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측비를 들이는 혼례임에도 불구하고 정비를 들이는 것보다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 십 리에 걸친 혼수 행렬이 이어지고, 징과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하객들은 희당 밖을 가득 메웠다. 희당 안, 우문익은 붉은색 길복을 입고 준수한 외모에 비범한 기품을 뽐내며 얼굴 가득 기쁨이 넘쳐흘렀다.
신부 상려는 붉은 너울로 얼굴을 가렸으나, 그 고운 자태만으로도 가려진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짐작하게 했다.
두 사람이 청홍 비단을 손에 잡고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재자가인이 따로 없었다.
우문익과 상려의 혼례는 순조롭게 마지막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왕부 대문을 등지고 희당 안쪽에 선 두 사람 앞에는 혼례를 주관하는 사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신방으로 들라!"
사의가 외치자마자 담생이 혼례식장에 뛰어들었다.
"잠깐."
그녀의 목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고,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을 본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저 여인은 누구지? 가을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에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경국지색이 따로 없구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아! 저분은 강왕비마마 아니신가?"
"강왕비마마? 미쳐서 남산 풍인원에 갇혀 지내신다고 하지 않았나?"
"눈동자가 맑은 것을 보니 미친 것 같지 않으신데."
……
우문익은 담생이 나타난 것을 본 순간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저 여인이 어떻게 남산 풍인원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지?'
그는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 채 담생에게 다가가며 차갑게 물었다.
"네가 어찌 이곳에 있는 것이냐?"
담생은 그런 그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오늘은 왕야와 측비의 경사스러운 날인데, 정비인 제가 당연히 축하드리러 와야지요."
말을 마친 그녀는 주저 없이 상석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더니, 상려를 돌아봤다.
태부의 여식인 상려는 경성제일재녀로 불리며, 고귀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나, 실은 원주를 남산 풍인원에 가두도록 계략을 꾸민 장본인이었다.
담생은 입 꼬리를 살짝 올리고 말했다.
"측비, 이리 와서 본 왕비에게 차를 올리지 않고 뭐 하는 게냐!"
첩실은 왕부에 들어올 때 정비에게 무릎을 꿇고 차를 올리는 것이 예법이었다. 담생의 요구는 조금도 지나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스스로 측비의 길을 택한 상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그녀의 신분이라면 정비가 되고도 남았기에, 담생 따위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
머리에 쓴 붉은 너울을 확 벗어 던진 상려는 오만한 표정으로 담생을 내려다봤다.
"저는 측비이나 첩실은 아닙니다. 차를 올리려면 내일 황후마마께 올릴 거예요."
측비가 첩실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상려의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담생은 그녀와 다투지 않고 우문익을 돌아봤다.
"왕야께서도 측비가 첩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어사대의 상소가 산처럼 쌓여 그를 짓누를 것이다.
우문익은 상려의 마음을 얻고자, 그녀가 비록 측비이나 첩실이 아닌 자신의 유일한 아내라 말한 적이 있었다. 이런 말은 사석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지, 공공연히 인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상려의 말에 동의한다면, 어사대에서 올린 상소가 다음 날 어서방에 놓여 있을 것이다.
우문익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담생을 노려봤다. 만약 담생이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다면, 혼례는 이미 끝났을 것이다. 그는 담생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하객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빛으로 그녀를 죽일 듯이 쏘아볼 뿐이었다.
"이 차는 지금 올릴 필요 없소. 나중에 올려도 매한가지요."
우문익은 담생이 예전처럼 자신의 말에 순종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담생은 눈썹을 치켜 올리고 물었다.
"정비에게 차를 올린 후에야 왕부에 들어올 수 있는 법입니다. 설마 왕야께서는 측비를 태부의 저택으로 돌려보내려는 것이옵니까?"
측비를 태부의 저택으로 돌려보낸다고?
이 여인은 정말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욕보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감히 협박까지 하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남산 풍인원에 보낼 때 죽였어야 했다.
우문익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왕비, 아직 광증이 낫지도 않았는데, 남산 풍인원에서 도망쳐 나왔구나. 본 왕이 지금 당장 너를 남산 풍인원에 돌려보낼 것이다. 병이 나으면 그때 왕부로 돌아오거라. 여봐라!"
그의 명령에 호위들이 앞으로 나섰다.
"누가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느냐! 나는 폐하께서 직접 책봉하신 강왕비다!"
담생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호위들을 훑어보자, 범접할 수 없는 위엄에 눌려 호위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 광경을 본 하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왕비마마께서 진국대장군의 기세를 그대로 물려받으셨구나. 역시 호랑이 아비에 개 새끼 없다더니, 옛말이 틀리지 않아. 강왕비께서 그동안 자신의 기세를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어."
담생의 싸늘한 얼굴과 그 기세에 우문익은 저도 모르게 압도당했다.
