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교외에 위치한 폐기된 창고.
"아악!" 김지안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몸을 떨었다. "오빠! 운재야! 살려줘!"
"지안아!"
"지안이는 풀어줘. 김민정은 너희 마음대로 해도 돼!" 장남 김민준은 잔뜩 가라앉은 얼굴로 주먹을 움켜 쥔 채 놈들을 쏘아 봤다. 마치 사람이라도 죽일 듯한 눈빛이었다.
"지안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리기만 해봐! 너희들 전부 찢어 죽일거야!" 둘째 김민혁의 안경에 싸늘한 살기가 비쳤고 이성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조건은 원하는 대로 불러! 지안이만 풀어 주면 돼! 김민정 그 문제아는 너희 마음대로 해!" 셋째 김민현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기둥에 묶인 김민정은 눈을 꼭 감았다.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김씨 가문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 오빠의 입에서 자신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직접 들은 그녀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고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그들의 차가운 말투는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야 말로 그들의 친동생이다!
고생 끝에 겨우 다시 가족을 찾았건만!
김민정과 김지안은 함께 납치범에게 납치되었다. 몸 값을 받아내는 자리에서 놈들이 말했다. 둘 중하나만 풀어 주겠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녀의 세 오빠는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김씨 가문의 양녀 김지안을 선택했다.
"불쌍해서 어떡하냐? 네 오빠들은 너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네?"
납치범은 김지안을 풀어주더니 김민정의 턱을 잡고 비웃었다.
"우리 언니한테서 손 떼!" 김지안이 힘없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김민정은 그녀의 눈에 스치는 득의양양한 빛을 똑똑히 보았다.
이제 김민정에게 남은 마직막 희망이라곤 그녀의 약혼자 류운재 밖에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잘생긴 얼굴에 깔끔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서있었다.
"운재야…" 김민정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불렀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구해 주리라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애처롭게 그를 쳐다보았다.
곧이어 류운재의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씨 가문에서 이미 선택을 한 모양이군요. 저도 김씨 가문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저도 지안이를 선택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김민정의 심장을 꿰뚫었다.
너무 아팠다.
류운재, 그녀가 3년간 미친 듯이 사랑했던 남자다.
'냉정하고 무심한 인간!'
그녀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녀는 한때 다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봤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얼굴은 낯선 사람처럼 차갑기만 했다.
과거, 그녀는 류운재를 구하려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지금…
'하!'
류운재는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김지안 밖에 없었고 조심스레 밧줄을 풀어 주고 있었다.
배신의 아픔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여태 바보처럼 그들에게 속아왔던 자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가소롭게 느껴졌다.
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그녀가 밧줄에서 풀려나기 바쁘게 김씨 3형제와 류운재가 그녀를 에워싸더니 서둘러 안부를 물었다.
김민정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녀는 마치 버려진 쓰레기 같았다.
그녀는 김씨 가문 사람들이 김지안을 보살피며 떠나는 모습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김민정은 눈을 감았다. 눈물 한 방울이 그녀의 눈가에서 흘러 내렸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보이는 건 음흉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납치범들이었다.
"불쌍해서 어떡하냐? 하지만 괜찮아, 오빠들이 예뻐해 줄 테니까. 근데 김씨 가문 놈들이 가짜 딸을 위해 친딸을 포기 할 줄, 누가 알았겠어?"
"예쁜아. 진실을 말해 줄까? 이 일은 사실, 김지안이 계획한 거야. 널 제거하려고 말이야."
"얘들아, 서두르지 마. 한 명씩 차례대로… 함께 즐겨야지."
김민정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온몸을 휩쓸었다.
"꺼져!" 그녀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나 사정없이 얼굴에 떨어진 따귀에 전신이 혼미해 졌다.
"꽤 사나운 걸?" 선두에 선, 얼굴에 칼자국 난 남자가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의 옷을 찢어발겼다. "난 사나운 년이 좋더라고..."
김민정의 등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 설 곳은 없었다. 여태 고함을 쳤던 탓에 목은 이미 쉴 대로 쉬어버렸고 묶여 있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놈들을 바라보는 그녀는 절망에 휩싸였다.
김민정은 죽음을 각오한 듯 고개를 번쩍 들더니 벽에 머리를 세게 박으려 했다.
바로 그때!
"탕!"
