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남편은 샤워 중이었다. 우리 부부의 아침을 깨우는 익숙한 물소리였다. 나는 그의 서재 책상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았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5년간의 결혼 생활 속,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그때, 남편의 노트북 화면에 이메일 알림이 번쩍였다.

‘강이안 유아세례식에 초대합니다.’

우리 부부의 성. 보낸 사람은 유채리, 팔로워가 수십만인 SNS 인플루언서였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의 아들을 위한 초대장이었다. 내가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

나는 그림자 속에 숨어 성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보았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남편. 그의 검은 머리와 눈을 쏙 빼닮은 작은 사내아이였다. 아이의 엄마인 유채리는 그의 어깨에 기댄 채,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처럼 보였다.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

내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일 때문에 바쁘다며 아이 갖기를 거부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잦은 출장과 야근은 전부 그들을 위한 시간이었을까?

거짓말은 그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눈이 멀 수 있었을까?

나는 그를 위해 미뤄두었던 취리히 건축 펠로우십 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펠로우십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했다.

“바로 떠날 수 있습니다.”

제1화

이메일 알림이 강태준의 노트북 화면에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그의 캘린더에서 뜬 세련되고 미니멀한 팝업이었다. 남편은 샤워 중이었고, 유리에 부딪히는 물소리는 우리 부부의 아침을 깨우는 익숙한 리듬이었다. 나는 그의 서재 책상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았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5년간의 결혼 생활 속,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내 눈은 그 글자들을 붙잡고 말았다.

‘강이안 유아세례식에 초대합니다.’

그 이름에 나는 얼어붙었다. 강이안. 우리 부부의 성이었다.

내가 그 의미를 채 헤아리기도 전에, 알림은 사라졌다. 깜빡, 하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발송이 취소된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보낸 사람: 유채리. 어렴풋이 익숙한 이름이었다. 가끔 내 피드를 스쳐 지나가던, 완벽하게 꾸며진 삶을 사는 SNS 인플루언서. 엄청난 팔로워를 거느린 아름다운 여자.

차갑고 날카로운 불안감이 위장을 파고들었다. 이건 그냥 무작위로 온 이메일이 아니었다. 그의 아들을 위한 초대장이었다. 내가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

주소는 시내의 한 성당이었고, 시간은 바로 오늘 오후였다.

노트북을 쾅 닫아버리고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를 사랑해주는 명석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IT 기업 대표, 강태준과 함께 내가 그토록 공들여 쌓아 올린 완벽한 환상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나, 더 차갑고 집요한 내가 소리치고 있었다. 가야만 한다고. 내 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고.

나는 커피를 그의 책상에 그대로 둔 채, 우리의 사랑을 위한 기념비처럼 내가 직접 설계했던, 티 없이 깔끔하고 미니멀한 집을 나섰다.

성당은 오래된 석조 건물이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뒤편,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심장이 갈비뼈를 아프게 두드렸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강태준. 내 남편. 그는 날카로운 비즈니스 정장이 아닌, 부드럽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제단 가까이에 서 있었다.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는 하얀 레이스에 싸인 아름다운 아기를 안고 있었다.

강태준의 검은 머리와 풍부한 표정의 눈을 쏙 빼닮은 작은 사내아이.

아이, 이안이가 방울을 불며 꺄르르 웃더니, 작은 손을 뻗어 강태준의 얼굴을 만졌다.

“아빠처럼 멋진 남자로 컸으면 좋겠다.”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우면서도 소유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유채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강태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모습은 그야말로 가정의 행복을 그린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녀의 미소는 눈부셨고, 그 눈은 내가 남편이라 부르는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가족처럼 보였다.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너무나 깊은 무감각이 나를 덮쳐, 마치 내 몸 밖을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강태준이 유채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다시 아기에게 시선을 돌려 무언가 속삭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말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현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저 여자도, 저 아기도. 그의 비밀스러운 삶도.

나는 신도석에서 몇몇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강태준의 사업상 지인들, 우리 집 저녁 파티에 왔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림자 속에 선 아내의 존재는 까맣게 모른 채,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모른 채, 행복한 커플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소리치고, 그 완벽한 순간을 산산조각 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싸울 의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깊고 공허한 절망만이 남았다.

나는 몸을 돌려 걸어 나왔다. 무거운 성당 문을 빠져나와 다시 도시의 소음 속으로 들어섰다. 모든 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세상은 차가웠고, 나는 그보다 더 차가웠다.

몇 달 전, 우리의 결혼기념일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태준 씨,”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제 준비된 것 같아. 우리 아기 가질까?”

