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세 번째 결혼식이었다. 아니, 결혼식이 될 예정이었다. 웨딩드레스는 비극의 여주인공이 된 내게 억지로 입혀진 무대 의상 같았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끔찍한 연극. 내 약혼자, 강태민은 내 옆에 서 있었지만, 그의 손은 위태로운 친구 윤이현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갑자기 강태민은 윤이현을 데리고 제단에서 멀어졌다. 하객들로부터, 그리고 나로부터.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는 돌아와 나를 차에 억지로 태우고 경기도 외곽의 한적한 숲으로 향했다. 거기서 그는 나를 나무에 묶었고, 더는 창백하지 않은 윤이현이 내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나를 지켜주겠다던 남자, 강태민은 윤이현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나를 몇 번이고 때렸다.
그는 비를 맞으며 피 흘리는 나를 나무에 묶어둔 채 혼자 내버려 뒀다. 처음이 아니었다. 1년 전, 윤이현은 우리 결혼식장에서 내게 달려들었고, 강태민은 피 흘리는 나를 외면한 채 그녀를 감싸 안았다. 6개월 후, 그녀는 내 가장 친한 친구와 내게 ‘실수로’ 뜨거운 물을 부었다. 강태민은 윤이현을 달래기 위해 내 친구의 손목을 부러뜨리고, 내 그림 그리는 손마저 망가뜨렸다. 내 커리어는 끝이었다.
숲속에 버려진 나는 추위에 떨며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안 돼. 여기서 죽을 순 없어. 나는 잠들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부모님. 우리 가족의 사업. 그것만이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병원이었고, 엄마가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목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오래전 외워둔 국제전화 번호를 눌렀다. “서아라예요.” 갈라진 목소리가 겨우 나왔다. “결혼, 동의할게요. 우리 가족의 모든 자산을 보호를 위해 그쪽 계좌로 옮겨주세요. 그리고 우리를 이 나라에서 빼내 줘요.”
제1화
세 번째 결혼식이었다. 아니, 결혼식이 될 예정이었다. 순백의 드레스는 내가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비극적인 연극의 무대 의상처럼 느껴졌다.
내 약혼자, 강태민은 내 옆에 서 있었다. 내 손을 잡아야 할 그의 손은 윤이현의 팔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태민아, 나 숨을 못 쉬겠어.” 윤이현이 창백한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사람들이 다 쳐다봐. 저 여자가 날 쳐다보고 있어.”
그녀가 말하는 ‘저 여자’는 나였다. 언제나 그랬다.
강태민이 나를 돌아봤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익숙한 짜증과 거짓된 인내심이 뒤섞여 팽팽하게 굳어 있었다.
“아라야, 잠깐만. 이현이 좀 데리고 나가야겠어. 또 공황장애가 온 것 같아.”
이건 늘 똑같은 대본이었다. 절대 바뀌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윤이현을 데리고 제단에서, 하객들 앞에서,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는 그냥 떠나지 않았다. 성당 계단에 얼어붙은 채 서 있는 내 옆으로 그의 차가 멈춰 섰다.
“타.” 그가 명령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내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 손가락이 살을 파고들었고, 나는 조수석으로 끌려 들어갔다. 부드러운 실크 드레스가 부드럽지만 단호한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차는 몇 시간이나 달리는 것 같았다. 서울을 벗어나자 길은 빽빽한 숲으로 둘러싸인 비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그는 외딴 공터에 차를 세웠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강태민?” 내 목소리가 떨렸다.
“이현이가 스트레스를 좀 풀어야겠대.”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리고 넌 네 자리가 어딘지 배울 필요가 있고.”
그는 차에서 내려 내 쪽으로 오더니 나를 끌어냈다. 그의 손에는 밧줄이 들려 있었다.
“반항하지 마, 서아라.” 그가 경고했다.
그는 나를 커다란 떡갈나무에 밀치고 손목을 묶었다. 밧줄이 나무줄기를 휘감으며 단단히 조여졌다. 거친 나무껍질이 얇은 드레스 너머로 등을 할퀴었다.
몇 분 후, 다른 차가 도착했다. 윤이현이 내렸다. 더는 창백하고 겁에 질린 얼굴이 아니었다. 잔인한 미소가 그 얼굴에 뒤틀려 있었다.
그녀는 내게 똑바로 걸어와 뺨을 후려쳤다. 날카롭고 충격적인 아픔이었다.
“기분 좋네.” 그녀가 손을 털며 말했다. “근데 손목이 아프다. 난 너무 연약해서 이런 건 못 하겠어.”
