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나는 의사의 진료실을 멍하니 걸어 나왔다. 그녀의 명랑한 목소리가 살균된 복도에 울려 퍼졌다. 임신. 6주. 나는 아직 평평한 배에 손을 얹었다.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이 작고 순수한 생명. 왜 하필 지금일까? 왜 이 모든 것이 폐허가 된 한가운데, 이 순간에 찾아와야만 했을까?
긴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익숙한 실루엣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강태준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 근처에 서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유채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는 위로의 말을 속삭이고 있었고, 그의 표정은 내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다정한 염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큰 화분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들의 말을 명확하게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행동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 유채리의 목이 멘 속삭임이 복도를 타고 들려왔다. “그 여자, 뭐 눈치챈 거 아닐까?”
“걘 날 믿어.” 강태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심하고 경멸적이었다. 그것은 그가 나를, 내 지성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드러내는 부주의한 한마디였다.
“하지만 언제 나를 당신 아내로 만들어 줄 거야?” 유채리가 절박한 야망이 섞인 목소리로 다그쳤다. “언제 나랑 이안이한테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을 줄 수 있냐고?”
“채리야, 그만해.” 그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의 목소리에 강철 같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현이는 내 아내야. 그건 변하지 않아.”
숨이 멎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야.” 그가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더 부드러워졌고, 죄책감처럼 들리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저지른 짓에 대한 속죄라고.”
유채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침묵했다. 그는 그녀를 다시 한번 끌어안고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넌 나한테 아름다운 아들을 줬어, 채리야.” 그가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난 언제나 너희 둘을 책임질 거야.”
그들은 서로 팔짱을 낀 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유채리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아주 잠깐, 그녀의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는 놀라움이 없었다. 오직 차갑고 의기양양한 승리의 빛만이 번뜩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내가 내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화분 뒤에서 나왔다. 몸이 떨렸다. 참고 있던 눈물이 뜨겁고 멈출 수 없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슴의 통증은 나를 짓누르는 물리적인 무게였다.
그는 죄책감 때문에 나와 이혼하고 싶지 않지만, 그의 다른 가족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거지?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 그가 더 이상 느끼지 않지만 깨기에는 너무 비겁한 약속의 상징?
그의 약속, 그의 서약이 떠올랐다.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그는 그런 확신에 차서 그 말들을 했다. 나는 그를 믿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배신했다. 그리고 이 사랑, 이 유독하고 부서진 것은 내 인생에서 도려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병원을 떠나기 전, 나는 다시 접수처로 돌아가 예약을 잡았다. 낙태 수술.
그리고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이혼 서류 준비해주세요.” 나는 차갑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걸 반으로 나누겠어요. 제가 받을 자격이 있는 모든 것을요.”
병원 주차장 차 안에서 앉아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강태준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쉬고 지쳐 있었다.
“생일 축하해, 이현아.”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혼돈과 고통 속에서, 내 생일은 까맣게 잊혔다.
“어젯밤 일은 정말 미안해.” 그가 능숙한 후회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무실에 급한 일이 터져서. 집에 아예 못 들어갔어.”
씁쓸한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올 뻔했다. “알았어.” 나는 말했다. 두 단어가 입안에서 먼지처럼 느껴졌다.
그는 내 질문 없는 태도에 안도하며 반대편에서 긴장을 푸는 듯했다. “오늘 밤 당신을 위해 갈라 파티를 준비했어. 당신 생일이랑, 당신이 설계한 박물관 신관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서. 당신한테 잘해주려고.”
“알았어.” 나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반복했다.
1년 전이었다면, 그 말들은 나를 행복에 겨워 울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그것들은 그의 정교한 거짓말에 또 다른 겹을 더할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핸들을 꽉 쥔 채 전화를 끊었다.
창밖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깊고 오싹한 예감만이 느껴졌다. 그는 무슨 일이 닥쳐올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소중한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그것이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