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진진산은 거실 입구에 낡은 청바지를 입고 허름한 가방을 멘 채 촌스러운 땋은 머리를 한 진서정을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빠, 이 못생긴 여자는 누구예요?" 진옥당은 진서정을 노려보며 물었다.
"함부로 말하지 마. 네 언니야." 진진산은 귀찮은 듯 대답했다.
진옥당은 '언니'라는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진서정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하! 이 못생긴 여자가 바로 우리 집에서 쫓겨난 언니예요?"
"역시 가난하고 못생긴 주제에 돈만 밝히는 건 여전하네요." 진옥당은 새로 한 네일아트를 만지작거리며 진서정을 가리켰다. "아빠, 어차피 언니가 먼저 고씨 가문에 시집가겠다고 했으니, 그냥 보내면 되잖아요."
진진산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가 진서정을 다시 진씨 가문에 데려온 이유는 진서정의 어머니가 죽기 전 남긴 유산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진서정을 고씨 가문에 시집보내는 것이 더 이득일지도 모른다.
고씨 그룹과의 협력은 물론, 진서정을 경성에 남겨두고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진산은 진서정을 쳐다보며 계산적인 눈빛을 빛냈다. "고씨 가문에 시집가도 좋아. 하지만 네 어머니가 남긴 유산은 진씨 가문에 남겨둬야 할 거야."
진진산의 말을 들은 진서정은 마치 우스운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거실로 들어온 그녀는 진진산과 진옥당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 마셨다. "아빠,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저한테 부탁하는 건 아빠와 진옥당이에요. 그러니까 조건을 제시할 사람은 저에요."
"시골에서 올라온 못생긴 여자가 고씨 가문에 시집가는 건 너한테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야! 주제도 모르고 우리한테 조건을 내세우겠다고, 어디서 그런 뻔뻔함이 나오는 거야!"
진서정은 진옥당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 행운, 너한테 양보할까?"
"너!" 진서정의 말에 진옥당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진진산의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아빠, 아빠도 한마디 해보세요!"
진진산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 "고씨 가문은 경성에서 가장 권세 있는 가문이야. 네가 고씨 가문에 시집가는 건 진씨 가문이 고씨 가문에 빌붙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런 주제에 감히 나한테 조건을 제시해?"
"그럼 더 이상 협상할 필요 없겠네요." 진서정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컵을 내려놓았다. "그럼 아빠가 아끼는 딸을 고씨 가문에 시집보내면 되겠네요."
진옥당은 다시 소리를 지르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빠, 저는 곧 죽을 사람한테 시집가기 싫어요!"
"그만해!" 진진산은 미간을 찌푸리고 진옥당을 꾸짖은 뒤 진서정을 쳐다봤다.
진서정은 촌스러운 옷을 입고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그녀의 어머니와 똑같았다.
진서정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던 진진산은 10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서정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맞은편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말해 봐." 진진산은 진서정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 조건이 뭐야?"
"간단해요." 진서정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조건은 두 가지예요. 첫째, 어머니가 진씨 가문에 남긴 유품을 돌려주세요. 둘째, 진씨 그룹 지분 30%를 저한테 주세요."
진옥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 진씨 그룹 지분 30%를 달라고? 너 정말 미쳤구나!"
진서정을 한참이나 노려본 진진산이 입을 열었다. "진씨 그룹 지분 10%를 혼수로 줄게."
진서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진진산을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20% 지분도 아까워요?"
"물론 저 말고도 고씨 가문에 시집갈 수 있는 사람이 있겠죠. 아빠한테는 진옥당이 있잖아요."
"좋아." 진진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진씨 그룹 지분 20%를 오늘 바로 네 명의로 돌려줄게."
진진산은 진서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네 어머니의 유품은 진씨 가문에 남겨둬야 해."
진서정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진진산을 노려보는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오늘 어머니의 유품을 돌려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진산은 어머니의 유품을 이용해 그녀를 통제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진씨 가문은 복수를 위해 돌아온 미친 여자를 통제하려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될 것이다.
진서정은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좋아요. 아빠가 말한 대로 계약서부터 작성하죠."
계약서 작성을 마친 진서정은 지분 양도서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흔들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잠깐만." 진진산은 진서정을 불러 세웠다. "고씨 가문은 만만한 가문이 아니야. 내가 데려다줄게."
차에 올라탄 진진산은 진서정에게 서류를 건넸다. "이건 고씨 가문에 관한 자료야. 똑똑히 기억해. 고씨 가문에 시집가서 진씨 가문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
서류를 대충 넘겨본 진서정은 첫 페이지에 있는 고정율의 사진을 보고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런 우연이! 곧 다시 만나게 되겠네!'
회차 3
손에 든 자료에 따르면 고씨 가문의 어르신은 아내가 둘이었다.
본처는 두 아들을 낳은 지 몇 년 안 되어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같은 해 고씨 가문 어르신은 두 번째 부인을 맞아들여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었다.
5년 전, 본처인 고씨 가문 선대부인의 큰아들이 사업차 나갔다가 해외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 일로 인해, 원래부터 몸이 허약하고 장애까지 있어 스물여덟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고씨 가문의 장손 고정율의 입지는 버려진 자식처럼 더욱 위태로워졌다.
