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나는 동료의 밝은 목소리가 텅 빈 복도에 울리는 가운데, 멍하니 내 진료실로 걸어갔다. 임신. 6주. 나는 아직 납작한 배에 손을 얹었다.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이 작고 무고한 생명. 왜 하필 지금일까? 왜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폐허 속에서, 이 순간에 찾아와야만 했을까?

산부인과 병동으로 향하는 복도를 돌았을 때, 익숙한 실루엣이 나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는 커다란 비품 카트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뛰었다.

강태준이었다. 그는 개인 병실 밖에 서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최유라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는 위로의 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내가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다정한 염려가 가득했다.

최유라의 흐느끼는 속삭임이 복도를 따라 들려왔다.

“그 여자, 뭐 눈치챈 거 아닐까?”

“은하?”

태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걘 날 완전히 믿어.”

그것은 나를, 내 지성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경솔한 한마디였다.

“하지만 언제 나를 당신 아내로 만들어 줄 거야?”

최유라가 절박한 야망이 섞인 목소리로 다그쳤다.

“언제쯤 나랑 준서에게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을 줄 수 있냐고?”

“유라야, 그만해.”

그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목소리에 강철 같은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서은하는 내 아내야. 그건 변하지 않아.”

숨이 턱 막혔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야.”

그가 말을 이었다. 이제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졌고, 죄책감 같은 것이 묻어났다.

“내가 그녀에게 저지른 짓에 대한 속죄라고.”

그는 그녀를 다시 한번 끌어안고 머리에 입을 맞췄다. 그 순간, 최유라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찰나의 순간, 그녀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는 놀라움이 없었다. 오직 차갑고 의기양양한 승리감만이 번뜩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몸이 떨렸다. 참고 있던 눈물이 뜨겁게, 멈출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죄책감 때문에 나와 이혼하고 싶지 않지만, 그의 다른 가족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나는 무엇인가? 대리인? 그가 더 이상 느끼지 않지만 깨뜨리기엔 너무 비겁한 약속의 상징?

그의 결혼 서약이 뇌리에서 울렸다. 잔인한 조롱처럼.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그는 그토록 확신에 차서 말했었다. 나는 그를 믿었다.

나는 무겁지만 확고한 발걸음으로 내 진료실로 돌아갔다. 이 유독하고 부서진 사랑은 암 덩어리였다. 도려내야만 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예약을 잡았다. 수술.

그리고 지아에게 전화했다.

“이혼 서류 준비해 줘.”

내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모든 재산 절반으로 나눠. 내가 받아야 할 모든 것.”

지아는 충격에 빠졌다. 그녀의 눈에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커플, 의대 시절부터 모두의 부러움을 사던 한 쌍이었으니까.

병원 주차장 차 안에서 앉아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태준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밝고 흥분되어 있었다.

“자기야. 어젯밤엔 미안, 사무실에 또 급한 일이 생겨서. 근데 들어봐, 오늘 밤이 회사 창립 기념 파티야. 회장 아내로서 당신이 꼭 와야 해. 중요한 자리라고.”

씁쓸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알았어.”

나는 입안에서 먼지처럼 흩어지는 단어를 내뱉었다.

그는 내 질문 없는 대답에 안도하는 듯했다.

“좋아. 그럼 이따 밤에 봐.”

나는 전화를 끊었다. 창밖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깊고 오싹한 예감만이 느껴졌다. 그는 무슨 일이 닥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소중한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그는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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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비밀 아들과 의사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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