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문하윤은 깜짝 놀랐다. 남자의 힘은 너무나도 강한 탓에 그녀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한편, 멀찍이 서 있던 맹유진은 줄곧 미소를 머금은 채 이 모든 광경을 즐기듯 바라보고 있었다.
문하윤의 옷이 거칠게 찢기며 볼록한 가슴이 드러나자 맹유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미묘하게 수그러들었다. '정말 좋은 밑천이야. 만약 여기서 일하게 된다면, 분명히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거야.'
바로 그 순간, 문하윤은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를 뽑아 들더니 망설임 없이 남자의 경동맥을 향해 깊숙이 찔러 넣었다.
남자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더니 목을 움켜쥔 채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방 안의 공기는 단숨에 얼어붙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나약해 보이던 여자가 이렇게 과감하게 반격할 줄은 몰랐다. 맹유진의 시선은 피가 번져가는 시체 위에 멈춰 있었다. 그녀는 가슴이 가빠르게 오르내리기 시작하더니 눈빛에는 처음으로 두려움이 서렸다. '그 사람은 인명 사고가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고작 이틀 만에 벌써 두 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어느새 침착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맹유진은 덜덜 떨려오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명령을 내렸다.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해? 어서 저 여자를 잡아와."
문하윤은 앞으로 힘껏 달려갔다. 그러나 그녀의 뒤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맹렬히 뒤쫓아오고 있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미끄러져 내렸지만, 그녀는 한 순간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거기 멈춰."
등 뒤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문하윤이 고개를 홱 돌리는 순간, 그만 발을 헛디뎌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누군가 단단하게 자신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찰나의 순간, 사방의 소음이 모두 사라진 듯 고요해졌다. 오직 그녀의 거친 숨결만이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잠시 후, 문하윤은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있는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 문하윤은 깜짝 놀라기 그지없었다.
고시우. 한때 그녀가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놀다가 매몰차게 차버렸던 남자였다.
그런 그가 지금, 바로 눈앞에서 문하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깊고 차가운 눈빛은 한겨울 밤하늘의 별빛처럼 서늘했는데 사람을 홀릴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감히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을 품고 있었다.
찬란한 불빛이 그의 어깨와 얼굴을 감싸며 선명한 윤곽을 드러냈다. 차갑고 고결한 기품, 태생부터 남다른 황태자의 기세가 흘러 넘쳤다.
게다가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엔 그 어떤 파동도 없었다. 무심하고, 낯설기만 할 뿐이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뒤에서 점점 더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문하윤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녀는 다급히 고시우의 손을 움켜쥐면서 간절히 속삭였다. "도와줘."
고시우는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문하윤의 말에 그의 입꼬리에 비웃음 같은 날카로운 곡선을 스쳤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손을 뿌리치듯 빼냈다.
고시우의 명확한 거부 의사에, 문하윤은 살짝 얼어붙고 말았다. '역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였어.'
바로 그때, 뒤쫓아오던 무리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일사불란하게 몸을 굽히며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고시우 씨."
그 순간, 문하윤은 깜짝 놀란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고... 고시우 씨?'
문하윤의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맹유진이 다급히 뛰어왔다. 또각또각 울려 퍼지는 하이힐 소리가 번쩍거리는 바닥 위에 울려 퍼졌다.
그때, 고시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맹유진이 발걸음을 멈추는 것이 문하윤의 시야에 들어왔다.
곧이어 맹유진은 몸을 굽혀 하이힐을 벗어 들더니, 맨발로 고시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사죄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하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습니다."
문하윤은 고개를 돌려 맹유진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왕처럼 당당하게 굴던 맹유진이 불과 한순간에 이토록 비굴하게 허리를 굽힐 줄이야.
한편, 고시우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알 수 없는 빛이 스치더니 이내 사라졌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는 길고 매끄러운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문하윤을 가리켰다. "저 여자도 네 부하야?"
맹유진의 눈빛에 난처함이 비쳤다. 그러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말에 고시우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시선을 살짝 내려 문하윤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제야 문하윤은 셔츠가 찢겨 나간 탓에 가슴이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서둘러 옷가지를 끌어 모아 몸을 가렸다.