최근 몇 년간 고씨 가문은 새로운 후계자를 정해야 했기에 내부 다툼이 유독 심했다. 자료만 봐도 고 어르신의 다른 손자들이 고정율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오늘 그가 경성 외곽의 강북에서 습격당했을 때 보여준 멀쩡한 모습은 도무지 장애인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 고정율이라는 남자는 자료에 적힌 것처럼 간단한 인물이 아닌 듯했다.
"아가씨." 왕 비서가 말했다. "고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께서 진씨 그룹을 여러모로 잘 챙겨주고 계십니다. 아가씨께서 고씨 가문에 가시면 셋째 도련님을 믿고 의지해도 됩니다."
탁!
진서정이 자료를 탁 덮었다. "벌써부터 줄 서기에 급급하시네요? 아버지, 줄 잘못 섰다간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진진산이 소리쳤다. "이것만 기억해! 셋째 도련님의 분부는 절대 거역해서는 안 돼. 안 그러면 내 손에 맞아 죽을 줄 알아!"
진서정은 코웃음을 쳤을 뿐, 진진산의 말을 조금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진진산은 진서정에게 몇 마디 더 경고하려 했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촌티가 흐르는 줄로만 알았던 딸에게서 순간적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기세가 느껴져, 본인조차 감히 한마디도 더 꺼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편, 고씨 가문 저택 3층의 방 안.
"고 사장님, 오늘 주차장에서 사장님의 신분과 얼굴을 확인한 자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신분이 노출될 일은 없을 겁니다." 신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검은색 실내복 차림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고정율에게서는 오전에 추격당할 때의 낭패감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손에 든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목걸이는 바로 진서정이 잃어버린 것이었다.
별 모양의 루비 펜던트는 티 하나 없이 맑았고 커팅 기술 또한 독특했다. 이 목걸이와 그녀가 준 약만으로도 몸 상태가 호전된 것을 보면, 오늘 만난 그 여자가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고정율은 알 수 있었다.
"내 얼굴을 본 사람이 한 명 더 있어. 아직 경성에." 고정율이 말했다.
신 특별보좌관의 표정이 순간 의아해졌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고 사장님, 뒤처리는 제가 깔끔하게 하겠습니다. 빠져나가는 자는 절대 없을 겁니다!"
고정율은 손에 든 목걸이를 사 특별보좌관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목걸이 주인을 찾아봐."
"네." 신 특별보좌관은 목걸이를 받아 들고 망설이는 눈빛으로 고정율을 바라보았다. "고 사장님, 그 사람을 찾으면 처리할까요? 살려두는 건 위험 부담이 큽니다."
고정율은 시선을 내리깔고 손가락의 반지를 돌렸다.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 있던 여자의 희롱하는 듯한 표정이 눈앞을 스쳤다. 그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찾아서 내 앞으로 데려와.내가 직접 처리하지."
"알겠습니다." 신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아, 고 사장님.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진씨 가문에서 보낸 혼인 상대가 곧 도착할 듯한데, 어떻게 할까요?"
고정율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가서 보고 와. 첫날부터 고씨 집안에서 죽게 둘 순 없으니."
"네." 신 특별보좌관이 대답했다.
고씨 가문 본가 앞에 진씨 가문의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는 진진산에게 집사가 정중히 말했다. "진 선생님, 진 아가씨. 안으로 드시지요."
고씨 가문 본가로 들어서자 고심유가 마중을 나왔다. "진 어르신, 안녕하세요."
진진산은 고심유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 아가씨, 어찌 번거롭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셨습니까."
고심유의 시선은 진서정에게로 향했다. 이 추녀는 한눈에 봐도 진씨 가문의 그 딸이 아니었다.' 감히 가짜를 보내 속이려 들다니, 진씨 가문의 배짱도 좋군!
근데 상관없어. 이런 수준의 여자야말로 큰오빠에게 딱 어울리니까!'
고심유는 입가에 적당한 미소를 걸고 물었다. "그런데 진 아가씨, 사진에서 뵌 모습과 좀 다른 것 같네요?"
"아!" 진진산이 진서정의 등을 떠밀었다. "이 아이는 제가 가장 아끼는 큰딸입니다! 어차피 같은 진씨 가문의 딸인데, 누가 시집온들 어떻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군. '고심유는 속으로 비웃었지만 굳이 그의 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진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진 아가씨는 저희 고씨 가문에 맡겨 주시고 시름 놓으십시오."
진진산은 아첨하는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려 곁에 선 진서정을 쏘아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협박했다. "네 역할이나 제대로 해! 한 글자라도 허튼소리 했다간 죽을 줄 알아!"
진서정은 차갑게 진진산을 힐끗 쳐다볼 뿐 그의 말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고심유를 보며 물었다. "제 방은 어디죠?"
"집사님, 진 아가씨를 위층으로 안내해 드리세요." 고심유가 말했다.
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가자 모퉁이에서 고탁월이 걸어 나왔다. 그는 진서정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진씨 가문에서 고작 저런 못난이를 보냈나? 난 또 우리 큰형님이 얼마나 대단한 선녀를 아내로 맞이하나 했더니."
"둘째 형, 그렇게 말하지 마." 고심유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어쨌든 우리 큰새언니가 될 사람이잖아."
"큰새언니?" 고탁월이 비웃었다. "그럼 정말 기대되는데. 저 못난이가 내일 가족 연회에서 우리 큰형님 얼굴에 어떻게 먹칠을 할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