귀를 찢을 듯한 총소리가 창고의 적막을 깨뜨렸다.
겁에 질린 납치범들은 멍하니 총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작전복으로 통일한 무리가 두 팀으로 나뉘어 창고로 쳐들어 왔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짙은 살기가 창고 안을 가득 채웠다.
이내, 체격이 훤칠한 남자가 앞으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창고의 조명이 그의 날카로운 턱선과 싸늘한 눈매를 비추었고 그의 온몸에서 살벌한 기운과 함께 숨막힐 듯한 압박감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손에는 외형이 독특한 권총이 쥐어져 있었고 총구에서는 희미한 연기가 피어 올랐다.
"당장 멈춰. 뒤지고 싶지 않으면." 낮게 깔린 중저음에 싸늘한 살기가 묻어났다.
사실 서건우는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마주칠 줄이야.
그는 쓸데없는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조직간의 전쟁, 납치, 공갈. 이런 한적한 곳에서 그런 일은 흔하게 일어 났다.
그가 냉정하게 돌아서려던 그때, 그의 시야에 여자의 옆모습이 스쳤다. 창백한 얼굴과 꺾이지 않는 눈빛,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회차 2
서건우를 본 납치범들은 사색이 되어 즉시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형님! 저희가 눈이 멀어 감히 형님을 몰라 뵈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눈앞에 있는 남자는 바로 지하세계의 왕으로 불리는 서건우였다.
거대한 지하 조직을 거머쥐고 있는 그는 일반 사회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했고 수단이 잔혹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들 같은 밑바닥 건달들이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하필이면 이 미친놈과 만나다니!'
서건우는 납치범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김민정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몸을 묶은 밧줄을 풀어주었다. 바로 그때, 임민정은 풀려나기 바쁘게 신속히 바닥에서 비수를 집어 들었다.
그녀에 손에 들린 비수에 서슬 푸른 빛이 어른거렸다.
"푹!"
비수가 조금 전에 그녀를 범하려 했던 그 놈의 목에 정확히 박혔고 그 즉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남은 납치범들은 모두 겁에 질려 넋이 나갔다.
"너… 너 뭐야!"
김민정은 잔인하고도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 목숨을 거둘 사람."
좁은 창고에 비명 소리와 애원 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왔다.
김민정은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칼자국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놈은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 상태였고 겁에 질린 얼굴로 그녀를 쳐다 봤다. 그의 눈에 김민정은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 온 악마처럼 보였다.
"말해 봐. 김지안이 너희에게 얼마를 줬지? 계획은 뭐였어?"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김지안이 … 널 납치하는 댓가로 3억을 줬어... 김지안은 김씨 가문 사람들이 자신을 택할 거라 확신하고 있더군... 우리더러 널 실컷 갖고 논 다음에 깔끔하게 처리하라고 했어..."
칼자국 남자는 극심한 공포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고 말까지 더듬으며 꾸역꾸역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다.
김민정의 눈빛이 더욱 살벌해졌다.
'하, 김지안... 참 대단하네...'
그녀가 그토록 갈망했던 가족도,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약혼자도... 참으로 대단했다.
'기다려! 나 김민정,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녀는 가족의 사랑을 갈망했기에 모든 걸 감내했고 김씨 가문에서 무엇을 요구하든 그녀는 최선을 다해 해내려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기는커녕 그들은 그녀의 진심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이제 더 이상 마음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같은 피가 흐르는 친딸을 제쳐두고 가짜 딸만 싸고도는 멍청한 놈들! 그런 놈들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김씨 가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꺼져! 내 눈에 띠지 마!"
김민정의 명령이 떨어지자 납치범들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재미있군.'
서건우는 김민정 같은 여자를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불쌍한 그저 여자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김민정이 서건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고마웠어요."
서건우가 입을 열려던 그때, 갑자기 속에 비릿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더니 급기야 피를 토해냈다.
그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고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김민정은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즉시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중독되셨어요?"
서건우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녀의 말대로 그는 중독된 상태다. 매우 희귀한 독이라 발작이 은밀하게 일어나 예사 의사는 그가 중독 되었다는 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어떻게 한 눈에 알아차린 거지?'
김민정은 집중하며 그의 맥을 짚었다. 몇 초 후, 그녀는 손을 놓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독에 중독된 지 한 달이 됐어요. 지금 해독하지 않으면 골치 아파져요."
