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다음 날, 임유나는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했다.
조재호의 의심을 피하고자 마지막 날까지 비서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계획이었다.
그녀는 사장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이 약간 열려 있었고 나해리가 조재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거의 조재호한테 기댄 상태였다.
조재호는 나해리를 내려다보며 임유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정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임유나가 문을 밀고 들어가자 두 사람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해리는 조재호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당신 비서야? 핸드 드립 커피 좀 가져와."
마치 하인을 부리듯 한 어조였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소유욕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조재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임유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잠시만요." 이혼 합의서가 손에 있는 지금, 그녀는 그저 그의 비서일 뿐이었다.
커피 향으로 가득한 휴게실.
임유나는 고개를 숙이고 커피를 내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사진 앨범에서 본 메모가 떠올랐다. 나해리는 과일의 산미가 약간 있는 예가체프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조재호의 사무실에는 항상 예가체프 콩이 있었던 거구나.'
그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임유나도 과일의 산미에 익숙해졌다.
그녀의 삶, 취향, 습관이 다른 여자의 모습으로 조용히 바뀌어 갔다.
커피에서 올라오는 증기가 임유나의 눈을 따갑게 했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식어버려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임유나는 쟁반을 들고 사무실로 걸어갔다.
소파에 가까워지자 앉아 있던 나해리가 갑자기 일어나 마주하려다가 비틀거리며 임유나에게 부딪혔다.
"어머나!" 나해리가 외쳤다.
쟁반이 기울어지며 뜨거운 커피 한 잔이 임유나의 오른쪽 손등에 쏟아졌다.
바로 타는 듯한 통증이 즉시 느껴졌다.
임유나는 신음 소리를 참으며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당겼고, 손은 눈에 띄게 붉어지고 부어올랐다.
조재호는 즉시 나해리를 뒤로 잡아당겼다. "해리야, 너도 데였어?"
나해리는 그의 품에 숨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고의가 아니었어. 당신 비서가 너무 빨리 다가와서 내가 못 봤어."
그제서야 조재호는 고통으로 손가락을 떨고 있는 임유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부주의할 수 있어?" 그는 그녀의 붉고 부어오른 손을 보지 못한 듯 소리쳤다. "멍하니 뭐 하고 있어? 빨리 가서 치료해!"
그 순간, 임유나의 마음은 뜨거운 커피를 뒤집어쓰고 얼음 상자에 던져진 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이 손에 닿았고, 고통은 심했지만 마음의 차가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재호는 그녀의 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그녀가 일하지 않을 때 집에서 패션 디자인 스케치를 연습했으며, 조재호는 그녀를 위한 자료를 찾아주기도 했다.
만약 그가 주의를 기울였다면, 나해리의 비틀거림이 고의적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나해리는 임유나가 단순히 비서가 아니라 조재호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조재호가 좋아하는 것을 믿고 일부러 그랬다.
이 손...
임유나가 패션 디자인을 하고 파리에서 꿈을 이루려면 이 손이 필요하다.
나해리가 만약 선을 넘는다면, 임유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거울을 바라보자, 새로운 결의와 자유를 발산하는 여성이 보였다.
자리로 돌아와 임유나는 화상 입은 손을 이혼 합의서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 나형주에게 보냈다. '나형주, 서명된 이혼 합의서야. 변호사한테 보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