그는 침묵했다.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는 늘 그 제스처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믿었다.

“아직은 안 돼, 이현아.”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회사가 지금 아주 중요한 시기야. 1년만 더 시간을 줘. 우리 아이한테 모든 걸 다 해주고 싶단 말이야.”

나는 그를 믿었다. 대학 시절, 내 야망 너머의 여자를 유일하게 알아봐 주며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녔던 그 남자를 믿었다.

그는 그때 내 라이벌이었다. 둘 다 건축학과 수석을 다투던 사이. 그는 명석하고, 야심 찼으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차가웠다.

내가 스튜디오에서 밤새도록 설계도에 매달려 있을 때, 그가 따뜻한 수프를 가져다주던 기억이 났다. 청사진 위로 몸을 웅크린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던 그의 손길이 떠올랐다.

내가 폐렴에 걸려 서 있기도 힘들었을 때의 기억도 떠올랐다. 그는 꼬박 사흘 밤낮을 내 병실 침대 옆을 지켰다. 잠도 자지 않고, 그저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그 병실에서 내게 청혼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연약함으로 갈라지는 목소리로.

“너를 잃을 순 없어, 이현아.” 그는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고 속삭였다. “네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어머니가 바로 그런 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의 두려움은 진짜처럼 느껴졌고, 그의 사랑은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졸업 직후 결혼했다. 그의 IT 스타트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그는 모두가 선망하는 남자가 되었다. 나 역시 내 커리어를 쌓았지만, 언제나 그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를 위해, 우리를 위해 나 자신의 5개년 계획을 수정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 그는 또 다른 가족을 꾸리고 있었다.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라 믿었던 그 사랑, 그 헌신은 거짓이었다. 하나의 연극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그였다. 나는 화면에 뜬 그의 이름을 보며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마침내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언제나 내게 사용하던 그 다정한 톤 그대로였다.

전화기 너머로 아기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아이를 달래는 유채리의 목소리도.

나는 성당 맞은편 길가에 서서, 열린 문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귀에 휴대폰을 댄 채, 나와 통화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냥 산책 중이야.” 나는 겨우 대답했다. 내 목소리가 낯설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들렸다.

“갑자기 회의가 잡혀서 늦어졌어.” 그가 매끄럽게 말했다. “곧 집에 갈게. 보고 싶다.”

거짓말은 그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세련되고 완벽하게 흘러나왔다.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이 터져 나와 차가운 뺨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그 모든 출장, 사무실에서의 야근. 그중 얼마나 많은 밤을 여기서, 그들과 함께 보냈을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눈이 멀 수 있었을까?

나는 목구멍에 걸린 덩어리를 삼키며, 목소리를 억지로 안정시켰다. “태준 씨, 지금 봐야겠어.”

그는 망설였다. 나는 그가 몸을 뒤척이며 미소가 잠시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 회의 중이야, 자기야. 집에 가서 보면 안 될까?”

“안 돼.”

바로 그때, 작은 아이, 이안이가 아장아장 걸어와 강태준의 다리를 껴안았다.

“아빠!” 아이가 소리쳤다.

강태준의 눈이 공포로 커졌다. 그는 재빨리 몸을 숙여 아이를 조용히 시키려 애쓰면서도, 내게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했다. “그냥… 동료 중 한 명의 아이야.”

전화가 끊겼다. 그가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가 아이를 품에 안아 뺨에 입을 맞추고, 아이를 웃게 만드는 무언가를 속삭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너무나 좋은 아버지였다.

심장이 도려내진 것 같았다. 텅 비고 시린 공허함만이 남았다. 내 인생의 수년, 내 사랑의 수년이 한낱 농담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나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인 지민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변호사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나는 취리히 건축 펠로우십 재단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합격했지만 강태준을 위해 미뤄두었던, 명망 높은 6개월짜리 프로그램. 완전하고 중단 없는 집중을 요구하는 프로그램. 완전한 고립.

“펠로우십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했다. “바로 떠날 수 있습니다.”

회차 2

“펠로우십 자리는 아직 비어 있습니다, 이현 씨.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수화기 너머 이사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하지만 조건은 이해하고 계시죠? 6개월, 완전한 고립. 외부와의 접촉은 일절 금지입니다.”

“이해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건 바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사라질 수 있는 장소.

“모든 준비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가 약속했다. “여행 계획만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무감각을 뚫고 희미하게 피어나는 희망 같은 것을 느끼며 말했다. “취리히에서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집.