"너, 치료할 수 있어?" 서건우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김민정의 말이 맞다.
서건우의 부하 중 한 명이 'S연맹'에 매수되어 그에게 독을 탔다. 서건우는 다크 웹에 포상금 수십억을 주겠다고 의뢰를 올렸지만 독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절 믿어요? 믿는다면 손을 내밀어 보세요."
김민정이 말했다.
서건우는 의심이 많고 신중한 성격이다. 하지만 김민정의 맑고 확신에 찬 눈빛을 마주한 그는 그의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믿어."
"참아요."
김민정은 그의 팔을 잡더니 비수를 들어 그의 검지에 작은 상처를 냈고 이어 피를 짜냈다. 곧이어 시꺼먼 피가 뚝뚝 떨어졌다.
"형님!" 부하가 깜짝 놀라며 다가섰다.
"지금은 해독에 필요한 장비가 없어요. 일단 독소를 짜내 증상을 완화 시키는 수밖에 없어요."
김민정이 설명했다.
잠시 후, 서건우는 몸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김민정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집중한 그녀의 눈빛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 해."
김민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방금 절 구해준 은혜를 갚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책임지고 당신의 독을 치료해 줄게요."
서건우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김민정은 정말 알 수 없는 여자였다.
"그럼 치료가 끝날 때까지, 당분간 내 곁에 있도록 해."
서건우가 말했다.
결단력이 강한 그는 곁에 종래로 여자를 둔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그는 김민정을 위해 처음으로 원칙을 깼다.
김민정은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저 눈썹만 살짝 치켜 올린 채 입을 열었다. "좋아요. 다만 먹고 자는 건 해결해 주셔야 해요. 하지만 그전에 전 먼저 집에 다녀와야 해요. 김씨 가문과 관계를 끊어야 해서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던 서건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거래 성립."
회차 3
김민정이 집에 돌아왔을 때, 친부모와 세 오빠는 걱정스런 얼굴로 김지안을 에워싸고 위로하고 있었다.
김민정은 피식 냉소를 흘리더니 성큼성큼 김지안에게 달려가 머리채를 움켜 잡았다.
다음 순간.
"짝!"
그녀는 사정없이 김지안의 뺨을 내리쳤다.
날카롭고도 청명한 소리가 온 저택에 울려 퍼졌다.
김민정의 등장에 김씨 가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김민정은 납치범들에게…'
김지안은 얼굴을 감싸 쥐고 울부짖었다. "김민정, 너 미쳤어?"
김민준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김민정을 꾸짖었다. "김민정, 집에 오자마자 사람부터 쳐? 당장 지안이한테 사과해!"
김민정의 친모인 소혜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김민정을 쏘아봤다. "재수 없는 년, 왜 또 난리야!" 네가 집에 돌아온 뒤로 바람 잘날 없어! 애초에 널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김민정은 그저 우스울 뿐이다. "내가 소란을 피웠다고요? 김지안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왜 안 물어보세요? 나를 제거하려고 납치범을 고용한 것도 모자라, 아주 치밀한 계획까지 세웠더라고요?"
김민정을 출산하고 나서 가정부는 일부러 그녀와 김지아를 뒤바꿨고 그녀는 그대로 버려지고 말았다. 다행히 좋은 스승을 만나 그의 보살핌 아래 성장할 수 있었다.
6개월 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씨 가문 사람들은 김민정을 집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그들은 20년간 정성껏 키운 김지안을 더 아꼈고 연기에 능한 김지안에게 속아 그녀를 냉대했다.
김지안은 여러번 김민정을 해쳤다. 사후에, 김지안의 소행으로 밝혀졌음에도 김씨 가문 사람들은 번번이 그녀를 용서했고 김민정은 그런 가족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소혜원은 김민정이 감히 말대꾸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그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린 채 불쾌함을 드러냈다. "지안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겠어? 네가 오해한 거야."
"오해요?" 김민정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납치범들이 직접 실토했어요. 그것도 거짓말이라고 하실 건가요?"
소혜원은 김민정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왜 이렇게 속이 좁은 거니? 지안이는 다친 와중에도 널 걱정하며 사람을 풀어 널 찾아야 한다고 했어. 더 이상 뭘 더 바라는 거야?"
