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김현빈의 시점:
나는 은혜를 집에 보내고 남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자, 정원의 문자를 받았다..
"현빈아, 너도 올래? 다들 같이 있어."
"그래. 금방 갈게."
나는 사무실을 나서면서 문자를 써 내려갔다.
민트 바는 정원의 소유였다. 거기는 이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 중 하나였고, 오늘 밤에 특히 붐볐다. 들어가자마자, 정원과 수빈이가 보였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지효는 만났어?" 내가 앞에 서자마자 묻기 시작했다.
"응." 나는 그에게 대답하며 바텐더에게 위스키 한 잔을 부탁했다.
"정말 이혼하는 거야?" 그는 더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맞아." 나는 불만스럽게 대답하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지효 얼마나 착한데, 우리 같이 자랐는데도 모르겠어? 너랑 이은혜는 참 독한 사람이네."
바텐더가 음료를 내 앞에 놓아주자, 난 천장으로 연기를 뿜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어제 그녀와 이혼 얘기를 하면서 갑자기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화하는 동안 그녀는 계속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유지했다. 3년을 보지 못한 사이에 그녀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소녀로 부터 성숙하고 나름 생각이 깊은 어른으로 자란 것 같았다.
차분한 태도의 그녀를 다시 보니 마음이 조금 답답했다.
"지효도 동의했어?" 정수빈이 궁금한 듯 물었다.
"응, 동의했어."
이쯤 되자, 나는 이 사람들을 만나러 온 것이 후회됐다. 나는 그냥 술만 조용히 마시고 싶었는데 이 자식들은 심란하게 만드는 질문만 하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말 은혜랑 결혼하는 거야?"
"응."
"진짜로? 은혜가 너를 구해줬다고 해서 네 행복까지 희생하려는 거야?" 나의 대답을 들은 수빈은 감정적으로 나왔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실수로 와인을 내 옷에 쏟았다.
"야!" 나는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쏘리." 정수빈이 즉각 사과했다.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그곳에 더는 앉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집에 가기로 생각하면서 기사에게는 가든 거리로 가 달라고 요청했다.
***
내가 도착했을 때, 집에는 불이 밝게 켜져 있었고, 열린 창문으로부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차가 차고에 주차되어 있었다.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방문한 것 같았다.
난 빠르게 문으로 걸어갔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안에서 문을 벌컥 열었다.
"어디에 있었니? 전화는 왜 안 받아?" 어머니가 다가와 나를 꾸짖었다.
"회의 중이었어요, 어머니."
"그리고 웬 술 냄새니? 술 마셨니? 세상에, 엉망이구나. 가서 옷 갈아입어." 그녀는 코를 찡그리며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는 할머니와 박지효가 보였다. 커피 테이블 위에는 과일과 사과 파이가 있었다.
"할머니." 나는 인사하러 가서 사과 파이 한 조각을 집어 들었지만 할머니는 내 손을 내려쳤다.
"손 대지 마라. 그건 지효 거야."
"현빈 씨, 무슨 일 있었어? 이리 와. 옷 갈아입어야지." 박지효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왔다.
"결혼한 지 그렇게 오래 됐는데 왜 아직도 현빈이를 이름으로 부르니?" 할머니는 박지효에게 물으며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호칭에 문제가 있나요?" 그녀는 몸을 멈추고 질문했다.
"너희처럼 젊은 부부들은 배우자를 '자기야' 같은 애칭으로 부르지 않니?"
그녀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목을 가다듬었다. "자... 자기야. 옷 갈아입는 거 도와줄게."
그녀는 나를 도와 양복 재킷을 벗겨주고 진심 어린 미소를 보였다.
"그래야지."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매우 만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는 박지효를 아주 좋아했다. 박지효가 해외에 가 있던 몇 년 동안 할머니는 그녀에 대해 내게 자주 물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잠시 후, 할머니는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빈아, 이번 주에 의사와 약속을 잡았다. 그때까지는 술 마시지 말아라. 정기 검진 받으러 가야 해."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건강 검진 받은 지 얼마 안 됐어요, 할머니. 아주 건강하대요."
"건강 검진을 또 받으라는 게 아니야. 좀 더 전문적인 검사란다. 몇 년이나 지났는데, 내 손자 손녀들은 어디 있지? 그리고 이건 절대로 지효 탓이 아니야. 네 탓이지."
박지효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씁쓸했지만, 또 웃고 싶은 것 같았다.
내가 변명을 하기 전에 핸드폰이 울렸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재킷을 들고 있던 박지효가 가슴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 명을 확인했다. 갑자기 바뀌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나는 은혜에게서 온 전화라는 것을 알았다.
"그 여자니? 오, 제발 좀!" 어머니가 소리쳤다.
나는 박지효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 들어 전화를 거부했다.
"이은혜니? 현빈아, 넌 이제 유부남이잖니. 왜 아직도 그 여자와 얽혀 지내는 거니? 지효한테 최선을 다 해야지. 이은혜가 웨딩 드레스를 입어보는 사진, 뉴스에서 봤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할머니가 잔소리를 했다.
"할머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전화는 왜 거절한 거냐? 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라도 있는 거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할머니한테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꿰뚫어 봤다.
할머니가 분노에 손이 떨기 시작한 모습을 보고 박지효는 재빨리 물 한잔을 따라드렸다.
"할머니, 현빈 씨가 해명할 거예요. 그러니까 급하지 마세요. 우선 먼저 현빈 씨 옷부터 갈아입게 해주세요." 박지효가 말하며 나를 위층으로 이끌었다.
"세 번째 캐비닛에 흰색 셔츠가 몇 벌 있어."
그녀가 깨끗한 셔츠를 가져오는 사이 난 정수빈 때문에 더러워진 셔츠를 벗고 맨몸으로 서 있었다. 정수빈, 이 자식.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때, 뒤에서 소름 끼치는 정적을 느껴졌다. 나는 뒤를 돌았다.
박지효가 거기 서서 내 셔츠를 한 벌 들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뭘 봐?"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급하게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번에야 난 그녀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소녀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보낸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꽃봉오리에서 섬세한 장미로 변했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떨리고 입술은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 일자로 꾹 다물어져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셔츠를 빼앗아 재빨리 입었다.
새 셔츠로 갈아입은 후, 우리는 함께 거실로 돌아갔다.
"나한테는 시간이 많지 않다, 현빈아. 왜 그냥 지효와 평화롭게 살 수 없는 거니? 왜 언제나 내 화를 돋우는 거냐, 응?" 할머니는 아직도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
"할머니, 다음에 오실 때는 전화하고 오세요. 제가 모시러 가면 되잖아요. 알겠죠?" 나는 아직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주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아니, 됐다. 넌 늘 바쁘잖니. 폐는 끼치고 싶지 않다. 그저 네가 우리 지효를 잘 대하는지 보고 싶은 것 뿐이야."
"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박지효가 말했다.
"그럼 다행이구나. 그나저나, 내일은 김 씨 그룹의 60주년 파티가 열리는 날이다. 현빈아, 지효가 파티에 입고 갈 수 있도록 아름다운 드레스를 사줘라. 저렇게 예쁜 아내를 둔 네가 얼마나 행운스러운지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또 나를 언짢게 하지는 말고."
"네, 할머니."
할머니와 엄마와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에야 중지시키고 그들을 보냈다.
그 상황에서 나는 큰 소란을 일으킬까 봐 이혼을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