그녀는 강태민을 향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태민아, 자기야. 나 손 아파. 나 대신해줄 수 있어? 응?”
그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내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깊은 염려로 부드럽게 풀렸다.
“물론이지, 이현아.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그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남자, 나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남자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다른 여자에 대한 차가운 의무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이현이 기분 상하게 한 벌이야.”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를 때렸다.
그의 손바닥이 내 뺨에 부딪혔다. 한 번. 두 번. 열 번. 매번 머리가 앞뒤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세상이 흐릿해졌다. 입안에서 피 맛이 났다.
그는 마침내 멈췄다. 숨을 약간 헐떡이며 만족스러워 보였다.
내 머리는 힘없이 축 늘어졌다.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는 흙과 내 피로 얼룩져 있었다.
모든 저항 의지가 사라졌다. 내 눈은 텅 비었다. 나는 끝났다.
강태민이 손을 뻗어 내 입가에 흐르는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 역겹도록 다정한 몸짓에 구역질이 났다.
“너도 알잖아, 이현이가 얼마나 약한지.”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내 스승이셨어. 난 그녀에게 빚을 졌어. 모든 걸 빚졌다고.”
그는 몸을 바로 세웠다. “나중에 데리러 올게. 이현이 기분이 풀리면.”
그는 차로 돌아가 의기양양한 윤이현을 품에 안아 조수석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들이 떠날 때, 윤이현은 어깨너머로 나를 돌아보며 작게, 승리의 손짓을 보였다.
그들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메스꺼움과 분노가 나를 덮쳤다. 기침을 하자 피가 하얀 드레스 위로 튀었다.
과거가 떠올랐다.
1년 전, 첫 번째 결혼식 시도. 우리가 제단에 서 있을 때, 하객이었던 윤이현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어 베일을 찢고 긴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었다. 강태민은 그녀에게 달려가 피 흘리는 나를 외면한 채 그녀를 달래며 속삭였다. 나는 얼굴에 흉터가 남을 뻔한 깊은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나는 전혀 운이 좋다고 느끼지 않았다.
6개월 후, 두 번째 결혼식. 우리는 더 작은 비공개 예식을 시도했다. 윤이현은 차를 끓이겠다며 끓는 물이 든 주전자를 들고 가다 ‘실수로’ 넘어지며 내게 물을 쏟으려 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수빈이가 나를 밀쳐내고 대신 팔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윤이현은 자신에게 몇 방울 튄 물에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강태민은 수빈이의 심각한 부상과 내 공포를 무시하고, 윤이현을 ‘폭행’했다며 수빈이를 벌했다. 내가 멈춰달라고 애원하는 동안 그는 내 앞에서 수빈이의 손목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윤이현을 달래기 위해, 그는 내 오른손을 차 문에 ‘실수로’ 찧었다. 내 그림 그리는 손. 나를 이 세대에서 가장 유망한 젊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 손이었다. 뼈는 산산조각 났다. 내 커리어는 끝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그에게 파혼하자고 말했다.
그는 내 부모님과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원했다.
“맹세할게, 아라야.” 그가 목이 메어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사랑해.”
나는 그때 그의 완벽하고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며 알았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씁쓸한 웃음이 내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이제 숲속에 홀로 남겨진 내 몸속으로 추위가 스며들었다. 하늘이 열리고 차갑고 거센 비가 쏟아져 내 찢어진 드레스를 적시고 머리카락을 얼굴에 달라붙게 했다.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시야가 가장자리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안 돼. 여기서 죽을 순 없어.
나는 내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날카로운 고통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깨어 있어야 했다. 살아야 했다.
부모님. 이런 내 모습을 발견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내가 사라지면 강태민이 우리 가족 사업에 무슨 짓을 할지 생각하니…
그것만이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하지만 추위는 무자비했다. 고통은 깊고 욱신거리는 통증이었다. 내 몸은 포기하고 있었다.
눈이 감겼다.
다음 순간 느낀 것은 추위가 아닌, 팔에 꽂히는 주삿바늘의 날카로운 고통이었다. 나는 따뜻하고 마른 상태였다.
천천히 눈을 떴다. 천장은 하얗고, 소독약 냄새가 났다. 병원이었다.
움직이려 했지만 몸이 비명을 질렀다.
“아라야? 세상에, 얘야, 깨어났구나!”
엄마의 목소리는 눈물로 젖어 있었다. 엄마는 걱정과 안도가 뒤섞인 얼굴로 내 침대 곁으로 달려왔다.