"내가 바라는 거요? 나, 이제 이 집을 떠날 거에요. 오늘 부로 김씨 가문이 어떻게 되든 나와 상관없는 일이에요."
김민정은 그 말만 남긴 채, 짐을 챙기러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소혜원의 품에 안긴 김지안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정말 오해야. 난 그 납치범들이 누군지도 몰라. 그들이 얼마나 흉악한 놈들인지 몰라서 그래? 언니 말대로 정말 내가 부른 사람이라면 언니가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었겠어?"
김지안의 속에서는 증오가 활활 타올랐다. '완벽한 계획이었다고! 놈들에게 더럽혀진 채, 황야에 버려져야 할 년이 어떻게 돌아 온 거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김민정은 차갑게 비웃었다. "계속 발뺌을 하시겠다?"
김민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김지안에게서 눈을 떼고 김씨 일가 사람들을 둘러 보았다. 그녀는 마치 마음이 완전히 식은 사람처럼 눈빛이 고요하기만 했다.
"당신들, 아마 내가 김지안을 모함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할 거에요. 맞죠?"
소혜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럼 아니야!? 지안이는 이미 충분히 해명했어."
"충분하다고요?"
김민정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럼 내가 더 확실한 걸 들려줄게요."
미세한 전류음이 흐른 뒤, 휴대폰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그 중 하나는 김지안의 목소리가 틀림 없었고 나머지 목소리는 바로 칼자국 남자, 납치범 두목의 목소리였다.
"일 끝나면 잔금은 두 배로 줄게. 명심해, 그년을 완전히 망가뜨려야 해. 두 번 다시 김씨 가문에 발도 못 붙이게."
"김씨네 둘째 아가씨. 걱정 마. 우리가 그년을 잘 놀아 줄 테니까. 나중에 사진도 찍어서 보내주지. 큭큭."
"뒷처리 똑바로 해. 나와 연관된 증거는 말끔히 지워."
"아. 걱정 말라고. 우리 전문가야."
녹음은 길지 않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혔다.
거실은 죽은 듯이 고요했고,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김이진의 울음소리가 즉시 멈췄다. 그녀의 얼굴은 핏기하나 없이 창백했고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김씨 가문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지안을 쳐다봤다.
"아니야… 그럴리 없어… 그 녹음 위조한거지?!" 김지안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위조?" 김민정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 녹음 파일, 전문 업체에 감정이라도 맡겨볼까? 아니야, 경찰에 신고하는게 빠르겠어, 그쪽에서 알아서 진위를 가려주겠지. 납치는 중죄니까. 철저하게 조사할 거야."
"안 돼! 경찰에 신고하면 안 돼!" 김지안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곧바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김민정에게 애원했다. "언니, 미안해.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오해야. 언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일단 화내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봐... 이 집을 떠나야 할 사람은 나야. 난 어차피 남이잖아…"
김지안의 눈물 연기에 김씨 가문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렸고 김민정이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김민정, 지안이가 사과했잖아. 적당히 해." 소혜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눈앞의 황당한 상황에 김민정은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명백한 증거를 앞에 두고도 김지안의 어설픈 연기에 넘어가는 꼴이라니.
김민정은 캐리어를 챙기며 말했다. "걔가 있는 한, 난 이 집에 남지 않을 거에요. 걔를 선택한 것 같으니 내가 떠날게요."
단호하게 돌아선 김민정의 뒷모습을 보며 김씨 가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소혜원은 화가 치밀어 발을 동동 굴렀다. "저 년이 정말 집을 떠나?"
김지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제가 가서 언니를 다시 모셔올게요. 언니만 돌아온다면, 전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요…"
소혜원은 그런 김지안을 꼭 끌어안았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넌 영원히 엄마 보물이야. 다시는 떠난다는 말 하지 마. 알겠어?"
"그래. 그년이 제 발로 나가겠다니 잘됐지. 집에 돌아와서 집안만 엉망으로 만들었는데, 앞으로 제 힘으로 잘 살아보라지."
김민정의 친아버지 김건욱도 화가 화를 내며 입장을 밝혔다.
"맞아, 지안아. 김민정 저 년은 착한 너와는 비교도 안 돼."
"하지만 언니는 회사 지분 35%를 가지고 있잖아요. 만약 언니가 그 지분으로 회사에 문제를 일으키면 어떡하죠?"
김지안이 입술을 잘근 깨물며 조심스레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