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하예진은 팔짱을 낀 채 비꼬는 눈빛으로 정하진을 훑어봤다.

"평소엔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나서?"

정하진은 담담하게 응수했다. "인터뷰 게스트의 사생활을 뒷담화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하예진은 짧게 코웃음을 쳤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너 심재현이랑 친하기라도 한 거야?"

정하진은 하예진의 앞으로 다가갔고 키가 한 뼘은 더 큰 탓에 기세부터 한 수 위였다.

"아니요, 안 친해요." 정하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람을 이렇게 함부로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 하나쯤은 있잖아요. 그런 일을 겪고도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솔직히 저는 그 의지가 존경스러워요."

하예진은 혀를 차며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정하진, 너 보기랑 다르구나? 네가 심재현 같은 스타일을 좋아할 줄은 몰랐네."

정하진은 잠시 말이 막혔고 눈앞에 심재현의 날카롭고도 잘생긴 얼굴이 아른거렸다.

심재현의 차가운 눈빛과 속을 알 수 없는 태도는 솔직히 정하진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심재현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날 그녀가 공황 증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억지로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심재현이 그녀의 대리 결혼을 받아들였기에, 그녀의 아버지도 무사히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정하진은 누군가 심재현을 모욕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 정하진의 반응이 재밌기라도 한 듯, 하예진은 입꼬리를 비틀며 한껏 신난 얼굴로 말했다. "근데 어쩌나? 너처럼 매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여자는 옷을 다 벗고 심 도련님을 꼬셔도, 눈길 한 번 못 끌걸?"

바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정하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심재현이 언제부터 문 앞에 있었던 거지? 방금 하예진이 한 그 모욕적인 말들을 다 들은 걸까?'

"NTV 방송국의 아나운서들이 이 정도였나요?" 심재현은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고 온몸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하예진은 심재현을 보자마자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심... 심 도련님... 죄송합니다. 계신 줄 모르고..."

해성시 최고의 상업 제국으로 불리는 심씨 그룹은 NTV 방송국에도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심재현이 장애를 지녔다 한들, 일개 아나운서 따위가 감히 그의 험담을 할 자격은 없었다.

조금 전 하예진과 함께 웃고 떠들던 이들도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하예진은 두려움에 조심스레 앞으로 다가가며 애써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우린 그냥 농담이었어요."

심재현은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매만지며 무심한 듯 정하진을 힐끗 살피고는 물었다. "저기 기상캐스터 분, 그쪽도 저 농담들이 웃겼어요?"

갑자기 이름 대신 호칭으로 지목 당하자, 정하진은 당황한 듯 흠칫했다. '내가 기상캐스터인줄은 어떻게 알았지?'

정하진은 곧장 마음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심재현은 싸늘해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사과해."

하예진은 급히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 도련님,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다시는..."

하지만 심재현은 단호하게 하예진의 말을 잘랐다. "저한테 하지 말고, 저 기상캐스터 분한테 사과해요."

정하진은 그 말에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재현이... 지금 내 편에 서준 거야?'

하예진은 정하진보다 더 놀란 표정이었다. '항상 조용하기만 하던 정하진이 대체 언제 심재현이랑 알게 된 거야?'

하예진은 표정이 굳은 채,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난 NTV 방송국의 메인 아나운서야. 그런데 지금… 하루 10분도 채 안 되는 방송 분량을 맡은 기상캐스터한테 내가 사과를 하라고?'

하예진은 이런 굴욕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심재현의 눈빛이 너무도 매서워, 결국 하예진은 이를 악문 채 사과했다. "정하진 씨, 미안해요. 제가 경솔했어요."

하예진은 정하진을 향해 독기 어린 눈길을 날렸고 이 굴욕을 반드시 되갚아주겠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바로 그때, NTV 방송국의 프로듀서 임준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버렸다.

그는 심재현에게 마이크와 대본을 건네며 말했다. "심 도련님, 준비가 다 되셨으면 리허설 들어가도 됩니다."

심재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준서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정하진을 불렀다. "하진아, 네가 심 도련님께 마이크 좀 달아드려."

정하진이 그 말에 반응도 하기 전에, 문시우가 신속히 마이크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임준서를 따라 하나 둘씩 빠져나갔고, 방 안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정하진은 앞으로 다가가 심재현의 셔츠 깃에 조심스레 핀 마이크를 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작게 말했다. "고마워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제외하면 그녀를 이렇게까지 지켜준 남자는 심재현이 처음이었다.

심재현은 시선을 내려 정하진의 가느다란 손이 자신의 셔츠를 스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이 간질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앞으로는, 누구도 너의 매력을 부정하게 두지 마."

정하진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아까 그 사람들은 원래 좀 독설적이에요. 그리고 하예진이 한 말이 틀린 말도 아닌걸요."

하예진의 말은 비록 듣기 거북했지만, 정하진은 남자들이라면 다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심리적인 이유로, 어떤 남성과도 가까운 신체 접촉을 할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4년을 사귀었던 첫사랑과도 헤어졌으니까.

그때, 심재현이 갑자기 정하진의 손목을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의 뜨거운 숨결이 정하진의 뺨을 스치고,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혹시, 결혼 첫날 내가 네 유혹을 받아주지 않아서 그래? 네 매력이 거부당했다고 생각해서, 서운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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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고 사랑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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