“다시는 엄마 이렇게 놀라게 하지 마.”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흐느꼈다. “너한테 무슨 일 생기면 엄마는 못 살아, 아라야. 정말 못 살아.”
나는 힘없이 엄마의 손을 쥐었다. 목이 따끔거렸다.
“엄마.” 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 핸드폰 좀.”
말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인상을 찌푸리며 침을 삼키려 했지만, 목구멍에 유리가 가득 찬 것 같았다.
엄마의 눈은 연민으로 가득했다. 엄마는 즉시 침대 옆 탁자에서 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더듬거렸지만, 내 결심은 확고했다. 오래전 외워둔 국제전화 번호를 눌렀다.
두 번의 신호음이 울린 후, 한 남자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주성혁 회장의 동생, 주성준이었다.
“네.”
“서아라예요.” 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결혼, 동의할게요.”
전화기 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건은,” 나는 고통을 참으며 덧붙였다. “우리 가족의 모든 자산을 보호를 위해 그쪽 계좌로 옮겨주세요. 그리고 우리를 이 나라에서 빼내 줘요.”
“동의합니다.” 저편의 목소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깊고 안정적인 소리는 내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이상한 위안이 되었다. “결혼식은 3일 후입니다. 모든 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한 가지 더요.” 내가 말했다. “직접, 와서 날 데려가 줘요.”
“그렇게 하죠.”
회차 2
전화가 끊겼다. 엄마는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또 결혼식을?” 엄마가 속삭였다. “아라야, 이번엔 정말 괜찮은 거니?”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할 기운도 없었다. 아직 모든 계획을 말씀드리진 않았다.
바로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강태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백합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차가운 공포가 나를 덮쳤다. 그가 여기 있으면 안 됐다. 지금은 안 됐다.
나는 엄마에게 겁에 질린 눈빛을 보냈다. 엄마는 즉시 알아차리고, 굳은 얼굴로 나와 문 사이를 막아섰다.
그가 알아선 안 돼. 나는 미친 듯이 생각했다. 그는 절대 나를 떠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를 가두고, 영원히 그에게 묶어둘 것이다. 그것이 그의 사랑 방식이었다.
강태민은 연극적인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병실에 들어섰다.
“아라야, 내 사랑.” 그가 부드럽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시작했다.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나는 몸을 긴장한 채 그를 쏘아봤다.
“이현이랑 나… 우리 내일 결혼해.”
그 말은 물리적인 타격처럼 나를 강타했다.
“그냥 보여주기식이야.” 그는 내 얼굴 표정을 보고 서둘러 설명했다. “그녀의 주치의가 제안한 거야. 그녀가 마침내 치유될 수 있도록 안정감을 주는 방법이라고. 그러고 나서 이혼하고 우리 다시 함께하는 거야. 제대로. 네가 원했던 모든 걸 줄게.”
그는 이해를 구걸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가 거기 있어 줘야 해, 아라야. 이현이의 들러리로.”
그 터무니없는 말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내 약혼자의 결혼식에서, 다른 여자의 들러리라니. 나를 괴롭혔고, 그가 괴롭히는 것을 도왔던 바로 그 여자의.
산산조각 난 줄 알았던 내 심장이 새롭고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그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장난감? 학대하고 나서 빈 약속으로 달랠 수 있는 애완동물?
귓가에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라야, 넌 내 세상이야. 내 유일한 사람.” 씁쓸한 거짓말이었다.
뜨겁고 순수한 분노가 나를 휩쓸었다. 나는 침대 옆 탁자에서 물 잔을 집어 그에게 던졌다.
“나가!”
그는 쉽게 피했고, 잔은 뒤쪽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방은 정적에 휩싸였고, 공기는 긴장감으로 무거워졌다.
“아라야, 이성적으로 생각해.” 그의 목소리는 화가 날 정도로 차분했다.
“결혼식은 내일이야.” 그는 내가 방금 그의 머리에 잔을 던지지 않은 것처럼 말을 이었다. “사람을 보내서 데리러 오게 할게.”
그는 이현이와의 관계를 정당화하면서 나를 족쇄에 묶어두고 싶어 했다. 세상이 그의 진짜 약혼자인 내가 그들의 결합을 축복하는 모습을 보길 원했다. 그것은 궁극적인 굴욕이었다.
“너희 둘 다 미쳤어.” 내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너랑 그 여자. 너희는 미쳤다고. 그리고 나는 너희의 치료제가 아니야.”
