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차가 시 중심에 위치한 최고급 빌라 단지인 스카이 라인에 들어섰다. 이내, 차는 어림 잡아도 30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부지를 자랑하는 단독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저택 정원, 고급 맞춤 정장을 입은 남자가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정원의 단풍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님, 김이진 씨가 도착하셨습니다.

"운전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고 그제야 남자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햇살이 그의 등에 쏟아져 그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재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서지혁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서른 살 초반의 나이였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어 가만이 있을 뿐인데도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뿜어 내고 있었다.

"김이진 씨.

"첼로처럼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상상했던 모습과는 좀 다르군요."

그의 머릿속의 그녀는 지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수감 중임에도 불구하고 세번이나 정확하게 주식 시장의 흐름을 예측해 그로 하여금 수천억의 손실을 막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을 정도로 삐쩍 말라 있고 얼굴은 백지장 마냥 창백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한 쌍의 눈동자 만은 놀랍도록 반짝이는 빛을 내뿜고 있었다.

"서대표님 상상 속의 저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김이진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죽지 않고 물었다.

서지혁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이 두 눈, 영상 미팅 속에서 수없이 마주했던 그 눈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했어도, 그녀의 두 눈은 단 한 번도 빛을 잃은 적이 없었다.

"이 저택, 어떠세요?"

그는 화제를 돌리며 저택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김이진이 주위를 둘러 보더니 말했다. "스카이 라인은 시 중심에 위치한 최고급 빌라 단지죠. 정원도 유명한 디자이너가 직접 꾸몄다면서요? 그리고 실내 인테리어는 더 말할 것도..."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드신다면 선물로 드릴게요."

서지혁은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우리의 정식 협력을 기념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한번 환생한 김이진이라지만 그의 통 큰 선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카이 라인에 위치한 빌라는 가장 싼 저택이라고 해도 600억부터 호가하니 말이다.

"서 대표님, 통이 정말 크시네요."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물었다.

"제가 저택을 팔아 버리고 도망가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서지혁은 그녀를 향해 두걸음 다가섰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수 냄새가 그녀를 감쌌다. "김이진 씨가 교도소에서 저에게 벌어준 돈으로, 이런 저택은 열 채를 사고도 남아요.게다가..."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잖아요."

김이진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김씨 그룹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전생, 그녀가 죽은 뒤 서지혁은 김씨 그룹과 재계를 뒤흔드는 인수합병 전쟁을 벌였고 결국 두 그룹 모두 큰 손실을 입고 말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서지혁은 그녀의 뼈마디가 뚜렷한 손을 잡았다. 약간 차갑게 느껴지는 손이었다. "방은 2층에 있습니다, 안에 드레스룸도 준비되어 있어요. 먼저 좀 쉬어요."

한편, 김씨 가문은 난리가 났다.

"뭐? 딴 놈 차를 타고 갔다고?" 김씨 가문의 가장인 김지원이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년이 집구석을 아주 우습게 아는구나!"

임지아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이진이가 이원이 대신해서 교도소 들어간 일 때문에 아직도 우리를 원망하는 걸까요? 우리 이원이는 어렸을 때부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는데 어떻게 교도소 같은 데서 고생하는 걸 견딜 수 있겠어요."

"엄마, 울지 마요..." 김이원이 갓 구운 쿠키를 쟁반에 담아 주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녀의 눈은 토끼처럼 빨갛게 부어 있었다. "다 제 탓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언니가 교도소에 가는 일도 없었을 텐데... 제가 지금이라도 가서 언니를 찾아올게요!"

"쓸데없는 소리!" 큰오빠 김이훈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몸도 약한 애가 어딜 간다고 그래? 김이준, 대체 무슨 차였어?"

김이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차 번호판을 보니..." 그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생각났어! 서지혁, 서회장의 차야! 지난달 재계 정상 회담에서 똑똑히 봤어!"

"서씨 그룹?" 김이훈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김이진이 어떻게 서지혁을 알게 된 거지?"

거실은 순식간에 기묘한 침묵에 잠겼다.

서씨 그룹과 김씨 그룹은 숙적이다. 만약 김이진이 서지혁과 줄이 닿았다면...

"말도 안 돼요." 김이원이 갑자기 이가 시릴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는 시골에서 자랐고, 3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서회장을 알겠어요? 분명 우연일 거예요."

말을 마친 그녀는 눈에 번뜩이는 살기를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 년이 감히 서지혁을? 웃기지 마. 분명 착각일 거야.'

