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연회장에 도착한 송지아는 오전에 만났던 가면남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때,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세상에, 주대표님이 정말 오셨어요!"
시끄럽던 연회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지더니 사람들이 서둘러 길을 터주었다.
송지아는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봤다.
주지훈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색 셔츠를 입은 그는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마냥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팔뚝에 보기 좋게 자리 잡은 근육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남자가 소문처럼 잔뜩 못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짙은 눈썹과 그 아래에 보이는, 날카롭게 솟은 콧대, 그리고 칼로 다듬은 것 같은 턱선까지, 너무 잘생긴 얼굴이었다.
"어머, 주대표님이 저렇게 젊고 잘생기셨다고?"
"언론의 인터뷰조차 일체 거절하시는 분이시잖아. 공개 석상에도 거의 모습을 안 드러내셔서 여태 몰랐어! 영화 배우들 보다도 잘생긴 것 같아."
"너무 잘생겼어요. 성격이 안 좋다는 소문만 아니면…"
"쉿, 조용히 해요. 주대표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 분인지 잊었어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긴다던데요!"
사람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송지아는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찰나, 그녀는 주지훈과 시선이 마주쳤다.
'저 자식, 눈빛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너무 이상했다.
송지아는 주지훈의 몸이 미세하게 경직되어 있는 걸 예리하게 발견했다. 심지어 놀란 기색이 스치는 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설마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건 아니겠지?
내가 분장 하나는 끝내주게 하긴 했지!'
한편, 주지훈의 마음속에는 거대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
"오민혁, 저 여자야."
송지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는 다시 한번 확인 했다. 오전에 자신을 구해준 여자는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
교통사고 이후, 주지훈은 세상은 흑백으로 뒤바뀌었다.
의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했지만,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이 어두침침한 흑백의 세상에 점점 익숙해 지고 있었다.
하지만 송지아... 그녀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것도 몇번이나.
오민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확실해?"
"어. 저 여자한테서 색깔이 보여."
주지훈은 자신을 가두던 흑백 세상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송지아를 중심으로 선명하고 밝은 색깔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는 그녀가 손에 든 잔이 아름다운 황금색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송지아가 입은 원피스가 검은 색이라는 것도 보였다. 심지어 그 색깔에서 섬세한 광택까지 느껴졌다.
나머지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오직 그녀의 주위만은 눈부신 색깔로 가득했다.
"실화냐?"
오민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바로 사람을 보내 조사해 볼게."
수많은 명의도 고치지 못한 난치병이다. 그런데 불현듯 기적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오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약혼은? 약혼할 거냐?"
주지훈은 여전히 송지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지."
"이 결혼, 반드시 해야겠어."
오민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그녀가 주지훈에게 색깔을 볼 수 있게 해줬다고 해도, 그 못생긴 여자와 굳이 결혼까지 할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주지훈이 미쳤나?'
그때, 맹여정이 앞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주대표님, 제 남편과 아들은 대표님께서 일찍 도착하실 줄 미처 몰랐던 탓에 아직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바로 도착할 겁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송지아를 앞으로 밀었다.
"여기, 저희 지아입니다. 어렸을 때 뵌 적이 있으실 겁니다. 원래 대표님과 약혼하기로 한 사람도 이 아이였죠. 하지만 지아가 어렸을 때 길을 잃어버려서 그만... 이제서야 저희는 우리 딸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니 대표님께서는 우리 지아와 약혼하시는게…"
맹여정은 서지안을 육소희의 대타로 그와 결혼 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몇마디 말로 얼렁뚱땅 넘기려 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육소희의 얼굴이 빨개졌다.
'세상에. 주지훈이 이렇게 잘생겼을 줄이야.'
그녀는 후회가 막심했다. '주지훈을 그 못생긴 년한테 넘겨주지 말았어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