나는 머리 뒤에서 베개를 집어 힘껏 그에게 던졌다.
이번에는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 베개는 그의 가슴에 부딪혀 힘없이 떨어졌다.
“네가 입을 예쁜 드레스도 보냈어.”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 “라벤더 색. 네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잖아.”
그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 모든 게 끝나면, 내가 다 보상해 줄게. 약속해.”
“나가!” 나는 목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날것 그대로의 절박한 소리가 병원 복도를 울렸다.
그 후 며칠 동안, 내 병실은 그들의 역겨운 연극 무대가 되었다. 강태민과 윤이현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들은 내 침대 옆에 손을 잡고 앉아 결혼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며 내게 참여해달라고 애원했다.
윤이현은 순진무구한 척,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아라야, 제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한테 정말 큰 의미가 될 거야. 난 너무 무서워. 네가 거기 있으면 안심이 될 것 같아.”
그러고는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얕게 쉬며 쓰러질 것처럼 몸을 축 늘어뜨렸다.
간호사들과 다른 환자들은 혐오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 불쌍한 아가씨,” 그들이 속삭였다. “약혼녀라는 여자는 어쩜 저렇게 잔인하지.”
나는 그들의 이야기 속 악당이었다.
마침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이 찾아온 어느 날, 나는 윤이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나는 낮고 독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윤이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눈물을 터뜨렸다. “못 하겠어, 태민아! 저 여자가 날 이렇게 미워하는데 어떻게 너랑 결혼해! 그냥 다 취소하자!”
그녀는 히스테릭하게 울며 방을 뛰쳐나갔다.
강태민이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나를 향해 돌아섰다.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거야?” 그가 내 어깨를 잡고 으르렁거렸다. “그냥 잠깐만 참아줄 수 없어? 나를 위해서?”
“이 모든 게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서잖아! 그녀가 나아지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약속할게!” 그의 얼굴은 뒤틀렸고 눈은 광기로 번뜩였다.
“만약 그녀가 영영 낫지 않으면?” 내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잠시 주춤했다. “나을 거야. 나아야만 해.”
나는 지쳤다. 싸우는 데 너무 지쳤다. “그 여자나 쫓아가, 강태민.” 내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차가 다니는 도로로 뛰어들어서 내가 그 여자 죽음의 원인으로 몰리기 전에.”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는 나를 놓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방을 뛰쳐나갔다.
나는 텅 빈 문간을 바라봤다. 심장이 차갑고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가슴에 내려앉았다. 이 장소에 단 1초도 더 머물 수 없었다.
나는 퇴원하기로 결심했다. 새롭고 단호한 의지로 작은 가방을 쌌다.
병원 로비를 지날 때, 그를 보았다.
강태민은 안내 데스크 옆에 서서 얼굴에 크고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간호사들에게 작고 우아한 상자에 담긴 결혼 답례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결혼 축하드려요, 강 이사님!” 한 간호사가 감격하며 말했다.
피가 차갑게 식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았다.
새로운 메시지. 윤이현에게서 온 것이었다.
사진이었다. 깍지 낀 두 손의 사진. 그들의 약지에 똑같은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또 다른 사진이 있었다. 오늘 날짜가 찍힌 그들의 혼인 신고서였다.
결혼식은 내일이 아니었다. 오늘이었다. 그는 거짓말을 했다. 또다시.
회차 3
씁쓸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약속. 그는 내게 약속했었다.
나는 작은 여행 가방 손잡이를 꽉 쥐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로비 건너편에 있는 그를, 내 남편이 될 뻔했던 남자가 이제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축하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어머니, 엄격하고 현실적인 분이 우리에게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가문의 결합은 회사의 합병이야, 태민아. 사업에 좋은 일이지.”
그는 내 손을 잡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봐서 가슴이 아팠다. “아니에요, 어머니.” 그가 말했다. “저는 아라를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결혼식 날이 완벽했으면 좋겠어요. 5월 20일. 그날이 우리 날이 될 거예요.”
나는 왜 그 특정 날짜냐고 물었다. 그는 그저 신비롭게 웃었다. “서프라이즈야.”
나는 바보처럼 그날을 기다렸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바보처럼. 그리고 그날, 그는 윤이현과 결혼했다.
핸드폰을 쥔 내 손이 떨렸다. 이상한 안도감이 나를 덮쳤다. 적어도 나는 그와 어떤 서류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법적인 악몽을 피한 것이다.