'아니라도 상관없어. 그년이 감옥에서 나왔다고 해도 다시 감옥에 처넣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번에는... 영원히 못 나오게 해 줄게!'

회차 3

"딱, 딱!"

김이진은 짐을 다 정리하고 나서 아래층으로 내려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때, 서지혁이 손가락을 두 번 튕기자 저택 안에서 일사 불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훈련을 잘 받은 하인, 30여 명이 안쪽에서 줄지어 나와 세 줄로 나란히 섰다.

맨 앞에 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허리를 살짝 숙이고는 공손하게 말했다. "김 아가씨, 안녕하십니까. 집사 장설연입니다. 편하게 장집사 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 선 하인들이 일제히 인사를 건넸다. "김 아가씨, 안녕하십니까!"

김이진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고 서지혁을 쳐다봤다.

"서지혁 씨, 이건...?"

남자는 입 꼬리를 살짝 올리고 단호하지만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 집안이 세워주지 않던 그 체면, 제가 세워드리죠."

김이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방금 교도소에서 나온 그녀는 김씨 가문과 완전히 척을 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류층 사람들은 그녀가 가문에서 버림받았다는 소식을 알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누구든 그녀를 짓밟을 수 있을 것이다.

서지혁의 행동은 그녀가 자신의 사람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통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고마워요, 서지혁 씨."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녀는 서지혁이 착하기만 한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배려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녀에게 그 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혈연으로 맺어진 위선적인 가족들보다 서지혁이라는 '동맹'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장집사는 저와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든 장집사에게 맡기면 되실 겁니다." 서지혁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김이진은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서지혁 씨, 우리 협력은..."

남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급할 거 없습니다. 김 아가씨의 능력,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이바흐의 문이 닫히고 엔진 소리가 낮게 울리더니 차는 유유히 저택을 떠났다.

'날 이대로 내버려 두고 떠나 다니?'

김이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 지금은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계획을 세우면 돼.'

"김 아가씨, 이건 서 회장님이 아가씨를 위해 준비한 겁니다."

장집사가 블랙 카드를 건넸다. "한도 제한이 없으니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김이진은 카드를 건네받고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서지혁은 정말 통이 크군.'

"그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장집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목욕물 받아두었으니 씻고 나오시면 제가 저택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김이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하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욕실에는 따뜻한 물이 준비되어 있었고, 장미 에센셜 오일과 아로마 향이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그녀는 욕조에 기대어 눈을 감고 지난 한 달 동안 짰던 판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다.

환생한 후, 그녀는 즉시 서지혁에게 연락했다.

전생에 그녀는 죽은 후 원혼의 상태로 서지혁과 김씨 가문의 상업 전쟁을 직접 목격했다.

서지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지만,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사람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도박을 걸었다.

그녀는 주식 시장의 세 번의 혼란을 미리 예측하고 서지혁에게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려줬다. 그 대가로 그는 그녀가 앞당겨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금을 지원했다.

당시 그녀가 했던 약속은 바로 3개월 내에 10배의 수익으로 보답하겠다는 거였다.

"서지혁, 절대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닐 거야."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녀는 김씨 가문이 대가를 치르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영원히 오를 수 없는 높이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할 것이다!

목욕을 마친 김이진은 장집사가 준비한 특수 제작된 원피스를 입었다. 머리도 살짝 말고 화장까지 마치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장집사는 감탄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김 아가씨께는 이 스타일이 아주 잘 어울리는 군요."

김이진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람 하나만 알아봐 줘요. 이름은 장소연이에요."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게 급선무였다.

한 시간 후, 르앙 프라자.

최고급 명품샵들이 전부 모여 있는 이곳에서 김이진이 'LUMOS' 가게에 들어섰다. 그러자 점원이 바로 그녀를 맞이했다.

"손님, 어떤 스타일의 옷을 찾으시나요?"

김이진이 아직 입을 열기도 전에, 뒤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째 오빠. 이 드레스 진짜 예쁘다! 그치?"

김이진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김이준의 팔짱을 낀 김이원이 1억짜리 드레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입어 봐. 마음에 들면 사."

그때, 점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이 드레스는 한정판이라 입어 볼 수 없어요."

김이준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뭐야? 돈 없어서 못 살까 봐 그래?"

점원은 서둘러 해명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그런 뜻이 아니라, 저희 매장 규정상..."

"그거, 제가 살게요."

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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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돌아온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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