고시우는 다시 시선을 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맹유진과 잠시 눈길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때, 맹유진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몸을 낮췄다.
이어서 고시우의 명령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저 여자를 내 방으로 데려와."
회차 3
문하윤은 거칠게 바닥에서 끌려 올라오더니 곧장 방 안쪽으로 던져졌다.
눈부신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빛이 그녀의 시야를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 본능적으로 문을 열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누군가가 문을 닫아버렸다.
문하윤은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곧 문 밖에서 들려온 맹유진의 목소리에 움직임이 멈췄다. "잘 들어. 고시우 씨가 너를 마음에 들어 한 건 네 복이야. 그분을 최대한 잘 모셔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말을 마친 맹유진은 발걸음을 옮겨 자리를 떠나버렸다.
문하윤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욕실 안에서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이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다란 통창 너머로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한눈에 들어왔고, 창가에 놓인 침대는 나른한 오후의 휴식을 위해 마련된 듯 보였다.
방은 호화로움과 동시에 아주 간결한 것이 그저 잠시 머무는 이들을 위한 공간임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 욕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문하윤이 고개를 돌리자 욕실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어 오르는 뜨거운 수증기가 그의 몸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허리에 걸친 가운은 느슨하게 매여 있었으나, 타고난 냉정하고 고귀한 기품은 조금도 가려지지 않았다.
머리카락 끝에 맺힌 물방울이 또렷한 윤곽의 얼굴선을 타고 흘러내리며 한층 더 관능적인 매력을 더했다.
헐겁게 여며진 가운 아래로 드러난 탄탄한 가슴은 은은하게 윤곽을 드러내며 완벽한 선율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시선은 깊고 차가운 것이 마치 사람을 단번에 얼려버릴 듯 서늘하고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고시우의 배경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는 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신과 같이 사소한 움직임조차도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흘러 넘쳤다.
한편, 문하윤은 그를 바라보다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에겐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다.
문하윤은 차갑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남자를 정복하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가 마음을 열어줄 때 차갑게 등을 돌려 절망에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그녀의 은밀한 쾌락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가 한때 버렸던 바로 그 남자를.
"이리 와." 낮게 깔린 남자의 냉혹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문하윤의 정신은 단번에 제자리로 끌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냉혹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문하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어졌다.
지나치게 차갑고, 한 치의 온기조차 없는 고시우의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문하윤이 멍하니 서 있자, 남자의 미간이 미세하게 찡그려졌다. "맹유진이 규칙을 가르쳐주지 않았어?"
문하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의 눈동자 속에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새로 온 거야?"
문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여기 아가씨가 아니야. 나는 법의관이야."
"법의관?" 고시우의 얼굴에 흥미로운 기색이 번졌다.
"알바라도 하는 거야?"
그 말에 문하윤의 눈가에는 얕은 분노가 번졌고, 시선은 흔들림 없이 고시우를 향했다.
"나는 맹유진이라는 사람한테 납치 당해서 이곳에 온 거야. 여기서 일하는 게 아니라고." 문하윤이 말을 마치기 바쁘게 고시우는 코웃음을 흘렸다. "사기꾼."
말을 마치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하윤에게 다가갔다. 굵은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더니 그녀를 강제로 탁자 위에 눌렀다.
문하윤은 온 힘을 다해 버티며 몸부림쳤지만, 고시우의 압도적인 힘 앞에 도저히 맞설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이곳의 아가씨가 아니야. 나는 법의관이라고!"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외쳤다.
그때, 고시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그래, 법의관이라고 치지 뭐."
그 순간, 문하윤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허탈감을 느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이 남자는 끝내 자신을 이곳에서 일하는 여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로 그때, 문하윤이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고시우는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이어 문하윤의 바지가 거칠게 찢겨 내려가더니, 단정한 검은색 속옷이 드러났다. 그러자 고시우는 단번에 그것마저 잡아당겨 발목까지 끌어내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