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나 비서가 하준우의 시선을 따라가자 그 시선 끝에 도지연이 서 있었다. 그러자 그는 살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누군가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처럼 너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도련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함정일 수 있어요."

나 비서의 말에 하준우는 좀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 "저 여자가 왜 여기 있는지 알아봐."

그 한 마디에 나 비서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반면, 하준우를 알아보지 못한 도지연이 자리를 뜨려 몸을 돌리자 순간 등 뒤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이제 와서 밀당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 말에 도지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그러나 하준우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녀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웃기군. 아침까지만 해도 어젯밤 일은 없던 걸로 하자더니 몇 시간도 안돼서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다니.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내 관심을 끌겠다는 건가?"

그 말에 도지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눈앞에 서 있는 남성은 바로 어젯밤에 자신의 첫 경험을 앗아간 그 남자였다.

그때, 나 비서가 급히 돌아와 하준우의 귀에 속삭였다. "이름은 도지연, 도건호 회장의 장녀입니다. 그리고 모친은 조금 전 손목을 긋고 자살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하준우는 도지연의 손에 말라붙은 피와 붉은 얼룩이 흰 드레스 자락에 번져 있는 걸 보았다. 이에 그는 나 비서를 향해 짧게 명령을 했다. "데려가서 씻겨."

이후, 도지연은 하준우의 집으로 옮겨졌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자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한편, 소파에 느긋하게 몸을 기댄 채 앉아 있던 하준우는 은색 라이터를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며 줄곧 도지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제 말해 봐, 우리 할머니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그 말에 도지연은 그 앞에 꼿꼿이 서서 담담하게 답을 했다. "난 그쪽 할머니가 누군지도 몰라요. 하 도련님, 도와주신 건 감사하지만 더 볼일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나 하준우는 여전히 비웃으며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 성까지 아는 주제에 모르는 척이라니. 그래, 좋아. 정연숙의 심부름꾼이 아니라면 이 게임에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우리 거래하지." 하준우가 라이터를 탁자 위로 던지며 말을 내뱉자 도지연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거래? 대체 무슨 거래?' 지금 도지연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에 하씨 가문 사람이 그녀에게 바랄 게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하준우가 유리 탁자 위로 서류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읽고 사인해."

도지연은 계속해서 경계를 하며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이게 뭐죠?"

"혼전 계약서." 하준우는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덤덤하게 답을 했다.

그 말에 도지연이 놀라 눈을 크게 뜨자 하준우는 날카롭게 조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게 당신이 원하던 거 아니야? 애초에 하씨 가문 며느리 자리를 노린 거잖아."

그 말에 도지연은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저 결혼했습니다."

그 말에 하준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도지연에게 다가갔다.

삼나무 향과 은은한 연초 냄새가 공기를 타고 번지자 도지연은 순간 심장이 요동쳤다.

"그렇게 남편에게 충실한 여자가 어젯밤엔 왜 날 거부하지 않았지?"

그의 조롱 섞인 말에 도지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젯밤, 그는 술에 취해 있어서 도지연이 조금만 더 강하게 그를 밀어냈다면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 하준우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낮게 말했다. "할머니가 당신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겠지. 남편하고 이혼하고 나랑 결혼해. 그럼 원하는 건 뭐든 갖게 해줄 테니."

그 말에 도지연의 눈빛이 강하게 흔들렸다. 그는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오해를 이용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사실 도소희의 말이 맞았다. 지금 그녀 혼자서는 아무 힘이 없었다. 복수를 하려면 강력한 뒷배가 필요했고 하씨 가문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도지연 앞에 선 남자는 온 몸으로 권력의 냄새를 풍겼고, 지금 있는 그 집 마저 강렬하게 그녀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재벌 2세가 아니라 권력의 정점에 선 남자다.

도지연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도씨 가문과 육씨 가문 모두 그녀를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그 생각에 도지연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좋아요. 그 거래, 하죠."

이후, 도지연은 빠르게 혼전 계약서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빼곡한 법률 조항에 눈살을 찌푸리며 하준우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직접 읽어주세요. 이런 거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서요."

그러자 하준우는 살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 누구도 감히 그에게 그런 사소한 일을 시킨 적이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난독증이 있어요. 그래서 글자들이 전부 뒤섞여 보여요."

도지연의 말에 하준우는 잠시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글을 아예 못 읽는 거야?' 하지만 그는 곧 의심을 거두었다. '할머니가 글도 못 읽는 여자를 골랐을 리 없지.'

이에 하준우는 서류를 옆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세부 내용은 몰라도 돼. 중요한 건 세 가지뿐이야. 첫째, 이 결혼은 일 년짜리 계약이고 일 년이 지나면 무조건 끝이야."

그 말에 도지연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고작 일 년? 별 거 아닌데?' "좋아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둘째, 혹시라도 임신하면 아이는 내가 키울 거야. 당신은 그냥 떠나면 돼. 아이에 대한 권리는 일절 없어."

그 말에 도지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냉혈한 인간이군.' 하지만 그녀는 애초에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알겠어요. 마지막은요?"

그러자 하준우는 조금 더 도지연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낮게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 같은 건 얻을 생각하지 마. 사랑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란 말이야. 난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너도 내게 그 어떤 것도 바라지 마."

그 말에 잠시 도지연의 눈에 묘한 감정이 스쳤다. 하준우는 충분히 매력적인 남자지만, 그녀에겐 단지 낯선 사람일 뿐이다. '낯선 사람인데, 어떻게 사랑하겠어.'

이에 그녀는 주저 없이 펜을 들어 계약서에 서명했다.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죠, 하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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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가 요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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