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소지연의 속마음을 눈치챈 진세리는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일단 지금은 이곳에서 푹 쉬고 있어. 저녁에 좋은 곳에 데려가 줄게."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깬 소지연은 제일 먼저 변호사에게 연락해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고 서명까지 마친 뒤 퀵서비스를 통해 허씨 그룹 대표실에 보냈다.

비서에게서 서류를 건네 받은 허시준은 이미 서명까지 끝낸 이혼 합의서를 확인하고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제멋대로 휘갈겨 쓴 서명은 마치 그에게 도발을 거는 것만 같았다.

허시준은 섬세한 손가락 움직임으로 서류 한쪽 모서리를 쥔 채 책상 위로 세게 내던졌다.

이혼 합의서가 집무 책상 모서리에 부딪쳐 둔탁한 소음을 냈다.

"소지연, 정말 대단하네."

그는 소지연이 순순히 이혼해 줄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녀가 먼저 이혼을 요구한 것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한발 물러서는 척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소지연을 다시 만난 건 업계 콘퍼런스 회장에서였다. 그녀는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자연스러운 컬을 넣어 가볍게 흩날리게 했다.

몸에 꼭 맞는 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소지연은 가슴 부분이 깊게 파여 선명한 쇄골을 드러냈고, 옅은 화장을 한 얼굴에 화려한 조명이 비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표정과 몸짓은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홀리기에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마치 그녀가 이번 콘퍼런스의 주인공인 것만 같았다.

허시준은 소지연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타난 그녀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뜨거운 시선을 느낀 소지연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허시준의 깊은 어둠이 넘실거리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연회장에 나타난 그의 온몸에서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다정하게 그의 팔짱을 끼고 선 주청미의 얼굴에는 모든 권력을 손에 넣겠다는 야망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주청미가 자신을 과시하듯 어깨를 한껏 펴고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본 소지연은 어처구니없는 실소를 터뜨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업계 선배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젊은 여인이 휘청거리며 다가오더니 손에 든 주스를 쏟고 말았다.

결국 미처 피하지 못한 소지연의 드레스에 주스가 튀었고, 그녀는 선배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얼룩을 지우려 했다.

"소지연 씨,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에요?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콘퍼런스에 소지연 씨 같은 가정주부가 참석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가정주부'라는 호칭이 소지연의 가슴을 후벼 팠다. 한때 그녀도 업계에서 마음껏 역량을 펼치며 활약했었지만, 사랑을 위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일을 포기해야만 했다.

다행히 아직 모든 것이 늦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와 능력이 있었다.

소지연은 조롱 가득한 눈빛으로 주청미를 가만히 응시했다.

소지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청미는 더욱 기세 등등하게 몰아붙였다.

"소지연 씨처럼 뻔뻔한 여자는 정말 처음 봤네요. 내가 영상도 보내줬잖아요. 어떻게 더 해야 허씨 가문의 부인 자리를 양보할 수 있겠어요? 주제도 모르고 남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당신 모습이 정말 역겨워 죽겠어요."

무감하던 소지연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내리더니 잔뜩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받아 쳤다. "주청미 씨만큼 뻔뻔하진 않아요.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꼬리 친 것도 모자라 본처를 찾아와 도발까지 하다니. 뻔뻔함으로 따지면 주청미 씨를 따라올 사람은 없지 않겠어요?"

소지연이 당장에 맞받아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주청미는 얼빠진 얼굴로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가 소지연을 도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늘 무시로 일관해왔다.

화를 억누르지 못한 주청미가 당장에 손을 번쩍 들어 소지연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

"우리 사이에 끼어든 불륜녀는 당신이야! 당신이 더러운 수법으로 시준 씨에게 약을 먹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허씨 부인은 나였겠지. 시준 씨가 당신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알기나 해?"

그런 주청미의 손을 단번에 낚아챈 소지연이 먼저 그녀의 뺨을 내려쳤다. "주청미 씨, 날 미워할 시간에 책이나 더 읽는 건 어때요? 입만 열면 무식한 티가 줄줄 흐르잖아요. 시준 씨가 아무리 날 미워해도, 허씨 가문의 사모님은 나예요."

주청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소지연에게 달려들며 악을 썼다. "뻔뻔한 년이 감히 날 때려? 내가 널 죽여버릴 거야. 시준 씨도 널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소지연은 틈을 놓치지 않고 발을 걸어 주청미를 넘어뜨렸다. "시준 씨가 왜 날 가만 안 둔다는 거죠? 두 사람이 날 먼저 죽이는지, 아니면 내가 쓰레기보다 더러운 두 사람을 먼저 업계에서 매장시키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요."

"허씨 그룹이 아무리 대단해도 여론 앞에서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다시는 내 앞에서 허튼 수작 부리지 마세요. 안 그러면 내 모든 것을 걸고 이혼 소송에 쏟아 부어 허시준의 재산을 빼앗을 테니까."

"결국 네가 노린 게 이거였군."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허시준의 목소리는 서리가 내린 것처럼 싸늘하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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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더욱 빛나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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