황상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진국대장군까지 언급되자,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우문익은 상려가 담생에게 차를 올리지 않으면, 담생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상려 또한 이대로는 혼례를 마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우문익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왕야, 제가 왕비 언니께 차를 올릴게요. 담 대장군의 체면을 봐서라도 말이에요."
"상려..."
우문익은 감동한 표정으로 담생을 돌아보며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려가 올리는 차를 잘 마시거라."
담생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고 대답했다.
"당연하옵니다."
상려가 자신의 몸종인 춘홍에게 눈짓을 보내자, 춘홍은 바로 찻잔을 가져와 상려에게 건넸다. 상려는 찻잔을 담생에게 건네며 말했다.
"왕비 언니, 차 받으세요."
담생은 허리를 곧게 편 상려를 흘깃 쳐다보고 비웃었다.
"어느 집 첩실이 서서 차를 올린단 말이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우문익은 담생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만해!"
상려는 바로 우문익을 돌아보며 달래듯이 말했다.
"왕야, 왕야를 위해서라면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무릎을 꿇고 찻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수모를 참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우문익은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고, 담생을 향한 살기를 감추지 못했다. 하객들도 상려를 동정하며 감탄했다. 상려는 강왕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오만하기로 소문난 경성제일재녀가 사랑을 위해 무릎을 꿇다니.
쯧쯧쯧...
상려는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잔꾀는 담생에게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가진 것 하나 없는 맨몸뚱이니, 수틀리면 들이받으면 그만이라 두려울 것도 없었다.
담생이 손을 뻗어 찻잔을 받는 척했지만, 찻잔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며 뜨거운 찻물이 상려의 몸으로 쏟아졌다.
"아악!"
상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담생, 네가 죽고 싶은 게로구나!"
우문익은 한달음에 달려와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담생의 목을 졸랐다.
담생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를 올려다봤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왕야, 이 많은 하객들 앞에서 정비인 저를 죽이실 수 있다면, 제가 왕야를 진정한 사내로 인정해 드리지요."
우문익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돋았지만, 차마 손에 힘을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입 꼬리에 조롱 섞인 미소를 머금은 담생을 노려봤다.
"담생! 네년 대체 누구냐?"
예전의 담생은 나약하고 무능하여 사람들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담생은 안하무인이었다. 만약 얼굴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는 담생이 다른 사람이라 여겼을 것이다.
담생의 입 꼬리가 더욱 짙게 휘었고, 얼굴에는 오만한 표정이 가득했다.
"왕야, 우리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설마 제 얼굴도 잊으신 겁니까? "
회차 3
"왕야, 왕비 언니를 놓아주세요. 신첩은 괜찮습니다."
우문익이 손을 놓지도, 그렇다고 담생을 때리지도 못하는 어색한 순간, 상려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문익은 상려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손을 놓더니 담생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상려가 너를 위해 간청하지 않았다면, 본왕이 결코 널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 배짱도 없이 손끝 하나 대지 못하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기는.'
담생은 속으로 우문익을 비웃으며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 눈빛에 우문익이 다시 폭발하려 했다.
"이 차는 신첩이 마신 걸로 치지요. 왕야, 계속하세요. 신첩은 피곤해서 이만."
담생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혼례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몰라 사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동방으로 모셔라!"
상려는 우문익을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왕야..."
'담생 저 계집은 나중에 손봐줘도 늦지 않다.'
우문익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상려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혼례를 마무리했다.
혼례가 끝나고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은 모두 담생에 대해 이야기했고, 오늘 혼례의 주인공인 우문익과 상려는 완전히 잊혀졌다.
강왕부 맞은편 사해주점 별실에서 혼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우문창의 차갑게 식은 얼굴에 흥미로운 기색이 언뜻 스쳤다.
'강왕비가 저리 수단이 좋은 여인일 줄이야. 하마터면 우문익이 그 자리에서 폭발할 뻔하지 않았는가.'
'흥미롭다, 정말 흥미로워.'
"명월."
우문창의 부름에 명월이 밖에서 들어왔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우문창이 입을 열었다.
"남산풍인원에 가서 강왕비의 구체적인 상황을 조사해 오거라."
명월은 명을 받고 물러났다.
우문창이 탁자 위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려 할 때,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손에 쥔 찻잔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병이 또 도졌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온몸을 웅크리고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두 눈이 붉게 물들더니 갑자기 살의가 치밀어 올랐다.
