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임하늘은 하루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녀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을 앓고 있는 쌍둥이 남동생이 있다. 올해 스물네 살이지만 지능은 다섯 살에 머물러 있다.
열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 임하늘은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 임정철이 사고를 치고 감옥에 들어간 후, 어머니 윤명숙은 충격에 빠져 재기하지 못했고, 회사는 파산했으며, 남동생은 치료 시기를 놓쳐 병세가 더욱 심각해졌다.
순식간에 가정의 모든 책임이 임하늘의 어깨에 떨어졌다.
그 몇 년간 그녀는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로 힘겹게 살았다. 그러다 인생의 구원자를 만났지만, 그를 잃고 말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비밀을 떠올린 임하늘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윤명숙은 병원에서 일하며 남동생 임효준을 돌보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 그녀는 임하늘에게 다가와 설득했다. "이 시간이면 이준재 씨도 퇴근했을 텐데, 어서 돌아가거라. 괜한 의심 사지 말고."
임하늘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괜찮아요. 그 사람이랑 이혼할 생각이에요."
윤명숙의 몸이 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준재 씨가 먼저 말을 꺼낸 거니?"
"아니요, 제가요."
임하늘이 이유를 설명하려 하자 윤명숙은 다급하게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이준재 씨는 괜찮다는데 네가 왜 굳이 이혼 얘기를 꺼내? 이씨 가문은 사업을 크게 하잖아. 그러니 사람이 좀 오만한 거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하고 생각이 같을 수는 없어. 실수하는 것도 당연한 거고."
임하늘은 뜻밖이라는 듯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 일,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윤명숙은 딸의 창백하고 어두운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감히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못나서 널 지켜주지 못했어. 하지만 하늘아…… 우리 형편이 너무 안 좋잖니. 네가 이준재 씨랑 이혼하면 나랑 네 동생은 어떡하라고……"
임하늘은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그날 밤 일의 시작은 이예원이었다. 윤명숙을 구슬려 자신을 참고 넘어가게 만든 것 또한 그녀의 수작일 터였다. 그 시누이는 자신을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정말 제대로 비수를 꽂은 셈이었다.
어머니의 비굴한 모습에 임하늘은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힘겹게 일으켜 세운 집은 결코 그녀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임하늘은 주먹을 꽉 쥐고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이 집을 책임질 수 있었고, 자신을 위해 살아갈 용기도 있었다. 어머니에게 완전히 마음이 식어버린 그녀는 애원을 무시했다.
막상 떠나려 할 때, 윤명숙이 임하늘의 팔을 붙잡고 애걸했다. "네가 지금 일이 있어서 나랑 네 동생 먹여 살릴 수 있는 거 알아. 하지만 네 아빠 일은 어떡할 거니? 이씨 가문 도움이 없으면 누가 네 아빠 결백을 밝혀주겠어? 정말 네 아빠가 감옥에서 25년이나 썩게 둘 거야?"
임하늘은 힘없이 말했다. "엄마, 이준재 씨가 절 도울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 도왔을 거예요."
그녀가 처음에 이준재와 결혼한 것은 그를 좋아한 탓도 있었지만 막다른 길에 내몰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그녀는 남편의 혐오를 느꼈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이제 완전히 파국을 맞았으니 더더욱 그럴 일은 없었다.
윤명숙은 딸의 태도가 단호한 것을 보고 더는 설득하지 못하고 흐느끼며 말했다. "하늘아, 이씨 가문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섣불리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라."
임하늘은 침대에 누워있는 남동생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타부타 대답 없이 병원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임하늘은 이준재의 비서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최성훈이 다가와 공손하면서도 어딘가 거리를 두는 태도로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이미 합의서에 서명하셨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진 임하늘은 무거운 손을 들어 합의서를 받아 들었다.
……
그날 밤, 이준재가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집에는 새로운 가사 도우미가 와 있었다.
가사 도우미는 임하늘이 까다롭게 고른 사람으로, 경험이 풍부하고 눈치가 빨라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이준재는 그녀를 쓰지 않았다.
그는 임하늘이 조만간 돌아올 것이라 여겼기에 굳이 새로운 사람에게 적응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간, 임하늘의 세심한 보살핌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바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사소한 습관들이 그를 까닭 없이 짜증 나게 만들었다.
요즘 그의 영향으로 회사 전체가 저기압에 휩싸였다.
이날 이예원이 그를 찾아왔다.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오빠가 직원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안으로 달려 들어가 그를 달랬다. "오빠, 왜 이렇게 화를 내? 그러다 몸 상하면 어떡해."
이준재는 동생을 보았지만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회사에는 무슨 일이야?"
이예원의 눈에 교활한 빛이 스쳤다.
"오빠, 임하늘이랑 싸웠다며? 이혼할 거야?"
이준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누구한테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