네가 '함께 만들었다'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나 있어?"
내 말은 그의 가슴을 꿰뚫는 칼날 같았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닥쳐! 감히 네가! 내가 네게 베풀어준 은혜를 잊은 거야?"
"은혜? 네가 나한테 베풀어준 은혜? 네가 나를 거둬준 건 너희 할아버지 덕분이었지, 네 덕분이 아니야. 그리고 그 은혜는 지난 10년간 내가 너희 회사를 위해 바친 내 청춘과 건강으로 이미 다 갚고도 남았어."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내 몸속에서 다시 통증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더 이상 추해지지 마. 내가 깔끔하게 끝내줄 때, 조용히 사라져." 나는 다시 한번 이혼 서류를 흔들었다.
한은태는 분노에 찬 눈으로 서류를 빼앗아 찢어버리려 했다. 그러나 나는 한 발짝 물러서며 여유롭게 말했다.
"그 서류는 사본일 뿐이야. 원본은 내 변호사에게 있어. 네가 찢든 말든 아무 상관없어."
그의 손이 공중에서 멈칫했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장청하, 너 정말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는구나."
나는 그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실망? 그가 나에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실망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내가 실망시킨 게 아니라, 네가 나를 버린 거야. 장예솔 따위한테 홀려서." 나는 의도적으로 장예솔을 쳐다봤다.
장예솔은 내 시선에 움츠러들며 한은태 뒤로 더 깊이 숨었다. 그 애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가녀린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완벽한 피해자 코스프레였다.
"오빠… 언니가 너무 무서워…." 장예솔이 흐느꼈다.
한은태는 장예솔을 감싸 안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장청하, 이 애는 아무 잘못 없어. 모든 건 나 때문이야. 그러니 이 애는 건드리지 마."
나는 그들의 역겨운 연극에 구역질이 났다. "아무 잘못 없다고? 네가 이 애가 어떤 짓을 했는지 알면, 그런 말 못 할걸?"
나는 순간적으로 복통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장청하, 더 이상 이러지 마. 제발…." 한은태는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나를 향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의 간청 따위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발? 네가 내게 '제발'이라고 말할 자격은 없어. 너희 둘 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마."
내 말은 마지막 통보였다. 한은태는 다시 한번 나를 노려봤다. 그의 눈에는 증오가 번뜩였다. 그는 장예솔의 손을 잡고 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붙잡았다. 내 몸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한은태." 내 목소리는 떨렸다. "정말… 이렇게 끝낼 거야?"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나를 향한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짜증과 분노만이 가득했다.
그는 내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네가 원하는 게 이거잖아! 이제 와서 무슨 후회라도 하는 거야?"
그의 말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나는 순간 휘청거렸다. 그의 냉정한 태도에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다.
내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 "그래… 잘 가. 너희 둘, 꼭 행복해야 할 거야."
내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곧바로 장예솔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쾅! 문 닫히는 소리가 온 집안을 흔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10년간의 어리석은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그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흘릴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눈빛은 단단하게 굳어졌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한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내 심장의 통증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 그 통증은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 손에 들린 이혼 서류 사본은 이제 내게 무기가 되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해야 했다. 그들에게 빼앗긴 내 삶, 내 가치, 내 시간. 모든 것을 되찾아야 했다.
나는 가장 먼저 내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지금 당장 이혼 소송을 진행해주세요. 그리고 한은태 대표와 회사 간의 모든 계약 관계를 철회하고, 제가 개발한 모든 핵심 기술 특허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해주세요." 내 목소리는 단호했다.
변호사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바로 내 지시를 따랐다.
나는 다음으로 한 씨 가문의 회장님께 연락했다. 회장님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그분께는 차마 내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청하야, 무슨 일 있니? 한은태 그 녀석이 또 무슨 실수를 한 건 아니지?" 회장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한은태 씨와 이혼하려고 합니다."
내 말에 회장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면서도, 내가 너무 방관했구나. 미안하다, 청하야."
회장님의 사과에 나는 울컥했지만, 애써 눈물을 참았다.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이제라도 제 자신을 찾으려 합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네 뜻대로 해라. 내가 뒤를 봐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회장님의 말에 나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약한 장청하가 아니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이 내린 도시는 차갑고 쓸쓸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새로운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마지막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한 가지 결심했다. 나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꿈을 키우는 여성 IT 인재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할 것이다. 내가 가진 기술과 재능, 그리고 남은 재산을 모두 그곳에 바칠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의 마지막 의미가 될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켰다. 재단 설립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내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이 순간만큼은 내 몸의 통증도, 마음의 상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새로운 삶을 위한 열정만이 가득했다.
그들이 나를 버렸듯이, 나 또한 그들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만의 빛을 찾을 것이다. 이 병든 몸으로도, 나는 여전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한은태, 장예솔… 너희는 나를 파멸시켰지만, 나는 너희 때문에 다시 태어날 거야."
나는 비장한 각오로 키보드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