우문창은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을 통제하며 품에서 검은 병을 꺼냈다. 지병을 억누르는 약을 꺼내려 했지만 손이 너무 심하게 부들부들 떨려 검은 병에 든 약이 모두 바닥에 쏟아졌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더러운 바닥에 떨어진 약 두 알을 입으로 주워 먹었다. 약이 입안에서 녹자 우문창은 천천히 평온을 되찾았지만, 숨결은 여전히 거칠었고 눈에는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남모를 병을 앓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 년에 한 번꼴이던 발작이 점차 일 년에 한 번으로 잦아지더니, 마지막 발작이 일어난 지는 고작 반년밖에 지나지 않은 터였다.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우문창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약왕곡의 왕신의를 찾아갔다. 왕신의도 그의 지병의 이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복용하여 내면의 폭력성을 억누르는 단약을 한 병 주었다.
그러나 왕신의가 직접 만든 약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통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 살의도 점점 더 강해졌다.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은 우문창은 다시 차를 한 잔 따르고 차를 마시며 담생이 그에게 경고했던 말을 떠올렸다.
"태워주고 은자까지 빌려준 정을 봐서 충고하는데, 몸안의 고독을 빨리 없애는 게 좋을 거야. 길어야 일 년이야.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미쳐서 살육만 아는 마두가 될 테니까."
'돌아가면 시간을 내서 강왕비를 만나봐야겠군.'
"에취, 에취..."
청풍원으로 돌아온 담생은 연신 재채기를 해댔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코를 세게 비비며 누가 그녀의 뒤에서 험담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했다.
한 각이 지난 후, 담생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청풍원의 굳게 닫힌 문 앞에 섰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황폐해지다니. 우문익은 정말 인간도 아니다.
"끼익!"
굳게 닫힌 문을 열자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고요한 밤에 울려 퍼졌다.
회랑 아래에 서 있던 그림자가 멍하니 담생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흐느꼈다.
"아가씨, 아가씨 맞으십니까? 정말 아가씨이십니까?"
담생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림자를 향해 바라봤다. 희미한 불빛 아래, 십육칠 세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피골이 상접한 몸에 눈 주위가 검게 변하고 볼이 움푹 패인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 소녀는 원주의 몸종 월이였다. 원주가 우문익의 명으로 남산풍인원에 보내질 때, 월이는 바닥에 무릎 꿇고 애원하다 우문익의 발길질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가씨가 남산풍인원으로 끌려간 뒤였다. 월이는 아가씨를 뒤따라가려 했지만, 우문익은 청풍원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면 당장 네 주인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 협박하며 그녀를 가뒀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월이는 회랑 아래에 멍하니 앉아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아가씨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우문익의 발길질에 월이는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내상을 입고 가슴에 어혈이 뭉쳐 있었다.
담생은 한숨을 내쉬고 월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래, 나야. 내가 돌아왔어."
"아가씨!"
아가씨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월이는 흥분한 얼굴로 달려왔다.
달려오는 월이의 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본 담생은 마음이 아파 빠르게 다가가 월이를 부축하고 맥을 짚었다.
상황이 심각했다. 내상은 천천히 치료하면 되지만, 어혈은 반드시 빼내야 했다. 담생은 잠시 후 월이에게 침을 놓기로 결정했다.
"아가씨,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월이는 담생이 자신의 손목에 손가락 두 개를 대고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담생은 월이의 팔을 놓아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상을 입었으니 빨리 방에 들어가 누워 있거라."
담생은 월이를 강제로 침방으로 데려가 침상에 눕힌 다음, 침을 놓아 어혈을 빼냈다. 잠시 후, 월이는 침상에 엎드려 어혈을 토해냈고 안색도 많이 좋아졌다.
월이는 아가씨가 갑자기 이렇게 대단해진 이유가 궁금했다. 은침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니.
담생은 은침을 거두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풍인원에서 늙은 미치광이에게 배웠다."
그 말을 들은 월이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한 달 동안 아가씨는 풍인원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모두 노비가 못난 탓입니다. 노비가 아가씨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담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월이를 위로했다.
"강왕 그 인간이 워낙 악독해서 그래.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못 막았을 거야.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 어쨌든 네 주인인 내가 돌아왔으니, 너는 마음 편히 잠이나 자거라.나는 먹을 것을 좀 가져올 테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담생을 월이가 다시 붙잡았다.
"아가씨, 노비에게 먹을 것이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먼저 드시고 배를 채우세요."
월이는 베개 밑에서 천에 싸인 찐빵을 꺼냈다. 찐빵은 이미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월이는 먹지 않고 남겨둔 것 같았다.
"이런 걸 어떻게 먹어. 먹으려면 우리도 좋은 걸 먹어야지."
오늘 강왕이 측비를 맞이했으니, 주방에는 닭, 오리, 생선, 고기 등 진수성찬이 가득할 것이다. 누가 곰팡이가 핀 찐빵을 먹겠는가?
담생은 월이의 볼을 꼬집고 왕부 주방으로 향했다.
월이는 담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가씨가 더 이상 예전처럼 우울하고 나약하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저렇게 당당하고 기개 넘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대장군의 여식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