현관문을 열자 우리 삶의 상징들로 가득 찬 거실이 나타났다. 카운터 위의 커플 머그잔 한 쌍. 벽난로 위 선반에 놓인 결혼식 날 사진, 그가 나를 굳게 껴안고 있는 모습. 그가 나를 위해 사준 캐시미어 담요가 우리가 함께 영화를 보던 소파 위에 걸쳐져 있었다.

역겨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부엌에서 쓰레기봉투를 집어 들고 폭풍처럼 집안을 휩쓸기 시작했다. 머그잔이 먼저 들어갔고, 봉투 바닥에서 산산조각 났다. 사진 액자가 뒤따랐고, 유리가 금이 갔다. 나는 액자에서 우리의 모든 사진을 찢어내고, 잘게 조각내어 던져 넣었다. 담요, 내 옷장 속 그의 옷들, 그가 ‘출장’에서 사 온 바보 같은 기념품들.

모든 것이 봉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불타는 분노로 그 봉투들을 길가에 끌어다 놓았다.

그러고 나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 옷, 내 책, 내 건축 모형들. 내 것인 모든 것. 나는 운송 회사에 연락해 내 짐들을 내가 작업실로 쓰던 예전 아파트로 배송해달라고 요청했다.

강태준은 그날 밤 집에 오지 않았다.

그는 다음 날 저녁, 피곤하지만 미소 띤 얼굴로 들어왔다.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팔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감쌌다.

“하,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그가 내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속삭이며, 입술로 내 관자놀이를 스쳤다.

내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의 셔츠에서 다른 여자의 희미하고 달콤한 향수 냄새가 났다. 나는 그가 그 아기를 안고, 유채리에게 입 맞추는 모습만을 떠올릴 수 있었다. 메스꺼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의 미소가 사라지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왜 그래, 이현아? 몸이 차가워.”

“괜찮아.” 나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안 괜찮잖아.”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집했다. “아파? 병원 가자.”

그 위선이 숨 막혔다. 그는 다른 가족과 밤을 보낸 후에도 이렇게 완벽하게 걱정하는 남편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안 아파.” 내가 말했다. “그냥 피곤해서 그래.”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서류 가방에서 선물로 포장된 상자들을 꺼냈다. “선물 사 왔어. 출장 갔다가.”

그는 출장의 증거까지 위조했다. 내가 싫어하는 디자이너의 실크 스카프. 내가 절대 쓰지 않을 향수 한 병. 각각의 선물은 그의 기만의 깊이를 증명하는, 정교하게 구축된 거짓말이었다. 이 선물들의 가격이면 작은 스타트업 하나를 차릴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은 무가치했다.

소리치고 싶었다. 그의 얼굴에 상자들을 던지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가 예전에 그랬던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와, 지금의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 속에서 익사하고 있는 여자 사이에 갇혀 있었다.

그는 내 침묵과 충혈된 눈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야, 이현아? 말해봐.”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아기 갖고 싶어, 태준 씨. 지금 당장.”

그의 표정이 변했다. 공포의 빛이 스쳤다가, 이내 지친 인내의 가면으로 바뀌었다. “우리 얘기했잖아. 지금은 시기가 안 좋아.”

“당신한테는 언제나 시기가 안 좋지.” 내가 쏘아붙였다.

“회사가 막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똑같은 변명. 언제나 똑같았다.

“나는 스트레스 안 받는 것 같아?”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 아이 갖고 싶다고, 태준 씨. 당신이랑.”

그의 전화가 울리며 그를 구했다. 발신자 정보가 없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흘끗 보았다.

“회사 일이야.” 그는 이미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가봐야 해.” 거짓말. 나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제는 그의 배신의 낙인처럼 느껴지는 제스처였다.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말고 자.”

나는 창밖으로 그가 차에 올라타 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싸울 힘이 빠져나가고, 뼛속까지 시린 통증만이 남았다. 그는 그녀와는 아이를 가질 수 있지만, 나와는 안 된다. 그 생각은 물리적인 충격이었다.

내 시선은 커피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두 번째 휴대폰, 그가 ‘해외 업무용’이라고 주장하던 그 폰에 꽂혔다. 그는 서두르느라 그것을 잊고 갔다. 화면이 메시지와 함께 밝아졌다.

유채리로부터: “이안이 열이 다시 올라. 계속 아빠 찾네.”

그는 내가 달라졌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집이 반쯤 비었다는 것도. 아내의 심장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도.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또 한 방울. 심장의 통증은 너무나 강렬해서 물리적인 감각으로 느껴졌지만, 갑작스럽고 격렬한 복부 경련에 가려졌다.