한 간호사가 작고 정교한 사탕을 먹으며 내 옆을 지나갔다. “강 이사님은 정말 관대하세요.” 그녀가 동료에게 말했다. “이건 스위스에서 특별 주문한 초콜릿이래요. 엄청 비쌌을 거예요.”
그녀는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친절한 미소로 한 조각을 건넸다. “여기요, 하나 드세요. 행복한 날이잖아요.”
나는 받지 않았다.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강태민을 쳐다봤다. 그는 자신의 기쁨에 너무나 빠져 있어서 나를 보지 못했다. 그는 나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윤이현이 그의 옆에 나타났다. 심플한 흰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빛나 보였다. 그녀는 발끝으로 서서 그의 뺨에 수줍고 달콤한 키스를 했다.
그는 돌아서서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의 미소는 부드럽고 애정이 가득했다.
수간호사가 다가왔다. “그래서 큰 축하연은 언제예요? 우리 모두 아름다운 신부님이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해요.”
강태민이 환하게 웃었다. “다음 주입니다. 성대한 예식을 열고 전 세계에 방송할 겁니다. 제가 제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 세상이 보게 하고 싶어요.”
그는 윤이현의 손을 잡고 자랑스럽고 헌신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였다.
나는 돌아서서 병원을 나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라벤더색 드레스가 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가 그의 결혼식에 내가 입기를 원했던 바로 그 드레스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아래층 벽난로로 가져가 불을 붙였다.
불길이 섬세한 천을 핥으며 검은 재로 만들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이 타는 것을 지켜봤다.
그러고 나서 위층으로 올라가 옷장 뒤편에서 크고 무거운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강태민이 내게 준 모든 선물이 들어 있었다. 각각은 깊고 천상의 푸른색인 특별한 포장지로 싸여 있었다.
“왜 이 색이야?” 내가 한번 손가락으로 은색 별무늬를 따라 그리며 물었다.
그는 그때 내게 키스했다. “네가 내 하늘이니까, 아라야. 내 전부니까.”
그의 눈에 담긴 사랑, 그의 손의 온기가 떠올랐다. 모든 것이 다른 삶의 꿈처럼 느껴졌다.
나는 상자를 아래층으로 가져가 내용물을 불 속에 쏟아부었다.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기억들, 약속들, 거짓말들을 삼켰다.
과거는 재가 되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두 통의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는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집을 팔고 싶어요.” 내가 말했다. “즉시요.”
두 번째는 정원사였다.
“정원의 파란 수국을 모두 치워주세요.” 내가 명령했다. “전부 파내세요. 단 한 송이도 보고 싶지 않아요.”
그가 직접 무릎을 꿇고 흙 속에서 나를 위해 심었던 것이었다. “네가 웃을 때 네 눈 색깔 같아서.” 그가 말했었다.
더는 필요 없어. 나는 생각했다. 그도 필요 없어.
모든 것이 끝난 후, 깊고 심오한 피로가 나를 덮쳤다. 나는 텅 빈 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불안한 잠에 빠져들었다가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에 화들짝 깨어났다. 손길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강태민이 내 위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내 얼굴에서 몇 인치 떨어져 있었다. 그의 숨결에서 비싼 샴페인 냄새가 났다.
나는 그를 밀쳐내고 침대 반대편으로 기어갔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내가 쉿 소리를 냈다. “이제 유부남이잖아, 강태민. 이건 부적절해.”
나는 그가 아직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역겨운 기분으로 떠올렸다. 아침에 제일 먼저 자물쇠를 바꿔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메모했다.
그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아라야, 이러지 마.”
그가 다시 내 머리카락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조금만 더 참아줘. 이혼할게, 맹세해. 그리고 나서 세기의 결혼식을 올려줄게.”
그의 눈은 그가 항상 내게 보여주었던 그 강렬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완벽한 연기였다.
“네가 다쳤었잖아.”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알고 있어.”
갑자기 아래층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태민아! 태민아, 어디 있어? 나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윤이현이었다. 그녀가 그를 따라온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모든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히스테릭한 울음으로 높아졌다. “저 여자한테 돌아갈 거면, 나 자살할 거야! 지금 당장 할 거라고!”
집 밖으로 달려 나가는 발소리와 타이어가 끽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음에 잠이 깬 부모님이 내 방으로 달려오셨다. 그들은 집 밖으로 달려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이 드라마에 너무 지쳤다.
“자물쇠 바꿔주세요.” 내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교환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방을 나갔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세상이 사라지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