나는 앞으로 몸을 숙이며, 손으로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구토했다.

몸이 이상했다. 이건 단순한 상심이 아니었다. 차갑고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기적이자 저주인 가능성.

그는 그날 밤 집에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혼자 병원에 갔다.

의사는 초음파 화면을 보며 눈가에 주름을 지으며 미소 지었다.

“축하합니다, 서이현 씨.”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느낄 수 없는 기쁨으로 밝았다. “임신 6주 차입니다.”

회차 3

나는 의사의 진료실을 멍하니 걸어 나왔다. 그녀의 명랑한 목소리가 살균된 복도에 울려 퍼졌다. 임신. 6주. 나는 아직 평평한 배에 손을 얹었다.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이 작고 순수한 생명. 왜 하필 지금일까? 왜 이 모든 것이 폐허가 된 한가운데, 이 순간에 찾아와야만 했을까?

긴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익숙한 실루엣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강태준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 근처에 서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유채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는 위로의 말을 속삭이고 있었고, 그의 표정은 내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다정한 염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큰 화분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들의 말을 명확하게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행동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 유채리의 목이 멘 속삭임이 복도를 타고 들려왔다. “그 여자, 뭐 눈치챈 거 아닐까?”

“걘 날 믿어.” 강태준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심하고 경멸적이었다. 그것은 그가 나를, 내 지성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드러내는 부주의한 한마디였다.

“하지만 언제 나를 당신 아내로 만들어 줄 거야?” 유채리가 절박한 야망이 섞인 목소리로 다그쳤다. “언제 나랑 이안이한테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을 줄 수 있냐고?”

“채리야, 그만해.” 그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의 목소리에 강철 같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현이는 내 아내야. 그건 변하지 않아.”

숨이 멎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야.” 그가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더 부드러워졌고, 죄책감처럼 들리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저지른 짓에 대한 속죄라고.”

유채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침묵했다. 그는 그녀를 다시 한번 끌어안고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넌 나한테 아름다운 아들을 줬어, 채리야.” 그가 감정이 북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난 언제나 너희 둘을 책임질 거야.”

그들은 서로 팔짱을 낀 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유채리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아주 잠깐, 그녀의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는 놀라움이 없었다. 오직 차갑고 의기양양한 승리의 빛만이 번뜩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내가 내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화분 뒤에서 나왔다. 몸이 떨렸다. 참고 있던 눈물이 뜨겁고 멈출 수 없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슴의 통증은 나를 짓누르는 물리적인 무게였다.

그는 죄책감 때문에 나와 이혼하고 싶지 않지만, 그의 다른 가족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거지?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 그가 더 이상 느끼지 않지만 깨기에는 너무 비겁한 약속의 상징?

그의 약속, 그의 서약이 떠올랐다.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그는 그런 확신에 차서 그 말들을 했다. 나는 그를 믿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배신했다. 그리고 이 사랑, 이 유독하고 부서진 것은 내 인생에서 도려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병원을 떠나기 전, 나는 다시 접수처로 돌아가 예약을 잡았다. 낙태 수술.

그리고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이혼 서류 준비해주세요.” 나는 차갑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걸 반으로 나누겠어요. 제가 받을 자격이 있는 모든 것을요.”

병원 주차장 차 안에서 앉아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강태준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쉬고 지쳐 있었다.

“생일 축하해, 이현아.”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혼돈과 고통 속에서, 내 생일은 까맣게 잊혔다.

“어젯밤 일은 정말 미안해.” 그가 능숙한 후회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무실에 급한 일이 터져서. 집에 아예 못 들어갔어.”

씁쓸한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올 뻔했다. “알았어.” 나는 말했다. 두 단어가 입안에서 먼지처럼 느껴졌다.

그는 내 질문 없는 태도에 안도하며 반대편에서 긴장을 푸는 듯했다. “오늘 밤 당신을 위해 갈라 파티를 준비했어. 당신 생일이랑, 당신이 설계한 박물관 신관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서. 당신한테 잘해주려고.”

“알았어.” 나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반복했다.

1년 전이었다면, 그 말들은 나를 행복에 겨워 울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그것들은 그의 정교한 거짓말에 또 다른 겹을 더할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핸들을 꽉 쥔 채 전화를 끊었다.

창밖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깊고 오싹한 예감만이 느껴졌다. 그는 무슨 일이 닥쳐올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소중한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그것이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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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년 간의 치명적인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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